< 71화 - 아낌없이 주는 남자 >
“엄청 오랜만에 보네요.”
양키스와의 지난 시리즈는 8월 초에 있었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거의 두 달만에 만나게 된 것이다.
“오랜만은 무슨. 매일 점심마다 연락하면서.”
트레이드 기간이 끝났다고해서 단장들 사이의 찔러보기식 연락이 없을것이라고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이다.
다운은 매일마다 아침 문안인사하듯 29개 단장들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당장 오늘 아침만해도 다운은 디백스 단장에게서는
“에두라르도 로드리게스 올 겨울에 팔거죠? 에헤이~ 미리 좀 알려주면 덧나나.”
쿡쿡 찔러보는 짓을 했고, 다저스 단장과 통화할 때는
“멜튼을 팔라고요? 우리랑 계약기간이 3년이나 더 남았는데 멜튼을 왜 팝니까? 돈이 없다뇨. 더 데리고 있을 수 있어요! 요새 우리가 얼마나 돈 잘 벌고 있는데. 뭐 정말 좋은 오퍼가 들어온다면야 어쩔 수 없죠. 하지만 돈 때문인건 절대 아닙니다. 저희 구단주님이 꿍쳐둔 재산이 얼마나 많은데요~”
또 이렇게 찔림 당한 다음에 여지를 질질 흘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미리 작업을 해놔야 오프시즌이 되면 누굴 노릴 수 있는지, 혹은 누굴 판매할지에 대한 계획에 바로 돌입할 수 있다. 특히나 올 시즌이 마치면 임시로 1년 연장했던 CBA(노사협정) 논의를 다시 벌여야한다. 자칫하면 직장폐쇄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 직장폐쇄 기간 동안에는 모든 트레이드나 협상, 선수영입이 중지된다.
그래서인지 다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모든 딜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정보를 쌓아놓는데 혈안이 되어있었다.
대런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뭐 직접 보는건 오랜만이잖아요.”
“경기나 봐.”
세드릭의 시구를 시작으로 양키스와 레이스가 1위를 건 올 시즌 마지막 시리즈에 들어갔다.
“오늘 관중 끝내주게 많네요.”
“양키스 누를 생각에 다들 신난거지.”
대런은 양키스 팬들이 모여있는 구역을 눈짓했다.
“그 반대로 생각하는 팬들도 있는것 같은데요? 지는 팀이 밥 사기 하실래요?”
“좋지.”
서로의 순위가 걸렸다는걸 알기 때문인지 경기는 1회부터 엄청난 투수전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엄청난 집중력은 곧 빠른 체력 소모를 가지고 온다.
따아아악!
- 앤드류 켈리가 때린 공이 아······ 담장을 넘어갑니다. 양키스가 2점 앞서나갑니다.
포레스트가 5회에 먼저 양키스에게 점수를 헌납했다. 하지만 같은 이닝
따아아악!
- 드레이크! 네이썬 드레이크의 투런 홈런! 레이스의 현재이자 미래인 드레이크가 때린 공이 양키스의 심장에 때려박힙니다!
드레이크가 동점 투런 홈런을 뽑아내며 간만에 트로피카나 필드를 가득채운 팬들을 들끓게 만들었다.
우와아아아아아!
드레이크! 드레이크!
열광의 도가니인 관중석과는 다르게, 다운과 대런이 있는 이곳 VIP라운지는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드레이크 저 친구 괜찮긴 하네요. 팔 생각 없죠?”
“당연한 소리를.”
“나중에 연봉 높아질 때 쯤 되면 양키스에 넘겨요. 잘 쳐줄테니까.”
“엿이나 까잡숴.”
훈훈한 말이 오가는 가운데 대런이 툭 던졌다.
“올 겨울에 록하트 넘길거라면서요?”
“누가 그래? 설마 그 양반인가?”
“아마 그 양반 맞을걸요?”
대런의 말에 다운이 능글맞은 웃음을 지었다.
“Nice try. 하지만 안 넘어가.”
여기서 다운이 누군가의 이름을 말하게되면 대런은 꽁으로 3루 자원을 원했던 팀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너희 내년에 알레한드로 마차도 팔꺼잖아.”
양키스의 3루를 맡고 있는 알레한드로 마차도의 계약이 내년이면 1년 남게된다.
소식통에 의하면 답답하고 규율로 가득한 양키스가 싫어서 재계약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양키스는 올 시즌 벤치멤버로 메이저리그 수업을 애런 존스로 그 자리를 메울 것이고, 겨울에는 마차도를 팔아치울 것이 분명하다.
록하트보다 계약 기간은 짧아도 지난 3년간 2할 후반대에 35홈런 이상을 때려준 마차도는, 3루가 비어있는 팀이라면 누구나 홀릴법한 매물이다.
록하트를 팔아야하는 다운에게는 경쟁자나 다름없다는 말. 경쟁자에게 그런 정보를 그냥 넘겨줄수야 없지 않겠나.
“좀 져주지 그래요. 다임러 때부터 가스파르까지 제가 많이 져줬잖아요.”
“져주긴 무슨. 다임러는 나도 몰랐던 일이고, 가스파르는 네가 져줬다기보다는 마무리가 정말 필요해서 그랬던 거잖아. 대체 자원이 없으면······”
“······ 가격은 올라가는 법이니까. 알죠. 아는데 나한테만 왜 그러냐고요 진짜.”
사실 대런에게 남아있던 악감정은 거의 희석되었다.
애초에 다운의 뒤통수를 거하게 친건 대런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였고(물론 그걸 숨긴 괴씸죄라던가 연좌죄는 아직도 있다.), 매일같이 안부전화를 빙자한 정보싸움을 하다보니 어느정도 마음이 풀어진 것이다. 거기에다가 구단에 이익이 되는 일을 따라서 최선의 선택을 해야만하는 단장자리에 있다보니 완전히 날을 세우는 태도를 취할 수 없다는 것 역시 한 몫했다.
‘1년 가까이 때렸음에도 이렇게 달라붙는걸보니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고······’
다임러 건은 그렇다쳐도 이후에 있었던 말린스쪽 딜이라던가, 가스파르 딜을 할때에 연봉을 부담해준 것 등, 대런이 은근히 양보해준 것들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다운도 이정도면 됐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다운이 이제는 자신을 향해 세운 칼날을 어느정도 내려놓았다는 것을 아는 대런은 예전과 비슷하게 편한 마음으로 대하고 있었다.
“네가 아무것도 안하고 정보 얻으려고 하니까 그런거지. 적당한 정보를 내놔봐. 그러면 나도 누가 3루를 노리는지 말해줄테니까.”
하지만 대런 역시 그냥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것만으로는 안되죠. 결국 3루가 필요하다면 나한테 찔러올테고, 언젠가는 알게 될 정보잖아요.”
“그 시간이 아깝지 않다면야 뭐.”
“진짜 이러깁니까? 저에 대한 앙금은 어느 정도 풀었다면서요!”
“너에 대한 앙금은 풀었지만, 양키스가 큰 이득 보는 꼴은 또 못보겠는걸 어떡하냐?”
다운의 말에 대런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하여간 꼬여가지고······”
결국 대런은 먼저 정보를 풀었다.
“내츠가 앤서니 브랜든이랑 연장계약에 대한 협상을 마쳤대요.”
브랜든은 내셔널스의 3루수로 올 시즌이 마치면 FA로 풀리는 선수였다. 20홈런 언저리를 때리는 파워는 아쉽지만, 수비력도 탄탄한 편에 3할 언저리를 기록했던 최근 2년간의 활약으로 인해 꽤 노리는 팀이 많을거라는 평가를 받던 매물.
“경쟁자 하나가 사라졌네.”
이렇게되면 이번 오프시즌에 노릴수있을만한 대형 3루 매물은 마차도와 록하트가 전부다. 3루를 노리는 팀들에게 가격을 높여놓는 작업을 쳐놓을 명분이 생겼다.
“꽤 좋은 정보였죠?”
“인정해. 좋은 정보였어.”
“그럼 저한테도 어서 정보 주세요.”
“다저스에서 3루수를 노리고 있어.”
여기까지는 단편적인 정보다.
“걔네 하워드 켈튼 있잖아요.”
켈튼은 34살의 3루수로 다저스에서 데뷔해 다저스에서만 12년째 뛰어오고 있는 베테랑 중 베테랑이다. 이제 내리막인 나이에도 2할 후반에 30홈런을 때려내는 엄청난 타격의 소유자이기도 했고. 수비 범위가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는 있지만, 유격수 수비가 워낙 좋은 다저스에게는 의미없는 지적이었다.
“계약기간도 2년 남아있지 않아요?”
“맞아. 올 시즌 마치면 팀 옵션 2년 2000만 달러가 있지. 근데 거기서 문제가 발생했지.”
다운은 그 내막까지도 알고 있었다.
“이거 정보 값이 좀 큰데······”
한껏 궁금하게 해놓고 말을 망설이는듯 웃는 다운의 행동에 대런이 버럭했다.
“아 진짜! 들어보고 진짜 좋은 정보면 저도 추가로 정보 풀테니까 말하세요.”
원하는 답은 얻어낸 다운이 씨익 웃었다.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켈튼 올 시즌 마치고 은퇴할거야.”
“네?”
“이제 야구 그만하고 싶다네?”
팀 옵션은 선수가 선수로 남아있을때에나 강제할 수 있는 계약 조항이다. 만약 켈튼이 은퇴를 선언해버린다면 다저스에서는 2년 연장 옵션을 쓸 수가 없었다.
“와······ 다저스 입장에서는 골치 아프겠는데요?”
“더럽게 머리 아프겠지. 근데 여기서 더 골치 아픈건 저게 표면적인 이유라는거야.”
“그럼 진짜 이유는요?”
“코디 드링크워터가 자기보다 돈 더 받는게 열받는거지.”
드링크워터는 다저스에서 데뷔한 26살의 5년차 외야수다.
이렇게 보면 켈튼에 비해 굉장히 수식어가 적어보인다. 하지만 그는 1년차에 신인왕, 2년차에는 홈런왕, 3년차에는 내셔널리그 MVP를 수상한 이력이 있는 최고의 슈퍼스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다저스에서도 4년차에 1300만 달러, 5년차인 이번 시즌 1900만 달러를 안겨줬었던거고.
문제는 4년차인 지난 시즌과 5년차인 올 시즌 드링크워터가 미칠듯한 부진을 겪었다는 점이었다.
2021시즌 내내 2할 초중반에 홈런은 고작 11개. 2020시즌 43개를 때려냈던 파워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초라한 기록만이 남나 싶었는데, 포스트시즌에서 귀신같이 부활해서는 3할에 가까운 타율에 14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다저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엄청난 기여를했다.
그 공로와 가능성을 다시 인정받아 1900만 달러로 연봉협상을 마친 드링크워터는 올 시즌 또 다시 2할 3푼의 타율에 13개의 홈런을 때리는데 그치며 ‘부진이란 이런 것이다!’를 몸소 보여주고 있었다. 12년 내내 다저스에서 헌신해오던 켈튼 입장에서는 눈꼴이 실 수 도 있었다.
“아. 그러니까 돈 더 달라?”
“자기는 저 나이먹고도 매 시즌 알토란 같은 활약하면서 1000만 달러 받아가는데, 자기보다 어린 놈이 1900만 달러를. 그것도 2년 내내 받아가는데 눈꼴이 시리겠지. 거기다가 한창 잘나가던 시절에 드링크워터가 켈튼을 무시했다는 이야기도 꽤 많이 돌았으니까. 나 같아도 엿같았을거야.”
다운이 넘겨준 정보에 대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켈튼 은퇴 안할수도 있겠는데요?”
뭔가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말.
“빨리 내놔봐.”
“이걸로 퉁치는겁니다.”
“들어보고 결정할게.”
“다저스에서 이번 포스트시즌까지 드링크워터가 살아나지 못하면 방출할 생각을 하고 있답니다.”
“호오?”
처음 듣는 정보다.
“만약 제가 가진 정보가 사실이라면 켈튼도 별다른 불만없이 팀옵션을 받아들이겠네요?”
“그럴걸? 600홈런까지 이제 13개 밖에 안남았는데 은퇴하기에는 본인도 아깝지 않겠어?”
“아깝겠죠. 저도 그래서 그의 은퇴 이야기는 생각지도 못했던거고요.”
“뭐 결국 정말 드링크워터가 방출된다면 켈튼은 남겠네.”
“그렇겠죠. 이 정도면 대가성 정보로 충분하죠?”
“차고 넘치지.”
“넘치면 정보 하나 더 주시지 그래요? 사양 안할텐데?”
하여간 이래서 틈을 보여주면 안된다.
“다른 정보들이나 더 풀어봐.”
3시간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직접 얼굴을 대면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다운은 오프시즌을 대비해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대런은 표정관리를 한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자신은 그 표정을 읽어낼 수 있었으니까.
“하······ 진짜 탈탈 털리고 가네요.”
“고맙다 대런. 덕분에 꽤 많이 얻었네.”
그리고 정말 기분이 좋게도.
따아아아악!
- 배리! 배리! 배리이이이 브래너어어언! 역전 끝내기 호오오오옴런!! 양키스킬러가 또 한 번 망치를 내리칩니다!
“밥 잘 먹을게.”
경기도 털었다.
< 71화 - 아낌없이 주는 남자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