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 콜린 키드먼 >
“멜튼을 처리하시려고요?”
“아직 생각중입니다.
록하트는 올 시즌을 마치면 연봉조정 자격을 얻는다. 문제는 그가 올 시즌 커리어 하이를 찍고 있다는 점이었다. 0.308에 36홈런. 아직 9월이 남아있으니 40홈런까지도 노려볼 수 있는 성적. 게다가 수비력을 중시하는 레이스 출신답게 수비도 탄탄하다.
연봉조정 첫 해이니만큼 1000만 달러가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못해도 700만 달러까지는 나올게 분명했다.
사실 여기까지는 감당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는 레이스와 연장계약을 체결할 의사가 없다고 했다.
그에 비해 서머스는 여건만 된다면 연장계약을 할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 만약 적당한 가격에만 합의를 한다면 서머스를 조금 더 중히 쓰고, 록하트를 최대한 비싸게 팔아먹는 것도 고려중이었다.
“서머스는 건강하기만 하다면 멜튼보다 더 좋은 선수가 될 가능성은 차고 넘칩니다. 언제나 그런 평을 들어왔던 선수고요.”
“요즘 티나는 조용하죠?”
티나라는 말이 나오자 캐시의 얼굴에 살포시 미소가 내렸다.
“조용은 무슨. 애들 사이에서 대장이 됐어요. 그리고 라커룸을 제 집처럼 드나드는데······”
귀찮다는 듯이 말하지만 캐시의 입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그리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요?”
“덕분에 라커룸 분위기가 좋기도 하고, 선수들이 부상을 안 당하게 알아서 조심하더군요.”
캐시는 마치 티나가 지을법한 근엄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 애들 사이에서는 티나가 대장이거든요.”
그의 말에 다운을 포함해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옅게 웃었다.
“부하들이 생기면 행동을 조심하기 마련이죠.”
“그래도 활동반경 자체는 줄어들지는 않더군요. 부하들이라도 없었으면 얼마나 날뛰었을지.”
몸을 한 번 부르르 떨어준 캐시가 말을 이었다.
“워낙 여기서 활발하게 놀다보니 오히려 집에가면 지쳐서 잔다더라고요.”
“알버트한테는 좋은 일이네요.”
“그렇죠. 적어도 저희가 관여할 수 없는 곳에서 부상당할 확률이 줄어든다는거니까요. 여튼 알버트면 만족합니다.”
“멜튼보고 휴식 준다고하고 알버트에게 슬슬 기회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아, 물론 경기에 지장이 없는 상황에서요.”
다운의 말을 캐시가 윙크로 받았다.
“그런건 또 제가 잘하죠. 단장님은 딱 하나만 정해주시면 됩니다.”
“뭐죠?”
“저희 팀 목표는 여전히 같습니까?”
캐시가 팀의 목표를 물어볼 때마다 다운은 포스트시즌 진출이라고 했었다. 지구 우승이 눈 앞에 보이는 상황에서도 그 마음이 달라지지 않았는지를 묻는 것이다.
“꿈은 크게 가져야 반이라도 간다는 말이 있죠. 하지만 전 다르게 생각합니다. 내 역량을 정확히 아는 것이 꿈을 크게 가지는 것 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정확히 알아야 꿈 이상도 갈 수 있는거죠.”
다운의 말은 결국 우승에 목을 메지 않겠다는 걸 뜻했다. 그걸 읽은 클라인이 아쉬운 듯 말했다.
“하지만 저희 팀은 우승을 충분히 노릴 수 있는 팀입니다.”
“당장 우승이 욕심나긴 하죠.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건 포스트시즌 경험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걸 달성했죠. 이제는 포스트시즌을 위해 체력을 비축해두는게 최우선입니다.”
캐시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단장님 말이 맞아. 우리가 지금 잘하고는 있지만, 언제까지나 루키들로 구성된 팀이라는걸 잊으면 안돼.”
“잘하는 루키들이지.”
“리키, 네이트, 사무엘······”
캐시는 선수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읊었다.
“26인 로스터 중에서 서비스 타임 2년차 이하의 선수가 13명이야. 지금은 내가 로테이션을 돌려줘서 어느정도 버티고는 있지만, 체력적으로 한계에 다다랐어. 수비 범위도 줄어들었고, 타석에서도 슬슬 쳐지고 있단 말이지.”
캐시가 이름을 불렀던 13명 중에서 몇몇을 제외하고는 최근 눈에 띄게 성적이 떨어진 기색을 보였다.
“그리고 다른 놈들도 수비범위가 확실히 줄었어. 예전 같았으면 처리했을 타구도 꼭 한두발이 모자라단 말이야.”
주변에서는 볼 수 없지만, 현장에서는 보이는 것들을 예를 들자 클라인은 결국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아쉬워서 그러지. 뭐 자네와 단장님의 뜻이 같다면 할 말은 없네만······”
“포스트시즌을 대비하려면 체력을 보충해줘야해. 그래서 나도 외야에 하나를 보충하려고 하는거고.”
대강 이야기가 정리된 듯 보이자 다운이 마침표를 찍었다.
“이 기회에 확실히 해두죠. 새 구장으로 가기 전까지 저희 팀의 목표는 언제나 포스트시즌 진출입니다. 그러니 케빈은 이에 맞춰서 선수단을 운영해주세요. 필요한거 있으면 바로바로 말해주시고요.”
“알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고 캐시는 또 하나의 선수를 골랐다.
“비니 맥그리프가 필요합니다.”
맥그리프는 포레스트가 부상을 당했을 때, 파인트와 함께 올라와서 선발진의 한 자리를 채워주던 선수다.
“불펜을 추가할 줄 알았는데 선발을 추가하시네요.”
“미치와 자비어 둘 다 슬슬 불펜에 적응할 필요가 있거든요.”
미치 베이커와 자비어 에르난데스는 둘 다 오프너 자원들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둘 다 불펜에서 쓸 수 있는 자원이라는 소리다.
“9월에만 쓰실 예정인가보네요.”
“네. 조나, 리키, 에디슨, 에릭 4인 로테이션을 돌릴겁니다.”
포스트시즌에 들어가면 28인까지 늘어났던 로스터가 다시 26인으로 줄어들게된다.
캐시는 한 달간 베이커와 에르난데스를 롱 릴리프 겸 불펜으로 적응을 시켜놓은 뒤, 두 사람을 포스트시즌에서 써먹을 계획이었다.
“포수는 하나 더 안올려도 될까요?”
투수들이 포수를 많이 타거나, 포수의 수비나 공격이 약할 경우 포수를 세 명 포함시키는 로스터를 쓰기도 했다.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저희 포수 둘 다 공수에서 꽤 괜찮은 놈들이라서요.”
하긴 윌슨과 비어만은 공수 모두에서 충분한 활약을 해줄 수 있는 선수들이다. 부상만 아니라면 두 사람으로 어지간하면 해결이 될 터.
“정말 포수가 없다면 배리를 넣어도 되고요.”
캐시의 농담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푸흡! 배리의 포수시절을 직접 본 입장에서 그 꼴은 보고싶지 않은데요?”
“저도 직접 봤습니다. 물론 상대 팀 더그아웃에서요. 하하!”
콜업할 두 명의 선수들이 정해지자 캐시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저는 이만······”
“오늘 경기도 힘내십쇼!”
“화이팅입니다 케빈!”
직원들의 응원을 받으며 캐시가 사라졌다.
“자 이제 한 명씩 말해봅시다.”
“운영팀에서는 레이스가 와일드카드를 나간다는 전제와 우승을 한다는 두 가지의 전제를 모두 고려했습니다. 만약 지구 우승을 했을 시에는 기념 티셔츠와 무알콜 샴페인을 구비해야 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클라인은 옆에 있는 러셀을 흘끗 쳐다봤다.
부릅!
‘절대 안돼! 비싼 샴페인 안돼! 싼걸로!’
말하지 않아도 어떤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은 그의 눈빛을 확인한 클라인은 두 눈을 질끈 감고 말을 이었다.
“······ 선수단, 코칭스태프, 구단 직원들 것까지 포함해서 대략적으로 예산을 추정해봤을 때, 약 3000달러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뭬야?”
한 번 시동을 걸었으면 무라도 썰어야하는 법. 클라인은 칼날같은 러셀의 눈빛을 무시하고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9월 하반기 남아있는 경기는 대부분 홈입니다. 21일과 22일에 있는 원정 2연전을 제외하고는 전부 홈 경기죠. 양키스가 어떤 성적을 거둘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모두 고려해본다면 저희의 우승은 홈 경기에서 정해질 확률이 높습니다. 그것도 24일부터 시작되는 양키스와의 홈 3연전에서요.”
“관중들이 몰리겠네요.”
탬파지역에는 안 그래도 양키스 팬들이 많이 존재한다. 이번 시즌 치뤄졌던 두 번의 양키스와의 홈 시리즈 모두 관중석이 2만 명 가까이 들어찼었다.
기본적으로 2만 명에 가까운 관중들이 들어서는데, 순위결정전의 역할까지 하는 시리즈다?
이건 두 팀을 응원하지 않는 야구팬이라도 손에 땀을 쥐며 볼 수 있는 시리즈가 될 것이었다.
“9월에는 아직 정해진 이벤트가 없는데, 이때를 맞춰서 이벤트를 한다면 어떨까요?”
“나쁜 생각은 아니네요. 홍보팀하고 커뮤니케이션팀에서 의견모아서 이틀 뒤에 회의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운영팀부터 시작한 보고는 한 시간이 지나서야 끝났다.
“자 이제 다들 저녁먹고 경기보러 갑시다!”
다운의 말에 클라인이 씨익 웃었다.
“단장님은 점심 아닙니까?”
보통 세 시쯤 출근해서 새벽 늦게 퇴근하는 다운의 사이클을 아니까 하는 소리였다.
“아냐. 오늘 단장님 일찍 오셨다고.”
“일찍 오신게 아니라 날 새셨어.”
협력할 수 있는 곳들과 시간을 맞추기 위해 일찍 출근하는 심슨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단장님 그러다 진짜 훅 갑니다. 잠은 집에가서 주무셔야죠.”
“단장님 보면 맨날 구단에만 있는 것 같아.”
“같은게 아니라 맨날 있으시지. 그게 아니면 구단주님이랑 다니던가.”
“이게 다 여자가 없어서 그런거야. 단장님. 혹시 소개 안 받으시렵니까? 미키 친구 중에 괜찮은 처자가······”
“잠깐.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도 괜찮은 친구가 있는데. 단장님 저희 옆 집에 살던 친구가 대학 졸업하고 올랜도에서 살거라며 다시 돌아왔는데 참하게 컸더라고요. 이왕이면 단장님이랑 가까운 곳에 사는······”
왜 또 이야기가 이렇게 흐르는지.
“아하하······”
다운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리타가 나타났다.
“단장님. 단장님을 뵙고 싶어하시는 분이 계신······”
다운은 리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었죠? 저 바쁩니다! 리타 손님 어디계신다고?”
“따라오시죠.”
회의실을 벗어난 다운이 식은땀을 닦으며 물었다.
“휴우~ 고마워 리타. 손님은? 내가 오늘 약속이 잡혀있었던가?”
기억 속에서는 분명히 오늘 오후는 프리했다. 원정오는 애스트로스에서 단장이라도 왔으면 모를까, 이번 시리즈에서는 단장을 대신해서 보좌만 와서 특별히 만날 약속도 없었다.
“아뇨. 없었습니다.”
“그럼 누구······?”
“콜린 키드먼님이라고 하시던데 단장님을 꼭 만나고 싶다고 하셔서 일단 외부인 접견실에 모셔놨습니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혹시······ 그 분이신가? 35년 연속 시즌권 구매중이신 분?”
다운의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Mr. 키드먼?”
“아, 안녕하십니까 단장님!”
저번 한정판 티셔츠 이벤트 때 만난 바로 그 사람이다.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하셔서 오긴 왔는데, 제가 방해한건 아니겠죠······?”
다운은 눈치를 보는 키드먼에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어주었다.
“절대 아닙니다. 팬분들은 언제든지 절 찾아오실 권리가 있죠.”
그를 안심시킨 다운이 맞은편에 자리잡았다.
“무슨 일로 절 찾으셨습니까?”
“다름이 아니라······”
< 68화 - 콜린 키드먼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