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66화 (66/268)

< 66화 - 포스트 트로피카나 필드 >

선수들이 트레이드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상당하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서 심리적인 영향을 받는 야구라는 스포츠에서 경기 준비부터 시작해 경기마 마친 뒤까지의 모든 환경이 바뀐다는 건 야구선수가. 아니 인간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영향 중 하나였다.

특히나 레이스처럼 팀을 경쟁력있게 만들기 위해 트레이드를 수도 없이 해야하는 구단에 속한 선수들은 그런 불안감을 더더욱 느끼곤 했다.

그래서 다운은 버드가 떠나는 바로 그 날, 라커룸에 내려가 선수들 앞에서 선언했다.

“올해 트레이드는 이걸로 끝이야. 이제 더 이상의 선수 변동은 없을거라 약속할게.”

남은 선수들 중에서 트레이드 1순위로 불리고 있던 멜튼 록하트가 손을 들었다.

“만약 부상자라도 나오더라도요?”

트레이드 마감까지 남은 기간이야 일 주일도 채 되지 않지만 부상자가 나와서 그 부분을 채워야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 트레이드라는 것이다.

“부상자가 나오더라도 트레이드는 하지 않을거야. 이미 구단에서는 선수 개개인이 부상 당했을 때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모든 플랜을 세워놨어. 만약 너희들 전원이 부상당하는 그런 경우에는 답이 없긴 하지만······”

씨익 웃어준 다운이 말을 이었다.

“그런 경우는 없도록 우리 프런트도 최선을 다해 서포트할테니 야구에만 집중하도록 해.”

다운의 이 말 한 마디는 은근히 흔들리고 있던 선수들의 멘탈을 잡아주는 접착제가 되었다.

“자! 단장님 말 들었지! 이제 쓸데없는 트레이드 루머 사이트 돌아다니던 놈들!”

브래넌의 일갈에 몇몇 선수들이 움찔하는게 보였다.

“걱정 내려놓고 야구만 하자! 알겠냐?”

“넵!”

선수단의 사기를 북돋워준 다운은 곧장 구단주실로 향했다.

“훈화 말씀은 다 하고 왔냐?”

“훈화라뇨. 누가 들으면 교장선생님들처럼 늘어지게 말하는줄 알겠어요.”

“국제 유망주 시장은? 요즘 다른 구단들은 국제 유망주 확보한다고 바쁘더만.”

“이번에는 참가 안하려고요. 당장 저희 구단이 돈을 써가면서까지 데려올만한 인재는 안보여요. 일단은 내년을 대비해 스카우트들만 좀 더 뿌려놨어요. 그나저나 하실 말씀이 있다면서요?”

글라이드는 구단주실 가운데에 놓인 소파에 몸을 던진 다운을 마주보고 앉았다.

“협의 완료했다.”

“뭐를요?”

주어가 없으니 쉽사리 문장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잔뜩 찌푸리고 있던 다운의 미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쫙쫙 펴졌다.

“서, 설마······?”

글라이드가 맡고 있던, 그리고 다운에게 말할 ‘협의’에 관한 일은 오직 한 가지 밖에 없었다.

“새 구장 이제 삽 푸는겁니까?”

글라이드는 다운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래. 이제 이버시티에 우리 새 구장이 들어서게 될거야.”

“우와아아아아!”

얼마나 기다려왔던 소식인가! 그때 분명 세 개 시 의회가 모여서 협의를 봤음에도 아직까지 말이 없길래 엎어졌나 싶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대요?”

“정치인 놈들이 하는 일이 다 그런거지 뭐. 우리끼리의 협의는 봤지만, 위에서는 또 달랐던 모양이야.”

뭐 사실 어떻게 됐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협의는 완료됐고, 레이스가 새 구장을 갖게 된다는 사실이 중요한거니까.

“착공은 언제부터 된대요?”

“9월에 바로 착공 들어갈 예정이고, 2024년 개막전부터는 바로 돌릴 수 있단다.”

“네? 그게 된다고요?”

애초에 구장 예상 건축기간은 3년으로 잡고 있었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고작 1년 반만에 새 구장에서 경기를 치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긴 한데, 지지기반은 이미 공사를 끝내놨다는게 가장 크지.”

이미 이버시티가 들어서기로 한 2018년 계획이 시작되면서 야구장을 준공하기 위한 기반 다지기는 완료된 상태였다.

“게다가 뭐 3D 프린터를 이용한 최신 건설공법으로 건축기간하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데, 난 들어도 무슨 소린지 모르겠더라.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이 돈으로 구장 짓는건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더군.”

“하긴. 최근에 지어진 글로브라이프 필드만해도 11억 달런가 들었을걸요?”

“걔네는 화재때문에 더 적자폭이 늘어난거잖아. 그리고 우리랑은 사이즈 자체가 다른데 뭘 비교하고 그래.”

글로브라이프 필드는 4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구장이다. 하지만 이버시티에 세워질 레이스의 새 구장은 입석을 제외하고 좌석을 널널하게 잡아서 최대 27,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소형 구장으로 만들어질 예정이었다.

“그나저나 그렇게되면 트로피카나 필드 남은 계약기간은요?”

“그건 시에서 알아서 한다더라. 레이먼드 제임스 스타디움에 들어차있는 두 팀 중에 하나가 나오겠지.”

레이먼드 제임스 스타디움은 미식축구 전용 구장으로 탬파베이 버커니어스와 사우스 플로리다 대학 미식축구팀인 USF 불스가 공동 홈 구장으로 사용중이었다.

“불스가 들어가겠네요.”

“쫓겨나는거겠지.”

어차피 그쪽은 알 바 아니었다.

“그러면 구장이 완공되는 즉시 이전할 수 있겠네요.”

“그렇게 될 예정이야. 다만 설계를 변경하라고 하더라.”

“어떻게요?”

“천장에 유리를 없애라더군.”

그 말에 다운이 눈살을 씨푸렸다.

“갑자기요? 설계를 먼저 시작한건 그쪽이었잖아요? 그런데 이제와서 천장에 있는 유리를 철판으로 바꾸라니.”

그 조감도가 마음에 들었던 가증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유리로 되어있는 외야 천장이었다. 돔을 닫은 채로도 하늘을 볼 수 있는 그런 천장 말이다.

“바로 옆에 고속도로가 있잖아. 해가 뜨면 유리에 반사된 햇빛 때문에 운전자들이 위험할 가능성이 높아질거라더군.”

“아······ 그런 이유라면 어쩔 수 없죠.”

글라이드의 말에 다운은 곧바로 수긍했다. 시민들의 지지를 받아야하는 레이스다. 고작 유리지붕 하나 덮겠다고 시민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요소를 남겨둘 필요는 없었다.

“대신 우리가 제안했던 호텔사업은 허가할 수 없다더군.”

레이스에서는 수익 최대화를 위해 블루제이스 홈 구장인 로저스 센터처럼 호텔을 들여놓으려고 했다.

“이버시티 바로 옆에 시에서 운영하는 비지니스 호텔이 들어설 모양인가봐. 그것 때문에 바로 거절하더군.”

호텔 하나면 가외수입이 꽤나 들어왔을텐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대신 지하수 자가발전에 대한 허가는 내주더군.”

그 말에 다운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다행이네요!”

글라이드가 말한 것은 지하수맥이 흐르는 것에 수력발전기를 달아서 자가발전을 하는 것에 대한 허가였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바로 신 구장이 개폐식 돔이기 때문이었다.

돔 지붕이 그냥 여닫히는것은 아닐 것이고,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건 더더욱 아니다. 지붕을 한 번 열고 닫기 위해서는 엄청난 전기를 소모하게된다. 아까 언급했던 로저스 센터같은 경우에는 돔을 여닫는데에 1000달러 가량의 전기세가 든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곳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체이스 필드다. 체이스 필드는 지하 수맥을 이용한 자가발전으로 개폐비용을 단 돈 3달러까지 줄였다. 게다가 남는 전기로 엄청난 크기의 구장의 냉방시설에 사용되는 전기료의 대부분을 감당했다.

당장에 봤을때는 호텔이 조금 더 이익일 수 있다. 아니, 당장 보더라도 전기세가 이득이다. 특히나 탬파와 같은 아열대성 기후를 보유한 지역에서 아무 생각없이 냉방을 빵빵 틀어댈 수 있다는건 분명 엄청난 메리트로 작용할 것이다.

“펩시 쪽이랑도 슬슬 협상을 해야겠네요.”

트로피카나 필드의 네이밍 라이트는 2026년까지 펩시가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1년에 100만 달러라는 완벽한 헐값에 말이다.

“이번에는 절대 헐값엔 안될거에요.”

“그러려면 알지?”

“성적이 좋아야죠.”

***

8월 리뷰 - 레이스 편

순위표

1 - 뉴욕 양키스

2 - 탬파베이 레이스 - 0.5

3 - 보스턴 레드삭스 - 6.5

4 - 토론토 블루제이스 - 7.5

5 - 볼티모어 오리올스 - 17

이번 시즌 AL 동부지구는 쌍두마차로 요약할 수 있다. 현재 84승 47패로 1위를 달리고 있는 양키스와 84승 48패로 2위에 랭크되어 있는 레이스가 시즌 내내 단 한 번도 1, 2위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양키스는 지난 시즌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선수단 대부분을 가지고 왔고, 메이저리그 최고의 유격수라고 불리는 앤드류 켈리는 올 시즌에도 미친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트레이드 마감 전에는 레이스에서 호세 마르티넬리를 데려오며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었던 불펜까지 보강해냈다. 그들의 1위는 어찌보면 너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정말로 의외인 것은 바로 레이스의 선전이다.

필자는 최근 새 경기장 건축에 들어간 레이스의 후반기가 위태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유는 하나. 루키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지난 시즌처럼 후반기까지 끌고나갈 원동력을 줄 수 있는 경험자들이 적기 때문에 이들의 하락세는 필수불가결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내 예측은 빗나갔다. 그 원동력으로 나는 조나 파인트를 꼽는다.

내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마이어가 지키는 외야도 아니고, 브래넌이 버티고 있는 공격진도 아니었다.

그들이 하락세를 탈 것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오직 레이스의 마운드 하나뿐이었다.

리키 더지는 지난 시즌에 후반기에 힘이 딸리는 모습을 보여준 전적이 있었다. 구속이 2마일 가량 떨어지고, 소화하는 이닝이 떨어졌던 이력이 있는만큼 이번에도 그럴것이라는 예상을 내심 하고 있었다.

에디슨 포레스트는 올 시즌이 풀타임을 보내는 첫 시즌인 애송이인데다가 에릭 슈어홀츠는 양키스에서 실패한 유망주 취급을 받는 선수였다. 거기다 나머지 두 자리는 오프너(특유의 전략으로 인정받고는 있지만, 필자는 아직까지도 믿을만한 선발이 없는 상황에서나 쓸 수 있는 궁여지책이라고 생각한다)가 맡으고 있는 상황.

시즌이 흘러가면 갈수록 레이스의 불펜의 부담은 심해질 것이고, 이는 결국 후반기의 하락세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한 가지를 간과했다.

조나 파인트의 완벽한 귀환

레이스 선발진들이 경기도중에 가장 많이 찾는 사람이 누굴까?

감독? 코치? 트레이너? 아니면 함께 합을 맞추는 선발포수?

모두 틀렸다.

그들은 매 이닝을 마치고 칭찬, 혹은 평가를 바라는 아이들처럼 조나 파인트에게 달려간다. 그리고 파인트는 언제나 웃으며 그들이 물어보는 질문들에 답을 해주곤 한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그렇다면 당신은 레이스 경기를 제대로 보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다.

각설하고, 6월쯤 레이스 불펜진들과의 인터뷰에서 ‘짐에게서 항상 많은걸 배우고 있습니다.’라는 말이 나왔다. 짐 토머슨이라는 베테랑 불펜으로 인해 불펜에 있는 여러 투수들이 불펜으로의 마음가짐이나 마인드컨트롤 등을 배웠다는 것이다.

그리고 파인트는 정확히 선발진에서 토머슨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파인트는 최근 경기 후 인터뷰에서 ‘선발투수들이 이닝마다 찾아오는것이 귀찮진 않은가?’라는 질문에 웃으면서

“어린 선수들이 저에게 배울게 있다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큰 자신감이 됩니다. 이들이 저에게 배워서 포스트 트로피카나 필드 시대를 이끌어준다면 그만한 영광도 없을 것 같네요.”

라고 말하며 루키들의 성장이 오히려 즐겁다며······

남자는 보고 있던 칼럼에서 한 단어를 다시 읽었다.

포스트 트로피카나 필드

그는 칼럼에서 눈을 떼고 비서를 소환했다.

“홍보팀장 불러와.”

< 66화 - 포스트 트로피카나 필드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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