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 선제시 >
다운의 소집에 회의실에 들어온 사람들 역시 같은 고민을 공유했다.
“가스파르가 그래도 더 낫지 않겠습니까? 서머스는 너무 불안정해요. 항상 안정적이고 계산이 서는 가스파르가 우리 팀에는 훨씬 필요한 선수 같습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타이거스가 왜 그 수많은 요청들 사이에서도 서머스를 지켰겠습니까? 그 재능 하나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부상 위험도가 높다는 것 역시 의심할 여지가 없죠. 지금까지 알려진 부상들 중에서 대부분이 조카였죠? 프로라면 그 조카를 멀리했어야죠. 자식이라면 모르겠지만 조카 아닙니까. 그런데도 계속해서 저렇게 부상을 당하면서도 멀리하지 않는건 마인드에 문제가 있다는겁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가스파르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7년 연속으로 2할 6푼에 20홈런을 기록하는 친구인데?”
“그런데 이번 시즌 성적이 그렇게 좋지 않던데요. 슬슬 노화가 오는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냐. 가스파르는 항상 저러다가 시즌 마지막에 가면 원래 성적을 올리곤 한다고.”
“이번 시즌에도 그럴지는 모르는 일 아닙니까?”
“아니라니까 그러네.”
알버트 서머스와 세바스티안 가스파르를 두고 설전을 벌이는 두 집단의 말은 모두 일리가 있었다.
우우웅~
대런의 전화다.
순식간에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트윈스와 이야기해서 추가적인 대가를 받아왔어요. 트윈스에서 아놀드 페라이라를 얹어주겠답니다.]
페라이라. 뭐 나쁘지 않은 선수다. 2021년 드래프트 된 선수로 트윈스 팜 내에서도 꽤 공들여 키우는 선수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놈이니까. 문제는 그가 투수란 것이다.
괜히 레이스 팜이 투수왕국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빅리그 데뷔만을 기다리며 번호표 뽑고 기다리는 선수들이 한가득이다. 그런데 거기에 투수 하나를 넣는다?
빨라야 2년 뒤에 쓸 수 있는 선수, 그것도 트윈스 팜이니까 순위가 높은 그런 투수를?
“미안한데 대런. 그 조건이면 우리는 딜 못해.”
[하지만 아놀드 페라이라 정도면······]
“적어도 미켈 체임버스 정도는 줘야지.”
체임버스는 트윈스 팜 내 10위에 올라있는 내야수로 지금은 AAAA급 선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계기만 주어진다면 충분히 빅리그 주전급 3루수가 될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선수였다.
[체임버스를요? 태드가 돌았답니까? 아니지. 다운 혹시 취했어요? 그게 오히려 신빙성이 있을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제정신이야.”
[제정신인 사람이 체임버스를 논해요? 미치지 않고서야······]
그렇게 말을 하던 대런이 순간 말을 멈췄다.
[타이거스. 타이거스에서 뭔가를 제시했나보네요.]
“맞아. 그리고 그 제안이 네가 내민 제안보다는 훨씬 먹음직스럽지.”
[서머스?]
밀어내는 과정이 엿같아서 그럴 뿐, 대런 역시 능력이 있는 단장이었다. 저렇게 곧바로 상황을 유추해내는 것을 보면 말이다.
“뭐 그것까지 알려줄 수는 없고, 날 끌어들이려면 그렇게 미리 준비해둔 제안 말고 조금 더 혹할만한 제안을 들고와.”
[젠장할······ 역시 알고 있었나보네요.]
“당연한 소리를. 15분 내로 더 좋은 제안 가지고 와야 돼.”
[30분 달라고 했나보군요.]
척하면 척이다.
[젠장······ 알겠어요.]
“좋은 소식 들고오라고.”
전화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가스파르와 서머스를 놓고 격렬한 토론이 오가기 시작했다.
“가스파르가······!”
“아니라니까요 그래도 서머스가······!”
다운의 뇌도 두 쪽으로 갈라져서 싸우고 있었다.
‘가스파르를 영입하면 반년 렌탈이잖아!’
‘자신 있다니까?’
‘계약서에 도장 찍히기 전까지 아무도 모를 일이잖아. 만약 계약 안되면? 거기다 덕이 안터지면 어쩔건데?’
‘하지만 서머스는?’
‘그래도 서머스는 2년이라는 시간이 더 남아있잖아.’
‘그 2년간 부상이라도 계속 당하면 어쩔건데?’
‘나이 들면서 점점 성적 떨어질 양반보다는 서머스가 훨씬 도움이 될것 같은데?’
그러던 와중 테이블 한쪽에서 누군가가 슬쩍 손을 들었다.
“저······”
지난 드래프트에서 한 건 올린 폴이었다.
“둘 다 영입하면 되지 않을까요?”
순간 회의실에 있는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홱 돌아갔다. 갑작스럽게 시선이 집중되자 폴이 살짝 움찔했다.
“계속 말해봐.”
“둘 다 좋아보이니까 둘 다 영입하는게 어떨까 싶어서요.”
폴의 말에 옆에 있던 사원이 피식 웃었다.
“이봐 폴. 네가 이제 막 운영팀으로 옮겨서 잘 모르나본데. 하고 싶다고 그게 그렇게 돌아가는게 아니······”
순간 다운의 머리에 번개가 쳤다.
딱!
다운의 손가락이 커다란 소리를 냈다.
“그래! 둘 다 영입하면 돼!”
다운이 이 딜에서 빠져나가면 양키스는 트윈스에서 노아 케이브를 데려오기 힘들어진다. 현재 양키스에는 주전급 내야자원들을 제외하고는 그들이 원할만한 수준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
트윈스와의 딜이 망했으니 이제 새로운 마무리를 찾아야한다.
‘그리고 그 마무리는 우리 팀에 있지.’
레이스에는 호세 마르티넬리라는 꽤 괜찮은 수준의 마무리가 있다.
올 시즌도 호세 마르티넬리는 레이스의 마무리로 15세이브에 2점대 방어율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대로라면 3년 연속 2점대 방어율에 30세이브도 노려볼 수 있는 수준.
물론 4년 연속 30세이브 이상 2년 연속 40세이브 이상, 2년 연속 1점대 자책점을 기록하고 있는 노아 케이브만큼이나 좋은 마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양키스가 만족할만한 수준은 충분히 된다.
다운의 손이 화이트보드에서 호세 마르티넬리라는 이름을 적었다.
“우리 팀에 호세가 필수적인가?”
다운이 던진 주제에 하나씩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있어서 좋은 선수임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필수라고 하기는 힘들죠. 사실 퍼포먼스만 보면 올 시즌 짐을 따라갈수는 없으니까요.”
“케빈의 생각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리처드 로버트슨에게 마무리 기회를 줘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비슷하게 2점대 자책점을 기록하고 있는데다가 강심장으로 유명하잖습니까.”
“연봉 측면도 생각해야합니다. 올 시즌 700만 달러의 연봉을 받고 있는데, 내년에는 무조건 1000만 달러가 넘어가겠죠. 저희 팀에는 분명 엄청난 재정적 부담이 될겁니다. 괜찮은 값에 팔아치울 수 있다면 넘기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1년 반이 남아있는 지금이면 값도 꽤 많이 받을 수 있을것 같습니다. 이 정도 대가라면 가스파르에 이어서 좋은 선수 하나 더 받아올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근데 가스파르를 영입하면 포지션이 겹치지 않나?”
“오히려 그게 좋을수도 있지. 서머스가 또 언제 부상을 당할지 모르는데, 다른 대안이 있다는거니까. 그리고 서머스는 3루도 가능한 자원하잖아. 멜튼의 서브로도 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
이야기를 하면 할 수록 상당히 괜찮은 의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일한 문제는 우리와 1위를 다투는 팀으로 괜찮은 불펜 하나가 더 넘어간다는건데······”
다운의 말에 비디오 분석 파트장인 프레드 케이지가 근육으로 가득찬 팔을 들었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최근에 찾은 티핑이 있는데 아직 확실하지 않아서 조금 더 지켜보는 중이었거든요.”
“경기에서 써먹을 수 있을 정도의 티핑입니까?”
“네.”
자신감 넘치는 프레드의 웃음을 따라 다운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
“좋아. 그럼 버드를 보내고 서머스를 받자, 그리고 호세를 내주고 가스파르에 누군가를 더 받아오는거지.”
“혹시 좋은 자원 있습니까?”
지금껏 다운이 양키스에서 빼내온 자원들은 대부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들을 빼먹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담긴 눈빛들이 다운에게 향했다.
“정말 좋은 자원들은 거의 데뷔를 하거나 지키고 있어서······ 이제는 스카우트 팀의 분석에 의존해야 해서 확신할 수는 없어. 하지만 최선을 다해 뜯어먹어야지.”
자고로 양키스는 때려야 제맛이다.
“리타! 아빌라 단장 연결해줘.”
“3번으로 연결했습니다.”
곧이어 스피커폰을 통해 아빌라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마음은 정했나?]
“네. 한 가지만 확실해지면 곧바로 딜 하겠습니다.”
[한 가지?]
서머스에게서 도저히 뗄 수 없는 미스테리.
“대체 서머스는 그 조카라는 애한테 왜 계속해서 다가가는겁니까? 그것만 알려주시면 이 딜 진행하겠습니다.”
다운의 말에 잠시 침묵하던 아빌라가 조용히 물었다.
[스피커 폰인가?]
“네.”
[그럼 잠시 자네 혼자만 받을 수 있겠나?]
다운은 곧바로 스피커를 끄고 수화기를 들었다.
“이제 저만 듣고 있어요.”
[듣고 나서 딜을 취소하지 않을거라고 믿고 알려주는거야.]
“저희도 서머스를 가지고 싶습니다. 그래서 위험요소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싶은거고요.”
[원래는 본인에게 들어야겠지만, 본인이 말하기 전에는 자네만 알고 있어. 아니, 본인이 말하기 전까지는 자네도 모르는 척 해. 알겠어?]
“알겠습니다.”
대체 조카의 정체가 뭐기에 이 정도까지 하나 싶었다.
[······이야.]
“네?”
[딸이라고.]
“아······ ㄸ······! 네? 뭐라고요?”
이게 이렇게 놀랄 일인가 싶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분명 이는 놀랄만한 일이었다.
1. 서머스는 23살이다.
2. 조카는 7살이라고 알려져 있다.
3. 근데 그 조카가 사실은 딸이다?
4. 그럼 몇 살에······?
[16살에 사귀던 여자친구 사이에서 나온 애래. 근데 뭐 워낙에 어린 나이다보니 딸이라고 하기도 뭐하고, 형도 있으니까 그냥 조카라고 소개하기 시작한게 지금까지 온거라더군.]
“그럼 지금까지 부상도······”
[유명한게 뭐 있지? 아 최근에 화상 입은건 간만에 본 아빠한테 딸이 직접 스튜를 끓여줬던건데 애들 팔 힘이 좀 약하잖아? 그러다보니 엎은거라더군. 예전의 뭐 태클이라던가 그런건 자주 못보는 아빠한테 서운해서 장난을 좀 심하게 치다가 그런거라고 들었고. 뭐 이제는 딸이 학교도 다니고 자신도 조심하겠다고 이제는 정말 몸관리 하겠다고는 했는데······]
“못미덥겠죠.”
저 마음 이해한다. 워낙에 저지른 사고가 많다보니 더 이상 믿기가 힘든 것이다.
[맞아. 나도 딸이 있어서 아는데, 그 앞에서 아빠라는 존재는 얼마든지 약해질 수 있거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조차 풀어질 수 있단 말이지. 그래서 솔직히 난 더 이상 알버트를 믿을수가 없어.]
“이해합니다.”
[그래서 바꿔줄건가?]
“네. 딜 하도록하죠.”
어차피 아직 다운은 서머스와의 관계에서 신뢰라고 할 만한 게 없다. 일단은 그를 한 번 믿어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서류 곧 보내도록하지.]
“이쪽에서도요.”
타이거스와의 딜은 끝났다.
이제 남은건 대런이 들고올 소식이다.
잠시 후 핸드폰이 울렸다.
우우웅~
이번에는 전화가 아니라 메시지다.
[트윈스 쪽에서 더는 힘들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이번 딜은 엎어야겠네요.]
다운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호세 마르티넬리. 관심있어?]
10초가 채 지나기 전에 곧바로 답장이 왔다.
[대가는? 가스파르로는 안되겠죠?]
다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선제시.]
< 64화 - 선제시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