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 어디 한 번 꼬셔봐 >
[단장님.]
차분한 리타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혹시 올스타전에서 무슨 일이 있나요?]
가족들과 함께 휴가갈 계획이라더니 올스타전은 보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메리칸리그 유격수 바르가스랑 내셔널리그 유격수 파머가 충돌했어. 내가 봤을때는 최소 둘 다 1년 반은 아웃이야. 두 사람 다 전방십자인대가 나간 것 같아.”
다운의 말에 리타의 목소리가 살짝 올라갔다.
[네이트가 거기 들어가기로 하지 않았었나요?]
“그랬지. 네이트가 거절한 다음 들어간 친구가 바르가스니까.”
[다행이네요······]
같이 가슴을 쓸어내린 리타가 본론을 꺼냈다.
[제 개인 연락처를 알고 있는 비서들이 있거든요.]
마치 대런이 자신의 개인 연락처를 아는것처럼 꽤나 가까운 사이가 있는 모양이다.
[총 다섯 명이 제 연락처를 알고 있어요.]
“어느 구단?”
[브레이브스, 에인절스, 애슬레틱스, 말린스, 카디널스요. 그런데 다들 저한테 연락이 와서 단장님이 어디 있는지를 묻고 있어요.]
“다섯 개 구단에서 전부?”
[네.]
저 중에서 애슬레틱스나 말린스는 모르겠다만, 다른 구단에서 저렇게 자신을 찾을 이유가 있을까?
[단장님 개인용 연락처는 모른다고 이야기 해놓긴 했는데, 이들이 찾고 있다는건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요.]
“고마워. 휴가 마지막 날인데 괜히 방해한 것 같아서 미안하네. 푹 쉬고 와.”
[알겠습니다. 단장님도 푹 쉬세요.]
전화를 끊자 옆에서 귀를 쫑긋거리고 있던 글라이드가 곧바로 달려들었다.
“뭐라던?”
“다른 구단들에서 저를 찾는다는데요.”
“다른 구단에서 널 찾을 이유가 있나?”
“저도 그렇게 생각······”
머리를 팽팽 돌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다운의 눈에 바르가스와 파머의 충돌장면이 리플레이되고 있는 TV화면이 들어왔다.
“······호오?”
“왜?”
“설마 벌써 움직인건가?”
다운의 머리에서 한 가지 가능성이 맴돌았다.
“잠시 음소거 좀 할게요.”
“그래. 그리고 제발 혼자 생각하지 말고 나한테도 알려줬으면 좋겠네.”
“알겠어요.”
TV를 아예 끈 글라이드가 몸을 돌렸다.
“자, 지금 바르가스와 파머가 실려나갔죠? 바르가스의 소속은 레인저스. 올 시즌 간만에 1위 싸움을 하고 있는 팀 소속이란 말이죠. 그리고 파머는 내셔널리그 동부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필리스의 주전 유격수에요. 각 지구에서 1위를 하고 있는 팀들의 주전 유격수가 부상을 당했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어요?”
“그 자리를 채워야지.”
“그렇죠. 근데 두 팀 모두 윈나우를 하고 있는 팀이라 바르가스나 파머 급으로 꽤 괜찮을 유격수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게 아니란 말이죠. 컨텐딩을 하고있는만큼 팜 역시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닐테고. 결국 그들이 기댈 수 있는건······”
“트레이드 뿐이겠네.”
“맞아요. 그런데 이게 웬걸. 저희야 안갔지만, 대부분의 단장들은 저 자리에 있을거란 말이죠.”
“곧바로 카드를 맞춰볼 수 있는 상황이 됐겠네.”
“필리스와 레인저스가 원하는 유격수 자원은 정해져 있을거에요. 컨텐딩을 하는 팀에서 쓸 수 있는 유격수는 꽤 비싸니까.”
“그렇게까지 지출하면서 데려오려고 할까?”
“그래야할거에요. 왜냐면 두 팀 모두 오랜만의 1위거든요. 필리스 같은 경우는 근 3년간 계속해서 돈을 질렀잖아요. 다음 시즌부터 사치세 때문에 더 많은 돈을 내거나, 리셋버튼을 누르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해요.”
“절대적으로 성적을 내야하겠네.”
“그렇게하지 못하면 투자한 이유가 없어지니까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올 시즌 우승을 위해 최대한을 투자를 할거에요. 제 생각에는 여기서 노릴 수 있는 유격수는 반년 렌탈. 그래야지 조금이라도 편하게 사치세를 리셋할 수 있거든요.”
그 다음은 레인저스.
“레인저스는 그에 비해 조금 여유롭기는 해요. 4년 정도 리빌딩 기간을 거쳐서 어느정도 올라온 유망주들. 그들로 인해서 성적이 나는거거든요. 하지만 유격수 포지션에서는 바르가스를 제외하고 주목할만한 유망주가 없었어요. 제가 알기로는 바르가스가 실패할 경우 다른 팀에서 유격수를 데려올 생각이였다고 했거든요.”
“그러면 여기에도 아예 유격수 대체 풀이 없겠구만.”
“없죠. 다음 시즌까지는 써먹을 수 있는 유격수가 필요한데 말이죠. 그나마 다행인건 이 친구들은 그렇게까지 급하지는 않다는 거에요. 유망주들을 키운만큼 아직 페이롤에 여유가 넘치거든요.”
“그러면 이 친구들은 다른 유격수를 데려오지 않을 수도 있겠네?”
“아뇨. 오히려 더 데려오고 싶을걸요? 수비 부담이 가장 큰 유격수가, 그것도 백핸드로 플레이 할 때 부하가 많이 걸리는 오른쪽 무릎의 십자인대를 부상당했어요.”
“수비력 저하를 생각할 수 밖에 없겠네.”
“그래서 아마 1년 반 이상이 남아있는 유격수를 노릴 것 같아요. 바르가스의 회복세를 보고 결정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렇게 된다면 두 팀이 노릴만한 선수들은 좁혀진다.
“필리스에서는 마크 트위드를 노릴거에요.”
트위드는 27세 시즌을 보내고 있는 로키스 유격수로 수비, 스피드, 파워 모두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선수였다.
“2300만 달러라는 연봉이 부담이 될 수도 있긴 하지만, 올 시즌 이 끝나면 FA가 될 예정이니까. 게다가 연봉도 반 시즌만 부담하면 되니까 큰 문제는 없겠죠. 유일한 단점은 로키스에서 이룬 성적이라는 것 뿐인데······ 사실 그건 단점도 아니죠.”
어차피 급한건 필리스다. 로키스는 팔려도 좋고, 팔리지 않더라도 퀄리파잉 오퍼로 인한 보상 픽 정도는 얻을 수 있다. 그러니 뜯을 수 있는 최대한의 대가를 요구하면서 필리스와 딜을 할 것이다.
“레인저스는?”
“3년 이상의 계약기간이 남아있는 유격수 중에서 최고의 선수는 J.J. 브레이너죠.”
브레이너는 트윈스의 주전 유격수로 뛰어난 수비와 컨택을 갖추고 있었다. 선구안과 작전수행능력도 좋아서 어느 감독이든 좋아할만한 그런 선수였다. 트윈스에서는 그를 연장계약까지 하면서 잡아두었지만, 계속해서 하위권을 전전하며 투자를 하지 않는 트윈스를 향해 언해피가 떠있는 상황이었다.
“만약 이 두 사람이 팀을 옮기게 된다면······”
“센터 내야수 쪽에서 엄청난 지각변동이 생기겠네.”
“아마도요.”
공교롭게도 로키스와 트윈스는 스몰마켓이면서 최근 하위권을 전전하고 있는 팀들. 로키스는 그 다음으로 정해놓은 유격수가 자리잡기까지는 아직 1~2년 정도 남아있었다. 그러다보니 그 갭을 채워줄 선수가 필요하다.
트윈스 같은 경우는 브레이너에게 밀려 2루로 갔던 스미스를 다시 유격수로 돌릴 것이다. 그리고 비어있는 2루를 채울 새로운 선수를 찾을 터.
“직접 연락이 오던, 그를 끌어간 다른 팀에서 연락이 오던······”
다운의 입이 사악한 웃음을 띄었다.
“지금 상황에서 버드는 최상급 매물이에요.”
글라이드는 그 웃음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최대한 뜯어먹어와.”
“맡겨만 주세요.”
***
다운이 예측한대로 올스타전이 끝난 바로 그 다음 날 아침 뉴스가 떴다.
- 불운한 사고. 파머와 바르가스 모두 전방십자인대 파열.
- 2024년까지 유격수 자리가 비게된 두 팀. 해결책은?
역시나 두 사람은 예상했던 대로 십자인대 파열이다.
그리고 곧이어 다음 뉴스가 떴다.
- 필리스, 4명의 유망주를 내주고 마크 트위드를 품에 안다!
- 트위드는 과연 산 아래에서 어떤 성적을 보여줄 것인가?
필리스가 4명의 유망주라는 엄청난 지출을 하면 트위드를 곧바로 데려온 것이다.
그리고 곧이어 개인적인 정보통을 통해 소식이 하나 들어왔다.
- 에인절스에서 브레이너 영입을 위해 제안.
레인저스와 함께 공동 1위를 달리고 있는 에인절스에서 브레이너 영입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에인절스도 유격수가 약하긴 하지.”
다른 포지션에 비해 확실히 약하긴 하다. 하지만 영 못써먹을 수준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저렇게 영입하려는 이유는 하나 밖에 없다.
지구 우승 경쟁팀을 약화시키면서 자신들의 전력은 조금이라도 강화시키는 것.
“이렇게되면 레인저스 쪽에서 빠르게 움직여야겠는데?”
그리고 휴가에서 복귀한 다운을 향한 연락 역시 빗발쳤다. 이전의 문의는 대부분 드마우스를 향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센터 내야수의 수요가 갑자기 많아지다보니 그에 대한 문의가 전체적으로 늘어난 것이었다.
[우드먼 혹시 팔 생각 있나? 내가 정말 잘 쳐줄 수 있는데······]
“저희 팀에 온지 아직 1년도 안 지난 선수인데 벌써 보내라고요? 그럴 수는 없죠. 저희도 미래를 생각해서 영입한 선수인데.”
[정말 잘 쳐준다니까?]
“그래도 힘들어요.”
[브라이언 앤더슨.]
“절대 안됩니다.”
[제임스 클리어워터로도?]
“저희 유격수는 이미 있어서요. 그리고 클리어워터 정도면 훨씬 괜찮은 매물 얻을 수 있지 않아요? 혹시 클리어워터에게 무슨 문제라도······”
[띠-띠-띠-]
10분 간격으로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에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심지어 각 팀에서 한 번씩만 연락이 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오후 쯤이 되어서는
[다운! 10인 안에서 준다니까? 버드 드마우스 우리 쪽으로 넘겨줘!]
“아니 아까도······ 아니지. 15인이나 10인이나 로키스 팜 사정에는 똑같잖아요!”
[그래도 15인보다는 조금 더 나은 선수가 있잖아!]
어떤 팀에서 어떤 오퍼를 했는지도 헷갈릴 정도였다.
만약 통화를 같이 들으면서 어디서 어떤 오퍼가 왔었는지 정리해주는 리타가 없었다면 그것마저도 헷갈렸을 확률이 농후했다.
“으아아아! 진짜 미쳐버리겠네!”
“마음에 드는 제안이 없으세요?”
리타의 질문에 다운이 팔을 하늘로 쭉 뻗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어어어! 저 사기꾼놈들 손해볼 생각은 하나도 안하면서 본인들 이익만 보려고하니 마음에 차는 제안이 있을리가 있겠어?”
누가 누굴보고 사기꾼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리타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리타는 그걸 입밖으로 꺼낼만큼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다.
“민트 차 한 잔 드릴까요?”
“아니. 시원한거 마셔야겠어. 카페에서 민트초코 스무디 한 잔 부탁해.”
“제가 가면 정리는······”
“잠깐 업무용 폰 꺼놓고 있을거야. 너도 전화선 뽑고 나갔다와.”
“알겠습니다.”
리타가 문을 닫고 나간 뒤 잠깐 멍을 때리고 있는 사이, 또 다시 폰이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자연스레 다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분명 업무용 폰은 껐는······”
업무용이 아니다. 업무용 폰은 벨소리가 울리니까. 그러니 지금 진동하고 있는 폰은 바로 개인용 폰이라는 이야기다.
안주머니에서 개인용 폰을 꺼내자 반가운 이름이 다운을 맞이해주었다.
[빌어먹을대런]
대화도 나누지 않았는데 그를 놀려먹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갑자기 좋아지기 시작했다.
“혹시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나? 아니면 북쪽? 지구의 자전축이 바뀌었다는건 오늘 처음 알았는데?”
[······ 아직 세상은 말짱하니까 걱정하지 마시죠.]
“빌어먹을 대런.”
[네?]
“아, 내 폰에 그렇게 저장되어 있다고.”
[······]
작은 목소리로 욕하는 것을 들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네가 먼저 이렇게 연락을 줄 줄은 몰랐는데?”
[이득을 볼 각이 있으면 어떻게든 일해야 하는게 단장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사람한테 일을 배워서요.]
“누군진 몰라도 일 잘 배웠네.”
다운의 자화자찬에 대런이 눈살을 찌푸리는게 눈에 선하다.
“그래서 일 같이 하자고?”
[네. 그림 하나 그려왔는데 어찌 마음에 들까 모르겠네요.]
대런의 말에 다운이 씨익 웃었다.
“어디 한 번 꼬셔봐.”
< 62화 - 어디 한 번 꼬셔봐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