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화 - 촉이 온다 >
“그렇게까지 말하신다면 기회를 줘보도록 하죠. 하지만 덕이 우리 기대에 못 미칠걸 대비한 영입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네요.”
“팀 매닝스는 어떻습니까?”
“매닝스라······”
애슬레틱스의 벤치 1루수로, 타격은 그저 그렇지만 수비적인 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고있는 1루수다.
“타율이 영 떨어지기는 하지만, 한 방은 있는 선수인데다가, 수비적으로는 저희 팀에 있는 어떤 1루수보다도 나을겁니다. 무엇보다 반 년 뒤에 FA자격을 얻기 때문에 대가도 그렇게 크지 않을겁니다.”
다운은 곧바로 애슬레틱스의 단장인 데이비드 포스트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To 데이비드 포스트
- 팀 매닝스 필요합니까?
“또 다른 대안은요?”
“재키 하워드도 나쁘지 않죠.”
말린스의 1루수로 31살의 나이로 전성기에 올라있는 선수다.
“하워드 좋지. 타격도 어느정도 되고, 수비도 꽤 좋은 편이고 발도 빠르지. 문제는 파워가 없잖아.”
“그 파워를 보충해줄 선수는 우리 팀에 충분해. 타격보다는 수비가 우선이야. 게다가 스위치 히터라는 장점도 있어서 우리 타선의 빈 부분을 보강하기에는 그만한 선수도 없어.”
올드스쿨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코너 야수들에게는 파워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는 다운에게는 썩 만족스러운 1루수가 아니긴 했다. 하지만 다운조차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의 수비를 이번 시즌 몇 차례나 보여준 적 있는데다가, 팀을 운용하는 캐시가 원하는 선수이기에 일단 기억해두기로 했다.
“또 필요한 다른 포지션이 있나요?”
“그 정도만 되면 사실 당장에는 필요없을 것 같습니다.”
레이스의 투수진이 워낙에 두텁다보니 불펜은 문제없다. 선발진 역시 파인트가 자리잡으면서 해결되었다. 여기에 부상당한 포레스트가 복귀하면 한층 여유로워질 예정이다.
다른 포지션들 역시 최고 수준까지는 아니라도 1~2년 정도는 활용할 수 있는 갭 플레이어들이 존재했다.
“어디 한 포지션이 한꺼번에 비어버리는 그런 상황만 아니라면 1루만 보강해도 충분히 포스트시즌은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매닝스나 하워드, 혹은 그에 버금가는 선수들을 한 번 찾아보도록 하죠. 그리고 덕에게도 한 번 더 기회를 주겠습니다. 피트가 연락할래요?”
“저야 영광이죠.”
“일단은 여기까지 하고 해산하도록하죠.”
다운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때마침 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데이비드 포스트.
“또 추천할 선수 있으면 곧바로 보고해요. 알겠죠?”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을 확인한 다운이 전화를 받았다.
“이렇게 빨리 연락을 줄 줄은 몰랐는데요 데이비드?”
[구매자가 왔는데 상점주인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여야 정상아니겠나?]
“팔 의사가 있다는 말로 이해해도 되는거겠죠?”
[대가만 맞으면 뭔들 못하겠나?]
통화하며 단장실로 걸어들어오는 다운에게 리타가 패드에 글씨를 써서 내밀었다.
- 킴 응 단장님 전화들어와있습니다.
다운은 리타에게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쳐보이며 입모양으로 말했다.
‘5분 뒤에 다시 전화드린다고 해.’
그리고는 지금 당장 말하라는 듯이 손을 돌렸다. 눈치빠른 리타는 다운이 원하는 것을 곧바로 이해했다. 그녀는 다운의 폰이 받아들을 정도의 적당한 소리로 말했다.
“단장님. 저희 단장님이 지금 통화를 하고 계셔서 5분 뒤에 다시 전화주신다고 합니다. 네. 네.”
다운은 자연스럽게 소리가 점점 멀어지게끔 속도를 유지하며 단장실로 들어갔다.
[인기가 많나봐?]
그의 말에 다운이 웃음기를 섞어 말했다.
“뭐 다들 사고 파느라 바쁠 시기잖아요?”
[우리들처럼?]
“우리처럼요.”
이 정도면 바보가 아닌 이상 포스트도 다운에게 선수를 판매하려는 다른 판매자도 있다는걸 충분히 알아차렸을거다.
“좋아요 데이비드. 대가로 뭘 원합니까?”
[알다시피 우리 구단에 어니가 있어서 못나오는 것 뿐이지 다른 구단이었다면 팀은 충분히 주전 1루수가 될 수 있는 자질이 있는······]
“잠깐만요 데이비드. 저는 매닝스에 대해 들으러 온게 아니거든요? 쓰잘데기 없는 말 할거면 당장 전화 끊을겁니다.”
단호한 다운의 말에 포스트가 한 발 물러났다.
[워워! 자네는 바빴을지 모르겠지만 난 이게 이번 달 첫 전화거든. 그래서 조금 들떴던 것 같네. 알다시피 우리같은 사람들은 말을 안하면 혀에서 가시가 돋는 기분을 느끼잖아?]
단장한테 전화가 안와?
“어디서 말도 안되는 소리를······”
[다들 나 말고 빌리한테 연락을 하더라고······]
“아······”
그럼 연락이 없었을만도 하다. 다운은 괜스레 짠해져서는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데이비드. 그래서 팔거에요 말거에요?”
[팔 생각은 있지.]
“대가는요?”
[하여간 재미없긴······ 드마우스랑 스왑딜 어때?]
버드 드마우스는 올 시즌 레이스의 주전 2루수로 시즌을 시작했던 선수다. 하지만 오리올스에서 데려왓던 세드릭 우드먼이 점점 빅리그에 적응해감에 따라 벤치로 밀리는 날이 많아졌다. 이제는 레이스에 필수적인 선수는 아니라는 말. 그렇다고해서 매닝스와 스왑딜을 하기 알맞는 카드라고 하기에는 어려웠다.
“데이비드. 혹시 버드 계약기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아세요?”
[3년, 아니지 2년 반 남았지.]
“매닝스는요?”
[반 년.]
“둘의 연봉 차이도 아시겠네요?”
드마우스는 올 시즌 100만 달러를 받고 있다. 연봉조정이 예상되는 다음 시즌에도 그의 연봉은 200만 달러를 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매닝스의 연봉은 올 시즌 300만 달러. 물론 반 년 렌탈이라서 절반만 부담하면 된다. 하지만 그 절반조차도 드마우스가 올 시즌 받는 연봉을 가뿐히 넘어선다.
“아무리 성적이 비슷하다고는 하지만, 너무 양심없는 딜이라고는 생각안해봤어요?”
[성적이 비슷하다니! 타율이 2푼 가량 떨어지긴 해도 홈런이 벌써 12개야! 타점 생산력이 드마우스와는 비교할 수 없지!]
“그래서 1대 1 스왑을 고집하시겠다?”
[그건······]
포스트가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하자 다운이 선수를 쳤다.
“그럼 오랜만에 이야기해서 반가웠······”
[잠깐! 원하는 유망주 한 명 추가해주지. 아니면 연봉보조?]
“유망주로 하죠.”
[그럴 줄 알았어. 이왕이면 30위 권 밖으로 하자고.]
“올 시즌 들어온 드래프티들은요?”
[걔네는 당연히 제외지. 뭘 얼마나 뽑아먹으려고? 양심이 있는 소리를 해.]
애슬레틱스가 데려간 선수 중에서 꽤 관심있는 선수가 있었는데 아깝다.
“30위권 밖까지는 제가 잘 몰라서 한 번 둘러보고 다시 연락드리도록하죠.”
[뭐야. 내 마음을 이렇게 흔들어놓고! 이렇게 간만 보고 사라지는거야?]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마세요 데이비드. 탐색전인거 알고 있었을······”
그러고보니 빌리 빈에게만 연락이 몰린다고 했었지. 마음에도 없는 말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지만 어차피 다운이 알바는 아니었다.
“······거면서. 다른 구단 제안도 들어봐야죠.”
트레이드 마감까지는 3주가량 남아있었다. 1루수가 없는 것도 아니고 두 사람 다 급할 건 없었다.
“나중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빌리 말고 꼭 나한테 다시 연락 줘야돼! 알겠······]
끝까지 질척대는 포스트를 매정하게 끊어냈다.
“멀쩡하게 생겨놓고 왜 저러는지 정말······”
시계를 확인하니 5분이 채 지나기 전이었다. 다운은 책상에 놓인 전화기를 눌렀다.
“리타. 말린스와 연결해줘.”
[알겠습니다.]
뚜루루루
리타가 저 쪽 비서까지도 처리했는지 신호음 한 번이 끝나기 전에 스피커폰으로 킴 응 단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전히 바쁘네.]
“킴벌리도 이제 많이 바쁘시잖아요?”
[네가 도와준 덕분에 이제 만만하게 보이지는 않을 정도가 된거지.]
“그건 당신이 잘해서 그런거고요.”
킴 응에 대한 다른 단장들의 평가는 막시 로페즈를 양키스에 아주 비싸게 팔아먹은 것을 기점으로 수직상승했다.
시기와 운을 잘 타고나서 단장까지 오른 여자에서 꽤 능력이 있어보이는 단장으로 말이다.
그 뒤로도 그녀는 꽤 말린스에 도움이 되는 딜을 연속으로 성공시켜 ‘만만치 않은 단장’이라는 이미지를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뭐 서로에 대한 입발린 미담은 여기까지.
“무슨 일로 전화하신거에요?”
다운도 재키 하워드에 대해 어느정도 관심이 있기는 했지만, 아직 그 사실을 저쪽에서는 모른다. 굳이 나서서 그걸 알려줄 생각도 없었고. 그래서 다운은 한 발 빼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다.
[곧 나한테 전화올 것 같아서 미리 전화했는데······ 내 예상이 틀린건가?]
겨울까지만해도 단장 자리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던 사람이 이제는 한 마리 능구렁이가 되어있었다.
“글쎄요······”
[재키 하워드. 너희 팀에 딱 맞는 선수인 것 같은데.]
“수비력을 중시하는 우리 감독님은 원할 것 같지만 제가 생각하는 1루 상은 아니어서 고민이 조금 되기는 하네요. 거기다 나이도 꽤 많잖아요.”
[대신 연봉이 싸지. 곧 너희 선수가 될 재머가 메이저리그에 올라갈때까지는 충분히 버텨줄 수 있는 갭 플레이어기도 하고.]
“갭 ‘벤치’ 플레이어겠죠.”
[괜찮은 1루수가 없는 너희 팀에게는 꽤 좋은 벤치 플레이어가 되겠네.]
만약 두 사람이 마주하고 있었다면 분명 둘의 시선 사이에 불꽃이 튀었을거다.
“원하는게 뭐에요?”
[카일 딜라이트를 지금 주는 건 무리겠지?]
“불가능하죠.”
카일 딜라이트는 이미 코너 재머와 맞바꾸기로 계약서까지 써놓은 카드다. 미리 주게되면 추후에 코너 재머와 맞출만한 카드를 또 찾아야한다.
[그럼 맞출만한 카드가······]
생각하는 척 하던 그녀는 곧 하나의 이름을 불렀다.
[버드 드마우스.]
애슬레틱스에 이어 또 한 번 드마우스의 이름이 나왔다.
[요즘 우드먼한테 밀려서 잘 안나오는 것 같던데. 하워드랑 바꾸는거 어때? 물론 계약기간에서 차이가 있는데다가 둘의 성적이나 소화 가능한 포지션 차이도 있으니까 적당한 유망주 하나 끼워주는걸로.]
“흐음······”
돌아가는 상황이 흥미롭다. 애슬레틱스도 그렇고 말린스도 드마우스를 원하다니.
0.271/0.353/0.444, 36안타, 3홈런, 12도루
컨택이 좋고 눈도 꽤 좋은편이라 2할 후반에 3할이 넘는 출루율까지 기록하고는 있지만, 파워가 부족하다.
발 빠르고 수비는 꽤 잘하는 편에 유격수와 3루수도 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어깨가 약해서 레이스에서는 2루수로만 출장하고 있는 선수.
메이저리그 어디에나 있을법한 리그 평균적인 내야수가 바로 드마우스였다.
그런데 그런 그를 원한다? 그것도 두 팀이나?
촉이 온다.
뭔가 더 비싸게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촉이 말이다.
다운은 일부러 목소리를 축 늘였다.
“저희 측에서도 버드가 필요해서 말이죠. 당장에 세드릭이 좋은 모습을 보이고는 있지만, 언제 퍼질지 모르는 일이잖아요?”
[앤더슨이 있잖아?]
“앤더슨은 내야만 보는 자원이 아니어서 당장 쓰기에는 애매하죠. 뭐 여튼 좀 더 생각해볼게요.”
[20위권 유망주까지는 얹어줄 생각있어. 그러니 생각해봐.]
“알겠어요.”
다운은 전화를 끊자마자 크게 소리쳤다.
“리타아아아! 피트 불러줘!”
< 60화 - 촉이 온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