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죠(유료분 시작) >
덕 흘로첵
올 시즌 패트릭 비어스가 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레이스의 1루를 책임지던 선수였다.
“덕 역시 수비에 문제가 있었잖아요.”
그를 마이너로 내린 이유는 타격적인 측면이 컸다. 수비에서도 장점이 크지 않은 선수가 장점이었던 타격에서도 죽을 쑤게 되니까 그를 내린 것이었다.
“덕이 수비에 문제가 조금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건 타구에 대한 수비 문제지, 포구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포구할때는 어지간한 1루수들보다는 잘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까요. 마운드에 있을때에도 앞으로 오는 타구에 대한 수비 하나 만큼은 꽤 좋다는 평가를 받았었습니다.”
“1루에서 수비할 때랑 비슷하네요.”
흘로첵이 수비를 못한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그의 수비 범위가 너무 좁기 때문이었다.
“마이너리그에 내려가서 충격을 먹어서 그런지 몰라도 최근에 수비가 굉장히 좋아졌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덕의 문제는 수비가 아니지 않아요?”
흘로첵은 원래 수비가 아니라 타격 능력으로 인해서 메이저리그에 올라올 수 있었던 선수다. 평균 이하의 수비력과 평균 정도는 되는 타격을 가지고 있는 그런 선수.
다운은 그를 갭 플레이어로 분류해놨었다. 그를 제외하고는 팜 내에서 1루를 맡을만한 눈에 띄는 선수는 없었기 때문에 기회를 받은 것일 뿐이다. 다운 역시 장기적으로는 페레즈나 다른 1루수를 구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트리플 A에 내려가서는 위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적이 꽤 올랐습니다.”
“흐음······”
그는 트리플 A에 내려간 뒤 타율이 0.347에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에 12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이는 그 누구라도 쉽게 기록할 수 있는 기록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다운은 그가 내키질 않았다.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보여줬던 흘로첵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그는 영락없는 트리플 A급 선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선수를 부르는 단어를 가지고 있었다.
“피트. 마이너 성적이 아무리 좋다고는 하지만, 빅리그에서 올라와서 한 걸 봤잖아요. 제가 생각하기에 덕은 그저 트리플 A급 선수일 뿐이에요. 뭐 이번에 마이너리그에서 잘한다고하니 AAAA급 선수는 되겠네요.”
클라인은 신랄한 다운의 평가를 덤덤히 들었다.
“그럼에도 그를 추천하는 이유가 뭐죠?”
“제가 운영파트장에 오르기 전까지 스카우트로 활동했다는거 아시죠?”
“알죠.”
“제가 가장 마지막으로 스카우트 했던 선수가 바로 덕입니다.”
“아픈손가락 뭐 그런겁니까?”
“그런거죠. 물론 제가 추천한 선수들 중에서 성공한 선수도 있고, 실패한 선수들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뽑아온 선수다보니 아무래도 정이 더 가는건 어쩔 수 없더군요.”
그의 말에 다운이 눈을 가늘게 떴다. 다운의 눈초리에 클라인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저 정 때문에 기회를 줘보자는건 아닙니다.”
“피트라면 그럴거라 믿고 있어요. 뭐 당장에 성적 자체도 기회를 줘볼만한 성적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문제는 그 기세를 빅리그에서도 이어나갈 수 있냐는거죠.”
“덕이라면 그럴겁니다.”
도대체 클라인의 저 믿음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걸까? 캐시에게 눈을 돌려봤지만 그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케빈은 모를겁니다. 케빈은 대부분 빅리그 선수들만을 보니까요. 하지만 거스라면 저와 똑같은 주장을 할겁니다.”
“그 주장 한 번 들어보자고요.”
잔에 담긴 주스로 목을 축인 클라인이 입을 열었다.
***
클라인이 처음 흘로첵을 알게 됐을때만해도 그는 투수였다.
“체코에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투수가 있다던데?”
“그렇지 않아도 방금 결재받고 왔어.”
“젠장. 이번에는 내가 빠른가 싶었더니!”
“이번이 마지막 스카우팅이잖아. 양보해 거스.”
클라인의 말에 거스가 특유의 시니컬한 표정으로 툴툴거렸다.
“근데 야구 불모지인 유럽. 그것도 체코에 있는 선수를 부르는게 아니라 네가 직접 간다고?”
“미국 땅에 들어와서 쇼케이스를 열면 우리한테 기회는 없는거나 마찬가지라는거 알잖아.”
“알지. 빌어먹을 스몰마켓. 마음에 들면 꼭 도장까지 찍고와라.”
“그러려고 가는거지.”
거스를 제치고 체코로 날아간 클라인은 지금까지 보았던 그 어떤 재능들보다 빛나는 다이아몬드 원석을 발견했다.
‘15살의 어린 나이에도 193cm이라는 하드웨어를 가지고 90마일을 살짝 넘는 패스트볼을 뿌릴 수 있어. 프로필 상 75kg밖에 안된다고 했으니 웨이트를 해서 근육을 키우면 90마일 중반대까지는 충분히 찍어줄 수 있을거야. 무엇보다 누구한테 배웠는지 모를 파워커브가 일품이야.’
흘로첵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하면서 클라인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여기 오길 잘했어!’
흘로첵의 경기를 보는 내내 그곳까지 직접 가기로 마음먹었던 과거의 자신을 칭찬했다.
“야구 어······ 약한 유럽에서 온 제가 성공할 수 있을까요? 다들 남미에서 선수들을 찾는다던데.”
“내가 널 보러왔잖니 꼬마야. 난 네가 성공할거라고 확신한단다. 그래서 남미가 아닌 체코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거지. 너는 재능이 있어. 재능 알아? 탤런트 탤런트.”
“약점······ 존재하지요?”
“그건 재능이 있다는 말과 대척되는 단어가 아니란다. 네 재능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약점들을 지워나간다면 난 네가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들 중 한 명이 될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단다.”
“피트 생각. 내 약점?”
“네 약점은······”
메이저리그에 가기 위해 공부했다는 어설픈 영어로 더듬더듬 물어보는 흘로첵에게 클라인은 종이에다가 말하는걸 그대로 적어주는 정성을 보였다.
그리고 그 정성은 6개월 뒤 결실이 되어 돌아왔다.
“피트! 피트! 대체 뭘 어떻게 한거야?”
“뭐가? 주어가 없잖아 주어가. 진정하고 무슨 일인지 말해.”
“덕 흘로첵이 30만 달러에 우리 구단에 온단다!”
흘로첵은 레이스과 계약을 찍은 다음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클라인을 찾아왔다.
“피트가 고치라고 했던거 다 고쳤어요.”
그는 6개월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또 다시 6개월이 흘렀을 때 그는 196cm에 95kg의 당당한 체구를 가지고 최고 97마일을 뿌리는 괴물같은 좌완이 되어있었다.
“저 아이는 분명 내가 발굴한 마지막이자, 최고의 선수가 될거야.”
그렇게 생각했었다.
흘로첵의 어깨가 죽기 전까지는 말이다.
“크, 큰일났습니다 파트장님!”
“무슨 일이야?”
“그, 어제 덕이 검사한 결과가 나왔는데······”
진단명은 어깨회전근개 파열.
“아······”
흔히들 투수가 가장 두려워하는 부상 1위는 팔꿈치 인대 파열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토미존 수술이라는 아주 유명한 수술과 함께 예전의 폼을 위해서는 최대 2년까지의 재활기간을 필요로하는 부상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투수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상 1위는 그런 부상이 아니었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상 1위. 그게 바로 어깨회전근개 파열이었다.
토미존 수술이라는 획기적인 수술방법을 통해서 선수 복귀를 할 수 있는 팔꿈치 인대와는 다르게 어깨 회전근은 수술과 길고긴 재활을 통해서도 ‘빅리그 수준’의 투수를 펼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짐 토머슨처럼 양 손으로 공을 던질 수 있는 재능이 있다거나, 타자로서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투수가 아니라면 무조건 은퇴를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그런 무시무시한 부상이 흘로첵의 창창한 앞길을 가로막은 것이다.
클라인은 수술을 마치고 누워있는 흘로첵을 찾아갔다.
“재활······ 해볼꺼냐?”
차마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던진 질문.
‘고작 17살에 은퇴를 생각해야하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지만 흘로첵은 클라인의 생각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었다.
“아뇨. 투수는 그만두려고요.”
“그럼······ 체코로 돌아갈거냐?”
“무슨 소리에요 피트. 체코를 떠난 그 순간부터 빅리그를 밟지 않고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투수는 그만둔다며?”
“야구에 투수라는 포지션만 있는게 아니잖아요?”
“야수로 전향하려고?”
“네.”
물론 가능은 하다. 투수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선수들이 야수전향을 하는건 꽤나 자주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흘로첵은 고작 17세. 회복과 재활에 1년 정도 소모한다고 쳐도 그는 18살에 불과했다. 야수로 전향할 시간은 충분했다.
문제는 그가 타석에 들어서는걸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타석에 서본 적이 있었나?”
“당연하죠. 야구 불모지 출신인데 타격을 안해봤겠어요? 이래뵈도 에이스에 1번 타자였어요.”
아마추에서 선수 수준이 낮은 팀에서는 최고타자가 1번에 배치되기도 한다. 경기에서 가장 타석에 많이 들어가는 타순이 1번이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갔을때는 타석에 안들어갔었잖아.”
“그야 메이저리그 스카우트가 온다는 말에 최대한 투구에 집중하고 싶었으니까요. 그래야지 제 약점이나 보완점도 더 잘봐줄 수 있잖아요. 이래뵈도 꽤 잘치거든요.”
그래도 클라인의 눈에선 의구심이 가시질 않았다.
‘그 동네 애들 80마일도 겨우 던지지 않나?’
투수일때는 구속이라는 객관적인 평가요인이 있었지만, 그를 제외하고는 빨라야 80마일대 공을 던지는 투수들밖에는 없었다. 그런 투수들을 상대로 타격을 잘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빅리그에는 90마일 이상을 던지는 투수들이 수두룩빽빽했고, 빅리그 타자가 되기 위한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바로 90마일 이상의 강속구에 대처가 가능한가였다.
그게 검증이 되지 않은 흘로첵의 타자로서의 미래는 쉬이 짐작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본인이 저렇게 자신있어하는데, 어른이 되어가지고 17살의 갓 수술을 마친 꼬맹이에게 모진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클라인은 웃으며 그의 허벅지를 두드려주었다.
“그래. 네 운동신경과 센스와 노력이라면 분명 야수전향에 성공할 수 있을거다.”
“도와줄거죠?”
“네가 요청한다면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마.”
***
“외야는 왜 포기했죠?”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송구에 스트레스를 엄청 받더라고요. 외야는 정확한 송구도 송구지만, 그것보다는 강한 송구를 조금 더 요구하니까요. 내야수들이 있는 곳으로 대강 세게 던지면 알아서 처리해주는 외야수와는 다르게 내야수는 보다 정확한 송구가 필요하죠. 그래서 외야보다는 1루수를 택하더군요.”
어깨회전근개가 파열된 선수다 세게 던진다는 행동에 대한 반감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뒤로 매 시즌 조금씩 성장하더군요. 덕이 요청할때마다 프레드와 함께 분석한 약점들을 알려줬죠. 그리고 덕은 항상 반 년안에 그에 대한 완벽한 보완을 하고 왔죠. 그렇게 지금까지 온겁니다.”
“이번에 내려갈때도 피드백을 받고 갔죠?”
“네. 저와 거스, 그리고 프레드의 분석에 따른 피드백을 확실히 듣고 갔습니다. 덕에 대한 동정 때문에 그를 믿는게 아닙니다. 지금까지 7년간 우리 구단에 있으면서 보여줬던 그 끊임없는 노력과 향상심을 믿기 때문에 이렇게 요청하는겁니다.”
그리고 그는 확신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죠.”
< 59화 -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죠(유료분 시작)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