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 들어오는건 마음대로였지만 >
- 레이스에서 조나 파인트 퍼펙트게임 기념 한정판 티셔츠와 기념품들을 뿌린다!
소식은 금세 인터넷을 타고 퍼져나갔다.
- 10일 뒤 파인트 등판일에 맞춰서 이벤트한대. 그 날 들어오는 사람들한테 넘버링까지 달린 티셔츠랑 굿즈들 주는 모양이야.
- 근데 25000개 한정이면 한정도 아니지 않아? 난 5000개 이상 넘어가면 한정판으로 안치는데.
- 거기다가 1번부터 4번까지는 이미 나갔다며?
- 그건 인정해줘야지 35년이나 연속으로 시즌권 구매한 사람들이잖아.
- 가뜩이나 팬 없는 레이스인데 35년 연속 시즌권을 구매한 사람들이니 1번부터 4번까지 받을 자격은 충분하지.
- 그래도 난 싱글넘버링이 좋은데······
- 어차피 넌 못받아. 시즌권자들 우선예매라.
- 젠장할. 25000장이나 뿌리는데 싱글 넘버링도 못받아? 난 관두련다.
초기반응은 생각보다 좋지 못했다. 한정판 치고는 굉장히 많은 25000개의 제품이라는 점과 싱글넘버링 중 가장 첫 4개가 무료로 35년차 시즌권 구매자들에게 돌아간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래서 시즌권자들에게 주어진 이틀간 팔린 좌석은 16348개.
“올 시즌 시즌권 구매자들이 총 몇 명이라고 했죠?”
“16603명입니다.”
“평균관중보다 많네요.”
“싼 시즌권을 사더라도 서포터들한테 주는 상품은 나오잖아요. 그거 받고 경기장에는 나오지도 않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그리고 저희는 생각보다 어린 팬들의 비중이 높은데, 이 주변의 치안이 좋은 것도 아니고 부모님들이 애들끼리 경기보러 보내기는 힘들죠.”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가슴 한 구석이 씁쓸해지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사실 분들은 다 사신거나 다름없겠죠?”
“그렇겠죠.”
이 정도면 시즌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경기를 예매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진짜 정확하네요.”
다운이 심슨에게 엄지를 치켜올렸다.
“제가 말했죠? 저 놈들은 5000장 이하 가 아니면 한정판으로 취급도 안합니다. 어떤놈은 천 장 이하, 즉 세 자리수만 한정판으로 취급하는 쪽도 있죠.”
이런 사태가 일어날것은 티셔츠마다 실루엣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을때부터 예상했었다. 하지만 레이스 프런트는 끝까지 정보를 숨겼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처음부터 정보를 풀면 한정판을 위해서 갑작스럽게 싼 시즌권(500달러부터 시작한다)을 구매하는 사람이 우후죽순처럼 생길것이 분명했다. 만약 그들이 몰려온다면, 원래 시즌권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티케팅을 위해 싸워야하는 경우가 생길지도 몰랐다. 그래서 시즌권을 가진 사람들이 여유롭게 자리를 예매할 수 있도록 주어진 3일 중에서 이틀간 정보를 풀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두 번째 이유.
“정보 풀까요?”
“푸세요.”
바로 이것 때문에 시즌권을 구매하려는 사람들까지 쫙쫙 빨아들이기 위해서였다.
리셀을 위해서든, 뭘 하든간에 추가로 시즌권을 구매한 사람들은 결국 잠재적인 팬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돈도 더 벌고. 그래서 다운은 굳이 그들의 유입을 알면서도 막지 않은 것이다.
탁!
홍보팀 직원의 찰진 엔터소리와 함께 가장 큰 커뮤니티 중 하나에 글이 올라갔다.
글쓴이 : Jhanyolo(lv.78)
제목 : 레이스 한정판 추가정보
얘들아! 내 친구가 레이스에서 클러비로 일하거든? 근데 엄청난 소식을 들었어.
레이스에서 25000장의 한정판 티셔츠랑 굿즈를 뿌린다는거 다들 들어서 알고 있지? 근데 그 25000장의 티셔츠가 넘버링만 다른게 아니라는거야.
퍼펙트게임을 한 파인트의 마지막 와인드업 모션을 25000 프레임으로 나누어서 담았대. 거기에 티셔츠가 정품임을 알려주는 넘버링이 담긴 포토카드까지 담아 준대!
자, 바보가 아닌 이상 이게 뭘 뜻하는건지 알겠지?
바로 이번에 풀리는 기념 티셔츠가 25000장이 풀린다고는 하지만, 결국에는 하나하나가 전 세계에서 유일한 한정판이라는거지!
이 정보를 왜 알려주냐고?
(사진)
난 시즌권 홀더라서 14087번째 프레임이 담긴 티셔츠를 얻었거든! 팬심에서 나온 행동이었는데 친구가 알려준 정보를 듣고는 잘했다는 생각을 했지 흐흐!
한정판에 미친 브로들! 내일부터 있을 전쟁에서 부디 승리하길 바랄게.
글에 시즌권에 대한 언급은 딱 한 번 뿐이었다. 심지어는 제목에서조차 시즌권이라는 단어는 빠져있었다.
“시즌권 언급이 너무 없는거 아니에요?”
다운의 말에 심슨을 포함한 마케팅 직원들이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절대 아닙니다 단장님. 너무 노골적이면 들켜요.”
“맞습니다. 이는 고도의 심리적 분석이 동반된거라고요. 괜히 시즌권을 더 언급했다가는 오히려 거부감이 일어날겁니다.”
“그러면 제목에서만이라도······”
미련이 가득 담긴 다운의 말에 심슨이 낮은 목소리로 다운을 불렀다.
“단장님······”
스산한 그의 말에 다운은 두 손바닥을 펴고 항복선언을 하고는 말을 돌렸다.
“저 티켓 사진은 어디서 났어요?”
그러자 한 홍보직원이 손을 들었다.
“제가 산겁니다. 시즌티켓 홀더거든요.”
“아주 바람직하네요. 다른 직원분들도 다 구하셨죠?”
다운은 직원들이 일반인들을 밀어내고 새치기하는 것은 막았지만, 시즌권을 새로 구매한 뒤 정당한 방법으로 얻는 것까지는 막지 않았다. 경기장에 앉아서 볼 수도 없는 사람들이 굳이 돈을 들여서 시즌권을 사겠다는데 그걸 막을 이유는 없었으니까.
“넵!”
“단장님이 허락해주신덕에 구할 수 있었습니다!”
“흐흐! 저는 제 아내까지 해서 세 개 구했습니다. 단장님 덕분입니다!”
“어차피 팔아먹을거였는걸 뭘 그런거 가지고. 슬슬 반응이나 보자고.”
다운의 말에 홍보팀 직원이 새로고침 키를 눌렀다. 그러자 우후죽순처럼 달려있는 댓글들이 보였다.
- Holy shit! 그럼 한 장, 한 장의 티셔츠가 모두 한정판이라는거야?
- 구단에서 홍보하려고 일부러 저러는거 아닐까?
- 레벨을 봐 멍청아 78렙짜리라고. 구단 홍보팀에 저런 사람이 있겠냐?
- 그러니까. 저 사람이 올린 글들을 봐. 굳이 이번이 아니라 매번 글 올리던 사람이었어. 그리고 리셀도 자주 했고.
다운의 시선을 받은 직원이 어색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하하······ 이런거 모아서 리셀하는게 취미라······”
“우리껀 팔지 마세요.”
“저, 절대 안팔죠!”
“지켜볼겁니다.”
“넵!”
다운의 살벌한 눈초리를 받은 직원이 빠릿빠릿하게 댓글을 내렸다.
- 누군가는 이어진 버전을 원하지 않을까? 가격이 엄청 뛸 것 같은데?
- 좋아. 그러면 내일 바로 예매하러간다. 비록 경기는 집에서 봐야겠지만, 기념품만 받으면 만족할 수 있어.
- 윗 놈. 너 같은 놈들 때문에 기념품은 경기장에 와야지만 받아갈 수 있는 조항이 있어. 난 이미 비행기표까지 예매해놨다고.
- 아아아아! 어떻게든 갈 수 있으니까 빨리 티케팅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3시간이나 기다려야한다니!
야구 한정판을 모으는 커뮤니티다보니 다들 티케팅을 하고 싶어서 난리인 댓글 뿐이었다.
“여기에 제 아이디로 방법을 살짝 알려주면······”
심슨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 멍청한 녀석들아. 23시간을 기다린다고? 지금 당장 시즌권 사서 예매하면 되잖아! 심지어 지금 시즌 절반 가까이 지나서 반값 정도밖에 안한다고!
그의 글을 본 다운이 물었다.
“아까는 대놓고 말하는게 별로라면서요? 홍보하는거라고 생각하는거 아니에요?”
다운이 말했던 것과 같은 말이 댓글에 곧바로 달렸다.
- 이 댓글은 홍보 아니야?
하지만 그 글은 곧바로 다른 글들에 덮였다.
“그야 애송이 아이디로 쓸 때 이야기고요. 후후후!”
“브래드 아이디는 뭐 달라요?”
심슨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새로고침을 눌렀다.
- 미친! Mr.Simpson님이잖아!
- 심슨님이 알려주신 정보에 지금 홍보라고 한거야?
- 세상에 아직도 심슨님을 모르는 뉴비가 있네?
- 근데 시즌권 예매가 열려있어?
- 일단 사는거지. 심슨님이 말한거면 정확하다고 봐야지.
- 지금 320달러밖에 안한다. 이 정도면 리셀 생각하더라도 이득이야.
- 리셀이 아니라도 이득이지! 어차피 시즌권자들은 예약만하면 가서 볼 수 있는거잖아.
- 제일 싼 시즌권 산거면 좌석 업그레이드하는데 추가비용 결제해야돼.
- 그래도 패키지 값은 뽑을걸? 이번에 무슨 굿즈들 엄청 넣어준다던데.
달리는 댓글들에 뿌듯해하는 심슨을 보며 78렙짜리 직원에게 물었다.
“여기서 심슨 유명해?”
“네. 최초 99렙 달성자에 알짜배기 정보들을 자주 뿌려서 네임드 중에 네임드로 통하죠. 특히 미국 4대 스포츠에 대한 정보는 파트장님이 제일 먼저 뿌리곤 하시거든요.”
어쩐지 마케팅 포인트나 세일즈 포인트 같은걸 잘 안다 싶었다.
“브래드.”
다운은 ‘브래드도 막 일과시간 쪼개서 글 쓰고 그러는거 아니죠?’라고 장난을 치기 위해 그를 불렀다.
“시즌권 실시간 가입자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100명 돌파! 150, 200명 돌파! 이거 초 단위로 증가하는데요 단장님?”
다운의 생각보다 네임드의 위력은 강력했다.
“네 단장님.”
그를 보고 다운은 하려던 말을 쑥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 대신 엄지를 쭉 뻗어올렸다.
“최고라고요.”
***
단 하루.
정보를 얻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지 않기 위해서 시즌권을 구매할 수 있는 날짜였다.
“이거 풀어도 일반인들 살 물량은 남겠지?”
“아마도요?”
레이스는 비인기팀이다. 티켓마다 실명이 적히고, 경기 입장할때 신분증을 대조하고, 직접 오지 못하면 기념품을 수령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운은 이 이벤트를 지역 주민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시즌권을 구매한 사람들이 아니더라도 좌석은 충분히 돌아갈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크나큰 오산이었다.
정보를 풀기 전까지 남은 좌석은 8652개.
그 물량이 소진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1시간 34분에 불과했다.
심지어는 시즌권 구매자들의 수가 남은 좌석을 뛰어넘어 있었다.
“시즌권 구매자 수가 총 몇 명이라고?”
“뒤늦게 시즌권 구매한 사람들의 수까지 합쳐서 이제 16982명입니다!”
준비된 상품은 8652개밖에 없는데 상품을 구매 못한 사람들이 그만큼 남아버렸다.
“세상에 한정판에 미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저희 커뮤니티 회원수만해도 100만 명이 넘어가요. 그나마 직접 와야한다는 제한 때문에 이렇게 적게 들어온거죠.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이번 티켓 때문에 구매하신 분들에게는 모두 환불해드린다고 해. 하지만 유지하셨을 때는 특별히 굿즈 35%할인 쿠폰 드린다고 해. 환불하시고나면 이번 시즌 재구매는 불가능하다고 알려드려. 그리고 브래드. 레이스에서 지속적으로 시즌권자들을 위한 특별한 이벤트를 할거라고 정보를 흘려주세요.”
들어오는건 마음대로였어도 나가는건 안된다.
“절대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들어주지.”
< 57화 - 들어오는건 마음대로였지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