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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머리 MLB 단장-56화 (56/268)

< 56화 - 최소한의 배려 >

퍼펙트게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에 관해서 수도 없는 의견들이 나왔다.

가장 먼저 일자가 한 텀 미뤄졌다.

“5일 뒤까지 곧바로 준비하기에는 팬들도, 저희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대기록을 세운 다음 등판은 그냥 그것만으로도 세일즈포인트가 될겁니다. 그러니 한 타임 거르고 파인트의 다다음등판에서 기념행사 하시는게 어떻겠습니까?”

휴식일을 포함해서 다다음 등판까지는 11일이 남았다. 이 정도면 팬들은 물론이고 구단에서도 이벤트를 준비하기에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될 수 있었다.

결국 일자는 11일 뒤로 미뤄졌고, 이제는 이벤트에 관해 이야기할 타이밍.

마케팅팀을 갈아넣어 나온 의견들은 80여개에 달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은 투표수를 받은 것이 바로 ‘한정판 티셔츠 지급’이었다.

“사람들은 한정판에 환장하죠. 저희 와이프만 보더라도 한정판 뭐 나왔다고하면 꼭 사야한다며 달려들더라고요.”

“제 아들놈도 마찬가지에요. 이번에 한정판 나이키 운동화가 나왔는데 매장 앞에서 밤새 기다려서 사오더라고요.”

“확실한건 ‘Limited Edition’이라는 딱지가 붙는 순간 눈이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겁니다. 만약 저희가 1번 부터 25000번까지 넘버링을 한 한정판 티셔츠를 준다면 분명 미친듯이 사람들이 몰릴겁니다.”

한정판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최근의 사회 분위기를 활용하자는 의견이 대세였다.

“그런데 한정판이라면 뭔가 특별해야하는데, 티셔츠만은 조금 그렇지 않을까요?”

한정판 이벤트는 기본적으로 ‘무료 지급’이다. 다저스나 양키스와 같은 빅마켓 팀들은 기본적인 제작비 정도는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구장을 찾아주는 팬이 적은 레이스 같은 팀들은 무료로 준다해도 팬들이 오지 않을 확률이 컸다.

다운의 말에 러셀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쩝······ 아쉽긴 하죠. 하지만 그렇게하면 추가적으로 돈을 써야하는데······”

25000장의 티셔츠도 정말 싸게 5 달러 정도의 단가를 잡는다고 해도 75000 달러가 나간다. 만 달러 단위의 돈이 나가는데 여기에 더 많은걸 추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고려하지 않은 사항이 있었다.

“아, 그러고보니 그걸 먼저 말했어야하는데. 이번 한정판 이벤트에 들어가는 제품에 대한 비용은 구단주님이 모두 지불하기로 했습니다.”

다운의 말에 러셀의 표정이 환하게 바뀌었다.

“저, 정말입니까?”

“네. 대신 스페셜 에디션으로 조나 파인트에게 넘버링이 박히지 않은 제품을 전달하고, 구단주님 본인에게 0번이 넘버링 된 제품을 전달해야한다는 조건이 달려있습니다.”

“25002개만 제작하면 되는건데 그 정도쯤이야 껌이죠!”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하던 러셀의 텐션이 급격히 상승했다.

“그러면 저도 아이디어를 좀 내겠습니다. 우선 25000장, 아니지 25002장의 티셔츠에는 파인트의 실루엣을 넣기로 했잖습니까? 그런데 이 실루엣이 전부 같을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럼 어떻게 하자고요?”

“파인트가 마지막 공을 투구하기 시작하는 와인드업 동작부터 마지막으로 환호하는 모습까지 25002프레임으로 나누어서 하나하나 차별성을 두는거죠.”

이야기만 들어도 정말 좋은 생각이다. 와인드업부터 환호하는 모습까지. 넘버링만 다른게 아니라 단 하나도 같은 실루엣이 없는, 그런 특별한 기념 티셔츠!

“그 좋은 아이디어를 말 안하고 있었다고요?”

“그야 티셔츠마다 다른 실루엣을 넣으면 단가가 수직상승하니까요.”

하여간 돈 아끼는데는 도사다 도사.

“그리고 1번부터 10번까지, 11번부터 100번까지는 특별하게 하는게 어떻겠습니까?”

“포장을요?”

“포장도 포장인데, 파인트의 친필사인이 담긴 야구공이라던가, 유니폼을 주는거죠. 한정판 티셔츠는 솔직히 입기 아깝잖아요? 그러니까 입을 수 있는 파인트 유니폼을 주는거죠. 아! 그리고 1번부터 10번까지는 특별히 경기 전 파인트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도 주는게 어떻겠습니까? 제가 알기로 파인트는 경기 전에도 그렇게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타입은 아닌걸로 알고있는데, 팬들과 사진 한 번 정도는 괜찮을 것 같은데요. 그리고 1번부터 10번까지는 최상위 넘버링이니까 기념할 수 있는 다른 특별한 걸 넣어드리면 좋을 것 같은데······ 예를들면 한정판 레이스 배지라던가······ 그리고 스티커 같은걸 넣어줘도 괜찮겠네요. 아! 요즘 우리 애들이 크록스 신발에 뭘 많이 달던데, 거기에 달 수 있는 악세사리도 괜찮겠네요. 랜덤으로 사람이 없을것 같은 평일 경기에서 쓸 수 있는 상품권이라던가 티켓을 뿌려도 될 것 같습니다. 양도불가와 같은 제재는 물론 넣어둬야겠지만요. 그 티켓에 원하는 선수와의 사진촬영 및 사인 기회같은게 들어있으면 더 좋겠네요!”

돈이라는 억제기가 사라지자, 러셀의 고삐가 풀렸다.

“다음부터는 돈 조금 더 들더라도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바로바로 말하세요. 아시겠죠?”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썩 만족스러운 답은 아니지만 당장 중요한건 그게 아니었기에 일단은 넘어가기로 했다.

“방금 앤디가 말했던거 반대하시는 분 계신가요?”

좋은 의견에 대해서 반대하는 멍청이는 적어도 이 회의실 안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좋습니다. 그럼 25000개의 기념품에 모두 스티커를 기본적으로 포함시키고, 랜덤으로 사람이 적은 날의 평일 경기 티켓이나 구장 내에서만 쓸 수 있는 한정 상품권을 뿌립시다. 앤디가 말한대로 티켓과 상품권을 발급할때는 구매자의 이름을 넣고 전산상에도 기록해서 양도가 불가함을 확인시켜두고요. 그러면 오기 싫어도 우리 구장에 본인이 직접 와야겠죠? 그리고 크록스에 달 수 있는 그 악세사리 같은 것들은 다음 기회에 합시다. 그것까지 하기에는 이번에 시간이 부족할 것 같네요. 대신 지금 구단 스토어에서 팔고 있는 헤어밴드, 암밴드, 양말, 머플러 같은것들을 넣어드리도록 하죠.”

“좋은 생각 같습니다. 이미 티셔츠 생산만으로도 시간이 촉박할테니까요.”

“1번부터 10번까지의 팬들에게는 조나와 직접 만날 기회를 주는 것도 좋은 것 같네요. 꽤 의미있는 일이니까요. 티셔츠는 기본적으로 25000 프레임으로 하고 구단주님과 단장님은 원하는 실루엣을 고르실 수 있게 해드리죠.”

“알겠습니다. 어차피 두 사람은 번외니까요. 단장님은 따로 필요하지 않으십니까?”

“저도 원하긴 하지만, 제가 시작하면 직원들도 다 원하게 될꺼고 결국 팬들에게 돌아가는게 점점 줄어들겠죠. 그래서 저는 패스하겠습니다. 전 직원들에게 이야기해서 혹시나 부정하게 취득하는 사례가 있는지 미리 알아보도록하세요. 아시겠어요?”

다운의 말에 클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확실히 관리 단속하겠습니다.”

클라인이라면 믿을만하다.

“정당한 방식으로 예매했다면 내버려두세요.”

“알겠습니다.”

“그러고보니 조나의 다다음 등판일은 티케팅은 막아놨죠?”

“아까 이벤트일정 확정되자마자 바로 막아놨습니다.”

“막기 전까지 예매한 사람은요?”

“안타깝지만······”

뒷 말은 안해도 알겠다. 분명 예매한 사람은 없었을거다. 예매하지 않고, 현장발권으로도 남아도는게 자리이고 티켓이다. 예매를 하는 사람이 정말 주도면밀하고 계획적인 것이다.

“그러면 이왕 이벤트하는거 기존 팬분들에게 혜택을 좀 드립시다. 현재 가장 오래 저희 시즌권을 소유하고 계시던 분이 몇 분이나 되시죠?”

“1998년 레이스가 시작된 이래로 지금까지 35년간 한 번도 끊지 않고, 매 년 시즌권을 구매해오신 분들이 여섯 분 계십니다.”

“생각보다 적네요?”

“시작할때만 잠깐 시즌권 구매하고 끊으신 분들이 많으시니까요. 아시다시피 데빌레이스 시절은 암흑기였으니까요.”

지금이야 레이스가 매 시즌 포스트시즌을 노리는 성공적인 스몰마켓 팀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레이스가 창단한 뒤 첫 10년간 성적은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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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팀이 다섯 팀인걸 생각하면 한 해를 제외하고는 매 년 꼴지를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기간동안의 평균승률이 4할이 안됐다. 그런 팀의 시즌권을 35년간이나 유지하는것은 무척이나 힘들고 고된 일이었다.

“그 중에 두 분은 구단주님 내외이십니다.”

글라이드는 제니퍼가 하늘로 간 이후에도 항상 그녀의 시즌권을 사놓곤 했다. 죽어서도 분명 레이스를 응원하고 있을거라며 말이다.

“올해도 시즌권 사셨어요?”

“네. 가장 비싼 걸로 사셨습니다.”

“안 그래도 될 분이······”

“그렇지 않아도 제가 다시 전화해서 여쭤봤는데, 모든 물건은 제 값을 주고 이용해야한다고 하시면서 결제 물릴 생각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러셀의 말에 심슨이 그 날이 기억났는지 손가락을 튕겼다.

“아! 그리고 시즌권 구매자를 위한 기념품은 구단주실에 가져다두지 말고 집으로 발송해달라고 하셨지.”

“구단주실로 배송하면 뭔가 선물 받은 느낌이 안산다고 하시더라.”

하여간 글라이드도 참 특이한 인간이다.

“그럼 남은 분은 네 분이시네요.”

“네. 올랜도에 거주하시는 69세의 안나 페퍼님. 탬파에 거주하시는 46세 콜린 키드먼님과 그 동생인 42세의 알렉스 키드먼님. 마지막으로 팔메토에 거주하시는 55세 헤나 페이건님. 이렇게 네 분입니다.”

“그분들에게는 특별히 초청장 보내세요.”

다운의 말에 심슨이 곧바로 물었다.

“1번부터 드릴 생각이십니까?”

“네.”

“한정판에서 높은 넘버링은 곧 그 가치와 연결됩니다. 1번부터 4번까지 그렇게 내정을 해버리면 많은 사람들이 시기할텐데요.”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한정판을 노리고 모일 팬들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건 지금까지 오래 저희 구단을 서포팅해주었던 팬들입니다. 그들의 응원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이렇게 남아있지도 못했을테니까요.”

“그렇다면 적어도 발표는 하지 않는게 어떠십니까? 싱글 넘버링 자리가 줄어드는 만큼 분명 관심도도 줄어들텐데······”

“그런 관심보다 팬이 우선입니다. 우리는 팬을 항상 위한다는 사실을 숨길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 네 분 모두 초대하고, 원하는 좌석을 드리도록 하세요. 혹여 직계가족이나 연인 중에서 오시길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장 마지막인 20000번대 부터 우선적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해주시고요.”

강경한 다운의 말에 결국 러셀과 심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장기 시즌권자들을 위한 이벤트도 해드렸으니, 시즌권자들을 위한 이벤트도 해야겠죠? 카를.”

다운의 부름에 커뮤니케이션 파트장 카를로스 크로포드가 답했다.

“넵!”

“홈페이지에서 시즌권자들만 우선적으로 티케팅 가능하게 만들 수 있죠?”

“물론입니다.”

“그럼 시즌권자들이 먼저 티케팅을 할 수 있게 이틀 정도의 시간을 줍시다.”

감사하게도 시즌권을 사서 응원해주러 오는 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였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전체 티케팅으로 풀도록 하자고요.”

< 56화 - 최소한의 배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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