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화 - 그는 신입니다! >
로열스는 메이저리그 구단들 중에서 레이스와 가장 비슷한 팀 중 하나였다. 스몰마켓이면서 투수진에 강점을 가지고 언제나 지구우승경쟁에 참가하는 그런 팀 말이다. 투수진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 수비를 중시하는 것 또한 닮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다른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따아아아악!
와아아아아!
- 배애애애애리! 브래너어어어언!
- 3루에 있던 마이어, 그리고 2루에 있던 앤더슨이 홈으로! 그리고 배리 브래넌까지 홈으로! 들어옵니다! 배리가 로열스의 기세를 꺾는 선제 쓰리런 포를 날립니다!
바로 타격능력의 차이다.
매 시즌마다 지겨울정도로 만나는 같은 지구 팀들을 봐라.
돈지랄을 해대며 유명한 선수들은 죄다 한 번씩 건드려보는, 악의 제국으로 유명한 뉴욕 양키스
양키스 이겨먹겠다고 만만치않은 돈지랄을 하는(물론 요즘은 내부육성도 하는 편이긴 하지만) 보스턴 레드삭스
캐나다 유일의 팀으로 매 시즌마다 리툴링을 하는, 그리고 매 시즌 타격능력이 미친듯이 오르고 있는 카를로스 앙헬 주니어를 가진 토론토 블루제이스
그리고 볼티모어 오리올스까지
예로부터 박터지는 지구로 유명했던 알동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타격능력이 없는 타자는 써먹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로열스가 있는 AL 중부지구는 아메리칸리그에서도 경쟁이 약하다고 평가받는 지구였다. 그 중에서도 로열스는 3위를 기록하고 있는 팀. 양키스와 1위를 다투고 있는 레이스와는 타격에 있어서 수준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딱!
- 이번에도 땅볼! 앤더슨이 잡아서 1루로~ 가볍게 아웃! 이닝종료! 로열스의 유일한 희망이자 빛, 바비 그로우가 두 타석 연속으로 땅볼로 사라집니다
- 이번 시즌 경기를 보면서 이렇게 편안한 적이 없었습니다.
-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리키에게는 미안하지만 리키는 항상 뭔가 불안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거든요.
- 올 시즌에도 피홈런 1위를 달리고 있으니까요. 불안하다는 느낌이 드는걸 지울 수는 없죠.
- 하지만 파인트를 보세요. 지금 12개의 아웃카운트 중에서 삼진이 두 개, 내야 땅볼이 7개, 내야 팝업 1개, 포수 팝업 하나, 그리고 외야에서 잡아낸 아웃카운트가 단 하나에 불과합니다. 심지어 지금까지 던진 공이 고작 31개에 불과합니다. 이닝당 열 개도 안던졌어요!
- 열 개가 뭡니까. 8개 조금 덜 던졌네요.
- 이게 바로 시대를 풍미하던 에이스가 귀환하면 생기는 일인가요? 하하!
그들이 말한 것 처럼 레이스를 응원하는 사람들은 올 시즌, 아니 최근 몇 시즌을 통틀어서 처음 느껴보는 편한함을 느끼고 있었다.
“선발이 영리하니까 경기를 지켜보는게 편안하네요. 안 그래요 J.J?”
“끄응······”
안타깝게도 피콜로는 동의할 수 없었다. 로열스가 내세운 선발이 3이닝만에 내려가고 4회부터는 새로운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가고 있었으니까.
“그나저나 바비 저 친구는 올 시즌 왜 저런답니까?”
지난 시즌 더지를 누르고 아메리칸리그 신인왕 수상에 빛나는 로열스의 미친 놈이 바로 바비 그로우였다.
그가 지난 시즌 기록한 성적은
0.339/0.442/0.622, 207안타, 44홈런, 122타점
풀타임에다가 지난 시즌에 빅리그 맛을 살짝 봤다고는 하지만 메이저리그 첫 시즌을 보내는 루키가 올릴 수 있는 성적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로열스의 미친 괴물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것이고.
하지만 그 성적은 올 시즌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지난 시즌에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던 타격이, 올해에는 완전히 꺾인 것이다. 그 결과 그는 올해 고작 2할 중반대의 타율에 10홈런을 겨우 넘기는데 그치고 있었다.
“혹시 저 친구 팔 생각은 없으신가요? 지금이라면 그래도 가격 꽤 잘 쳐드릴 수 있는데······”
피콜로는 다운이 놀린다고 생각했는지 역정을 냈다.
“일없네!”
“놀리는게 아니라 진짜 진지하게 물어본건데······”
피콜로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오늘 조나 심상치 않은데······”
파인트의 에이전트로(중간에 양키스 간다고 그만두긴 했지만) 오랜 기간 그를 지켜본 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 파인트는 지금 미쳐있다.
딱!
- 또 땅으로 굴러갑니다! 이번에는 록하트의 앞으로! 록하트의 송구는 오늘도 대포알 같군요! 군더더기 없는 송구!
문제는 그만 미쳐있는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로열스에게는 불행한 소식이지만 레이스 선수들 대부분의 집중력 역시 말도 안되게 올라와 있었다.
따악!
- 내야를 넘어가는 타구! 이 타구가! 타구가! 케비이이인 마이어! 이거거든요! 이게 바로 이 선수가 레이스에서 두 번째로 높은 연봉을 받는 이유가 바로 저기 있는겁니다! 저 광활한 수비 범위 보세요! 지금 정상보다 조금 뒤에 있는 위치였는데 타격음이 들리자마자 뛰기 시작해서 다이빙으로 잡아냈어요!
- 특히 오늘은 경기 내내 외야쪽으로 공이 오질 않고 있었거든요. 방심하고 있을만도 한데 마이어는 정말······ 하······ 정말 볼 때마다 감탄을 하게 만드는 수비를 하네요.
따악!
- 유격수를 살짝 넘기는······ 드레이크가 점프! 점프! 잡았습니다! 네이선 드레이크가 글러브 끄트머리로 타구를 낚아채는데 성공합니다!
- 바비 그로우가 배트를 부러트리며 화를 잔뜩 내네요. 네이트가 그로우를 보며 어깨를 으쓱합니다. 그리고 중얼거리네요. 쏘리 바비. 다음에는 더 잘쳐봐.
도저히 10도 이상으로 발사각을 올려줄 생각을 안하는 파인트의 구위와, 레이스 야수들의 엄청난 수비 집중력이 합쳐지자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기록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혹시······?’
7회까지 단 72개의 공으로 단 한 명의 타자도 1루를 밟게하지 않았다. 만약 2이닝만 더 이대로 던진다면?
‘레이스 역사상 퍼펙트를 달성한 사람이 있었나?
다운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옆에서 피콜로의 이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러다 퍼펙트게임 하는거 아냐?”
“J.J.”
입밖으로 내면 낼수록 기록을 달성할 확률은 낮아진다. 별 것 아닌 징크스지만 신경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냥 그럴 것 같아서 말한 것 뿐입니다만?”
놀려먹은게 있어서 뭐라 대꾸하기도 힘들다. 다운이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일부러 기록 도전을 망치거나 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 애들도 그런 양아치는 아닙니다. 절대 일부러 기록을 망치지는 않을겁니다. 혹시나 모르니 밑에 한 번 더 주지시키도록하죠.”
“믿겠습니다.”
피콜로의 전령이 원정 라커룸으로 향했다.
이제 남은 것은 그라운드에 있는 선수들을 믿는 것 뿐이다.
***
대기록을 달성한 다음
“정말 몰랐습니다. 경기가 끝날때쯤에야 알았죠.”
라고 하는 인터뷰는 다 거짓말이다. 자신이 던진 모든 경기를 기억하는건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그리고 오늘 던지고 있는 이 경기에서 내 투구가 어떤 결과를 일으켰는지를 모르는 투수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파인트 역시 지금 자신이 퍼펙트에 도전하고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퍼펙트게임······ 할 수 있나?’
노히트 노런은 두 번 달성한 적 있었다. 하지만 시대를 지배하는 투수라는 평가를 받았던 자신조차도 퍼펙트게임은 달성해본 적이 없었다.
더그아웃에 들어오자마자 생각에 빠진 파인트. 그리고 그 비어진 공간에 브래넌이 불쑥 들어갔다. 그리고 그의 옆 자리에 앉았다.
“나이스 피칭 조나.”
징크스 같은건 신경쓰지 않지만, 이렇게 대놓고 기록에 도전중인 투수에게 말을 걸 줄은 몰랐다. 그래서인지 파인트는 평소와는 달리 당황한 목소리로 답했다.
“어, 어. 고마워.”
브래넌은 당황한듯한 그의 목소리에도 흔들림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체력은? 방금 이닝 꽤나 무리한 거 아냐?”
비어만은 눈치채지 못한 듯 했지만, 역시 포수 출신 베테랑은 달랐다. 8개의 공으로 이닝을 끝내며 7회를 손쉽게 틀어막은 것 처럼 보이긴 했을것이다. 하지만 그 공 하나하나에는 1회 던졌던 96마일 싱커만큼의 힘이 들어가 있었다.
“새무엘 그 놈은 좀 더 노력해야겠어. 그 놈은 네가 일부러 체력을 아껴뒀다가 던진줄 알더라고.”
브래넌의 너스레에 슬쩍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1, 2, 3번 타자 처리했으니 만족해야지.”
“남은 타자들도 다 메이저리거들이야.”
“알고있어.”
“그리고 대기록 아차······!”
생긴건 곰처럼 생겨가지고는 하는 짓은 영락없는 여우다.
“편하게 말해. 어차피 알고 있으니까.”
“그러지 뭐.”
전혀 미안하지 않은 표정으로 넘긴 그가 말을 이었다.
“대기록을 달성하려면 이제 6개만 더 잡으면 돼. 그리고 난 네가 할 수 있을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
여우같던 브래넌의 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굳건한 믿음을 주는 눈빛만이 그의 얼굴에서 흘러나왔다.
“보스!”
브래넌의 외침에 캐시 감독이 대꾸했다.
“왜.”
“수비 보강 필요하지 않습니까?”
“네가 빠지게?”
“점수도 5점이나 있는데 수비 구멍은 좀 쉬어도 되지 않겠습니까? 수비 하나는 기가막힌 우리 루키에게 기회 한 번 주시죠!”
“배리 제 이름은 루키가 아니라 루카스······”
“루키! 몸 풀고 다음 이닝 수비부터 나갈 준비해라! 타석도 하나 들어설 수 있겠네!”
“감사합니다 보스!”
슬며시 글러브를 들고 사라지는 루카스 페리시치를 보며 피식 웃은 브래넌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이제 우리 팀 수비 구멍은 사라졌어. 그러니 팀을 믿고 던져. 저 놈들이 다 잡아줄거다.”
그리고 귀를 쫑긋거리고 있는 선수들에게 외쳤다.
“할 수 있지 애송이들아?”
“물론이죠!”
“뭐 그런걸 새삼스럽게 말로 하고 그럽니까? 당연히 할 수 있죠!”
“오늘 계속 하셨던것처럼 제 쪽으로만 보내주세요 조나. 네이선 드레이크의 글러브를 빠져나갈 수 있는 타구는 없다고요!”
자신감 넘치는 선수들의 외침이 더그아웃에 울려 퍼졌다.
‘이게 가족이라는건가?’
떠받들여지기만했던 로열스에서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신선한 기분이다.
이들과 함께라면 남은 2이닝도 틀어막을 수 있을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믿는다 애송이들!”
브래넌의 말투를 따라 선수들에게 애송이라고 하며 슬쩍 애정을 표시했다.
“네가 그 말 하니까 진짜 안 어울린다. 다음에는 따라하지 마.”
못 볼걸 봤다는 표정으로 핀잔을 주는 브래넌만 아니었다면 완벽했을지도.
***
8회가 지나 9회 초가 다가왔다. 피콜로는 이미 8회가 마치고 원정팀 라커룸으로 내려간 뒤였고 다운은 단장실에서 파트장들과 함께 손에 땀을 쥐고 경기장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단장님······ 진짜 이러다가······”
“이게 저희 레이스 첫 대기록이 되는건 아십니까? 이거 달성만 하면 갖은 기념품들과 굿즈들을 활용해서······”
“하느님 아버지. 저희 선발인 조나 파인트가 마지막까지 주자를 출루시키지 않을 힘을······”
각자의 방식으로 파인트를 응원하고 있는 와중 투 아웃이 잡혔다.
“진짜 못보겠어.”
“단장님이 못보면 어떡합니까?”
“난 조나가 애송이일때부터 봐왔잖아. 그래서 그런지 더 보기 힘들어.”
모두가 달달 떨며 차마 경기장을 보지 못하고 있을때
따아아아악!
강렬한 타격음이 트로피카나 필드의 폐쇄형 돔 가득 울려퍼졌다.
홱!
반사적으로 다른 곳을 보던 모두의 시선이 타구를 찾아 돌아갔다.
- 페리시치가 달립니다! 페리시치! 담벼락을 타고! 손을!
타타닥!
담벼락을 타고 올라간 페리시치가 환한 얼굴로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쭉 뻗은 그의 오른손 글러브에 담긴 공을 카메라가 비추는 순간.
와아아아아아아아아!
트로피카나 필드에 전례없을 함성이 터져나왔다.
- 조나! 그는 신입니다!
< 54화 - 그는 신입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