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50화 (50/268)

< 50화 - 돌아온 탕아 >

메이저리그에서는 매 시즌마다 새로운 스타가 등장하거나 예상치 못했던 선수들이 기회를 받곤 했다.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는 이유가 뭘까?

미래에 대한 각 구단들의 계획과 같이 이런저런 이유들이 있을테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선수들의 부상일 것이다.

클라인에게 걸려온 전화 역시 부상소식이었다.

“어쩐지 부상없이 시즌 잘 간다 싶더니······”

탁! 탁! 탁!

다운이 테이블을 때리는 소리가 회의실 가득 울렸다.

“상태가 심각합니까?”

“중수골 미세골절 소견을 받았습니다.”

부상을 당한 선수는 에디슨 포레스트. 자신에게 오는 직선타를 그대로 왼손으로 잡다가 부상을 당한 것이었다.

“그러게 맨손으로 공 좀 잡지 말라니까······”

안타까운 마음에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게 잘 안된다는 건 다운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최소 63마일(약 101km) 최대 118마일(약 189km)짜리 타구가 몸을 향해 달려드는데, 거기다대고

‘아! 이 타구는 피해야 해!’

‘글러브로 타구를 잡아야지!’

라고 생각하는 투수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냥 본능적으로 손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건 타구가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는겁니다. 병원에서도 완전골절은 아니고, 실금 정도인 것 같다고 했습니다.”

“수술은 필요없겠네요.”

“네.”

“몇 주나 걸릴 것 같습니까?”

다운의 질문에 팀닥터가 덤덤히 말했다.

“4주간은 절대적으로 안정을 취해야하고, 빠르면 그 뒤에 2주 정도면 재활을······”

“빠르면 말고, 정말 오래 걸릴 경우에는 얼마나 걸리죠?”

“완벽하게 투구를 하기까지는 리햅을 제외하고 4주 정도는 걸릴겁니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필이면 올 시즌 2선발 자리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던 에디슨 포레스트였다. 그런 그가 8주, 즉 두 달을 빠지게 된다.

“케빈.”

다운은 화상으로 회의에 참가하고 있는 캐시에게 물었다.

“선발 로테이션을 돌려막을 방법이 있나요?”

화면 속의 캐시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다행히 이번 시리즈가 끝나면 휴식일이 끼어있어서 로테이션을 재정비 할 수 있는 타이밍이 생길 것같습니다. 그때 에릭, 자비어, 미치를 하루 앞당겨 출장시킬 예정입니다.]

“투수가 모자랄 것 같은데······”

투수 14명, 야수 12명으로 시작했던 개막로스터와는 다르게, 현재 레이스는 투수 13명, 야수 13명을 로스터에 등록해서 쓰고 있었다.

넬슨 페레즈에게 온 슬럼프를 대처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 자리를 더 내주게 된 것이었다. 그 한 자리를 패트릭 비어스에게 내준 덕에 비어스도 잘하고 있고, 페레즈도 잘하고 있으니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문제는 투수진의 과부하였다. 1선발인 리키 더지, 2선발 에디슨 포레스트, 3선발 에릭 슈어홀츠는 최소 5이닝은 먹어주는 선발들이다. 하지만 4선발과 5선발인 자비어 에르난데스와 미치 베이커는 간혹 5이닝 이상씩 던져줄때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5이닝이 간당간당한 오프너 선발들이었다.

길게 던지는 것이 익숙하지가 않은 그들이 등판하는 날에는 무조건 불펜진이 빠르게 소모된다. 물론 예비 선발 겸 오프너들과 짝을 이루는 롱릴리프인 리처드 로버트슨이라던가 토마스 애커슬리가 멀티이닝을 소화해주고는 있지만, 언제까지나 그들은 불펜이다. 필요할때마다 나가야하는 그들이 매번 멀티이닝을 소화할수는 없는 노릇. 분명 피로가 장난아니까 쌓였을 것이다.

이런 점들을 생각해 봤을때 투수 13명은 상당히 빡빡한 로스터였다.

[그렇지 않아도 야수 하나를 내리고 투수를 올려달라고 요청하려고 했습니다.]

“누굴 내릴 생각입니까?

[덕을 내리죠.]

1루를 맡고 있는 덕 흘로첵의 최근 폼이 심상치 않긴 하다. 한 번 정도는 리프레할 시간을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대체는 브라이언을 시키는겁니까?”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넬슨이 1루도 가능하지 않습니까? 넬슨에게 1루를 맡기고 패트릭에게는 우익수를 맡겨볼 생각입니다.]

“지명타자자리는요?”

[사무엘에게 기회를 줘볼 생각입니다. 그게 아니면 알렉스에게 지명타자를 맡겨도 되구요.]

재계약을 해서 마음이 편해졌는지 윌슨의 타격은 점점 올라오고 있었다. 비어만 역시 수비에서는 윌슨에게 밀리는 모습이지만, 타석에서만큼은 윌슨에게 크게 밀리지 않는 대찬 신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럼 이번 시리즈까지만 덕에게 기회를 주고, 다음 시리즈부터는 투수 둘을 올리도록 하죠. 어떤 투수를 원해요?”

[한 명 정도는 우완이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요번 시즌 내내 선발로 등판한 선수면 더 좋고요. 오프너를 두 명이나 쓰는데, 하나 더 늘면 불펜에서 감당이 안 될 것 같습니다.]

“리처드나 토마스는 선발로 쓰기 힘들까요?”

[두 사람 모두 선발에는 어울리지가 않다는거 아시잖습니까.]

하긴 애커슬리와 로버트슨은 선발로 올라서기만 하면 제구가 흔들리곤 했다.

“빈스는 아예 선발에는 뜻이 없답니까?”

올 스프링 트레이닝까지만해도 선발경쟁을 하던 빈스 제닝스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자신은 이제 확실히 불펜에 전념하겠다는 뜻을 전해왔었다.

[짐이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짐한테 무슨 껌딱지마냥 붙어가지고 떨어지질 않더라고요.]

“허어······”

투수조의 멘토로 자리잡은 토머슨이 흔들리던 제닝스의 마음을 다잡아준 모양이다.

[이왕이면 두 선수 모두 올 시즌 마이너에서 선발로만 뛰던 친구들이면 좋겠네요. 슬슬 불펜진 체력을 아껴줘야해서 오프너를 줄일때가 된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거스?”

팜 디렉터인 거스보다 레이스 팜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트리플 A에서 당장 쓸만한 선발로 추천할 선수는 비니 맥그리프입니다. 우완으로 평균 94마일 정도의 싱킹 패스트볼을 가지고 있고, 꽤 각이 날카로운 슬라이더와 커브를 가지고 있습니다. 체인지업은 메이저리그 평균 이하로 평가되지만 평균 이상의 제구로 올 시즌 2점대 방어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빅리그 예상 성적은요?”

거스의 첫 시즌 예상 성적은 꽤나 잘 맞는 편이었다.

“음······ 승패까지는 모르겠고 기회만 주어진다면 평균자책점 3점 초반까지는 기록할 것 같습니다. 경기당 평균적으로 5이닝 이상은 기록해줄 것으로 예상됩니다.”

“좋네요. 한 자리는 비니 맥그리프로 채우죠.”

이제 남은건 한 자리다.

“남은 한 자리에 추천할 선수는요?”

거스의 미간의 골이 깊어졌다.

“다른 선수들은 사실 비니만큼 확신하지는 않습니다. 다들 어느정도 가능성은 있지만, 빅리그에 가서 그게 터질지 아닐지는 알 수가 없는 선수들이죠. 어쩌면 리처드나 토마스보다 못할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써봐야죠.”

다른 대안이 있는것도 아닌데, 기회 정도는 줄 수 있다.

“추천할만한 선수는 둘 정도 있습니다. 하나는 루이즈 나바에즈. 우완에 최고 99마일의 패스트볼을 주무기로 엄청난 스터프의 공을 뿌립니다. 파워커브와 서클 체인지업 역시 꽤 완성이 된 상태고요.”

“문제점은요?”

“다혈질적인 성격이 우선 문제입니다.”

다혈질적인 성격은 사실 야구에서, 그것도 투수라면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워낙에 특이한 성격의 투수들이 많은데다가, 다혈질적인 성격이 승부욕으로 변환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 성격이 팀원에게 가지는 않죠?”

“그랬다면 트레이드해서 보내버리자고 말씀을 드렸을겁니다.”

“그러면 큰 문제는 아니겠네요. 다른 문제는요?”

“바로 그 성격에서 오는 제구불안이죠. 기분에 따라 제구력이 너무 오락가락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올 시즌 1회부터 무너진 경기가 두 경기. 그리고 그 중 한 경기는 한 타자도 잡지 못하고 시작부터 볼만 18개 던지고 내려갔습니다. 그 정도로 제구가 안좋은 놈은 아닌데, 계속해서 볼이 들어가다보니 화가나서 더 제구가 흔들렸다고 하더군요.”

계산이 안 서는 투수는 위험하다. 특히나 저렇게 본인 분을 못이겨서 흔들리는 투수는 더더욱.

“루이즈를 지금 올리는건 우리에게도 본인에게도 좋지 않겠네요. 루이즈에게는 명상 프로그램 같은거 하나 끊어주세요.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모를까, 지금 상황에서는 본인 화를 다스리는 법 정도는 배워올 필요가 있을것 같네요. 그 다음은 누구죠?”

거스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단장님도 아는 선수입니다.”

“그야 당연히 알겠죠.”

단장이니 기본적으로 레이스에 속한 선수들은 거의 다 알고 있었다. 그걸 거스가 모를리는 없고,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아는 선수라는건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다운의 눈이 커졌다.

“혹시······ 조나?”

조나 파인트

한때 로열스를, 그리고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던 잊혀진 에이스. 그리고 다운이 에이전트 시절 맡았던 고객.

“요즘 잘하고 있다고요?”

“네. 정말 안찾아보셨던 모양이네요.”

“트리플 A에 올라온뒤 성적은 잘 몰라요. 개인적인 감정이 들어갈까봐 일부러 안찾아봤거든요.”

그의 올 시즌 스타트는 좋지 못했다. 고작 더블 A 경기에서 세 경기동안 3이닝도 버티지 못하고 털려나갔으니까. 이후 남아있던 4월의 두 경기 5이닝을 소화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를 것 없이 지나갔다.

“이제 조나 파인트는 끝났네.”

“구속도 예전같지가 않아.”

이제는 정말 끝난게 아닐까?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파인트의 반전은 5월부터 시작되었다.

5월

5경기, 32.2이닝, 3승 2패, 3.07, 11 자책점

타선이 점수를 내지 못해 진 경기가 끼어있긴 했지만, 파인트가 못해서 진 경기는 없었다. 주목할만한건 5월 내내 퀄리티스타트 이상을 기록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평균 80마일 후반대였던 구속은 몸이 만들어짐에 따라 점점 올라와서 최고 92마일까지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다운도 그를 더 이상 더블 A에 잡아놓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트리플 A에 올려놓은지 2주가 지났다.

“성적 띄워주세요.”

6월

3경기, 21.1이닝, 3승, 2.13, 5 자책점

“세 경기 동안 완투가 두 경기. 그러면서도 점수는 5점밖에 내주질 않았죠.”

“최고 구속은 얼마나 나옵니까?”

“6월에는 최고 95마일까지 나왔고 평균 92마일을 찍었습니다.”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라스는 영원하다.

축구계의 전설적인 감독 빌 샹클리의 명언은 야구계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거스가 보기엔 어때요?”

이 성적이라면 사실 그냥 올리자고 말해도 무방했다. 하지만 거스는 맥그리프를 먼저 추천하고, 애매한 친구들이라며 파인트를 추천했다. 그 이유가 있을 터.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주변의 기대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힘을 짜낸다는 느낌이 있거든요.”

“오버페이스 중일지도 모른다는거죠?”

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에 베테랑이라 그런 티가 나질 않아서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오버페이스하는게 사실이라면 저희 구단에 재정적으로도, 성적으로도 타격을 입힐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파인트는 스플릿계약에 의거해서 마이너연봉을 받으면서 머물고 있다. 하지만 그를 메이저리그에 올리게되면 곧장 최소 200만 달러의 연봉조항이 발동하게된다. 거스는 그 부분까지 고려한 것이었다.

“케빈. 한 시리즈 정도는 여유 있죠?”

[네. 아까도 말했듯이 로테이션 한 번 돌릴 정도는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럼 한 번 보러가야겠네요. 우리 돌아온 탕아를.”

< 50화 - 돌아온 탕아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