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 우리는...... >
- Fuck you 카를.
카메라에 보이지 않게 입을 가리고 읊조리는 로벨의 한 마디에 회의실이 웃음바다가 됐다.
“푸하핫! 카를! 조니 돌아오면 너 죽는거 아냐?”
“유튜브만 떡상시킬 수 있다면! 제 한 목숨 바칠 수 있습니다.”
“단장님 그렇다는데요?”
“기억해두지.”
로벨의 말이 아니었다면 이 미쳐돌아가는 상황에서 누구도 웃음짓지 못했을 것이다.
“자자! 이제 다른 건 좀 이따 검토해보고, 우선은 눈 앞에 산적한 문제부터 해결하자고.”
03:48
웃느라 벌써 12초를 낭비했다. 저 중에서도 미키와 로벨이 드래프티의 지역과 학교, 이름을 쓰고 확인할 시간이 20초 정도는 필요하다. 넉넉잡아서 타이머가 30초를 가리키기 전에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1. LHP - 조나단 데이튼
2. 1B - 코너 재머
3. 3B - 키건 포터
4. RHP - 알렉스 알마다
5. 3B - 패트릭 메이플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명을 예상했던 미구엘 파레디스를 앞순번에서 채가버렸다.
“물론 남았더라도 데려가지는 않았겠지만. 메이플 이름도 치워.”
“넵.”
같은 포지션에 대졸인 키건 포터가 남아있는데 패트릭 메이플이라니. 물론 메이플이 좀 더 잘생기긴 했다만, 야구를 잘하는 놈이 팬들에게는 더 잘생겨보이기 마련이다.
03:35
“흠······ 그럼 넷 중에서 누구를 뽑느냐가 중요한데······
일단 가장 중요한 선수는 조나단 데이튼이다.
“폴! 폴 어디갔어!”
다운의 외침에 응답하는 폴은 없었다.
“다른 직원들이 가진 정보통을 통해서도 연락이 오질 않았는데, 2년차가 정보를 얻어오기는 힘들겁니다.”
다운 역시 빚을 지워놓은 말린스의 킴 응이라던가, 양키스를 벗어난 뒤 급격히 친해지게 된 오할로란 등 친분이 있는 단장들에게 연락을 돌려봤다.
[오히려 내가 물어보고 싶었는데. 만약 2라운드까지 오면 우리가 뽑고 싶었거든.]
[후순위인 누군가가 뽑으려고 뭐 작업쳐놓은건줄 알고있었는데······ 아, 자네라는 말은 안했어. 그런 극악무도한 짓은 양키 놈들이나 할 짓이잖아. 뭐 여튼. 뽑으려다가 영 찜찜해서 못뽑았어.]
하지만 그들에게서도 명확한 답은 오지 않았다.
“제일 의심가는건 앙헬로스인데······”
이 모든 상황을 만들었으면서, 2라운드까지 데이튼의 순위가 떨어지면 함박웃음을 지을 팀.
그게 바로 오리올스였다.
만약 다른 팀들이 데이튼을 지목하면 어쩔 수 없고, 지목하지 않게 된다면 2라운드 첫 번째 지명권으로 데이튼을 데려올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니까.
하지만 문제는 앙헬로스에게서는 꽤 호의적인 답장이 왔다는 것이었다.
[무슨 일인지 정확히 말해줄 수는 없어. 하지만 절대 데이튼은 뽑지 마. 우리도 뽑을 생각 없으니까. 이것만으로도 자네는 나한테 빚 하나 진거야. 알겠지? 데이튼은 걸러.]
이러다가 앙헬로스가 2라운드 1번 픽으로 데이튼을 데려가면서 뒷통수를 후려갈기면 이쪽만 바보가 되는 것이다.
“데이튼을 뽑으시죠.”
거스가 의견을 냈다.
“다른 좋은 선수들도 많지만, 데이튼은 급이 다릅니다. 예전 같았으면 다른 팀들은 당장이라도 메이저리그에 올렸을겁니다.”
거스가 일단은 데려오고 보자는 의견이라면 운영팀장인 클라인은 그 반대였다.
“개인적으로 존 앙헬로스라는 사람을 좀 압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사람이 대놓고 사기를 칠 놈은 아니란 말이죠. 단장이라는 자리가 물론 어느정도 전략이 있어야 하는 자리이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을 속이는걸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정보를 알려주지 않을지언정, 그의 입에서 나온 소리라면 믿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3:17
타이머를 한 번 쳐다본 다운이 결단을 내렸다.
“일단은 거르죠.”
지옥에 가서라도 데려온다는 좌완 파이어볼러가 아깝기는 하다. 하지만 남아있는 세 명의 선수들 역시 선수들의 수준이 높기로 유명했던 올 시즌 드래프티들 중에서도 TOP 5, 그리고 한 명은 15위에 랭크되기도 한 매력이 넘치는 자원들이었다.
다운은 데이튼의 이름을 떼서 쓰레기 통에 던져넣었다. 그리고 남은 선수들의 이름을 한 칸씩 올렸다.
1. 1B - 코너 재머
2. 3B - 키건 포터
3. RHP - 알렉스 알마다
“그냥 다른 구단이 먼저 뽑아갔다고 생각하고 세 명 중에서 고릅시다.
3:03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코너 재머.”
다운이 이름을 부르자 거스가 반사적으로 그에 대한 정보를 말했다.
“저희 스카우트 팀은 컨택 65, 파워 60, 스피드 50, 어깨 65, 필딩 65 정도의 잠재력이 있다는 평가를 했습니다.”
그 사이 화면에 띄워진 그의 리포트에는 미키와 로벨의 이름이 크로스체커 란에 올라가 있었다. 잠재적인 점수를 짜게 주는 로벨이 저 정도 평가를 인정했다는 것은, 그의 미래가 밝다는 것을 확정지어주는 말과 다름없었다.
“어릴적부터 꿈이 유격수여서 내야수를 하고 싶다는 것만 아니었다면 외야를 갔어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었을 선수라고 생각됩니다. 파워보다는 컨택 위주의 스윙을 하는데, 본인이 원래 가지고 있는 힘이 있어서인지 담장 밖으로 공을 날려보내는 능력이 출중한 놈입니다. 몸이야 땡땡하지만, 대학에서 풋볼도 병행했던 적이 있었던만큼 스피드까지 갖추고 있죠. 외야로 전향시켜도 충분히 제 몫을 할겁니다.”
“무조건 외야 전향을 시키는게 좋다고 보십니까?”
“본인은 분명히 강하게 거부할겁니다. 당장에도 그것 때문에 순위가 확확 떨어진거니까요. 하지만 1루를 주로 맡게 하면서 코너 외야 정도는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으면 케빈이 로스터를 운영하기 더 편할겁니다.”
다음은 키건 포터.
“컨택 50, 파워 65, 스피드 35, 어깨 75, 필딩 50.”
“재머랑 너무 차이나는거 아닙니까?”
한 직원의 말에 클라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만큼 타격적인 면에서는 재머가 앞서있다는 뜻이지. 그리고 조니한테 리포트가 한 번 갔다오고 나니까 점수가 팍팍 떨어지더군.”
역시나 로벨이 범인이었다.
“그렇게 점수를 깎아대는 와중에도 파워와 어깨만큼은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올 시즌 스카우트 했던 선수들 중에서 파워는 제일 높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조니가 본 선수들 중에서 55점이 세 명, 60점도 두 명밖에 없었는데 포터만 유일하게 65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남은건 알렉스 알마다.
“스터프 60, 무브먼트 55, 컨트롤 55. 각 구종별로 포심 패스트볼 60, 파워커브 55, 체인지업 50을 받았습니다. 최고 101마일에 이르는 공을 던진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매력있는 투수입니다.”
거기에 가만히 있던 마케팅 파트장인 브래드 심슨이 한 마디를 보탰다.
“무엇보다 알마다의 가장 큰 장점은 로컬보이면서 근처의 히스패닉계 친구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스타성이 출중한 선수라는거죠. 게다가 스토리도 있지 않습니까?”
플로리다 주는 지리적인 영향으로 인해서 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등의 히스패닉 계열의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특히나 그 중에서 쿠바에서 탈출해 망명해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알마다 역시 7살에 가족과 함께 쿠바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한 망명자였다.
“힘겹게 탈출하고 자라온 와중에도 쾌활하게 자라온 그의 스토리는 분명히 주변의 수많은 히스패닉 계열의 팬들에게 먹힐겁니다. 마치 이른 나이에 떠나버린 말린스의 에이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처럼 말이죠.”
“심지어 알렉스네 가족은 마이애미가 아닌 여기 탬파까지 왔죠. 쿠바와 조금이라도 멀리 떨어진 곳에 가고 싶다면서 말이죠. 탬파에 있는 히스패닉 팬들 역시 그 마음에 공감하겠죠.”
세 선수 모두 자신들만의 장점이 뚜렷하다.
“에이전시는요?”
“재머와 포터는 CBA, 알마다는 JC 에이전시와 계약중입니다.”
둘 다 보라스처럼 말도 안되는 높은 금액을 요구하는 곳은 아니었다.
01:59
이제 시간은 1분대에 접어들었다.
“흐음······”
다운은 습관처럼 오른손을 책상위에 올린 뒤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탁! 탁!
01:55
탁! 탁!
01:54
회의실 안에는 오직 다운의 검지가 책상을 내려치는 소리만이 남아있었다.
‘우리 팀에 가장 필요한 포지션은 1루수이긴 해.’
현재 1루를 맡고 있는 덕 흘로첵은 투수를 그만두고 1루로 전향한지 고작 4년밖에 되지 않았다. 타격쪽에도 재능이 있어서인지 타격은 어느정도 봐줄만 했지만, 그의 수비는 좋게 말해도 메이저리그 하위권을 맴도는 수준이었다.
레이스가 타격을 앞세운 팀이 아닌 투수력과 수비를 앞세운 팀이니만큼 1루에는 적극적인 보강이 필요했다.
‘그렇다고해서 3루가 필요없는건 또 아닌데······’
3루를 맡고 있는 멜튼 록하트. 코너 내야에게 기대하는 2할 중후반의 타율에 20홈런 이상을 매 년 때려주고 있는 선수이자, 수비도 좋은 선수다. 문제는 멜튼이 올해로 서비스타임 3년차인 선수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연장계약 역시 거절했고.’
록하트는 드레이크가 받는 것보다는 적게 받을게 분명한데, 굳이 레이스에 남지는 않겠다는 말을 했었다. 연봉조정년차에 들어가는 내년에는 그 값이 더 올라갈 것이고, 이 활약이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5년차부터는 트레이드를 알아봐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히 알아봐야만했다. 그에게 연장의사는 없을테니까.
그렇게되면 레이스에는 2년 안에 새로운 3루수가 필요하게 된다. 2년은 분명 이른 타이밍이긴 하지만, 키건 포터라면 그 안에 메이저리그에 턱걸이를 할 수 있을만큼 성장할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알마다······’
레이스의 투수 팜은 메이저리그 전체에서도 손꼽을정도로 두터웠다. 하지만 그게 곧 투수 팜에 여유가 있다는걸 의미하지는 않았다.
마운드와 수비를 중시하는 레이스의 팀 특성상 한 해 반짝 활약을 하면서 가장 연봉이 뛰기 쉬운 포지션이 바로 선발투수였다.
선수들이 수비를 잘해주면 평균자책점은 낮아질테고, 레이스가 리그 하위권을 달리는 팀도 아니니만큼 승리도 꽤 챙길 수 있을테니까. 레이스에서 가장 먼저 ‘오프너’전략이 나오게된것도 이런 점들을 고려한 것이라고 한다. 전통적인 선발투수들의 소화 이닝이나 역할이 줄어들게되면 그들에게 지불해야할 금액 역시 적어지게 될테니까.
게다가 시장에 믿을만한 투수는 언제나 부족하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적당히 투수를 키워서 다른 팀에 파는 것. 이것이 레이스가 이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는 제 1 전략이 되었다.
투수 유망주가 매번 성공하는것도 아니고, 일단 끌어모을 수 있는대로 끌어놔야지 그 중에서 터지는 선수들을 골라서 써먹을 수가 있었다.
게다가 알마다는 탬파 로컬보이로 커온 선수. 경기 외적으로도 써먹기에는 충분한 선수다.
‘누굴 고른다······’
다운의 머리가 복잡해지는 와중에도 시간은 쉬지 않고 흘렀다.
탁! 탁!
01:01
탁! 탁!
01:00
딱 1분이 남게되자, 타이머를 계속해서 주시하던 직원이 외쳤다.
“1분 남았습니다!”
이제는 정말 시간이 없다. 그래도 당장 팀에 가장 필요한 방향으로 선택을 해야했다.
“미키.”
다운의 말에 곧바로 현장에 있는 미키가 답했다.
[선택하셨어요?]
“어. 우리는······”
그렇게 선택을 하려는 중 회의실 문이 벌컥 열렸다.
쾅!
“단장······ 흡! 님! 알아냈습니다! 허억!”
“폴?”
< 47화 - 우리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