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 혼돈의 드래프트 >
“잭 무어! 맞췄다!”
회의실 안 누군가의 외침은 곧 다른 TV소리에 묻혀버렸다.
- 오리올스의 선택은 잭 무어였습니다!
맨프레드가 이상한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패널들이 잭 무어의 이름을 불러댔다.
- 잭 무어! 축하합니다 잭!
자신의 이름이 불린 것을 확인한 잭 무어는 환하게 웃음지으며 단상으로 올라가서 오리올스 관계자와 악수를 나누었다.
- 잭 무어는 밴더빌트 대학의 좌완투수로 지난 3년간······
올 시즌의 첫 번째 지명자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드래프트 TV쇼와는 다르게 현장은 패닉이었다.
“아니 도대체 왜 잭 무어가 뽑힌거지? 혹시 우리가 모르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나?”
때마침 TV에서 무어의 리포트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 무어는 스터프 60, 컨트롤 60, 무브먼트에 65점을 받는 뛰어난 평가를 받았죠. 게다가 최고 95마일까지 찍히는 강속구까지!
- 어느하나 모 난 곳 없다고 평가받는 능력에 좌완 파이어볼러. 그를 뽑지 않아야 할 이유가 하나라도 있을까요?
당연히 있다.
왜?
아까도 말했듯이 그보다 뛰어난 투수가 분명히 존재했다. 물론 노커는 우완이니까 오리올스 내부에서 좌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 그를 거른 것도 이상한 선택만은 아니었다.
문제는 무어보다 뛰어난 좌완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페굴리와 같이 미래가 기대되는 좌완도 있지만, 당장에 무어보다 모든 부분에서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 조나단 데이튼도 있었다.
그런데 무어를 뽑는다고?
“무어를 뽑을 이유가 있었나?”
“지금 중요한건 그게 아니지.”
다운은 스튜디오에서 썩은 표정을 숨기기위해서 애를 쓰고 있는 조나단 데이튼을 가리켰다.
“왜 데이튼이 걸러졌는지가 가장 중요하죠.”
어차피 오리올스가 선택한 이상 무어가 어쨌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뽑을 수 있는 선수도 아닌데, 더 알아볼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던 데이튼이 걸러졌다는건 꽤나 의미가 있었다.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니까.
그럴 일은 희박할 수도 있지만, 만약 데이튼이 레이스의 순번까지 미뤄지게 될 때를 대비해서라도 다운은 그가 걸러진 이유가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아야했다.
클라인이 데이튼에 대한 정보를 다시 한 번 읊었다.
“오리올스 권역인 메릴랜드 출신에, 좌완 파이어볼러로 최고 97마일까지 찍는 구속, 컨트롤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스터프도 좋아. 약간 이기적인 면이 보이긴 하지만, 팀원들은 항상 잘 챙긴다는 평가를 받아왔어.”
“이기적인 정도면 투수치고는 좋은 평가 아닌가?”
거스의 말에 다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평범하죠. 혹시 계약한 에이전시는 어디에요?”
드래프트 슬롯이라는게 존재하기에 높은 계약금을 요구할 것이 확실시되는 에이전트를 어드바이저로 두었을 경우에는, 그를 피하는 경우도 존재하긴 했다.
“펜타곤.”
“보라스는 아니네요. 걔들 정도면 합리적인 선을 요구할텐데······ 무어에게는 누가 붙어있죠?”
“어······ 샘 헤이먼이네요.”
샘 헤이먼이면 보라스만큼은 아니지만, 수수료를 꽤나 많이 뜯어내기로 유명한 에이전트다. 오리올스는 최소한 슬롯머니에 근접한 800만 달러까지는 지출할 생각을 하고 그를 지명했을 것이다.
탁탁탁!
다운의 손가락이 테이블을 일정한 속도로 두드렸다.
“아까 잭 무어 지명한 친구 누구야?”
“접니다!”
분위기 때문에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운이 불러준 덕분에 수북히 쌓여있는 500달러 정도의 현금을 가져갈 생각에 그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올라와 있었다.
“맞춘거 축하해. 총 570달러가 자네거야.”
“감사합니다!”
“그러니 이제 자네는 너에게 560달러를 벌게해준 데이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실하게 파악해 와. 알겠지?”
“네······?”
“기한은 우리 바로 앞 순번인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지명이 있기 전까지야.”
말이 끝났음에도 미동도 하지 않는 그를 향해 다운이 재차 말했다.
“폴! 그럴 시간이 없을텐데?”
“네, 넵!”
폴이라는 직원은 그렇게 560달러를 챙겨갈 생각조차 못하고 부리나케 회의실을 뛰쳐나갔다.
그런 그를 보며 다운이 피식 웃었다.
“이제 2년차인 폴한테 모든걸 맡길순 없겠죠? 여러분도 가진 정보원을 최대한 활용해서 데이튼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오세요.”
“넵!”
다운의 지시에 직원들이 일사불란하게 각자의 정보망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디백스도 좌완투수를 지명할 예정이라고 하지 않았었나요?”
“그랬죠. 일이 이렇게 되어버리면 노선을 바꿀지도 모르겠네요.”
“굳이 바꿀 필요가 있나요. 페굴리를 지명하면 되는데.”
다운의 예상처럼 디백스는 페굴리를 품에 안았다.
“레인저스는 아마 유격수 최대어인 해럴드 맥마나만을 고를겁니다. 팜 내 내야진이 너무 부족해요.”
“유격수에는 쓸만한 놈이 있잖아.”
“제 정보망에 따르면 3루수를 지명할 가능성도 있다는데요. 포터가 알링턴 출신 로컬 보이에 타격도 좋아서 그를 뽑을 가능성도 크다더라고요. 거기다 이번 드래프티 중에서 탑 파이브라는 평가도 받고 있으니 저였으면 그를 뽑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또 한 번의 이변이 튀어나왔다.
- 1라운드 3번째 지명권으로 텍사스 레인저스는 뉴저지 서머스 포인트 하이스쿨의 중견수. 션 파머를 지명했습니다.
지명자의 이름이 호명됨과 동시에 다운을 비롯한 직원들의 입에서도 동시에 상소리가 튀어나왔다.
“이런 미친!”
“션, 뭐?”
“저기서 파머를 고르는게 말이 돼?”
레인저스가 야수를 고를거라는 것은 확인된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미 팜 가득히 들어찬 외야수들을 생각한다면 내야를 고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레인저스는 그런 그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이번 외야 최대어도 아닌, 뉴저지 출신이라 평가절하된 두 번째 옵션을 자신들의 1라운더로 지명해버렸다.
에인절스의 마이크 피셔맨이 야구 불모지인 뉴저지 밀빌 출신이어서 에인절스에게까지 지명순번이 돌아갔다는 스토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제 2의 피셔맨이라도 노리는거야 뭐야?”
운을 노렸든, 아니면 다른 구단에서 보지 못했던 뭔가를 봤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선택으로 인해 이번 드래프트 탑 파이브로 분류되는 선수 중 하나가 또 다시 한 계단 밑으로 미끄러졌다.
“파이어리츠는 누굴 데려갈 것 같아?”
“얘네도 에이스로 키울 선수가 필요해서 투수를 뽑을 것 같은데요? 노커가 가장 좋긴한데······”
“문제는 노커에게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건강 문제가 크겠지.”
“그리고 보라스가 붙어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는 없고요.”
여러 문제점이 있어보였지만, 결국 파이어리츠의 선택은 노커였다.
“건강문제가 있는걸 눈감아줄테니 계약금을 깎아달라는 식으로 나가겠네요.”
노커 측에서도 더 이상 독립리그는 전전하고 싶지 않을 터. 너무 심하게 후려치지만 않는다면 어느정도의 협상은 받아들일 것이다.
이는 노커가 레이스의 지명까지 내려왔으면 다운이 써먹으려던 방법이기도 했다.
“내츠는 뻔하네. 해럴드 맥마나만.”
3년 뒤면 떠날 에스코바를 대신할, 그리고 비어있는 내야 팜의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올 드래프티 중 최고의 유격수라는 평가를 받는 맥마나만을 데려가지 않는다면 내셔널스는 단장 교체를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었다.
- 1라운드 5번째 지명권으로 워싱턴 내셔널스는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 하이스쿨의 유격수. 해럴드 맥마나만을 지명했습니다. 다음 차례는 마이애미 말린스입니다.
5순위까지 큰 이변은 오리올스의 선택을 제외하고는 없었다. 대부분은 수없이 진행했던 드래프트 시뮬레이션대로 흘러갔으니까.
“올 드래프트 탑 5에 선택된 선수들 중에서 세 명이나 남았네.”
이번 드래프트에 앞서 탑 5로 지명된 선수는
1. LHP - 조나단 데이튼
2. RHP - 쿠마 노커
3. 1B - 코너 재머
4. LHP - 토마스 페굴리
5. 3B - 키건 포터
물론 여러 스카우트들의 의견이 통합된 것이기도 하고, 개인의 취향이라는 것이 존재하기에 모든 스카우트들이 저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현직 스카우트들이 저렇게 생각했다는 것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 그래서 무시할 수 있는 성격의 순위도 아니었다.
“역시 드래프트는 예상대로 흘러가지를 않네요.”
“그게 또 드래프트의 묘미지.”
다음은 레이스와 같은 플로리다 주에 위치한 말린스의 선택.
드래프트 탑 5로 분류되었던 선수들 중에서 셋이나 남았다.
1루수임에도 3위에 랭크될 정도로 대학 리그를 폭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던 코너 재머.
타격이 두루 뛰어나고 어깨가 좋고 리더십까지 있다는 평가를 받은 키건 포터.
그리고 앞선 순번들이 모두 걸렀던 조나단 데이튼.
“킴 단장 선택지에 알마다가 있을까?”
“절대 없을걸요.”
알마다가 좋은 선수이기는 하지만, 로컬이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1라운드 20위 권이 그의 적절한 지명 순위라고 생각했다.
“재머는 1루수니까 그렇다 쳐도 포터는 너무 맛있어 보이지 않아? 투수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당장 눈 앞에 데이튼이 남아있는데 알마다를 뽑으려고 할까?”
“하긴. 알마다도 좋은 선수이기는 하지만, 데이튼이 그보다는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으니······ 잠깐. 그럼 우리한테도 알마다를 뽑을 기회가 오는거 아니에요?”
“그렇게만 되면 좋을 것 같지만······”
문제는 다른 선택지가 같이 내려왔을때다. 만약 레이스의 앞에서 저런 선택지가 내려온다면 계획했던 픽을 믿고 밀고나가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밀려 내려온 픽을 가져가는게 좋을까?
다운이 고민하는게 뭔지 알기라도 하듯이 클라인이 고개를 흔들며 다가왔다.
“단장님이 걱정하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겁니다.”
드래프트장에 나가있는 로벨 역시
- 지금 네가 걱정하는 상황을 다섯 글자로 뭐라고 하는지 알아? N.E.V.E.R. 네가 알지는 모르겠는데 우리 영어권 사람들은 그 상황을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네버라고 부르기로 합의했어. 저 세 명 중에서 둘 이상, 아니지. 하나라도 남잖아? 트로피카나 필드 천장 가장 가운데에 매달려서 번지점프할게.
로벨에게 고소공포증이 있다는건 여기있는 사람 대부분이 알고 있었다. 그는 스카우트 다닐때도 꼭 앞줄을 고수하고 비행기를 탈때도 무조건 창문이 보이지 않는 복도 자리를 고수할 정도로 높은 곳은 질색하는 인간이었으니까.
그런 그가 트로피카나 필드 천장 가운데서 번지점프를 한다?
그만큼 자신있다는 말이었다.
-데이튼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그 리스크를 짊어지고라도 뽑으려는 단장은 존재할거고, 재머는 1루수라는 점을 빼고 생각하더라도 상당히 매력적인 타자잖아. 게다가 포터는 알다시피 팀의 코어 겸 차기 리더로 괜찮은 픽이고. 솔직히 단장들 눈이 삐지 않고서야 29번까지 저 놈들이 내려오겠어?
그리고 정확히 1시간 30분 뒤
“조니. 카를이 언제 뛰냐는데? 그거 영상으로 찍어서 구단 유튜브에 올려도 되냐고 물어보네.”
잠시 후 똥 씹은 듯한 로벨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전달되었다.
- Fuck you 카를.
< 46화 - 혼돈의 드래프트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