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43화 (43/268)

< 43화 - 윌슨 혹은 켈리(2) >

철컥!

끼익

정겨운. 그리고 익숙한 경첩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불이 꺼져있는 거실에서는 어렴풋하게 TV소리가 들려왔다.

- 비어만! 비어만! 호오오오오옴런! 비어만이 데뷔 두 번째 타석만에 빅리그 데뷔 첫 안타! 그리고 빅 리그 데뷔 첫 홈런을 동시에 달성합니다!

- 이야~ 너무 완벽하게 때려내서 어떻게 할 말이 없네요. 완벽합니다!

- 이게 레이스의 미래입니다!

- 앞으로 비어만이 얼마나 많은 홈런을 때려낼지는 모르겠지만, 오늘의 이 데뷔홈런을 그는 잊지 못할겁니다.

- 절대 잊지 못하겠죠!

오늘 경기를 다시 보여주고있는 TV. 소파에는 아내와 함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케이티가 함께 자고 있었다.

“으음······?”

인기척을 느꼈는지 아내가 부스스하게 눈을 뜨며 일어났다.

“렉스?”

“깼어? 더 자도 되는데.”

잠을 깬 아내의 이마에 입을 맞춘 윌슨은 옆에 있는 케이티에게도 같은 행동을 했다.

“아······ 빠?”

“그래 아빠왔다. 올라가서 자야지?”

윌슨은 웃으며 케이티를 들어올렸다.

“케이티 좀 올려놓고 올게. 으쌰! 가자!”

날이 갈수록 케이티는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한 팔로도 들었는데 이제는 한 팔로 들기에는 약간 무거워진 느낌이다.

‘애들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큰다더니······’

원정 한 번 갔다올때마다 쑥쑥 커있는 딸의 모습이 낯설때도 있었다. 계단을 올라서서 딸의 방으로 가는 와중 케이티가 졸린 목소리로 물었다.

“아빠.”

윌슨은 딸의 귀여운 목소리에 미소지었다.

“왜 우리 공주님?”

윌슨의 자상한 목소리와 미소는 이어진 케이티의 질문에 사라졌다.

“우리 이사가요?”

“갑자기 이사라니? 누가 그래?”

“애들이 그래요. 우리 곧 이사갈거라고. 아빠가 곧 다른 팀으로 갈거라던데······”

고작해야 7살 애들이다.

“대체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었대?”

“부모님한테 들었대요. 그래서 저한테 가서도 잘지내라고 하는 애들이 있더라고요······”

다른 의도는 없이 순수하게 작별을 고했을 것이다. 부디 어디든 가서 잘 지내라고. 그럼에도 케이티는 그게 속상했던 모양이다.

“아냐. 넌 어디 안가.”

“진짜요?”

“그래. 그러니 친구들한테도 말하고, 계속해서 잘 지내렴.”

케이티를 안심시키고는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이불을 목끝까지 끌어올려주었다.

“Good night sweet heart.”

불을 끄고 다시 내려가자 아내가 일어나 앉아있었다.

“렉스.”

아내가 차분한 목소리로 윌슨을 불렀다. 그녀도 뭔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다.

“트레이드 될 것 같아?”

역시나 그녀가 하는 이야기도 같다.

“오늘 단장님이랑 이야기했어.”

윌슨의 말에 그녀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어디로 보낸데?”

“아직 안정해졌어. 나한테 선택권을 주시더라고.”

다운은 윌슨에게 두 가지 선택권을 줬다.

“저는······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가족들의 의견이 가장 중요해서······”

“좋아. 그러면 두 가지 제안을 줄게. 2년 1300만 달러 거기에 팀 옵션 1년 800만 달러에 바이아웃 100만 달러.”

“다른 조건은요?”

“트레이드지. 무조건 원하는 구단으로 보내줄 수는 없지만, 최대한 네 의견을 반영해서 보내줄 수 있어.”

“······ 집에 가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오마르 복귀가 5일 뒤였나?”

오마르 캐스틴이 등 근육통으로 IL에 올라가 있었기에 현재는 투수 13명, 타자 13명에 포수 3명이라는 로스터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5일 뒤면 포수 하나는 무조건 로스터에서 사라져야한다.

“이왕이면 5일 안에 정해줬으면 좋겠어.”

“돈에게도 같은 조건으로 물어봤습니까?”

윌슨의 말에 다운이 냉정하게 선을 그었다.

“아니. 돈은 그런 선택권이 없지.”

FA자격이 있는 윌슨에게나 물어보는거지, 데뷔시즌을 보내고 있는 돈 켈리에게 그런 선택권이 있을리가.

“그럼 제 선택에 따라 돈의 거취도 결정되는거네요.”

“돈은 신경쓰지 마. 네가 어떤 선택을 해도 돈에게는 도움이 되는 선택이니까.”

이제 데뷔한 켈리에게 중요한 것은 출전기회다. 게다가 탬파, 혹은 플로리다 출신도 아니기에 레이스에서 성공해야한다는 생각도 없을 것이었다.

“그러니 5일간 너와 네 가족에 대한 생각만 딱 해서 말해줘. 그러면 내가 움직일테니.”

다운과 있었던 대화를 모두 말한 윌슨이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나야······ 여기 있는게 좋긴하지.”

윌슨은 강점은 한 방이 터져나올 수 있는 파워와 탄탄한 수비력이다. 하지만 데뷔 초반에는 그 파워조차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컨택이 안되는데 파워를 보여줄 수 있을리가. 그래서인지 주전급으로 애매하지는 벤치보다는 괜찮은 포수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비싸지도 않고 싸지도 않은 적당한 포수. 그 이미지 덕분에 준주전급 포수가 급하게 필요한 팀에 계속해서 불려다니곤 했다. 빅 리그 데뷔 후 11년 동안 레이스를 제외하고 가장 오래 있었던 팀이 파이어리츠로, 고작 1년 반을 머물렀을 뿐이었다.

그 말은 곧 그가 레이스에 오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옮겨다녀야했다는 말이다.

“케이티가 없을때나 어릴때는 상관없었지. 어차피 크면 기억도 못할테니까. 하지만 여기 와서 케이티는 초등학교도 들어가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어. 분명 여길 뜨면 많이 힘들어할거야.”

“알지. 그래서 고민이야.”

두 사람 사이에는 다시 말이 사라졌다. 침묵을 깬 건 윌슨이었다.

“집은 이대로 두고, 나만 팀에서 생활할까? 오프시즌에만 집에 오는거지. 어차피 반 년 정도만 기다리면 다시 FA자격을 얻어서 더 좋은 조건으로 다른 팀에 가는거지.”

하지만 이 의견은 곧바로 아내의 반대에 막혔다.

“지금도 1년의 반을 나가있잖아. 근데 따로 살면 레이스 원정때가 아니면 보지도 못해. 자기는 그렇게 살고싶어? 케이티가 크는 것도 못 보고?”

“그건······ 안되지.”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케이티의 옆에 지금도 자주 있어주지 못하는데, 이보다 더 함께할 수 없다?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그리고 FA자격을 얻으면 더 좋은 조건으로 다른 팀에 갈 수 있다고 했는데······”

“이건 정말이야.”

레이스가 아닌 그 어떤 팀을 가도 800만 달러 정도는 받을 자신이 있었다. 수비형 포수 치고는 파워도 좋고, 포스트시즌에서도 꽤 잘했던 기록이 있으니까.

“그러면 결국 이사를 가야한다는거잖아.”

“어?”

“그리고 다른 팀에 간다고해서 더 많이 받는 그 돈이 플로리다 주에서 받는 세금혜택보다 커?”

생각해보니 그도 그렇다. 800만 달러에서 반 떼가나 650만 달러에서 주 소득세를 면제받으나, 계산해보면 얼추 비슷한 금액이 나왔다.

“차라리 장기계약을 원한다고 말하면 어때? 2+1년은 너무 짧잖아.”

“팀에서는 나한테 절대로 장기계약은 안하려고 할거야.”

윌슨의 나이는 31살. 레이스에서는 포수로, 그리고 주전급으로 활용가치가 가장 높은 33살까지의 계약을 제안했다.

물론 그 뒤로 계속해서 폼을 유지한다면 34살 시즌에도 계약 연장을 하겠지만······

‘그때쯤이면 난 비어만에게 밀리고, 나보다 더 싼 새로운 백업포수가 들어오겠지.’

레이스에서는 분명히 팀옵션 행사를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얼마 전 은퇴한 야디에르 코르도바 정도의 포수가 아니라면 34살에 FA가 된 수비형 포수에게 800만 달러를, 그것도 레이스가 쓸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금액을 낮추고 계약기간을 늘리는 건 어때? 다른 메이저리거들보다는 적지만, 자기 수입이 적은 것도 아니고 탬파는 세금도 없잖아.”

윌슨은 꽤나 검소한 편이었다. 모은 돈도 꽤 있는데다가 메이저리그 연금혜택까지 받을 생각을 한다면 평생 먹고살 정도는 충분히 나왔다.

하지만 돈을 적게 받는다고해서 메이저리거로의 자존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미안하지만 그 부분에서는 양보할 수가 없어. 기간이 늘어나더라도 최소한 지금 수준보다는 더 받아야돼.”

연봉 1000만 달러 이상의 선수도 필요가 없다면 방출당하는게 이 바닥이다. 언제 방출당할지 아무도 보장해줄 수 없는 이 바닥에서 결국 남는 것은 돈이었다.

방출시킨다고해서 이미 주기로 계약한 연봉을 떼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물론 그대로 은퇴한다면 오히려 이득이 될수도 있다. 하지만 윌슨은 가능한 오래 선수생활을 하고 싶었다.

“자기가 생각하는 마지노 선은 얼만데?”

“적어도 500만 달러. 그래야 안전해.”

높은 연봉은 방출을 막아주는 방지책도 된다. 양키스나 다저스와 같은 부자구단은 상관없겠지만, 레이스처럼 돈이 없는 구단에서는 적어도 500만 달러 이상의 돈을 받아야 방출에 부담을 느낄테니까.

“그럼 500만 달러를 최저 연봉으로 잡고, 보장 기간을 늘려달라고 하면 안돼?”

아내의 말에 윌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에이전트한테 연락해서 협상하라고 해볼게.”

***

5일의 시간을 주었는데, 그 다음날 곧바로 윌슨이 에이전트와 함께 찾아왔다.

“제리 맥브룸입니다. 제리라고 부르세요.”

“다운 정입니다.”

인사를 나눈 다운은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제리. 피차 바쁜사람인거 알테니, 빠르게 처리하자고요.”

“드래프트를 앞둔 분의 시간을 너무 뺏을수는 없죠.”

바쁘기는 맥브룸 쪽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몇몇 드래프티들의 조언자 역할을 맡고 있었으니까.

“저희 측에서 원하는건 최소 4년의 보장계약입니다.”

“그게 힘들다는건 알고 있겠죠?”

“그래서 연봉에서 조정사항을 가지고 왔습니다. 첫 2년은 650만 달러. 그리고 이후 2년은 400만 달러. 어떻습니까?”

“썩 당기는 조건은 아니네요.”

“하지만 3년차에 800만 달러 옵션을 쓸 예정이었던걸 생각하면, 그걸 나눠서 2년에 투자한다고 생각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선택권이 저희에게 있는 것과 선택권이 아예 없는건 다른 이야기죠. 만약 저 조건을 원한다면 뒤의 2년에 모두 팀옵션을 걸어야할겁니다.”

단호한 다운의 말에 넘어올 생각이 없다는걸 확인한 맥브룸이 옆에 있는 윌슨에게 눈길을 주었다. 그러자 윌슨이 무언가를 허락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윌슨의 허락에 맥브룸이 다시 다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다운.”

“말해요 제리.”

“제 고객은 꽤나 탬파를 마음에 들어해요. 특히나 가족들이 그렇죠. 그래서 이곳에서 오래 있을 수 있고싶어하죠. 적어도 딸이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11살까지는 말이죠.”

“케이트가 지금 7살이었던가요?”

다운의 말에 윌슨과 맥브룸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걸 알고 계시네요?”

“우리 가족들 일은 다 알고 있죠.”

씨익 웃어준 다운이 두 사람에게 물었다.

“연봉을 낮출 생각은 없습니까?”

이번에는 맥브룸쪽에서 단호하게 나왔다.

“평균 500만 달러 이하는 힘듭니다.”

“방출 위험때문에 그렇겠죠?”

“네. 적어도 그 정도는 되어야지 쉽사리 방출하지 않을테니까요.”

다운은 단호한 그들의 대답을 예상하기라도 했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물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2년간 1800만 달러를 보장해드리죠. 대신 다음 2년간은 200만 달러를 드릴겁니다. 그리고 방출 시 일정 금액을 추가한다는 조항을 넣으면 저희 측에서 방출을 안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겠죠? 어디보자······ 한 1000만 달러를 추가 지급한다는 조항을 넣으면 어떨까요?”

그냥 1000만 달러도 아니고, 방출 시 추가 지급이다. 가난한 레이스에서 저 조항을 넣는다는것은, 절대로 방출하지 않겠다는 말과 동일했다.

게다가 전체 연봉 2000만 달러면, 마지노였던 500만 달러도 어느정도 충족시키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윌슨과 맥브룸은 한층 흥미로운 눈길을 보냈다.

“대신 저희 측에서 거는 조건은 두 가지입니다.”

“어떤 조건이죠?”

“출장기회가 줄어들더라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전력으로 비어만을 멘토링 해줄 것. 이것만 받아들이면 저 조건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겠습니다.”

< 43화 - 윌슨 혹은 켈리(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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