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11화 (42/268)

< 11화 - 네가 왜 여기있어? >

윈터미팅

윈터미팅은 스토브리그의 꽃이나 다름없는 행사였다. 30개 구단 프런트들과 에이전트들이 모여 4일간 한데 묵으며 조금 더 원활한 계약 논의와 상호 합의를 하는 무대였다.

여기까지는 구단 관계자들에게나 먹히는 이야기.

일반적인 메이저리그 팬들이 윈터미팅을 주목하는 이유는, 이 행사가 메이저리그계의 박람회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팬들에게 윈터미팅은 여러 야구 용품 업체들의 신제품 전시나 새롭게 시행될 메이저리그의 규칙들을 미리 체험해보고 후기를 남길수 있는 그런 행사였다.

그것 뿐이랴 메이저리그에서 일하길 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구단, 에이전시, 야구용품업체에 자신의 이력서를 넣을 수 있는 기회의 장이기도 했다.

이런 배경이 있다보니 윈터미팅이 열리게되면 자연스레 사람은 몰리고, 그 도시에는 상업적인 효과를 다양하게 가져다주곤 했다. 그러다보니 매 년 윈터미팅은 새로운 도시에서 열렸다.

2022년 윈터미팅을 개최하는 도시는 샌디에이고.

다운은 파트장들과 각 팀 당 10명 정도의 직원을 차출해 샌디에이고로 향했다.

“내년에는 탬파, 세인트피터스버그, 클리어워터, 브랜든에서도 개최 신청을 해보라고 해야겠네.”

함께 일한지 한 달이 지나서인지 미키에게 말하는 다운의 말이 한결 편해져있었다.

“이왕이면 우리 구장 근처에 있는 세인트피터스버그가 좋지 않을까요?”

“세인트피터스버그에 오면 있던 팬도 떨어져나갈걸?”

윈터미팅에 참가한 관계자들에게 주변 교통이 얼마나 안좋은지 직접 체험시켜주고 싶지는 않았다.

“트로피카나 필드 주변 치안에 대한 안좋은 이미지를 타파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크게 작용할지도 모르죠.”

“그래봤자 그 사람들이 구장에 찾아오는 일은 없을걸.”

애슬레틱스를 봐라. 주변 치안이 그렇게 안좋다고 소문났음에도, 팬들이 그렇게 없다고 앓는소리를 해대도 레이스보다 평균관중이 많다.

“교통이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 구장을 찾는 사람은 절대로, 결코 늘지 않을거야.”

“지하철만 있었어도······”

“세인트피터즈버그랑 탬파에서 합의를 안하는데 그게 되겠어?”

더 이야기하면 가슴만 아파진다.

“단장님 그럼 저희는 헤드쿼터 세팅하고 있겠습니다.”

“끝나면 알려줘.”

“네.”

아마 한 시간 내로 모든 세팅이 끝날 터. 다운은 비서인 리타를 불러 물었다.

“스케줄이 어떻게 되지?”

리타는 마치 준비했다는 듯이 다운의 스케줄을 줄줄 읊었다.

“우선 오늘은 별다른 스케줄이 없습니다. 저녁 6시에는 사무국이 주최하는 자선 파티가 있습니다.”

말이 좋아서 자선 파티지 팀들이 모여 떠들 수 있는 곳을 사무국에서 공식적으로 만들어 준 것에 불과했다.

“구단주님은 오늘 오후에나 잠깐 오신다고 하셨고. 커미셔너님이 잠깐 얼굴 좀 보자고 하셨다는데 어떻게 답할까요?”

“나중에 자선 파티에서 볼텐데 뭐하러 일찍 따로 만나? 그냥 파티에서나 보자고 그래.”

맨프레드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분명 만나서 별로 할 이야기도 없을 것이다. 고작해봐야 ‘다시 돌아온 걸 환영한다.’ 뭐 이런 이야기를 길게 늘여서 말하겠지.

“나는 잠깐 로비에 가있을게.”

“같이 이동하겠습니다.”

사무적인 그녀의 말투에 다운이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냥 쉬러가는거라서 잠시 혼자 있고싶네. 한 시간 뒤에 헤드쿼터로 갈테니 거기에 가 있어.”

“알겠습니다.”

리타를 떼놓은 다운은 로비로 발걸음을 옮겼다.

“휘유~”

4일간 이어지는 윈터미팅의 첫 날이다. 일반인들이 즐길만한 행사는 당연히 없었고, 구단 관계자들이 필요한 행사 또한 거의 없다시피했다.

그럼에도 로비는 일반인들로 미어터졌다.

“제 이력서입니다. 한 번만 검토를······”

“5분만 내주시면 제가 에이전트로 딱 알맞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구단 관계자, 혹은 에이전트들에게 어떻게든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수많은 사람들.

‘예전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네······’

여기 오는 사람들을 볼때면 항상 예전의 모습이 떠오른다. 다운도 에이전시에 입사할 때 처음 기회를 얻었던 곳이 바로 윈터미팅의 장이었다.

보통은 일반적으로 이력서를 넣어오는 사람이 더 낫지 않겠냐는 말을 했다. 하지만 의외로 현장에서는 이런 곳에서 구직하는 사람들을 좋아하곤 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너에게 기회를 준 이유? 별거 없어. 네 실력이 좋기 때문이지. 에이전트는 설득을 해야하는 직업이잖아? 고객을 설득하고, 구단을 설득하고, 어떻게든 납득을 시켜서 최대한의 이득을 뽑아내야하는게 바로 우리지. 그리고 너는 그런 사람을 설득하고 납득시켰어. 왜 내가 너와 5분이라는 시간동안 대화를 해야하는지 말이야. 그래서 너에게 기회를 주는거야. 누구도 아니고 날 납득시켰으니까.”

아무리 스펙이 좋은 사람이라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에이전시에 필요가 없었다. 반대로 스펙이 좋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말로 꼬시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기회를 줘도 된다.

다운도 그렇게 해서 이 업계에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곳에는 생각보다 재밌는 친구들도 많지.’

에이전시나 프런트에 입사하고 싶어하는 친구들만이 이곳에 있는건 아니었다.

“제가 선수 분석한 것을 봐주세요!”

선수를 보러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저렇게 스카우트가 되기 위해서 자신이 분석한 것들을 정리해서 선보이기도 한다.

‘조니 생각나네.’

양키스 단장 시절 다운이 윈터미팅 때 로비에서 영입했던 스카우트. 조니 로벨도 저런 식으로 다운에게 다가왔었다.

“분석을 무슨 이렇게 두껍게 했냐고요?”

로벨도 그 당시 거의 법전 두께의 분석자료를 들고와서 내밀었었다.

“세 줄 요약요? 한 사람을 평가하는데 고작 세 줄로 평가가 가능합니까 당신은?”

시간이 없는 단장이 짧게 요약해달라고 하자 그 당시의 로벨 역시 저렇게 화를 내곤 했다. 다운은 자신의 선수도 아닌 그저 분석한 선수를 위해 화를 내주는 그를 보고 흥미가 일어서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고.

“보여달라고요? 됐습니다! 이젠 내가 싫어요!”

로벨의 성격이 딱 저랬다. 속이 무슨 밴댕이 소갈딱지만하게 좁아가지고, 한 번 삔또가 상하면 풀어주기 위해서 미친듯이 노력해야하는 그런······

“조니······?”

머리가 너무 단정해서 옆모습만 봤을때는 알아보지 못했다. 근데 정면을 보니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저건 조니 로벨이다. 양키스에서 자신과 함께 일했던 바로 그 조니 로벨 말이다.

로벨도 다운을 알아봤는지 환하게 웃었다.

“다운?”

다운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로벨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조니 여기는 무슨 일이야? 너 양키스에 있는거 아니었어?”

“그건 내가 할 소린데? 야구계 아예 떴다면서?”

아무래도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다.

“내 방으로 가자.”

다운의 방은 넓고 조용했다. 둘만의 이야기를 하기에는 안성맞춤.

“대체 뭐야? 네가 왜 여기있는데? 그리고 그 깔끔한 머리는 대체 또 뭐고?”

로벨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하면 부시시하고 곱슬곱슬한 헤어스타일이었다. 프런트의 정책상 면도는 항상 깔끔하게 하고 다녔지만, 폭탄이라도 맞은듯이 부시시한 머리카락만큼은 어떻게 해결되지가 않던 부분이었다.

“양키스 관뒀어.”

“뭐라고?”

로벨은 뉴욕에서 나고 자란 뉴욕 토박이 양키스팬이었다. 그런만큼 양키스에 들어온 뒤로 어떤 일이 있어도 양키스를 나가지 않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그래서 다운은 당연히 그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었다. 어차피 연락해봤자 양키스를 나올 놈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게다가 다운의 최측근이었던 대런이 단장이 되었다. 다운이 알고 있는 대런이라면 로벨을 잘 구슬려서 이용해먹을 놈이지, 쳐내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새 파트장이랑 트러블이 있었어.”

다운이 있을 당시 로벨은 양키스 스카우트 총괄 팀장이었다. 지금 레이스의 미키 플래너건과 같은 직책.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안봐도 비디오였다.

“새 파트장이 미는 스카우트가 있었구나?”

로벨은 사내 정치나 줄을 대는 것에는 능력이 전혀 없었다. 그가 잘하는 것은 선수를 판단하는 것 뿐.

고개를 끄덕인 로벨이 말을 이었다.

“아래 위에서 압박을 해오는데 견딜수가 없더라. 난 그냥 선수를 분석하고 그 가능성을 판단하는 일이 좋았을 뿐인데, 왜 날 내버려두질 않지? 대런도 이해할 수가 없어. 그렇게 나랑 친했는데······”

“팀을 이끄는 것과 친분은 아무 상관이 없어.”

새로 대권을 잡은 대런은 양키스를 원활하게,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이끌어가기 위해서 고집이 센 로벨을 지키는 것 대신 다른 스카우트를 밀어주는 것을 선택한 모양이었다.

‘덕분에 나에게는 기회가 왔지만.’

로벨의 능력은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최종 결정은 자신이 내렸지만, 현재 양키스의 코어를 맡고 있는 여섯 명의 선수들 중에서 두 명은 로벨이 적극 추천해서 찾아낸 진주들이었다.

그런 스카우트가 풀렸다. 분명 자신에게는 기회다.

“고교 선수들 보러다녀야할 이 타이밍에 진짜 이게 뭐하는 짓인지······”

궁시렁대고있는 로벨에게 다운이 물었다.

“우리 팀 올래?”

다운의 제안에 로벨이 씨익 웃었다.

“그 말 언제 꺼내나 기다리고 있었잖아. 양키스에서 나오기까지 했는데, 마음도 안맞는 사람하고 일할수는 없지.”

“감안해야할 것들이 있는건 알지?"

하지만 그가 레이스에 오기 위해서는 이해해 줘야 할 부분이 있었다.

“우선 우리 팀에는 스카우트 팀장이 있어. 넌 그냥 그 밑의 스카우트로 들어가게 될거야.”

아무리 그의 능력이 좋다고는 하지만, 이미 미키 플래너건은 레이스 내에서도 인정받은 그런 팀장이다. 로벨이 끼어들 수도 없을 뿐더러, 그런 꼴을 두고볼 생각도 없었다.

“오히려 좋아. 팀장을 해보고 느낀건데, 난 누구 관리하고 그런거 못하겠더라고.”

하긴 로벨은 전형적인 너드 스타일이었다. 다운과 같이 말이 통하거나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는 말을 잘하는 편이지만, 아랫사람을 카리스마있게 이끌거나 관리하는 것에 강점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대신 내 스카우트에는 지역제한을 없애줘. 지역제한 때문에 보고싶은 선수도 못보는건 정말 싫으니까.”

“그건 해줄 수 있어.”

로벨에게 지역제한을 건다는건 그 능력에 족쇄를 채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또 있어?”

“팀장에서 일반 스카우트로 내려갔으니 연봉도 줄어들거야.”

“그것도 상관없어.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나 다름없으니까. 모아둔 돈도 충분하고. 거기다 플로리다는 세금도 싸잖아?”

“뉴욕에 비하면 없는거나 다름없지.”

다운의 말에 로벨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다시 잘 부탁한다고 다운, 아니 단장님.”

다운 역시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고생길에 합류한걸 환영한다.”

< 11화 - 네가 왜 여기있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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