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 윌슨 혹은 켈리 >
“슬슬 움직일까?”
이제 경기는 9회만을 남겨두고 있었고, 더럼 불스의 승리는 기정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비어만이 있었다.
오늘 경기에서 비어만은 5타수 3안타 1홈런 4타점의 엄청난 공격력을 선보였다. 수비 역시 진일보한 모습을 보이며 다운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오늘 경기의 MOM은 누가 보더라도 비어만.
“이왕이면 인터뷰 할때 가서 놀래켜주는게 좋지 않겠어?”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짓고 있는 다운을 보며 플래너건 부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간······”
“우리 단장님도 참······”
“재밌지 않아요? 놀라는 모습이 그대로 화면에도 송출될거고.”
“그건 조금 재밌겠네요.”
세 사람은 깜짝 놀랄 비어만의 모습을 상상하며 가드들이 지키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여기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입니다.”
굳은 표정으로 손을 들어 세 사람을 제지하던 가드는 이내 거스의 얼굴을 보더니 표정을 풀었다.
“거스였군요!”
“그래 마이클.”
“그러면 이분은······”
“단장님이고, 이쪽은 스카우트 파트장 미키.”
거스의 소개에 마이클이라는 남자가 알겠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아! 이분이 그렇게 자랑하던 따님······”
자랑이라는 말에 미키가 슉 달려들었다.
“자랑이라고요? 아버지가요?”
“네. 거스가 오실때마다 하는 일이 딱 두 가지가 있는데, 날카롭게 선수들을 보는 일이랑 딸 자랑을 하는······”
그렇게 안봤는데 거스도 약간 팔불출 기질이 있는 모양이다.
“크흠······ 빨리 들어가자고! 이러다 9회 끝나겠어!”
“큭큭!”
“호호!”
민망한지 등을 미는 거스에게 떠밀려 안쪽으로 들어갔다.
“단장님!”
어느새 소식을 듣고 왔는지 불스의 구단주인 헤르만이 라커룸으로 가는 길 중간에 난입했다.
“헉! 헉! 오셨으면 말을 헙! 하시지!”
달려와서는 힘겹게 숨을 고르는 헤르만은 곧 침울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샘을 데려가려고······”
헤르만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미 비어만에 대한 확신이 있는 이상 그를 이곳에 놔둘 수는 없었다.
“네. 그럴 예정입니다.”
“아쉽네요······”
그렇다고해서 다운이 비어만을 놔둘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헤르만은 아쉬운 표정을 지우고 현실적인 질문을 했다.
“그러면 포수 한 자리가 빌텐데 혹시 위에서 돈이 내려오나요?”
그도 돈 켈리가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을 것이다. 보통 확장로스터 이전에는 포수를 세 명까지는 쓰지 않는다.
알렉스 윌슨은 마이너 옵션이 없기에 내리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최종적으로는 켈리가 다시 트리플 A로 내려올 것이라는 계산이 선 것이다.
“글쎄요. 생각하고 있는게 있어서 확답은 드릴 수가 없네요. 일단은 더블 A에서 한 명 올리라고 연락 넣어놨으니까 쓰고 계시면 될 것 같네요.”
헤르만이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알 바 아니다.
“경기 끝났나보네요.”
라커룸 저 편에서부터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왔다.
“자 그럼 이제 가볼까요?”
라커룸을 지나 슬며시 더그아웃까지 나가자 그라운드 안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비어만이 눈에 들어왔다.
다운은 불스 더그아웃을 뒤로하고 인터뷰를 하고 있는 비어만의 등뒤를 향해 살금살금 걸어갔다.
그 와중에 리포터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녀는 다운과 눈이 마주쳤음에도 일체의 동요없이 인터뷰를 이어나갔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을 더 하고 싶은데요. 이제 곧 빅리그에 콜업될거라는 소문이 파다하시잖아요?”
“하하! 네 그렇죠.”
“언제쯤 올라가실 것 같나요?”
“음······ 아마 곧 콜업되지 않을까요? 하하!”
“분명 한 달 전에 인터뷰 했을때는 빨리 올라가고 싶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요?”
“빨리 올라가고는 싶지만 그게 제 마음대로 되는건 아니니까요. 여기서도 매일, 그리고 매 경기마다 배우는게 있거든요. 제가 할 일을 계속해서 꾸준히 하다보면 언젠가 단장님이 불러줄거라고 믿습니다.”
비어만의 확신이 찬 말에 리포터가 살풋이 웃었다.
“그게 오늘인 것 같네요.”
이유모를 리포터의 말에 비어만이 되물었다.
“네?”
그러자 리포터가 뒤를 가리켰다. 자연스레 비어만의 고개도 그를 따라 돌아갔다.
“뒤에 뭐가······”
그러다가 다운과 눈이 딱 마주쳤다.
“안녕 샘.”
“다, 단장님? 여긴 어쩐 일······”
“어쩐 일이긴. 짐 싸.”
***
비어만이 콜업된다는 소식은 곧바로 모든 야구 커뮤니티에 돌았다.
- 비어만이 온다던데?
- 더블 A랑 트리플 A까지 다 부수고 올라오는거래! 우리도 드디어 포수가 생기는건가?
그리고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이야기
- 뭔 소리야? 윌슨이 있잖아! 물론 올 시즌 타격은 망했지만 LOL
- 돈 켈리 무시해?
- 잠깐. 그러면 우리 포수 세 명 쓰는거야? 혹시 비어만 다른 포지션 연습했던거 있어?
- 기록상으로는 없어. 돈이나 알렉스도 포수를 제외하고는 본 적이 없는데······?
- 그럼 어떻게 되는거지?
- 어떻게 되긴. 누군가는 트레이드되는거지.
바로 트레이드 이야기다.
- 윌슨이 나가지 않을까?
- 무슨 소리야. 윌슨은 검증된 선수잖아. 윌슨을 잡고, 비어만은 서브로 키우고, 켈리를 내보내야지.
- 나도 윗 의견에 동의해. 켈리는 지금 모습이 최고점일 가능성도 있어. 비쌀때 팔아먹어야지.
- 이런 생각은 하기 미안하지만 그러다가 비어만이 부상이라도 당해서 더 이상 포수를 할 수 없게되면? 켈리는 지키는게 낫지 않을까?
- 켈리보다는 1년도 안남은 윌슨을 보내야지. 윌슨정도면 꽤 괜찮은 대가를 받아올수도 있을걸?
두 편으로 갈라져서 싸우는 팬들처럼 다운의 머리도 두 편으로 갈라져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알렉스냐 돈이냐······”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1년도 남지 않은 윌슨을 남기는 것 보다는 켈리를 남기는 것이 맞다.
윌슨은 올 시즌이 끝나면 FA다. 어차피 FA가 되면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떠나보낼 가능성이 농후했다.
퀄리파잉 오퍼를 제안하면서 보상픽을 얻을 수도 있지만, 윌슨이 1800만 달러에 이르는 연봉을 받을만한 선수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 방법은 패스.
그렇다면 남은 건 연장계약인데, 중장기적으로 비어만을 메인으로 키울 예정인 레이스의 계획상, 윌슨이 오래 남아있으면 비어만의 출전을 보장해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또 돈을 잡고 알렉스를 보내기는 좀 마음에 걸린단 말이지······”
켈리가 잘하고는 있지만, 올 시즌이 데뷔 시즌이다. 비어만이 데뷔하게되면 그 역시 데뷔 시즌을 보내게 될 예정.
라인업에 있는 두 포수를 모두 루키시즌을 보내는 선수로 구성한다는건 미친 짓이다. 그것도 리빌딩이 아니라 우승경쟁까지 하는 팀에서 말이다.
그런 점에서 윌슨이 켈리에게 한 발 앞선다. 그는 이미 레이스 소속으로도, 다른 팀 소속으로도 포스트시즌에 나가본 적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어떤 상황에서든지 안정적인 수비를 할것이라는 믿음이 있고, 계산이 서는 선수였다.
하지만 켈리는 그런 계산이 서질 않는다.
물론 중재안이 없는건 아니다.
- 에잇 멍청이들아! 그냥 남은 1년간 켈리는 트리플 A에서 쓰고, 윌슨이랑 비어만을 메인으로 쓰면 되잖아! 어차피 켈리는 마이너 옵션도 있는걸!
이 똑똑한 팬이 말한것처럼 켈리를 내리고, 윌슨과 비어만을 쓰는 방법 역시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다운에게 있어서 베스트는 아니었다.
바로 켈리의 가치 때문이었다. 다운은 탬파로 돌아오는 기내에서 거스, 미키와 수없는 토론을 나누었다.
“돈이 더 성장할 수 있을까요?”
“지금 보여주는 모습이 돈이 최대치로 성장한 모습일겁니다. 돈은 절대 파워가 좋은 포수는 아니죠. 최근 기록에서도 보여지듯이 선구안이 좋은것도 아닙니다. 지금은 그저 배트를 내면 공이 와서 맞아주는 것 뿐이죠. 갭파워 역시 그렇게 뛰어나지 않죠.”
“올 시즌에는 2루타 꽤 쳤잖아요?”
“코스가 좋았던거지. 그리고 포수치고는 빠른 발도 한 몫 했을거고. 마이너 기록 상에서 보면 절대로 갭 파워가 좋았던 선수는 아니야.”
“커봤자 절대 저 정도까지는 못 큰다?”
“내가 생각했을때 2할 중후반 정도, 잘 풀리는 시즌은 3할을 찍는 정도가 돈 켈리의 최대치가 될거야. 물론 그보다 못 클수도 있고. 확실한건 파워는 절대 못 큰다는거지. 스윙 자체가 절대 홈런을 위한 스윙이 아니야.”
“샘과 비교한다면요?”
“샘이 비행기라면 돈은 행글라이더라고 할 수 있지. 바람을 잘 타면 다시 이 높이까지 올 수도 있겠지. 만약 그게 아니라면 적당한 높이에서 머무는게 최선일거야.”
다운이 보기에도 지금 켈리의 가치에는 거품이 상당수 끼어있었다. 그런만큼 레이스의 입장에서는 그를 지금 해치우는 것이 좋은 선택일수도 있었다.
켈리의 폼이 절정에 올라있는 지금 당장이야 모르지만, 이후에는 어찌됐건 그의 가치는 내려갈테니까.
톡 톡 톡!
습관처럼 팔걸이를 두드리던 다운의 손가락이 멈췄다. 그리고 리타를 불렀다.
“알렉스 윌슨 구장에 나왔죠?”
“네. 한 시간 반 정도 전에 구장에 들어왔습니다.”
“단장실로 호출해주세요.”
잠시 후, 리타의 안내를 받은 윌슨이 단장실로 들어왔다.
“아, 알렉스 어서와.”
“아, 네······”
윌슨 역시 귀가 달려있었다. 그러다보니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는게 아니었다.
그리고 현 상황상 트레이드 카드로 가장 알맞은 건 자신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트레이드입니까?”
덤덤한 척 하려는 그의 말에 다운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아직은 정해진 것이 없다는 다운의 말은 곧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렇다면 곧 트레이드 될 수도 있다는거네요.”
“그럴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전에 확실히 해야할 것이 있어서 이렇게 부른거야. 난 네 마음을 확실히 듣고싶거든.”
“제 마음이라면······”
“우리 구단에 남고 싶은 마음은 있어?”
잔류하고픈 마음이라는게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적당히 금액만 맞춰주신다면야 남고싶은 마음이 없진 않죠.”
지금 그가 받는 연봉은 고작해봐야 400만 달러. 일반적인 수비형 포수보다는 많이 받지만, 공격형 포수가 받는 만큼은 아니다.
큰 욕심을 부리지만 않는다면 다운은 500만 달러까지도 투자할 요량이 있었다.
“기간은?”
그 다음으로 중요한게 바로 계약기간이었다. 500만 달러로 2년 정도면 큰 부담까지는 아니다. 포스트시즌에서의 활용도도 뛰어난 편이라고 할 수 있었고, 비어만에게 뭔가를 가르쳐줄 멘토로도 충분한 역할을 해줄테니까.
하지만 2년 이상이 되어버린다면 비어만의 앞길을 막을 가능성이 컸다.
“에이전트를 데려왔어야 겠는데요?”
“오늘은 계약에 대한 네 마음만 알아보는거니까.”
“제 계약 가능성에 따라 보낼 사람이 달라지겠네요.”
“아마 그렇게 되겠지.”
다운의 말에 다시 한 번 생각을 정리한 윌슨이 입을 열었다.
“저는······”
< 42화 - 윌슨 혹은 켈리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