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고래 싸움에 들어가는 아기상어 >
드래프티들을 확인하다보니 5월 한 달은 그야말로 쏜살같이 지나갔다.
“이제 열흘밖에 안남았네요.”
올 시즌 드래프트는 6월 14일에 예정되어 있었다.
“휴······ 원래는 이것보다는 더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
최근 2년 동안 펜데믹의 여파로 인해서 드래프트가 한 달 미뤄졌었다. 그래서 2년간 한 달의 여유를 더 가지고 드래프티들을 분석했었다. 그래서인지 갑작스럽게 한 달 당겨진 지금이 어색하면서도 촉박한 느낌이 들었나보다.
한숨을 쉬는 미키를 보며 거스가 낄낄 웃었다.
“작년에는 이 빌어먹을 사태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더니. 끝나니까 마음이 바뀐거냐?”
“고작 한 달 앞당겨졌다고 이렇게 힘들줄은 몰랐죠.”
투덜대는 미키를 보며 다운과 거스가 웃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잖냐.”
“그래도 간만에 아마추어 말고 다른 경기 보러오니까 좋지 않아요?”
다운을 비롯해 거스와 미키까지. 세 사람은 간만에 고교나 대학 야구가 아닌 프로 경기를 보기 위해서 왔다.
바로 며칠 뒤면 메이저리그에 데뷔를 할 예정인 사무엘 비어만의 경기를 직접 보기 위해서 말이다.
“티켓은?”
“여기요.”
아까 사온 티켓 세 장을 미키가 꺼내 흔들었다.
“근데 왜 티켓을 사자고 한거에요?”
이 셋의 직책은 단장, 팜 디렉터, 스카우트 팀장이다. 원정도 아니고 홈 경기의 자리는 그냥 슥 들어가서 명함만 내밀어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다운은 그러는 대신에 티켓을 구매하는걸 선택했다.
“뭐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건 소문을 흘리고 싶지 않아서지.”
야구계는 좁고, 마이너리그 구단은 더더욱 좁다.
아무리 다운이 조용해줄 것을 부탁한다고 하더라도 단장이 팜 디렉터, 스카우트 팀장과 함께 경기를 방문했다는 소식은 다운을 본 직원, 코칭스태프, 선수들을 통해 금세 퍼져나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비어만은 평소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지도, 혹은 못할지도 몰랐다.
“그리고 마이너 구단도 돈은 벌어야지. 이제 곧 최고의 돈벌이 수단을 빼앗길텐데.”
다운이 비어만의 저지를 입고 밀려들어오는 관중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지도 하나씩 입을까? 저렇게 파는 것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을텐데.”
오늘 어떤 경기를 펼칠지는 모르겠지만, 비어만은 늦어도 7월에는 메이저리그 경기장을 밟을 예정이었다.
주전 포수인 알렉스 윌슨의 계약이 올해까지기에, 적어도 세 달 정도의 적응기간은 비어만에게 주고 싶었다.
“유니폼 사러갑시다! 제가 쏠게요!”
잠시 후 비어만의 이름이 박힌 더럼 불스 유니폼을 입은 세 사람이 경기장에 들어섰다.
세 사람이 예약한 좌석은 그 경기장에서 가장 싼 외야석이었다. 이곳을 택한 이유는 포수를 잘 보기 위해서였다.
당장에 포수 뒷 좌석도 구매할 수 있긴 했지만, 그 자리에 앉아봤자 심판과 타자가 시야를 가려서 비어만을 관측하기에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멀긴 하지만 망원경으로 라도 비어만을 깔끔하게 관찰할 수 있는 외야석을 택한 것이었다.
“사람이 많네요. 그것도 사무엘 이름이 박힌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요.”
“우리 생각보다 그렇게 사람이 적지는 않네.”
마이너리그 구장의 좌석이 꽉 차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격이 비슷하면서도 선수들을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내야석을 선호하곤 했다.
어차피 엄청난 가격차이가 있는것도 아니다. 외야석은 39달러고 내야석은 50달러 내외. 고작해봐야 10달러 차이인데, 그걸로 선수들을 조금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다면 내야석이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그러다보니 외야석을 택하는 관중들은 홈런볼을 노리거나 정말 10달러도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혹은 외야 잔디석에 가족 단위로 피크닉처럼 앉아있는 사람들 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내야석은 거의 만석에 가까웠고, 외야석 역시 절반 가량은 차있었다.
그들 중에서도 절대다수는 비어만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확실히 스타파워가 있는 친구기는 하네요. 트리플 A에 올라온지 한 달 반 만에 더럼 팬들을 이 정도까지 휘어잡다니.”
“팬 서비스도 좋고, 실력도 좋으니까.”
다운은 패드를 들어 비어만의 올 시즌 성적을 확인했다.
개막하자마자 더블 A로 내려간 비어만은 그곳을 완전히 부숴버렸다.
더블 A
15경기 20안타 5홈런 6볼넷
0.435/0.565/0.826
결국 여유롭게 한 달 정도를 보고 있었던 다운은 그를 트리플 A로 올릴 수 밖에는 없었다.
2주 만에 첫 발을 딛게 된 트리플 A. 그곳 역시 비어만에게는 좁디좁은 곳에 불과했다.
트리플 A
42경기 43안타 12홈런 13볼넷
0.355/0.463/0.711
한 달 반에 불과한 짧은 시간동안 비어만은 트리플 A조차도 초토화하면서 더럼 불스 팬들을 휘어잡았다. 오죽하면 얼마전 불스 구단주가 전화와서는
[단장님. 샘 언제 콜업하실 예정이죠?]
“아마 6월에 하지 않을까요?”
[두 달, 아니 한 달! 딱 한 달만 더 있게 해주면 안되겠습니까? 그게 아니면 열흘만이라도······]
라며 제발 비어만을 조금만 더 쓰게 해달라고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질 정도였다.
- 더럼 불스의 넘버 2! 캐쳐! 사무에에에엘 비어마아아아안!
장내 아나운서의 우렁찬 목소리가 비어만의 이름을 불러내자 구장이 떠나가는 듯 관중들이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와아아아아아아!
이 정도 함성이면 트로피카나 필드 관중들의 함성보다 더 크지 않을까?
“쯧!”
“흠······”
플래너건 부녀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마냥 좋은 얼굴만은 아니었다.
“이 인기가 그대로 탬파로 올 수 있을까?”
“그렇게는 안되겠죠. 거리라도 가까우면 모를까······”
더럼 불스가 있는 더럼은 노스 캐롤라이나 주에 있다. 비행기를 타도 2시간 정도 걸리는 위치에 있다보니 이곳에 있는 팬들을 끌어오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비어만이 조금이라도 팬들을 끌어와줬으면 좋겠는데.”
“그러려면 홍보를 해야죠.”
“그렇지 않아도 브래드가 홍보계획을 이미 다 세워뒀더라고. 이번에 보고 온 다음에 가장 좋은 플랜으로 골라달라고 하더라.”
NBA에서 일하다와서 그런지 심슨은 무슨 일을 미리 해놔야하는지, 또 구단에게 필요한 일은 어떤 것인지를 확실히 알고 있었다.
- 플레이 볼!
먼 곳에서 심판의 콜이 들렸다. 그리고 비어만이 자리에 앉았다.
첫 공이 그의 미트에 틀어박히는 순간
“호오······”
“오······”
“흠······”
망원경으로 홈플레이트를 보고있던 다운과 미키, 거스의 입에서 감탄사가 나왔다.
“프레이밍이 더 좋아졌네.”
물론 지금 공은 확실히 스트라이크긴 하다. 하지만 그의 손목 스냅이나 미트질만 보더라도 그의 모습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 있었다.
“사무엘이 알렉스에 비해 아쉬운 감이 있었지 않아요? 특히나 프레이밍이 상당히 기계적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알렉스에게 프레이밍하는 노하우를 조금 배웠다더군.”
거스의 말에 다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서 괜찮아졌나보네요.”
“그리고 생각보다 블로킹도 별로였거든? 특히나 우리 투수들이 변화각이 큰 변화구를 자주 던지잖아?”
레이스는 투수들을 키우는 기조가 약간 ‘장점은 최대한 증폭시키자.’라는 식이었다. 그래서인지 각자가 가지고 있는 무기를 최대한 개발하곤 했다. 그러다보니 레이스의 투수들은 다른 구단에서 쉽사리 볼 수 없는 각이 큰 변화구를 자주 구사하곤 했다.
그러다보니 스프링 트레이닝 당시 비어만이 가장 힘들다고 말했던 것 역시 블로킹이었다. 보는 입장에서는 모르겠지만, 정말 많이 신경쓰고 있다는 말을 했었다.
“예전에는 받기도 전에 막으려는 듯한 몸짓이 있긴했죠.”
“역시! 다운도 봤나보군. 맞아. 예전에는 몸이 처음부터 기울어져 있었지. 예상치도 못한 변화구가 오면 제대로 대응할 수가 없으니 미리 준비를 했던거야. 그런데 이제는 여유가 묻어나와. 왼 팔은 적당히 긴장해서 힘이 빠져있고, 다리는 어디로든 출발할 준비가 되어있어.”
팜 디렉터로 매일같이 비어만의 플레이를 체크해와서 흐뭇함이 가득 묻어나오는 거스의 말.
“저 정도면 켈리 정도는 되겠네요.”
“이번 시즌 켈리보다는 확실히 위라고 할 수 있지.”
그의 말에 다운이 실소를 터트렸다.
“하하······ 이거 참······”
비어만이 잘하면 좋다. 그는 레이스의 안방을 오래토록 책임질 수 있는 스타가 되어줄거다. 그렇게 믿고있기에 올 시즌부터 그에게 메이저리그 데뷔라는 큰 선물을 안겨주기로 한 것이고.
단,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시기가 좋지 않네요······”
바로 갭 플레이어이자 벤치포수로 올 시즌 잠깐 올렸던 돈 켈리가 만개해버린 것이다.
“돈이 요새 너무 잘하고 있지.”
“알렉스도 밀어낼 정도니까요.”
윌슨이 못하는건 아니다.
지난 시즌도 AL 포수부문 골드글러브를 수상하며 메이저리그 최고의 수비형 포수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선수답게 그의 견고한 수비는 언제나 레이스 투수들을 편안하게 만들어줬다. 문제는 그의 수비력만큼 공격력이 따라오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선 타율이 너무 낮다. 47경기에 출장해서 고작해야 안타 27개를 친게 전부다.
포수의 공격력은 버리는게 맞는 선택이라고는 하지만, 0.207의 타율은 주전급 포수에게 바라는 타율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를 쉽사리 버릴 수 없는 건 그가 가지고 있는 한 방 때문이었다.
47경기 25안타 13홈런 13볼넷
0.207/0.314/0.562
안타 27개를 기록하는 동안 때린 홈런이 13개다. 안타 중 절반 이상을 펜스 밖으로 넘겨버린 그를 무시할 수 있는 투수는 없을 것이다.
수비만 본다면 어느정도 대안은 있지만, 공격적인 측면에서 그를 대체할 수 있는 포수는 없다. 그렇기에 캐시도, 레이스도 계속해서 윌슨을 써온 것이었다.
하지만 올 시즌 그 대안이 생겨버렸다.
돈 켈리
우투좌타의 24살 포수.
24살인 올 시즌까지 마이너에서 총 7년을 수비력만으로 버티면서 아득바득 트리플 A까지 올라온게 바로 켈리다. 그런만큼 그의 수비력은 윌슨에게 크게 뒤쳐지지 않았다.
오히려 마이너시절 그와 함께한 리키 더지와 같은 투수들이 그가 마스크를 쓰는걸 선호하기도 했다.
문제는 그의 타격이 폭발했다는 것이다.
15경기 21안타 2홈런 1볼넷
0.404/0.423/0.673
야구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교체출전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만약 켈리가 규정타석만 채웠다면, 지금 아메리칸리그 타율 전체 1위를 달리고 있을 선수는 양키스의 슈퍼스타 유격수 앤드류 켈리가 아니라 돈 켈리가 될 뻔 했다.
수비력은 비슷한데, 한 쪽의 출루능력이 월등히 좋다.
아무리 윌슨에게 한 방이 있다지만, 출루율이 득점기회가 되는 요즘 야구에서 켈리의 출장이 늘어나는건 당연한 흐름이었다.
남은 기간을 열심히 해서 FA시장에서 좋은 계약을 따와야하는 윌슨과,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하고 있는 돈 켈리.
그리고 그 사이로 끼어들어가야하는 사무엘 비어만까지.
“차라리 조금 더 늦게 올리면 어때? 9월 확장로스터에서 올리면······”
“상황이 변했지만, 했던 약속은 지켜야죠. 특히나 그게 선수와 했던 약속이라면요.”
사기적인 플로리다의 세율빼고는 내세울게 없는 레이스에서 신뢰조차 주지 못해서는 안된다. 그래서는 다운이 꿈꾸는 새로운 왕조의 건설은 현실이 될 수 없었다.
톡톡톡!
다운의 검지가 규칙적으로 팔걸이를 두드렸다.
“어떡한다······”
< 41화 - 고래 싸움에 들어가는 아기상어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