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우리 가족 일이잖아 >
다음날은 휴식일이다. 하지만 다운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 트렁크와 뒷좌석 가득 짐을 싣고 운전석에 올라서 네비를 켰다.
“더지네 집이 어디더라······?”
휴식일인 오늘, 다운이 향하는 곳은 바로 선수들의 집이었다.
그 중에서도 오늘 다운이 향하는 곳은 올 시즌 1선발을 맡고 있는 리키 더지의 집이다.
다운은 시간이 날 때마다 선수들을, 정확히는 그들의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집을 들리곤 했다. 이는 다운이 생각하는 단장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자신에게, 그리고 가족들에게 잘해주고 신경 써주는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특히나 1년의 절반을 타지에서 보내야하는 메이저리거의 특성상, 가족에게는 신경을 잘 쓸수가 없다. 그런 부분을 구단을 운영하는 단장이 신경써주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점수를 미리 따놓으려고 하는 것이다.
‘더지가 우리를 좋게 생각해서 추후에 연장계약할 때 조금 우리 생각을 해주면 좋고, 그게 아니어도 좋고!’
단순히 연장계약, 혹은 연봉협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었다. 단장이 이렇게 선수와 그의 가족들을 신경쓴다는 말이 선수들 사이에서 돌게되면 더지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 사이에서도
“우리 구단은 가족들까지도 엄청 세세하게 잘 챙겨줘!”
라는 이야기가 돌게될 터.
레이스 같이 돈 없고, 팬도 없는 비인기 구단은 선수들이 기피하기 마련.
좁아터진 야구 바닥에서 ‘선수들이 가고싶지 않아하는 구단’으로 낙인찍히는 것을 피하는 것을 넘어서서 오고싶어하는 구단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케어는 필수불가결한 일이었다.
“더지네 집이······ 아! 여기있네.”
빌어먹게도 더지의 집은 세인트피터스버그. 또 그 주차장과 같은 다리를 건너야한다.
“좋게 생각하자. 어차피 오후에 건너야 하니까······”
출퇴근시간이 아닌 오후에는 주차장이 아니었겠다는 사실에 속이 쓰리긴 했다만 어쩌겠는가.
덜컹덜컹~
다운의 차고가 열리자
위이이잉~
아침부터 일어나 잔디를 깎고 있던 글라이드가 잔디깎이를 멈추고는 담장 너머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오늘 쉬는 날이라고 하지 않았어?”
“직원들은 쉬죠. 저는 일해야죠.”
글라이드는 눈살을 찌푸리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쉬어야 할 때는 쉬어야 돼.”
“이게 저한테는 쉬는거에요.”
피식 웃어준 다운이 문을 가리켰다.
“오늘 시간 있으면 이거 좀 부탁해요. 열쇠는 가지고 계시죠?”
글라이드와 다운은 서로의 집에 서로의 열쇠가 있었다.
“안타깝게 아직은 안 잃어버리고 금고 속에 잘 있지.”
“앞으로도 쭈욱 금고에 잘 있었으면 좋겠네요. 여튼 부탁 좀 할게요.”
“그래 잘 다녀와라.”
위잉거리는 잔디깎이 소리를 뒤로하고 악셀을 밟았다. 오늘도 여전히 출근길은 지옥 그 자체였다. 분명 8시에 집을 나왔는데 두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도 다리에 걸쳐있었다.
지옥과도 같은 다리가 거의 끝나갈때쯤 다운은 더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대기음이 몇 번 흘러가고 나서 또렷한 더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장님?]
이른 아침부터 걸려온 단장의 전화에 더지가 약간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 아침부터······ 무슨 일 있으신가요?]
불안감이 살짝 섞인 목소리다. 혹시나 다른 구단에 트레이드 되지는 않았을지를 걱정하는 듯한 느낌이 팍팍 느껴졌다.
“아냐 별 일 없어. 설마 트레이드라고 생각한건 아니지?”
[아하하······]
시크하기로 유명한 더지가 저렇게 어색한 웃음을 날리다니!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앤드류 켈리가 아닌 이상 지금 널 보낼 이유가 없지. 그런 걱정은 하지도 마.”
다운은 웃으며 더지를 안심시켜주었다.
“근데 오늘 휴식일이잖아. 왜 이렇게 목소리가 쌩쌩해? 난 졸린 목소리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구장에 가서 훈련하려고 집 나가려고 하고 있었어요.]
“그래? 가족분들은 다 집에 계시고?”
[네.]
다시 안정을 찾았는지 더지의 목소리에서 다시 쿨내가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어진 다운의 말에 다시 그의 목소리에 평온이 사라졌다.
“그럼 한 코너만 옆에 잠깐 멈춰있어봐. 한 10분 정도 뒤에 도착할거거든?”
[네? 여기로 오신다고요?]
“오늘 너희 아버지 생신이잖아.”
장담컨대 100% 몰랐다에 100달러 걸 수 있다.
‘나도 모르는데.’
아들놈들은 다 똑같다.
비서가 모든 스케줄들을 관리해주고, 사람별로 메모까지 해놓는 꼼꼼한 성격의 다운조차도 아버지의 생신이 달력에 표기되어있음에도 자주 까먹고 넘기곤 했었다.
멀리 떨어져있기도 하고, ‘가족이니까 이해해주겠지. 난 바쁘잖아?’라는 생각에 뒷전으로 미루다보니 계속해서 까먹게 되었던 것이었다.
만약 어머니께서
“넌 대체 언제까지 우리가 살아있을거라고 생각하니? 자주 보지도 못하는데 적어도 축하는 해줘야 하는거 아니니? 우리가 가족이긴 하니?”
라며 일갈하지 않으셨다면 아직도 똑같은 불효를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다시 더지의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다운도 그런데 시크하고 쿨내가 진동하기로 유명한 더지는 어떻겠나.
[어······ 그랬나요?]
예상대로 더지는 몰랐다는 눈치다. 어벙하게 물어오는 그의 표정이 궁금할정도다.
[어떤지 오늘 저녁은 집에서 먹자더니······]
“일단 내가 가고 있으니까 잠시만 기다려봐.”
10분 뒤 다운은 더지와 집에서 한 블럭 떨어진 곳에서 접선했다.
“리키. 이리로 와봐.”
다운은 트렁크에서 왜건을 꺼냈다. 그리고 그에게 하나씩 깔끔하게 포장된 상자를 넘기기 시작했다.
“이건······”
“너희 아버지가 요즘 낚시에 관심이 많으시다고 하시더라고요. 특히나 바다낚시.”
“그, 그러셨어요?”
“그래서 낚싯대를 넣어놨어. 별로 비싼건 아니고 초심자들이 쓸만한 것들을 좀 넣어놨어. 세스 알지? 그 친구가 클러비 중에서는 바다낚시를 제일 잘한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그 친구 추천에 따라 샀어. 그러니 너도 그렇게 설명하면 될거야.”
낚싯대가 들어있는 포장박스를 넘긴 다운이 또 다른 박스를 꺼냈다.
“이건 포장이 안되어 있네요?”
“아버지 선물은 하나로 충분하잖아? 이건 너희 할머니께서 요새 부쩍 무릎이 안좋다고해서 준비한 영양제. 혹시나 네가 모르고 먹을수도 있어서, 너도 먹어도 되는 영양제로 준비했어. 그리고 이건 요새 너희 어머니께서 드립커피에 관심이 크시다고 해서······”
도라에몽의 주머니처럼 쏟아져나오는 선물들을 모두 왜건에 넣은 더지가 멍한 표정으로 다운을 쳐다봤다.
“아니 그걸 어떻게 다 알아요?”
다운이 부임한 이후로 서너번 정도 집에 들렀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들렀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다운은 더지의 가족에 관한 일들을 모두 알고 있었다.
이에 다운이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우리 가족 일인데 당연히 다 알지.”
별 것 아니라는 듯 말하는 가족이라는 말에 더지의 가슴이 울렸다.
‘그래서 우리를 챙기는건가?’
지난 단장이었던 네안더는 분명 좋은 단장이었다. 하지만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는 없었다. 그가 선수들을 챙기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더지는 그에게서 뭔가를 받아본 기억이 없었다.
그가 직접 챙기는 선수들은 팀과의 장기계약을 맺은 선수, 혹은 팀에 꼭 필요한 선수에 그쳤다. 그마저도 가족들을 이렇게 챙긴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선수들의 가족들을 챙기는건 구단의 일이 아니라 에이전시의 일에 가까웠으니까. 그런데 다운은 그런 일은 손수 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단장님이 우리 선수 가족들 생일이라던가 필요한거 챙겨주시고 있다는 이야기는 계속 있었지?’
네안더와는 다르게 다운은 팀원이 팀 내에서 어떤 활약을 하고 있는지, 어떤 역할을 가지고 있는지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벤치 멤버인 루카스 페리시치도, 내년이면 계약해지가 확실시되는 알렉스 윌슨도 그에게서 선물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가족들이 필요한 지원을 쏙쏙 해주는것에 너무 만족한다는 이야기는 덤이었다.
“올해는 진짜 마음 편하게 야구하고 있는 것 같아.”
“나도. 보통 집에 가면 그래도 와이프가 막 이것저것 불만을 이야기해댔거든. 그런데 요새는 그런 불만이 없으니까 살 것 같아.”
그때는 왜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막상 겪어보고나니. 왜 선수들 사이에서 저런 이야기가 절로 나오는지를 알 것만 같았다.
“헤이 리키!”
“네?”
“듣고 있어? 제대로 들어야지 네가 준비한 선물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 아냐.”
“그냥 단장님이 줬다고 하면······”
“인마! 내가 챙겨준 선물이랑 아들이, 손자가 준비한 선물이랑 같아? 오늘 하루는 훈련 쉬고 이거 끌고가서 가족들이랑 좋은 시간 보내. 알겠지? 오늘 넌 훈련장 사용 금지야.”
“다, 단장님 그래도 훈련은······”
“쓰읍! 오늘 하루 훈련보다 네가 집에서 가족들이랑 보내는 시간이 더 가치있어. 야구는 길어야 20년 네 곁에 있을 뿐이지만, 가족들은 평생 너와 함께할 사람들이니까. 그러니 오늘만큼은 내 말대로 해!”
다운은 다급하게 말을 하는 더지의 말을 끊고는 그의 손에 선물이 가득 들어있는 왜건의 손잡이를 넘겨주었다.
그런 뒤 운전석에 빠르게 올라탄 다운은 창문을 내리고 소리쳤다.
“좋은 하루 보내고! 내일 보자!”
그 말과 함께 사라졌다.
아니.
사라지려고 했다.
다운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있다면 다운의 차가 출발한 방향은 트로피카나 필드 방향이 아니라, 더지의 집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점이었다.
유턴을 해서 돌아온 다운은 길을 건너온 더지와 다시 한 번 마주칠 수 밖에 없었다.
“하하······ 또 보네? 진짜 내일 보자!”
실없는 웃음을 지은 다운이 다시 인사를 하고는 떠나갔다.
트로피카나 필드로 향하는 도로를 타고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다른 구단도 이렇게 신경을 써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에이전트가 말하길
“구단 놈들은 다들 사기꾼이야! 구두쇠에 자린고비지! 돈만 생각하는 냉혈한 같은 놈들이라고!”
하지만 다운은 그의 설명과는 달랐다.
만약 다운이 변하지 않는다면 다운과 같은 구단에서 지내는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이내 더지는 고개를 흔들었다.
“연봉조정연차도 아직 아닌데, 벌써부터 생각해봐서 뭐하냐.”
일단은 연봉조정부터, 그 이전에 이번 시즌부터 잘하는게 먼저다. 연장에 대한 문제는 그때 가서 생각해봐도 늦지 않다.
지금은 그저 진심을 다해 고마워하면된다.
왜건을 잠시 손에서 놓은 더지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더지는 엄지를 움직여 다운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To. GM 정다운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단장님.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도착했다.
From. GM 정다운
No prob!
< 40화 - 우리 가족 일이잖아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