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화 - 적당한 친구는 있고? >
따아아아악!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타구가 멀리 멀리 쏘아져 나갔다.
- 돌아볼 것도 없습니다! 홈런! 홈런! 기울어진 경기에 쐐기를 박는 플로리다 대학의 3점 홈런!
톰슨을 비롯한 세 명의 타자들이 홈플레이트를 밟음과 동시에 플로리다 주립대학 감독은 쏜살같이 마운드로 올라가서 제이콥스를 교체시켰다.
그 상황을 눈에 담은 다운의 입가에 미소가 올라왔다.
“최상의 결과네.”
갑자기 튀어나온 너클볼러가 잘하면 지명순위가 올라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쓸데없는 영입경쟁까지 펼치며 힘을 빼야했다.
하지만 첫 너클볼 등판에서 저렇게 3점 홈런을 맞고, 그리고 노발대발하는 감독에게 끌려 내려간다?
‘지명순위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네 들려.’
여기 모인 관계자들은 감독이 저렇게 화를 내면서 곧바로 바꾼다는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란걸 동태눈깔이 아닌 이상은 다들 눈치채고 있었다.
“자기 마음대로 던졌네.”
“계획된 너클볼 등판이 아니었던 모양인데?”
현장에서 계획이 서지 않는것만큼이나 싫어하는 선수 유형이 바로 통제할 수 없는 선수였다.
그들은 코칭스태프들의 혈압을 끌어올리면서도 동료들에게 어떤 나쁜 영향을 줄지도 모르는 바이러스와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금 저 감독이 하는 행동 자체가 제이콥스의 인지도를 완벽하게 떨어트렸다고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되면 생각보다 낮은 순위로 제이콥스를 데려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여기서 드는 의문 한 가지.
방금 홈런을 친 톰슨의 가치는 오르지 않는 것인가?
정답은 ‘절대 오를 일이 없다’이다.
타자라면, 그것도 프로를 노리고 있는 타자라면 누구라도 정타를 담장 밖으로 넘길 수 있는 힘 정도는 가지고 있었다. 톰슨이 통산 홈런이 하나도 없는 선수도 아니고, 올해만해도 3개의 홈런을 기록중인 선수였다.
게다가 너클볼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으면 배팅볼이 되기 십상이라는건 세 살짜리 어린아이도 아는 이야기. 너클볼을 상대로해서 홈런을 때렸다고해서 톰슨의 평가가 드라마틱하게 오르지는 않을 것이었다.
“저 친구들 앞으로 주시하고, 제이콥스 담당하던 친구는 있지?”
“확실하지는 않은데, 연락은 꾸준히 하고 있던 스카우트 한 명 있었던 것 같아요. 확인해보고 다시 말씀드릴게요.”
“그럼 앞으로 어떤 투수가 되고 싶은지 꼭 물어봐. 다시 강속구를 던지고 싶은지, 아니면 확실히 너클볼러로 노선을 정한건지 말이야.”
직접가서 보고 싶지만, 이 시기에 드래프티와 단장이 직접 접촉하는 것은 좋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똥 하나를 치우고 보석 두 개라. 나쁘지 않은 직관이었다.
***
5월에 단 두 번 밖에 없는 휴식일이 찾아왔다.
다운은 경기가 마치자마자 짐을 챙겨서 사무실을 나왔다.
“리타.”
“네 단장······ 퇴근하세요?”
리타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드래프트를 앞둔 요즘 다운은 드래프티들을 보느라 경기가 끝난 이후에도, 밤을 지나서 해가 뜰 때 까지도 단장실에 머물곤 했다.
그랬던 다운이 일찍 퇴근한다고 하니 무표정으로 유명한 리타조차 저런 흐트러진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찰칵!
“찍었다.”
“다, 단장님!”
“표정 좋네요. 앞으로도 이렇게 자연스러운 표정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아, 사진은 톡으로 날려드렸어요. 그리고 여기 자 삭! 제! 확인했죠?”
“가, 감사합니다.”
“그리고 퇴근하는거 맞아요.”
찡긋 윙크를 날려준 다운이 직원들에게 말했다.
“다들 수고했어요. 내일은 일찍오지 말고 오후에 출근하세요.”
간만의 휴식일이니 직원들에게도 반나절 정도는 휴가를 주기로 했다. 뜻하지 않은 휴식에 피곤에 찌들었던 직원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단장님!”
“들어가세요!”
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다운은 차를 몰아 집으로 향했다.
끼이이익!
덜컹! 덜컹!
다운의 차고가 힘겹게 자리를 비켜나는 소리에 글라이드 집의 창문이 열렸다.
“그거 언제 고칠거야!”
다운에게 일갈한 그는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빠르게 말을 이었다.
“차 넣고 바로 넘어와! 배고파 돌아가시겠다!”
자기가 할 말만 마치고는 쏙 하고 들어가버린 글라이드를 보며 다운이 실소를 흘렸다.
“하여간······”
투자회사의 대표로 있을 때도 여유는 있어보였지만, 요즘은 한 층 더 여유로워진 느낌이다. 조금 더 인생을 즐기면서 사는 느낌이랄까?
오늘도 간만에 휴식일을 맞아 저녁과 함께 술 한 잔 하자며 이렇게 다운을 부른 것이었다.
차고 리모컨을 눌러 닫은 다운은 글라이드의 집으로 넘어갔다.
“흐음~ 좋은 냄새!”
향긋한 육향이 현관에서부터 풍겨나왔다.
“스테이크에요?”
“네가 좋아하던 토마호크 스테이크에 이번에 새로 배운 특제 스페셜 소스를 곁들여보려고.”
“그 특제 스페셜 소스가 혹시 독약은 아니죠?”
다운의 농담에 글라이드가 눈을 흘겼다.
“요즘 네 체력이 많이 딸리는 것 같던데 홍삼 같은거 넣어줄까?”
“거절할게요. 저는 삼은 안받는 체질이라. 하하······”
스테이크에 삼맛이라니. 절대 사절이다.
글라이드의 요리 실력은 날이 갈수록 좋아지는 모양이다. 그의 특제 스페셜 소스는 특별하다는 말이 두 번이나 붙을 정도의 맛이 있었다.
거기에다가 글라이드가 직접 고른 레드와인까지 곁들이니 천상의 식사가 따로 없었다.
“크~ 좋네요.”
“좋다니 다행이네.”
“어스틴 저랑 결혼하실래요? 밥 좀 차려주세요.”
“끔찍하니까 농담으로라도 그런 소리 하지마라. 그러고보니 말 잘했다. 너 결혼은 언제 할꺼야? 만나는 사람도 없어?”
“제 스케줄을 보세요. 있겠어요? 당장에 집에 갈 시간도 없구만.”
“그 왜 마이애미에 여자 단장 있잖아.”
“그 분은 가정이 있으신 분입니다만?”
“나도 가정이 있었어 이 자식아! 리타는 어때?”
“딱 비즈니스적인 관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에요. 아! 그러고보니 오늘 리타가 무표정 아닌거 처음 봤다니까요? 사진도 찍었어요?”
“그 리타가 무표정을 안했다고? 어디 보자!”
“아! 지웠어요. 리타가 별로 안좋아할 것 같아서요.”
“이 놈이! 사람 놀리는 것 도 아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니 결국 이야기는 업무 이야기로 자연스레 넘어갔다.
“그나저나 그 차고 문은 언제 고칠거야?”
“시간이 있어야 고치던가하죠. 요새 제가 집에 들어오는거 보셨어요?”
거의 못봤을거다.
요즘 다운의 일상은 드래프티에 집중되어있었으니까. 직접 경기를 보러가고, 영상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24시간이 부족할 정도였다.
그래서 다운은 집에 돌아오는 시간조차도 줄였다. 출퇴근길마다 잡히는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웠기 떄문이었다.
결국 최근 저 시끄러운 차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날은 일주일에 많아봐야 두 번 정도였다.
“괜찮은 친구들 많이 찾았어?”
“괜찮은 친구들이야 많죠. 우리가 뽑을 수 있을지 모르는 선수라서 문제지.”
지난 시즌 레이스는 AL 동부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다보니 레이스가 가진 지명순위는 무려 24번째.
레이스보다 승률이 높았던 다른 지구 2위들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누가봐도 괜찮은 친구들이 세 명 정도 있거든요.”
“그 친구들은 못뽑겠지.”
“하자가 있지 않는 이상에야 저희 순번까지 올 리가 없죠. 그리고 그렇게 되면 우리도 뽑는걸 고려해봐야할 것 같고요. 그래서 로컬보이를 뽑는걸 고려중이에요.”
“네이트가 있잖아.”
“탬파 로컬은 아니죠.”
드레이크 역시 플로리다 지역 로컬보이라고는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집은 마이애미. 탬파 지역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한 명이 필요하다.
“로컬보다는 실력이 좋은 친구를 뽑는게 낫지 않을까?”
“그 생각도 안한건 아니에요. 처음부터 올 시즌 드래프트의 방향이 로컬을 뽑자는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실력이 좋은 선수를 뽑을 수가 없더라고요.”
“다들 고만고만한가보구만.”
“정확히는 하나를 고르기 힘들다는거죠. 이번 드래프트에 나오는 선수들 중에서 정말 최상위에 있는 세 명을 제외하고는 큰 차이가 없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그 수준이 높다?”
“3년간 밀렸던 선수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왔으니까요.”
워낙에 많은 선수들이 몰리다보니 최상위 셋을 제외한 나머지 상위권 선수들도 누가 제일 나은지를 고르기 힘들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내심 3라운드에서 뽑자고 생각했던 톰슨을 4라운드 이후로까지 미뤄야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차피 최상위 세 명은 못 뽑을테죠. 남은 선수들은 각자의 장점도 있고, 다들 잘하는 친구들이더라고요. 그럴 바에는 구단 운영에 도움이되는 선수를 뽑자는게 제 생각이었죠.”
오늘 뽑은 선수는 빠르면 새 구장이 지어질때쯤 데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적당한 친구는 있고?”
“눈여겨보고 있는 친구는 세 명 정도 있어요. 하지만 그 중에서 하나는 빼야돼요.”
“인성쪽에서 문제가 있나?”
“아뇨. 실력에 문제가 있죠.”
“실력이 별로야?”
그의 말에 다운은 입에 마늘을 하나 던져넣으며 고개를 저었다.
“너무 좋아서 문제죠.”
“아, 알마다인가 뭔가 하는 그 친구구만.”
“네.”
알렉스 알마다는 이번 탬파지역 중에서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선수였다.
근 10년간 플로리다 주 전체에서 나온 투수들 중에서 가장 잠재력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듣고있는 우완투수로 최고 101마일의 패스트볼과 이미 메이저리그 급으로 완성되었다고 평가받는 파워커브가 주 무기였다.
심지어 서드피치인 체인지업 조차 더블 A 수준 정도는 될 거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듣기로는 말린스에서 눈독들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쪽도 뭐 나름 로컬보이라고 주장할 만하니까. 애초에 플로리다 말린스이기도 했고.”
에이스, 그리고 전체적으로 화제를 일으킬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한 말린스가 그를 놓칠리가 없었다.
“남은 둘은 누구야?”
“패트릭 메이플이랑 미구엘 파레디스에요.”
“이름만 들었을때는 백인이랑 히스패닉 같은데?”
“맞아요. 클리어워터 출신인 패트릭은 백인에 남자답게 생긴 선수로 수비는 조금 떨어지지만 공격에서는 확실한 자기만의 강점이 있는 선수에요. 존 설정도 대학선수 중에서도 최상위 권에 속해요. 거의 삼진이 없고 컨택능력도 좋아요. 코너 내야수에게 요구하는 파워가 조금 부족하긴한데, 몸을 체계적으로 만들면 20홈런 근처까지는 뽑아낼 수 있을거라는 평가가 있어요.”
“한 놈이 공격형이니까 남은 한 놈은 수비형인가?”
“음······ 딱 잘라서 수비형이라고 하기는 뭐한데, 굉장히 야성적인 친구에요.”
“야성적이라······ 메이플은?”
“메이플이 엘리트 야구를 해오며 큰 친구라는 느낌이 드는 반면에, 파레디스는 조금 더 감각적인 플레이를 해요.”
“이 친구는 어디 살아?”
“탬파요. 그래서 저희 레이스 경기를 자주 보러 왔다고 하더라고요.”
가오리 만지는게 좋았다나 뭐라나.
“공도 눈에 보이는 대로 치는 스타일이고, 수비도 느낌이 오는대로 하죠. 그런데 또 그게 나름 잘 먹히는 스타일이죠. 게다가 대졸인 메이플에 비해 4년이라는 시간이 더 있다는 것도 장점이고요.”
“한 놈은 교과서대로, 한 놈은 본능대로라는 말이구만.”
근데 중요한 걸 안 물어봤다.
“근데 두 놈 포지션은 어디야?”
“둘 다 3루수요.”
< 39화 - 적당한 친구는 있고?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