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38화 (37/268)

< 38화 - 2미터짜리 너클볼러 >

- 플로리다 주립대학 투수 교체. 라일리 제이콥스가 올라갑니다.

장내 아나운서의 말에 미키가 흥미로운듯이 마운드를 쳐다봤다.

“저 친구 오랜만에 보네요.”

“유명한 친군가봐?”

“플로리다 지역에서는 꽤 유명하죠. 고교때까지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어요. 말린스가 34라운드에 지명했었거든요.”

“이미 대학 진학이 확정적이었나보네.”

34라운드 쯤에는 대학진학 의사를 밝힌 선수들을 뽑곤했다. 혹여나 그들 중에서 사정상 프로로 진로를 트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그 당시에는 90마일 초반대에 제구력이 조금 애매한 투수였거든요. 그런데 대학가서 키가 크면서 구속이 확 올랐어요. 문제는······”

미키가 남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파아앙!

“볼! 베이스 온 볼스!”

제구가 저어어언혀 안된다.

“제구를 못하는건가, 안하는건가.”

그런 선수들이있다. 드래프트 직전에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서 제구를 포기하더라도 구속을 끌어올리는 선수들이 말이다.

“못하는거에요.”

그럼에도 분명 매력이 있는 투수이긴 하다. 전광판에 찍히는 구속이 95마일이었으니까.

좌완 파이어볼러는 지옥에서라도 데려와야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었다.

“그래도 뽑을 팀들이 있을 것 같은데.”

“글쎄요······”

미키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옆에 있는 관중들을 가리켰다.

플로리다 주립대학 응원 저지를 입고 있는 관중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귀를 기울여보니 그들의 이야기가 들렸다.

“쟤는 아직도 저러네.”

“포기를 못한건가 안한건가.”

다운이 다시 미키에게 고개를 돌렸다.

“혹시 무슨 문제 있었어?”

“엄청난 문제가 있었죠. 체구가 커지면 생기는 문제들에 대해선 아실테고······”

“얼마나 컸는데?”

“거의 20cm정도 컸을걸요? 원래 제가 알기로 180정도 되었었는데, 이제는 2미터니까요.”

“저런······”

체구가 커지면 구속이 오르고, 파워가 붙는다. 하지만 마냥 좋기만 한건 아니다.

특히나 투수들은 더더욱 문제가 많이 일어나곤 했다. 키가 커지면, 신체의 밸런스나 릴리즈포인트가 완전히 달라져버린다.

특히나 저렇게 20cm나 커버리면 팔 길이부터 다리길이, 몸 길이, 보폭 등 모든게 달라져버린다. 분명 내 몸인데, 내 몸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힘들었겠네.”

“어떻게든 적응은 한 것 같은데, 문제는 그 이후에 생겼죠. 제구가 완벽하지 않다보니 99마일이나 되는 공이 타자의 손을 완전히 부숴버렸거든요. 그것도 단순 골절이 아니라 신경을 건드리는 바람에 선수생활은 접어야 했다고 합니다.”

“아······”

대학생이라지만, 아니 나이는 상관없다. 누군가의 선수생활을 끝장냈다는 것에 충격을 받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문제는 그거 하나가 아니었다는거죠.”

“그런 일이 또 있었다고?”

“한 달 정도 뒤에는 헤드샷을 맞춰서 뇌진탕을 일으켰고, 그 다음 주에는 곧바로 또 어깨를 맞췄다네요.”

멘탈 회복을 하고 있는 중에 한 타자에게 뇌진탕을 일으켰고, 곧바로 그 다음주 경기에서 다시 어깨를 맞췄단다.

아무리 강철멘탈이라고 하더라도 저건 버티기 힘들었을거다.

“그 다음부터는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이 왔다는 이야기가 돌았죠. 그런데 한동안 등판이 없어서 확인할 수는 없었죠. 1년 정도를 쉬었거든요.”

“아예?”

“네. 저희도 스카우트를 보냈는데, 훈련한다는 이야기도 안하고, 보여주지도 않았어요.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미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죠. 그 확신은 디키가 왔다간 뒤에 확실해졌고요.”

“너클볼까지 손댔나보네.”

“공식경기나 연습에서도 너클볼을 보인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라일리 제이콥스와 함께 10년 가까이 한 포수가 있는데, 그 친구가 큰 사이즈 미트를 새로 산걸로 봐서 확실하다고 봐야죠. 지금도 저 친구가 나오니까 미트를 바꿨잖아요.”

“어디로 갈지 모르니까 미트를 키운거일수도 있잖아.”

제구가 안되니까 미트를 키워서 커버리지를 늘리는 방법은 은근히 자주 써먹는 방법 중 하나였다.

“그런 것 치고 저 친구는 잘 받는걸요?”

“오래 같이 해봐서 대략 견적이 나오는 것 같아보이긴 하는데.”

확실한건 저 제구는 못쓴다.

“구속도 많이 줄었네요. 평균 97마일 정도는 꾸준히 찍어줬던 친군데, 오늘은 94, 95, 93, 94네요.”

“너클볼을 익히다보면 흔히들 있는 일이지.”

너클볼은 다른 구종들과 던지는 개념 자체가 다른 공이다. 회전을 최대한 죽여야하는 공을 던지다보니 정통적인 구종들이 점점 죽게 되는 것이다.

“저렇게 던질 바에는 차라리 너클볼을 보여주는게 나을텐데.”

로벨의 말에 미키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힘들죠. 너클볼러를 굳이 드래프트에서 뽑을 필요가 없잖아요. 차라리 저렇게 제구를 못하는 선수가 낫죠. 고치면 90마일 중반 정도는 던질 수 있는 투수가 될 수 있으니까요.”

“재능만 있으면 그게 무슨 상관이야. 너클볼러로 대성할지도 모르잖아. 그리고 쟤를 데려와서 다시 고친다고? 직구 회전이랑 변화구 각이 완전히 죽어버렸는데?”

“원래 재능이 있던 선수니까 그 정도는 조금만 노력하면 다시 돌아올 수 있을거에요.”

“그 노력을 하는 것만큼 다른 투수가 노력하면 그만큼 더 잘될거라니까? 저 친구를 뽑을거면 그냥 너클볼을 계속해서 시켜야돼. 그게 아니라면 뽑으면 안되고.”

“하지만 저기 있는 제이콥스는 노력하는 모습을 이미 보여줬잖아요. 다른 투수들이 저 상황에 처했을 때는 좌절하겠지만, 라일리는 포기하지 않고 노력할 친구라고요!”

재능 우선주의의 로벨과 재능도 중요하지만 마인드와 원래 있던 재능을 지원해주는게 더 중요하다는 미키의 가치관 차이였다.

“둘 다 일리있는 말이니까 여기서 싸우지 마.”

둘 다 일리있는 말이긴 했지만, 다운의 마음속에서는 로벨에게 한 표를 던지고 있었다.

- 베이스 온 볼스! 두 타자를 연속으로 출루시킵니다.

두 타자를 연속으로 8구 연속 볼을 던지는 투수를 다시 되돌릴 정도의 지원이라면 다른 투수를 키우는게 훨씬 계산이 잘 선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은 확실한 것 같네.”

포수가 요구하는 곳으로 공이 하나도 가질 않으니 미트를 대질 않고 있다.

“저 포수도 눈여겨 봐야겠는데요? 하나도 뒤로 빠트리질 않네.”

“그러게요. 94~95마일이면 느린것도 아닌데, 그걸 반응으로만 잡아내고 있어요.”

“저 녀석은 따로 리포트가 있나?”

“앤드류 로건 저 친구는 내년에 드래프트 대상이에요. 한 살이 어리네요.”

“근데 둘이 10년 같이 했다면서?”

“옆집살았대요.”

“아. 그래서 오래 같이했던거구나.”

두 타자를 연속으로 볼넷으로 보내자 더는 지켜보지 못했는지 포수가 마운드에 올라갔다.

조금 격하게 말하는 듯 하던 두 사람은 결국 제이콥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마무리되었다.

“결국 너클볼을 던지기로 한 건가?”

“그게 낫겠지. 지금 저 모습만으로는 절대 드래프트 못될걸? 한 타자에게라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줘야지.”

세 번째 타자는 레이스에서 눈여겨 보고 있는 바로 그 제시 톰슨이었다.

“머리 좋네.”

어차피 스트라이크를 던지지 못하는 투수라면 괜히 타석에 붙어서 맞을 위험을 자처하는 것보다는 저렇게 물러나 있는게 맞았다.

두 배터리는 아예 칠 생각이 없어보이는 톰슨의 허를 찌르듯이 직구 하나를 존 안에 넣었다.

“스트으라이크!”

79마일의, 패스트볼이라고 하기에는 비실비실한 공.

“그래도 약한 공은 제구가 되나보네요.”

“세게 던져서 타자 셋을 보내버렸으니 센 공을 못던질 뿐, 약한 공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아. 그건 그렇고 생각을 잘했네.”

너클볼은 ‘타자가 칠 마음이 있어야’ 먹히는 공이다. 스윙에서 나오는 공기흐름에도 영향을 받는 것이 너클볼이다보니 괴랄한 움직임으로 헛스윙을 유도하거나, 빗겨맞추는 등의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무조건 타자가 ‘칠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만했다.

아예 칠 마음이 없어보이는 톰슨을 끌어낼 목적으로 저렇게 허를 찌르는 공을 넣는건 상당히 좋은 시도라고 할 수 있었다.

두 배터리가 자신을 상대로는 어떻게든 승부를 하려한다는 걸 감지한 타자가 다시 제대로 자세를 잡았다.

그러자 드디어 2미터짜리 좌완투수가 던지는 너클볼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호오?”

생각보다 괜찮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상당히 괜찮다.

너클볼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던 미키의 눈빛까지도 바뀌어있을 정도였다.

“쟤 데려오자. 진짜 괜찮을 것 같은데.”

“팔 각도가 상당히 높은데요? 저러면서도 너클볼 회전이 유지될까요?”

너클볼러들이 대부분 그렇겠지만, 제이콥스는 다른 너클볼러들과는 또 다른 특징을 가진 자신만의 너클볼을 던졌다.

2미터에 가까운 신장과 긴 팔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높은 곳에서 내리꽂는 너클볼은 그들조차도 보지 못했던 구종이었다.

저 높이에서 패스트볼이 꽂혀도 당황스러울 것 같은데, 너울너울거리는 너클볼이 날아오자 이번에는 칠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톰슨은 스윙할 생각조차도 하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대부분의 너클볼러들이 그렇겠지만, 제이콥스도 악력이 상당한 것 같아. 그래서 저렇게 최대한 위에서 내려찍는 식의 너클볼을 쓸 수 있는거고.”

“근데 저는 아직 높은 너클볼에 대한 감이 잘 안잡혀요. 너클볼은 오히려 낮아야 좋지 않을까요?”

“눈높이에서 현혹하듯이 너울대는게 낫다는거지?”

“네. 타자의 눈을 어지럽히는것이 너클볼의 본질이니까요.”

“그도 맞는 말인데, 당장에 너클볼을 저렇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한 것 보니까 안먹히면 충분히 팔을 내릴 수도 있을거야.”

“두 사람 말 전부 일리 있어. 하지만 가장 먼저 필요한건 정보야. 저 공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에 대한 정보야. 높은 공이 또 가지는 장점이 있을수도 있잖아?”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감독이 노발대발하며 마운드를 향해 소리쳤다는 점이었다.

“너클볼은 던지지 말라고 했었나보네.”

“그럴만도하죠. 감독도 너클볼러들이 받는 대우를 알고 있을테니까요.”

전문적으로 구단 차원에서 너클볼러들을 육성하는 레드삭스를 제외하고서는, 대부분이 아마 미키와 같이 생각하고 있을것이다.

하지만 감독이 아무리 저래봤자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메이저리그 규정이 바뀐 것 처럼 고교 규정 역시 투수 교체 이후 세 타자, 혹은 한 이닝을 끝내기 전까지는 새로운 투수를 올리지 못하도록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톰슨이 하는 행동이 또 다운의 눈을 사로잡았다.

“저 친구 보면 볼수록 끌리네.”

너클볼을 상대하기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톰슨은 곧바로 배트를 컨트롤하기 쉽도록 짧게 쥐었다.

“저런 센스나 생각을 가지고 있는 놈이 왜 타격을 못하는거지?”

“그러게요. 너무 생각이 많았나?”

문득 그러면 재미있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타격이 안되는 타자

생각하면서 상대할 수가 없는 너클볼을 던지는 투수

과연 저 두 사람 사이의 승자는 누가 될까?

< 38화 - 2미터짜리 너클볼러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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