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보석을 찾아라 >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의 총 라운드는 40라운드.
보상픽 같은 것들을 모두 배제하고 매 라운드 별 30개 구단이 한 명씩 뽑는다고 생각했을 때, 총 1200명의 선수들이 한 해에 드래프트 된다.
그렇다면 이 바늘과 같은 틈 사이로, 매 년 1200명의 학생을 드래프트에 한 명이라도 보내려는 곳은 얼마나 될까?
미국의 대학야구, 그 중에서 최상위 리그인 디비전 원에는 총 299개의 팀이 경쟁한다.
각 지역별 리그가 있는 고등학교 리그는? 말할 것도 없이 많다.
그게 끝이냐? 그것도 아니다.
최근 벌어졌던 펜데믹 사태로 인해, 재정이 악화된 구단들의 사정으로 인해서 2020년과 2021년 드래프트는 20라운드까지밖에 진행되지 않았다.
600명으로 줄어버린 문을 뚫지 못해 좌절을 맛봐야했던 수많은 드래프트 재수생들 역시 여기저기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얻기 위해서 야구판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물론 올해에는 다시 1200명의 지명자들이 있을 예정이다. 하지만 늘어날대로 늘어나 있는 풀을 뚫기는 쉽지 않았다.
원래도 없었던 일은 아니지만, 환경이 이렇다보니 드래프티들을 많이 배출하고 싶어하는 각 학교들이 특정 선수들을 밀어주는 경향이 더욱 강해진 것 같았다.
“제시 톰슨을 대신해서 티모시 배너에게 몰아준 이유가 뭐지? 저 정도면 둘 다 10라운드 이내에 드래프트 될텐데.”
물론 배너는 1~3라운드에 지명될 것 같은 재능이고, 톰슨은 7~10라운드 정도에 지명될 재능이라는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뭐······ 딱 보기에도 이유가 보이지 않아요?”
보인다. 그것도 아주 잘.
“일단 1라운더를 배출하고 싶었겠지.”
배너의 재능은 좋다. 하지만 확실한 1라운더라고 말하기에는 애매하다. 게다가 부상까지 있다? 그러면 더더욱 애매하다. 그렇다면 부상 이외의 요인으로 점수를 더해야한다.
상위 라운더 한 둘 보다는 확실한 1라운더 하나를 배출했다는 점이 학교 입장에서는 더 도움이 될테니까.
게다가 상대인 톰슨의 조건이 배너보다 좋지 않았다.
“공격력이 부족하고, 흑인인 톰슨보다는 팀내에서 인지도는 부족하지만 관중들에게는 오히려 인기많은 배너를 밀어준거겠지. 게다가 강속구 투수에 대한 수요는 항상 있는 반면 수비형 포수에 대한 수요는 그 정도가 아니잖아. 그리고 배너의 저 영악한 모습을 보니 부상이 있다는걸 꽤 오랜 시간동안 숨겼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네.”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밀어주도록 말이지?”
“1년 전이라면 모르겠지만, 드래프트 6개월 전에 갑자기 밀어주는 대상을 바꿀 수는 없잖아.”
학교도, 팀원들도.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지금까지 해온 것이 아까워서라도 그를 지지해줬을 것이다.
“어찌됐든간에 우리 생각만큼 인성이 훌륭하지도, 엄청나게 좋은 선수도 아니라는거네요.”
“오히려 저기 톰슨이 나을지도 모르겠는데?”
스타성이나 타격적인 측면에서 조금 부족할지는 모르지만, 포수의 성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수비적인 기본기와 타고난 어깨가 좋았다.
“제엔장할. 어디 싸게 잘 데려올 투수 하나 얻나 싶었더니······”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로벨에게 다운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똥 하나 피할 수 있었던 것도 충분히 큰 수확이야.”
저 똥 하나로 구단이 얼마나 큰 피해를
“제시 톰슨 순위나 올려놓자.”
“어느 정도까지 올려놓게?”
“대략 5~7라운드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최상위 라운드까지 갈 재능은 아니지만, 당장 프로에 와서도 통할 수비력(해봤자 싱글 A 수준이긴 하지만)에 어깨를 봐서는 저 정도면 적당한 조건으로 낚아채올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여기서 볼일은 끝났네요.”
오늘 다운이 왔다는걸 들었는지, 아니면 스카우트들이 다수 왔다는걸 알아챘는지는 모르겠다.
티모시 배너는 5이닝을 힘겹게 버텼던 지난 경기들보다는 한층 안정적으로 경기를 풀어나가고 있었다. 3이닝을 단 22구로 끝냈으니까 분명 잘하고 있는게 맞다.
안면이 있는 다른 구단 스카우트들이 눈을 빛내면서 그에 대한 정보를 열심히 타이핑하고 있는것만 봐도 그에 대한 평가가 올라가는 것이 보일 정도.
하지만 이미 다운을 비롯한 레이스 관계자들에게는 이미 배너는 안중에 없다. 관심이 있는 톰슨에 대한 정보는 나중에도 얻을 수 있다. 어차피 저 반대편에 있는 담당 스카우트가 알아서 정보를 모아올테니까.
당장 여기 남는다고해서 볼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도 경기 도중에 자리를 뜨는건 예의가 아니지.”
경기 초반부터 자리에서 사라지는 건 열심히 뛰는 선수들에 대한 실례다.
“6회까지는 보고가지. 혹시 알아? 상대 팀에 괜찮은 선수가 있을지.”
탬파가 위치한 플로리다는 유망주 풀이 탄탄하기로 유명한 지역 중 하나였다. 지리적 특성상 푸에르트리코와 도미니카 쪽에서 넘어온 중남미계열 유망주들의 활약에 힘입어 스카우트들에게 3대 금광 중 하나로 불리곤 했다.
다운의 말에 미키가 픽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단장님께서 눈여겨 볼만한 친구는 없을걸요?”
“혹시 모르지. 우리 플로리다가 또 유망주들이 넘쳐나기로 유명한 곳이잖아? 그 사이에 누군가가 엄청난 발전을 해서 나타날지도 모르잖아?”
“하하! 다운 그런 일이 흔한 줄 알아?”
“호호! 그러게요!”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
오늘의 매치는 플로리다 대학과 플로리다 주립대학.
그냥 이름만 봐도 사이가 좋지 않을 거라는 예상이 팍팍 되지 않나?
예상처럼 두 대학은 사이가 좋질 않았다.
배너와 톰슨이 있는 플로리다 대학의 야구팀이 시간이 비상하고 있는 반면, 플로리다 주립대학에는 내세울만한 선수가 없었다.
“젠장할 플로리다 대학 놈들! 몇 년 전만해도 우리 앞에서 빌빌대던 놈들이었는데!”
몇 년 전까지만해도 두 팀의 처지는 반대였다. 그때 당시에는 플로리다 주립대학의 라인업이 훨씬 좋았을때라 플로리다 대학을 눈 아래로 깔고 다녔었다.
하지만 황금세대가 졸업을 한 뒤, 그리고 2년 전부터는 처지가 달라졌다.
가장 큰 차이는 에이스의 부재였다. 차기 에이스라고 생각했던 라일리 제이콥스가 2년 전부터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없는 입스의 일종)에 걸려버리면서부터 둘의 차이가 급격히 벌어지게 된 것이었다.
물론 계속해서 에이스감을 영입하고는 있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은 예년의 제이콥스만큼의 선수는 아니었다.
다른 투수들 역시 예상보다 성장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플로리다 주립대학의 몰락을 가속했다.
“감독님. 저 보내주세요.”
제이콥스가 진지한 표정으로 감독의 앞에서 요청했다.
“진짜 잘 할 수 있어요.”
“안돼 라일리.”
“감독님은 지난 2년간 제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아시잖아요! 제발 보내주세요!”
알아도 너무 잘 안다.
빌어먹을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만 아니었다면 분명 제이콥스는 저기서 잘하는 척을 하고 있는 티모시 배너라는 놈팡이보다는 백 배, 천 배는 더 나은 투수가 됐을거다.
좌완에 90마일 후반의 공을 뿌리는 선발투수가 흔한건 아니었으니까.
어쩌면 플로리다 주립대학에서 또 한 번의 1라운더를 배출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공으로 세 타자의 인생을 끝내버린 이후 제이콥스의 어깨는 다시는 영점을 잡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존 안에 공을 넣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그것 때문에 오히려 더 공이 존 안으로 들어가질 않는 것이고요. 결국 라일리가 낫기 위해서는 존 안에 공을 넣겠다는 생각을, 그 강박 관념을 버려야만 한다는 겁니다.”
첫 1년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강박관념을 버리고, 존에 넣겠다는 생각을 버리면서 제구를 다시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투수가 존에 공을 넣겠다는 생각을 아예 안 할 수는 없는 노릇. 좋아질만하면 다시 제구는 저 멀리로 달아나버렸다.
그래서 찾은 두 번째 방법.
“라일리. 너 살살 던질때는 제구가 잘된다?”
근 10년을 함께 합을 맞춰온 포수 친구의 말에 찾은 방법.
바로 너클볼이었다.
너클볼은 원래 제구를 할 수도 없는 공이고, 세게 던질 필요도 없는 공이다. 섬세한 제구를 할 수도, 세게 던질 수도 없는 제이콥스에게는 딱 맞는 그런 구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너클볼러들 사이에서는 그들만의 연락망이 존재하고(요즘은 단톡방도 있다카더라) 언제 어디서든 진지하게 너클볼을 연마하려는 사람이 생긴다면 뉴비가 있는 지역까지 한달음에 달려가서 전수한다는 말이 있었다.
도시전설로 여겨지는 그 이야기가 사실이었는지 너클볼을 연마하기 시작한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어디서 전해 들었는지 R.A. 디키가 달려왔다.
그는 그가 했던, 그리고 다른 너클볼러들이 써먹었던 그립들, 그리고 너클볼러가 신경써야할 것들을 하나하나 세세히 가르쳐 주었다.
“넌 손 끝 감각이 좋으니까 잘 해낼 수 있을거다. 함께 너클볼을 연구할 수 있는 평생의 동료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가르치는 데에는 10분, 배우는 데에는 평생이 걸린다.’라는 격언이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제이콥스가 너클볼을 실전에서 쓸만큼 던지기까지는 디키가 떠나고 난 뒤 6개월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다.
그리고 다가온 드래프트 전 마지막 시즌.
감독은 그의 너클볼 등판을 허락하지 않았다.
“잘 생각해야돼 라일리. 지금 당장 네 성적, 그리고 우리 팀의 성적을 위해서는 너클볼이고 자시고 쓸 수 있는건 다써야겠지. 하지만 그렇게되면 너는?”
“저도 좋은 퍼포먼스를 보이면 드래프트를 잘 받을 수 있을······”
“구단에서 널 잘 봐준다고? 미쳤다고 잘 봐줘? 스트라이크를 못던지더라도 99마일을 던지는 좌완 선발을 놔두고, 존 안에 공을 던질 줄 아는 너클볼을 데려가는 미친놈이 대체 어디있어? 있으면 어디 한 번 데려와 봐! 젠장할! 너클볼 같은거 익힐 시간에 공을 한 번이라도 더 던졌으면 극복했을텐데······”
성적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제이콥스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것에 한참을 자책하던 감독은 다시 한 번 말했다.
“절대로, 절대로 구단 앞에서 너클볼을 던진다는 이야기는 하지 마. 그게 네 몸값을 높이는 방법이야.”
“하지만 감독니······”
“이게 날 위해서 같아? 아니야. 널 위해서야. 어린 나이부터 너클볼을 익히는 투수들에 대한 시선이 어떤지 네가 몰라서 그래.”
알만큼 안다. 그들이 마이너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도, 어떤 시선을 받는지까지 디키가 다 이야기해줬으니까.
“알고 있어요.”
“그럼 더더욱 지금은 너클볼은 숨겨야지! 네가 나중에 프로를 가더라도 지금만큼은 99마일짜리 공을 던져야 돼. 아직은 구단들이 네 제구를 세금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야돼. 그래야지 너에게 많은 계약금이 들어올거고, 그만큼의 기회를 받을 수 있는거야. 만약 네가 너클볼만 던지다 프로로 간다? 그러면 장담컨대 마운드에 설 기회조차 못 잡을게다. 그러니 제발 지금은 제구가 안되더라도 패스트볼을 던지고, 프로 지명 이후에 너클볼을 던지던가 말던가 해. 알겠지 라일리? 그게 아니면 절대 난 널 마운드에 세우지 않을거다. 차라리 부상이라고 발표하는게 나아.”
그렇게 경기 전까지도 싸우고 들어왔다. 하지만 이렇게 라이벌에게 무기력하게 당하고싶은 마음은 없었다. 뭐라도 하나 건져가야한다.
“라일리. 경기 전에 내가 한 말은 기억하지?”
“네.”
“그럼 너클볼 말고 패스트볼로 승부할거냐?”
제이콥스는 살짝 고민하는 눈치를 보였다. 그러나 그보다는 마운드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드래프트 직전 리그에서 한 차례도 등판하지 않을 수는 없었으니까.
“네.”
“좋아. 그러면 다음 이닝에 올라가자.”
< 37화 - 보석을 찾아라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