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가지마 >
양키스와의 1차전은 레이스의 승리로 끝났다.
그것도 무려 12대 2의 대승!
호텔로 돌아가는 버스는 축제 분위기였다.
“휘유! 내 홈런에 양키 팬들 조용해진 거 봤냐?”
“네이트. 네가 홈런 때리기 전부터 이미 양키 팬들은 조용했어.”
“맞아 배리가 적시타 쳤을때부터 양키 라이브러리였지 크큭!”
“6회부터 벌써 짐싸서 나가는 팬들도 있더만.”
“6회에 이미 10실점을 했는데 더 보고 싶어하는 팬들이 있겠어?”
기뻐하는 선수들 사이에서 브래넌이 호탕하게 웃으며 등장했다.
“푸하하하! 오늘은 내가 쏜다! 다들 방마다 피자 한 판씩 넣어놨다!”
“이야아아아! 역시 배리!”
“배리 최고!”
“네이트 저 정도는 되어야지!”
선수들의 말에 드레이크가 분한 표정으로 외쳤다.
“제에에엔장! 딱 기다려요 배리! 내일은 내가 피자 돌릴테니까!”
“할 수 있으면 해보시던가!”
피자 냄새가 남아있는 길을 따라 선수들을 하나 둘 올려보낸 다운은 가장 마지막으로 올라가는 브래넌을 슬며시 불렀다.
“배리. 짐 놓고 잠깐 내 방으로 와.”
잠시 후 브래넌이 다운의 방문을 두드렸다.
“대런 그 놈은? 이겼어?”
“대강은?”
다운은 초반에 다임러로 그를 누른 이야기를 해주었다.
“푸하하! 너 알았잖아?”
“네가 안 알려줬으면 몰랐겠지.”
“푸흐흐! 우리 프런트도 확실하게 알고 있었던건 아니지?”
“대략적으로 소문만 들었지. 확인은 못했고.”
“나만 말 안하면 모르겠구만! 걱정마. 무덤에 들어갈때까지 입 꾹 닫고 있을테니까.”
물론 마냥 즐거운 이야기만 있는건 아니었다. 특히나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말이다.
“배리.”
“음?”
음료수를 마시다 말고 다운에게 고개를 돌렸다.
“만약 양키스에서 널 다시 원한다고 하면 어떨 것 같아?”
***
“다시 한 번 말해봐. 뭐라고?”
다운의 말에 대런은 침착한 표정으로 물었다.
“브래넌. 혹시 넘길 생각 있습니까?”
말도 안되는 문의에 다운이 기가 찬 듯 답햇다.
“미쳤어?”
브래넌은 레이스의 기둥이다. 실력적인 면에서나 정신적인 측면에서나 말이다.
그래서 레이스 입장에서는 큰 돈을 들여서 그와 재계약을 한 것이기도 하고.
“제정신이야?”
어이없어하는 다운과는 다르게 대런은 침착했다.
“우선 제안부터 들어보고 생각해보세요.”
어떤 제안이 오더라도 들어보는 것은 손해가 아니라고 가르친 것 역시 다운이었다.
“읊어봐.”
“어차피 제가 어떤 선수를 제안해도 다운이 원하는 선수 데려가실거잖아요.”
“그야 그렇지.”
레이스에는 다운도 있지만, 지난 시즌까지 양키스 스카우트 팀장으로 있었던 로벨까지 있다.
당장 양키스 팜에 있는 선수들 중에서 두 사람이 모르는 선수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애매하게 카드 내밀바에야 그냥 시원하게 원하는 선수 둘로 가도록 하죠.”
“아무나?”
“네. 당장 40인 로스터 안에 있는 선수만 아니라면 누구든 선택하셔도 됩니다.”
“미쳤어?”
같은 단어지만 다른 의미를 가진 발언이 다운의 입에서 나왔다.
“뭐 다운이야 저희 선수단 분위기를 대강 예상하실테죠.”
“예상할게 있나. 개판이겠지.”
앤드류 켈리는 좋은 선수다. 하지만 리더기질은 없다. 오로지 야구, 그리고 자신의 플레이에만 집중하는 수도승 같은 부류다.
조프리 가드너 역시 남을 이끄는 타입은 아니다.
FA 선수들은 어떠냐고?
양키스에서 길러진 프랜차이즈 스타치고 FA로 들어온 고액의 선수들의 말을 들어쳐먹는 선수는 많지 않았다.
“다른 구단에서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여긴 양키스라고. 경력이야 인정해주겠지만, 휘어잡으려고는 하지 마쇼.”
양키스 자체가 프라이드인 놈들이 넘쳐나는 곳에서 FA선수가 이들을 휘어잡기란 하늘에 별따기였다.
그러다보니 브래넌이 떠난 이후의 양키스 라커룸은 언제나 개판이었다.
그나마 야구를 할 때만큼은 다들 진심인데다가 선수 개개인의 실력이 좋다보니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이지, 지금의 양키스는 ‘One team.’이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런 양키스의 상황을 해결해줄 수 있는 유일한 카드. 그게 바로 배리 브래넌이었다.
“내가 모르는 새에 탑 티어 유망주들 다 40인에 넣어둔거 아니지?”
“그럴리가요. 걔네 서비스타임이랑 마이너옵션 관리는 철저히 하는 편이라, 아마 다운이 알고 있는 현황이랑 크게 다를건 없을겁니다.”
“그런데 자유이용권 두 장을 넘긴다고?”
“그 정도는 되어야 다운이 생각해볼거라 생각했으니까요.”
실력과 리더십, 그리고 양키스 프랜차이즈 스타였다는 조건까지 모두 갖춘 브래넌은 양키스에 있어서는 대체 불가능한 스펙을 가진 선수였다. 심지어 계약기간과 연봉마저 양키스 입장에서는 헐값이나 다름없는 수준.
당연히 다운이 요구할 대가는 클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대런은 다운이 최대한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정확히 그 선에 맞춰서 대가를 제안한 것이다.
최대한도가 아니라면 다운이 고민조차도 안하고 거절했을테니까.
그리고 실제로 이 딜을 다운의 저울 위에 올리는데에 성공했다.
‘여우같은 놈.’
양키스가 가지고 있는 재능들, 그 중에서 가장 탑티어라고 생각되는 선수들은 이미 다운의 머리에 라인업이 되어있었다.
당장에 1위부터 10위까지의 이름과 특징까지 줄줄이 읊을 수 있을 정도.
그 중 1위인 라일리와 2위인 레미같은 경우는 당장에라도 메이저리그에서 활용할 수 있는, 데뷔를 앞둔 선수들이었다.
그저 비어만과 같이 슈퍼2 조항을 피하기 위해서 마이너에 박혀있을 뿐.
대런이 그런 선수들까지도 저울 위에 올려놓자 없던 마음까지도 생길 수 밖에 없었다.
“이건 내가 하고싶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닌건 알지?”
브래넌은 전 구단 상대로 트레이드 거부권이 있었다.
다운의 말이 의미하는걸 알아먹은 대런이 웃었다.
“구단에서 트레이드 의지만 있다면 트레이드 거부권은 아무 의미 없다는거 아시는 분이 왜 그러실까?”
“배리는 양키스를 싫어할테니까.”
“하하! 배리가 양키스를 싫어한다고요?”
시원하게 웃은 대런이 다운에게 물었다.
“다운. 잘 생각해봐요. 만약 다운에게 양키스 단장으로 두 번째 기회가 온다고 생각해보세요. 걷어찰겁니까?”
다운의 몸이 굳었다.
‘그럴 일은 없어.’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건 안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그런 기회가 온다면?
“아마 거절못할걸요. 제가 아는 다운이라면 연봉을 받지 않는 한이 있어도 무조건 성공해서 명예회복을 노릴거니까요.”
저 자식은 아무리 생각해도 날 너무 잘 알았다.
“브래넌도 똑같을겁니다. 브래넌에게는 돈이 아니라 ‘자신을 버렸던 양키스가 고개를 숙이고,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는것을 인정했다’는 것을 더 쳐줄테니까요.”
브래넌이라면 분명 그렇게 생각할거다. 설득력있는 그의 말에 다운의 입이 닫혔다.
“잘 생각해보세요. 이런 기회가 다시 올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
다운의 질문에 브래넌의 얼굴이 굳었다.
“양······ 키스에서 날 원한대?”
“어. 그쪽에서 얼마나 널 데려오고 싶은지 라일리랑 레미까지 제안하더라.”
브래넌 역시 양키스 최고 유망주라는 두 사람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워낙에 올 시즌 전에 기사도 많이 나고 그랬으니까.
“그렇단 말이지······”
브래넌이 두 손을 모아 턱을 괴었다. 다운은 충분히 브래넌이 생각할 시간을 주기 위해 입을 꾹 닫고 그가 생각을 마치기까지 기다렸다.
5분 정도의 기다림 끝에 브래넌의 고개가 다운에게로 기울어졌다.
“이걸 알려준 이유가 뭐야?”
사실 트레이드 제안이야 수도 없이 오고간다. 다운 역시 관심가는 선수가 있으면 아침에 일어나서 한 번 찔러보고 저녁에 자기 전에 한 번 찔러보곤 했다.
당장 다운의 메시지함에 쌓여있는 트레이드 제안만해도 한 무더기다.
이렇듯 수많은 제안들이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이 선수들의 귀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만약 선수들이 자신이 관련된 모든 트레이드 제안들을 듣게된다면 결코 정상적으로 경기를 치를 수 없을 것이었다.
이번 건 역시 다운이 듣고 흘렸다면 그냥 끝났을 이야기다. 그럼에도 이렇게 브래넌에게 말을 꺼낸 것은
“······ 내가 갔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건가?”
“우선 대런이라면 나한테 제안을 넣은 순간부터 너한테 어떻게든 정보를 흘릴 생각을 하고 있었을거야.”
대런이라면 분명 어떤 수를 써서든 다운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는 것을 알렸을 것이다. 그리고 브래넌이 언해피가 뜨기만을 기다렸다가 언론플레이를 했을거다. 그게 바로 스타인브레너 가가 일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서운하게 들릴 수 있지만, 단장 입장에서는 반반이야.”
30대의 베테랑을 보내고 유망주 둘을 얻을 수 있다. 그것도 메이저리그에 올라올 준비가 된 친구들로 말이다.
단장이 되어서 이런 딜을 말도 꺼내보지 않는다는건 말이 안된다.
“너도 그렇지 않아?”
브래넌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솔직히 말해서 끌려. 그것도 아주 많이.”
메이저리거 치고 양키스의 핀스트라이프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지 않았던 선수가 있을까? 브래넌은 그런 양키스에서 성공적으로 프랜차이즈로 활동했던 선수였다.
양키스에서 내쳐지기 전까지만해도 브래넌의 꿈은 양키스 원클럽맨으로 은퇴하는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양키스가 자존심도 접으면서 먼저 숙이고 들어온다?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약 내가 가고 싶다고 하면 넌 보내줄거야?”
다운 역시 많이 고민했던 것이다.
“배리 브래넌이라는 선수는 우리 팀에 굉장히 필요한 존재야. 라커룸 분위기를 책임지는 리더이기도 하고, 매 년 100타점 정도를 올리면서 공격을 책임져주는 선수이기도 하지.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봤을 때, 널 보내고 얻을 수 있는게 없지는 않아. 게다가 양키스와는 다르게 우리 레이스에는 네가 아니더라도 마이어라는 훌륭한 리더가 있어. 네 연봉 정도는 감당 가능한 수준이지만, 그 부담이 사라지면 분명 페이롤 유동성이 더 늘어나겠지. 언제까지나 단장 입장에서 말하는거야.”
냉정한 다운의 말에 브래넌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단장 입장에서 그런 답이 나왔다는 것은, 다른 입장도 있다는 말이다.
“다른 입장에서 보자면?”
“팬 입장에서, 그리고 네 친구 입장에서 본다면······”
긴 말 할 필요가 없었다.
“가지마.”
‘가지 말았으면 좋겠다’도 아니고 ‘가지마’.
그 이상의 다른 수식어는 오히려 진심을 해칠 뿐이었다.
“어제 나보고 흔들리지 말고 같이 가자고 했잖아? 그 말 그대로 돌려줄게. 흔들리지 말고 우리 레이스랑 계속 같이가자. 그리고 저 사악한 스타인브레너에게 한 방 먹여주자. 양키스에서 쫓겨난 놈들끼리 말이야.”
< 34화 - 가지마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