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33화 (32/268)

< 33화 - 미쳤어? >

양키스와의 1차전.

큰 이슈를 몰지 않을 것만 같은 매치업이다.

하지만 이번 매치는 은근히 양 팀에서 모두 신경쓰는 매치였다.

특히나 양키스 같은 경우는 지난 시즌 레이스에게 밀려서 동부 2위, 그것도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겨우 올라갔었다.

그러다보니 양키스 팬들은

“지난 AL 챔피언십 시리즈의 리매치라고! 미리 기를 눌러놔야 나중에 편하다고!”

“맞아! 요새 레이스 놈들이 ‘양키스가 라이벌이다!’라고 설치고 다니는데 그 꼴은 못보지!”

“포스트시즌에 쪽도 못 쓴 것들이! 이번에는 확실히 우리 밑으로 눌러버려!”

라면서 날뛰어댔다. 양키 스타디움에 가득찬 수많은 양키스 팬들 사이에서 극소수에 불과한 레이스 팬들은 그들의 기세에 눌리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양키스 놈들 어차피 시즌 중에는 우리한테 힘도 못 쓰잖아?”

“맞아! 지난 시즌 상대전적이 18전 13승 5패였지 아마?”

“또 눌러버려! 계속 누르다보면 포스트시즌에서도 누르겠지!”

라고 외치면서 양키스 팬들에게 물러서지 않았다.

“너희가 우리의 자존심이자 자신감이다! 이겨줘 레이스!”

이깟 공놀이가 뭐라고 누군가의 자존심까지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저런 말을 들으면 힘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다들 따시게 입어! 귀찮다고 방한용품 안껴입으면 부상당한다!”

“단장님 말 들었지! 어이 너 장갑끼고! 핫팩 챙겨서 뒷 주머니에 넣어! 멜튼! 너도 괜찮다고 그러지 말고 넥워머 차고!”

“아······ 입김 올라와서 안경에 김서리는데······”

“안경 가져와. 안티 포그 스프레이 뿌려줄테니까.”

4월 초반이지만 뉴욕은 아직도 영하까지 내려가곤 했다. 눈도 내리는데 영하의 날씨가 대수일까.

선수들이 대충 준비가 끝나자 캐시가 앞으로 나섰다.

“제군들! 아까 팬들의 목소리 기억하나?”

아까 팬들이 했던 이야기는 캐시에게도 꽤나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네!”

우렁찬 선수들의 대답에 힘을 받았는지 캐시는 브래넌과 비슷한 힘찬 목소리로 선수단에게 외쳤다.

“아까 우리 팬이 하는 말 들었냐?”

“넵!”

“저 악마 같은 양키 놈들에 둘러쌓이고서도 소리 높여 우리를 응원하는 팬들을 봐라! 그 사이에서 너희가 위축되어서야 쓰겠냐?”

“아닙니다!”

“저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오직 양키스를 압도하는 경기력을 보여주는 것 밖에 없다! 그게 바로 저들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자신감을 채워주는 길이다! Go Rays!”

“Go! Go!”

선수단이 패기 넘치게 더그아웃으로 나가는 것까지 확인한 다운이 원정팀 라커룸이 나섰다.

라커룸을 열자 클러비 하나가 기다렸다는 듯이 슬며시 웃으며 나타났다.

“갈까요 다운?”

싱글거리고 있는 저 클러비는 다운이 양키스 시절 친하게 지냈던 맷이라는 클러비였다.

“맷. 저랑 너무 친한 티 내다가 클러비에서 짤리는 수가 있어요.”

“하하! 뭐 그러면 레이스 클러비로 이직하면 되죠. 제 자리 하나 정도는 만들어주실 수 있죠?”

“하하 얼마든지요. 경력도 인정해드릴 수 있어요.”

맷은 클러비로만 20년 가까이 일한, 클러비계의 베테랑이다. 레이스에 있는 클러비들도 일을 잘하지만, 다운은 맷만큼 일을 잘하는 클러비를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이직하겠다면 두 손에 두 발까지 모두 들고 환영할 수 있었다.

“하하! 참고해두겠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걸어가다보니 어느새 VIP 룸에 도착했다.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왔네요.”

사실은 지루했다기보다는 맷 덕분에 편하게 올 수 있었다.

다운을 바라보는 양키스 직원들의 적대적인, 혹은 그리워하는 눈빛들을 신경쓰지 않아도 됐으니까.

“고마워요 맷.”

다운이 주머니에서 20달러 지폐를 꺼내자 맷이 손을 내저었다.

“이럴 필요 없어요 다운. 이건 그냥 내 호의로······”

“클러비가 일을 했으면 돈을 받아야죠 맷. 나중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요.”

의미심장한 다운의 말에 맷이 결국 20달러를 건네받았다.

다운은 맷에게 20달러 지폐와 그 아래에 명함을 깔아서 건넸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달러와는 다른 재질의 종이에 맷이 씨익 웃으며 주머니에 넣었다.

“20달러 잘 받았습니다. 그럼 전 이만!”

그렇지 않아도 최근 클러비들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아마 맷이 오면 해결이 될 것이다. 명함은 안겨줬으니, 생각이 있으면 연락이 올거다.

맷을 떠나보낸 다운이 VIP 룸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자 문을 지키고 있던 가드가 몸을 옆으로 비키며 문을 열었다.

그 역시도 다운이 아는 사람.

“고마워요 존.”

하지만 그는 맷과는 다르게 대꾸하지도, 표정을 달리하지도 않았다.

VIP 룸에 들어가자 화려하게 차려진 바,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요깃거리가 차려진 테이블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유일한 사람.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대런 스타인브레너가 눈을 찡그리고 있었다.

“바텐더는 어디 갔어?”

“내보냈죠. 어차피 다운도 저도 경기중에는 술 안마시잖아요. 비록 있는 공간은 다를지언정······”

“우리는 선수들과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서 함께 싸우고 있다.”

“그게 바로 다운이 저한테 알려줬던거잖아요. 혹시 변하신건 아니겠죠?”

“그럴리가.”

다운은 대런의 바로 옆 자리, 경기장이 한 눈에 내려보이는 바에 앉았다.

경기장 안에는 선수들이 나열해 국가를 듣고 있었다.

“친했던 선수들 많았잖아요. 인사는 나누셨습니까?”

“아니.”

그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다. 지금 양키스 쪽에 서있는 선수들의 절반 정도는 모두 자신이 뽑은, 그리고 자신을 거쳐왔던 선수들이니까.

하지만 그들과 인사를 나눈다고 달라질건 없었다.

“선수들이 아쉬워하겠네요. 아직도 다운을 좋아하는 선수들 많잖아요.”

“정말 관심이 있으면 앤드류처럼 개인적으로 연락오겠지.”

다운의 말에 대런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테이블을 두드렸다.

톡! 톡!

“저희 최고 선수랑 개인적인 연락이라······ 혹시 탬퍼링은 아니겠죠?”

그런 말을 하고는 곧바로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주먹으로 손바닥을 내리쳤다.

“아! 레이스는 켈리를 데려갈만한 돈이 없군요!”

시작부터 이런식으로 나오시겠다? 그러면 또 걸고 넘어질게 있다.

“우리 구단엔 네이트가 있어서 애초에 앤드류가 필요하지 않는걸 어떡하냐. 그나저나 너희 새 불펜 아직도 못구했던데.”

다임러 이야기가 나오자 여유롭던 대런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크윽!”

다임러는 가정폭력이 인정되어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다임러 측에서는 항소를 준비하고는 있다지만, 그가 현역 메이저리거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다임러 성격이 그렇게 안좋을줄은 누가 알았겠어. 그 빛나던 재능이 그런식으로 망가질줄이야. 자기 자신을 저렇게 망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말이지. 본인이 가장 손해본다는걸 몰랐을까? 아!”

다운은 대런이 했던것마냥 뭔가 깨달았다는듯이 손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가장 손해본 건 양키스인가?”

다임러를 얻기 위해서 선수를 세 명이나 써야했던, 그리고 한 번도 실제로 써본 적 없었던 양키스가 어찌보면 가장 손해를 봤다고 할 수 있었다.

어찌나 억울했는지 양키스는 곧바로 사무국에 트레이드 무효를 주장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운이 부임사를 하기도 전에 일어난 트레이드라 의도적으로 그를 보냈을거라는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제가 졌으니 그만하시죠.”

대런이 결국 백기를 들었다. 대런의 항복 이후 두 사람 사이에는 한동안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서로 안부를 물어볼 사이는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날을 세울 수 있는 사이도 아니었다.

둘 사이에 거래하는게 구단에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해야만 하는게 단장이라는 직책이었다.

불편은 하지만 결국 이야기는 해야하는 사이.

그게 바로 두 사람의 관계였다.

- 좌중간을 가르는 배리 브래넌의 타구! 3루에 있던 드마우스, 그리고 2루에 있던 마이어까지 홈으로 들어오네요.

- 오늘 레이스 선수들의 컨디션이 좋네요. 그에 비해 오늘 마운드를 책임지는 앤서니 브루어의 컨디션은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 지난 세 시즌 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올 시즌에 들어가기 전 4년 6000만 달러짜리 계약을 따내는데 성공했는데요, 두 경기 연속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질 못하네요.

먼저 정적을 깬 것은 다운이었다.

“브루어와 재계약은 왜 한거야?”

브루어는 다운이 마지막 시즌 데려왔던 선수. 그 당시에 딱 세 시즌만 쓰자며 데려왔던 친구였다.

“그 뒤로도 계속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니까요. 그리고 브루어는 슬로우 스타터 기질이 있는 친구라 추위가 풀리면 아직 시즌 초반이라 제 역할을 못하는거지, 조금만 지나면 자기 역할을 할 거라고 믿습니다.”

다운이 보기에는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지만, 대런이 잘되는 꼴을 보고싶지는 않았기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런이 누군가. 다운의 옆에서 3년을 붙어있었던 사람이다. 다운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것 정도는 표정만 봐도 눈치챌 수 있었다.

“다운의 생각은 다른가 보네요.”

“이번에는 예외라고 생각하는게 속편할거야.”

대런이 입버릇처럼 했던 소리가 바로 ‘이번에는 예외일 수도 있잖아요.’였다.

“그럴수도 있지만, 가능성은 30%밖에 안되지 않습니까?”

대런의 대답에 다운의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그걸 지금 써먹겠다고?”

다운의 판단이 거의 70%정도의 확률로 맞았기에 항상 대런에게 반박하듯 하던 말.

대런이 ‘예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다운이 했던 말이 바로 저 말이었다.

옛날 기억이 떠올랐는지 서로를 향해있던 두 사람의 표정이 한순간 살짝 풀어졌다. 하지만 이내 서로의 처지를 상기했는지 헛기침을 했다.

“크흠!”

“흠흠!”

괜히 민망해진 분위기 속에서 대런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다운. 제안할게 하나 있는데요.”

“뭔데. 트레이드?”

“미쳤어요?”

이미 양키스는 레이스와의 트레이드 한 번으로 엄청난 손해를 입었다.

그 한 번의 트레이드로 대런 역시도 잘 나가던 이미지에 엄청난 손상을 입었고. 그런 상황에서 다시 한 번 레이스와 딜을 한다?

“양키스 단장 자리 내려놓으라는 말을 고상하게 돌려하는 재주가 있네요.”

“그게 우리가 맨날 하는 일이잖아?”

대런은 어깨를 으쓱하는 다운을 얄밉다는 듯이 쏘아봤다.

“말이라도 못하면 진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대런이 말을 이었다.

“이번에 조니 로벨이 그쪽으로 이직했잖아요?”

“너희가 쫓아냈더만.”

“저도 제 사람들은 챙겨줘야 했으니까요. 그 능력이 아깝긴 했는데, 어쩔 수가 없었어요.”

“근데 왜.”

“로벨이 저랑 잘 맞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능력만큼은 좋았다는걸 인정합니다. 그리고 저희 스카우트들은 아직 그런 로벨을 따라가려면 멀었다는 것도 알고요.”

“그래서 하고싶은 말이 뭔데?”

“별건 아니고······”

대런의 입에서 말도 안되는 제안이 나왔다.

“미쳤어?”

< 33화 - 미쳤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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