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 내 손을 잡아 >
이야기는 일주일 전으로 돌아간다.
시범경기의 마지막 주차를 보내고 있던 다운에게 전력분석 파트장 프레드 케이지가 찾아왔다.
“단장님 혹시 이 선수 좀 봐주실 수 있습니까?”
“봐줄게요 프레드. 근데 제발 그 표정 좀 풀면 안될까요?”
평소에는 하하 거리면서 호인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자신의 일에 관련된 이야기만 하면 저렇게 표정을 싹 지우고 무표정으로 달려온다. 그럴때마다 무슨 전차를 마주보는 느낌이 든다.
“하하! 그게 마음대로 안되네요!”
잠깐 웃던 케이지는 곧 다시 얼굴을 굳히고 패드를 내밀었다.
“이 친구를 영입해줬으면 좋겠다는건가요?”
“저희 팀에 도움이 될 것 같은 놈입니다.”
그가 건네준 패드에는 170cm 정도 되어보이는 단신의 선수가 외야에서 수비하는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애스트로스 선수네요?”
“네. 애스트로스 트리플 A 소속 케일럽 윙클러입니다.”
짧은 영상이지만 타구 판단, 퍼스트 스텝, 스타트, 경로 설정까지. 수비는 완벽했다.
고무적인 건 외야 전 포지션에서 비슷한 수준의 수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깨가 조금 아쉽긴 하네요.”
유일한 단점이라고 하면 어깨였다. 송구가 쭉쭉 뻗어나가지 않는것으로 보았을때, 우익수를 보기에 강한 어깨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어깨 부상 이후로 송구능력이 많이 떨어졌다더라고요. 그래도 다른 능력치들이 좋아서 그렇게 눈에 띄는 단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이다. 적어도 수비 하나만 봤을 때는 메이저리그에서 뛸만한 수준이 된다.
“그런데 이 정도 선수는 우리 팜에도 있잖아요?”
당장 조니 로벨이 강력 추천한 루카스 페리시치라던가 말린스와의 딜을 통해서 데려온 프레드 올라루스만해도 외야에서 메이저리그 평균 이상의 수비를 보여줄 수 있는 선수들이었다.
“혹시 타격이 특출납니까?”
“아뇨.”
“다른 경기 영상도 있나요?”
방금까지는 한 경기의 영상이었다. 혹여 다른 영상에서 자신이 보지 못했던 장점이 나올 수도 있었다.
“넘기시면 됩니다.”
바로 옆으로 넘기니 다른 영상이 나왔다.
“이번에는 2루수네요?”
그뿐이 아니었다. 그 경기 영상에서 윙클러는 3루수와 유격수, 그리고 1루수까지도 맡았다. 그리고 각 포지션에서 견고한 수비를 보여주었다.
“괜찮네요.”
외야수라고 해서 외야 전 포지션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는 많지 않았다.
코너 외야수와 중견수가 수비하는 타구의 특징은 서로 다르고, 코너 외야끼리도 다른 타구들을 상대해야한다. 그리고 각자 생각하고 있어야 할 플레이가 달랐다.
그런데 지금 윙클러는 외야 전 포지션은 물론이고 내야 전 포지션에서도 꽤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여기서도 어깨가 별로 좋은 것 같다는 인상은 아닌데······’
3루수나 유격수와 같이 강한 어깨가 필요한 포지션에서 수비할때 그 사실이 더욱 두드러지긴 했다. 하지만 윙클러 본인도 그 사실을 인지하고는 있는지, 빠른 발과 좋은 퍼스트 스텝, 그리고 핸들링으로 최대한 그 단점을 커버하고 있었다.
“확실히 수비 센스가 있네요. 어깨 부상을 당하기 전에는 원래 유격수였나요?”
다운의 질문에 케이지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그럼 중견수?”
“틀렸습니다.”
“그 이외의 포지션으로 시작했는데도 전 포지션에서 저런 수비가 가능하다는게 의왼데요?”
보통 수비 센스가 좋은 선수들은 유격수나 중견수 출신이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래서 어디였나요?”
다운은 케이지의 입에서 나온 답에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포수였습니다.”
“네?”
내야와 외야에서 저런 수비를 보여주는 선수가 포수였다고?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대학까지 포수를 하다가 어깨수술을 받은 뒤 좌익수부터 시작해서 프로 지명 이후에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전 포지션을 다 익혔다고 하더라고요.”
케이지의 말에 다운의 표정이 흥미롭게 변했다.
“포수 출장 기록은 있나요?”
“마이너 통산 94경기 포수로 출장했습니다. 그 중에서 70경기 이상은 모두 경기 도중 교체였고요.”
“몇 살이죠?”
“25살입니다.”
“흐음······”
두어 포지션에서라도 저 정도의 수비만 보여줬다면 드래프트 이후 4년 동안이나 마이너에 박혀있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무려 전 포지션이다. 원래 포수였기 때문에 포수까지 가능한 그런 전 포지션. 이런 귀한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올라오지 못했던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공격이 안되나보네요.”
수비만 잘하는 선수는 마이너에 차고 넘친다. 전 포지션이 귀하다고는 하지만 내외야가 모두 가능한 선수 역시 각 팜마다 서너명은 있기 마련.
그럼에도 올라오지 못했다는 것으로 보았을 때 타격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컸다.
“우투수 공을 못칩니다.”
“우타자에요?”
“네.”
“그럼 좌투수를 상대로는요?”
“좌투수를 상대로도 잘 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의 성적을 보니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이 친구를 데려오자고요?”
“네.”
“이유는요?”
“몇몇 부분만 고친다면 적어도 2할 초중반은 치는 타자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혼자만의 의견이신가요?”
케이지의 강점은 세세하고 디테일한 비디오 분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선수의 플레이를 개선시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선수의 개선방향을 잘 보는 것은 거스 플래너건이 전문이었다.
“거스의 의견까지 받아왔습니다.”
케이지는 다운이 두 번 일할 필요 없게 거스의 의견서까지 받아왔다.
[프레드가 지적한 부분들을 수정하면 충분히 괜찮은 선수가 될 가능성은 있어보입니다. 2할 중후반은 충분히 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하지만 파워는 기대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사이즈가 너무 작습니다. 만약 최상의 상황대로 조정이 된다면 전 포지션이 가능한 스피드가 조금 있는 컨택형 똑딱이 정도가 되겠네요. 만약 애스트로스에서 너무 많은 대가를 요구한다면 패스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거스의 의견서를 읽은 다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스의 말은 메이저리그에서 2할 중후반 정도는 치게 만들수 있다는거죠?”
“네. 거스가 말하길 ‘분명 저 정도 공은 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놈인데 스윙이 왜 저러지?’라고 하더라고요.
“애스트로스에서도 분명 어딘가로 보낼 생각이 있어보인다더라고요.”
다운이 보기에도 그런 느낌이 있었다. 윙클러가 아무리 전 포지션이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시범경기에서 저렇게 여러 포지션을 돌려본 것은 조금 이상했다.
내부적으로 윙클러가 어떤 포지션에 가장 알맞은지를 테스트 해보는 느낌은 확실히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다른 구단들에게 선수를 팔아치우기 전에 쇼케이스를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마치
‘야! 이것 좀 봐봐! 얘 여기서도 이 정도로 뛸 수 있어!’
라고 소리치는 것 처럼 말이다.
“이번에 클릭 단장이 오면 한 번 이야기 나눠보도록 할게요.”
***
굳이 클릭이 먼저 떠보지 않았더라도 다운은 윙클러에 대한 문의를 해볼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먼저 이야기를 꺼내면 분명 클릭 쪽에서
“윙클러는 전 포지션이 가능한 선수라는거 아시죠? 타격이 좀 안되면 어떻습니까? 저렇게 수비를 잘하는데!”
라면서 가격을 띄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클릭이 먼저 접근한다?
‘그러면 이쪽에서 아쉬운 티를 낼 필요가 없지! 흐흐흐!’
계속해서 올라오는 웃음을 꾹꾹 눌러담은 다운이 짐짓 마음에 안든다는 표정을 지었다.
“멀티포지션이 가능한 선수가 있으면 분명 좋기는 하겠지만, 우리 팀에 필요한 선수는 아닌 것 같은데요.”
한 번 말을 쉰 다운이 웃으며 물었다.
“차라리 램키에 제가 몇 명을 더 얹어드릴테니 이안 프린스를 넘겨주시는건 어떠십니까?”
클릭은 램키를 포함해 유망주 몇 명 정도를 얻자고 애스트로스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프린스를 넘겨줄 정도의 멍청이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그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아예 이 제안을 없던 것으로 되돌리거나 혹은
‘한 명을 더 붙인 제안을 하거나.’
애초에 애스트로스 팜에는 램키와 같은 급의 유망주가 없다. 그래서 저렇게 가치를 높게 포장한 윙클러 같은 선수를 제안하는 것이고.
“저희 팀에 브라이언 앤더슨이 오기 전이었다면 모를까, 당장에는 엄청나게 필요한 선수라고 생각하기는 힘드네요.”
덤덤한 다운의 반응에 이제 급해진 쪽은 클릭이었다.
‘젠장 이게 아닌데······’
현재 애스트로스의 선수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지켜야하는 선수들을 제외하고는 괜찮은 유망주를 데려오기는 힘든 수준의 애매한 선수들 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니 클릭이 떠올린 것이 바로 레이스였다.
레이스에서 오래 있었던 만큼 레이스 선수들에 대한 사항은 하나하나 머리에 틀어박혀 있었다. 마치 다운이 양키스 팜에 있는 선수들을 잘 아는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클릭은 당장에 레이스가 쓰지 못할, 혹은 레이스에서 순위가 많이 밀려버린 선수들을 찾은 것이다.
워크에식이나 성격 같은 상세한 사항을 모르는 다른 구단의 유망주를 보다는, 어떤 선수인지를 확실히 아는 선수들을 데려오는 게 훨씬 성공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그 중에서 가장 높은 순위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애스트로스에서 가장 필요한 선수가 바로 데이비드 램키였다.
“그럼 저희 팜에 있는 다른 선수를 하나 추가해드리는 건 어떻겠습니까?”
선심쓰는 척 말하면서도 클릭은 속으로 ‘제발! 제발 한다고 해!’라고 되뇌었다.
하지만 다운의 고개는 위아래로 움직이는 대신 좌우로 저어졌다.
“윙클러는 분명 어느정도 관심이 가지만, 애스트로스 팜에서 다른 선수라······”
생각하는 척을 하고는 있지만 분명 저 놈은 머리에서 모든 것을 계산해놨을것이다.
“딱히 원하는 선수가 없네요.”
안타까운듯이 말했지만 그러지 않았다는걸 알고 있었다.
다운은 양키스에 있을 때 부터 저랬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얻어내면서 남이 원하는 것은 또 귀신같이 찾아내서 최대한의 이득을 뽑아먹는 자.
빌어먹을 다운은 그때도 지금처럼 자신이 던지는 미끼를 족족 피해나갔다. 그를 상대할때면 마치 마음을 읽는 악마를 상대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악마가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사악한 미소와 함께 어서 이 손을 잡으라며 흔들어댔다.
“추후지명으로 하고, 올 드래프트 3라운드 지명권으로 뽑는 선수. 저희에게 주시죠.”
기대치부터 성격, 배경까지 모든 것을 아는 램키냐.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3라운드 지명권으로 뽑는선수냐.
고민은 길지 않았다.
착!
클릭의 손이 악마의 손을 잡았다.
< 31화 - 내 손을 잡아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