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30화 (29/268)

< 30화 - 견뎌! >

라커룸에 갔다오니 어느덧 회의실에는 글라이드와 클라인, 거스만이 남아있었다.

“다른 친구들은요?”

다운의 질문에 리타가 사무적인 표정으로 대답했다.

“앤드류는 오늘 들어온 돈 다시 세어본다고 나갔고······”

하여간 러셀은 타고난 돈귀신이다.

“심슨은 어떤 선수 품목이 가장 많이 나갔는지를 알아본다면서 스토어에 갔습니다.”

매출을 올리고 마케팅을 하기 위한 포인트를 잡아내러 간 모양이다.

“크로포드는 경기 시작 전이 가장 바쁠거라면서 인포데스크를 직접 확인하러 나갔습니다.”

다들 개막전이라서 경기를 보고싶을텐데도 자신이 해야할 일은 잊지 않은 모양이다.

“애들은 좀 어때?”

글라이드가 어린아이와 같이 천진한 눈으로 다운에게 물었다. 이에 다운이 슥 웃으며 글라이드의 옆으로 다가갔다.

“여기 레이스 진성 팬이 계셨네. 그렇게 궁금해할거면 직접 갔다오지 그랬어요?”

“원래 팬은 팬으로 남을 때가 가장 아름다운 법이지.”

현자처럼 말하면서도 라커룸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어땠는지 빨리 말하지 않으면 혼쭐을 내주겠다는 글라이드의 표정에 다운은 재빨리 입을 움직였다.

“좋더라고요.”

“긴장은?”

“긴장할 틈도 없었어요. 라커룸에 배리 브래넌이 있는데 긴장은 무슨. 브래넌이 모자란건 머리 숱 밖에 없거든요.”

다운의 말에 옆에 있던 클라인이 발끈했다.

“거 신사답게 행동하십쇼 단장님.”

클라인의 모발 흔적으로 유추해 봤을때, 그 역시 탈모로 인해 머리를 밀고 다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안해요 피트.”

“조심하십쇼.”

앞으로 클라인 앞에서는 말을 조심해야겠다.

목을 쑥 집어넣는 다운을 보고는 글라이드가 낄낄거렸다.

“큭큭! 하여간 입이 문제야 입이!”

그렇게 말하는 글라이드의 머리에도 두피가 살짝 보인다.

“이제 곧 경기 시작하겠네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디가?”

“애스트로스 단장 만나러가야죠. 리타?”

리타는 손에 찬 시계를 한 번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정확히 23분 전부터 단장실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선수단이 원정을 나갈때는 보통 단장이나 부단장, 혹은 단장보좌가 동행하곤 했다.

애스트로스는 그 셋 중에서 단장인 제임스 클릭이 직접 행차했다. 개막 시리즈라는 타이틀 때문에 직접 발걸음을 옮긴 듯 했다.

뭐 그게 아니라도 클릭이 여기 다시 오고싶어하는 이유야 차고 넘쳤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역시

“제임스.”

“다운.”

“다시 트로피카나 필드의 개막 시리즈에 온 걸 환영합니다.”

바로 클릭이 2005년 인턴으로 시작해서 2017년부터는 부단장까지 오른 레이스 프런트계의 프랜차이즈 스타와도 같은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운이 양키스 단장이던 시절에도 그는 레이스의 부단장으로 있었다. 그래서 다운과도 어느정도 안면은 있었다.

클릭은 아련한, 그러나 씁쓸한 눈빛으로 관중석을 훑었다.

“관중들이 꽤 많네요. 혹시 몇 명 정도 됩니까?”

“15000명 정도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내가 있을때는 무슨 짓을 해도 더럽게 안늘었는데······”

씁쓸함이 묻어나오는 그의 말에 다운이 고개를 저었다.

“제임스와 에릭이 힘써줬던 것들이 기반이 되어서 이렇게까지 올 수 있었던거죠.”

“그렇게 말해주셔서 감사하네요.”

통통

클릭은 세월이 느껴지는 벽을 두드렸다.

“새 구장을 위해 알아보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그의 말에 다운의 눈이 좁아졌다.

“어디서 들으셨죠?”

아직까지 레이스에서도 몇 명밖에 모르는 이야기다.

‘혹여 레이스 내부 정보를 유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다운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클릭이 손을 내저었다.

“레이스 내부에서 얻은 정보는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죠. 그랬다면 이런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을겁니다.”

“하하. 그게 눈에 보였나보군요.”

“저였어도 그렇게 생각했을테니까요. 이 정보는 세인트피터스버그 시의원 중 하나에게 얻은 정보입니다.”

2018년 이버시티 신구장 계획을 추진했을 당시 부단장이 바로 클릭이다. 아마도 그 당시 만들었던 인맥에게 얻은 정보인 모양이다.

내부에서 샌 정보가 아니기도 하고, 치명적인 트레이드 정보 같은 것들이 아니기에 일단은 한결 편하게 이야기하기로 했다.

“별로 좋은 소리는 안했겠네요.”

“좋아할 수가 없죠. 세인트피터스버그에 있던 구단이 탬파에 넘어가는거니까요. 아마 기를 쓰고 막아댈겁니다. 그들의 방해를 어떻게 막아내느냐가 중요한 요소가 될겁니다.”

그리고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저희는 금액적인 부분에서 결국 밀리는 바람에 이버시티 이전에 실패했는데, 이번 구단주님께서는 전액 지원을 약속하셨다면서요?”

“네. 100% 저희 자본으로 할 예정입니다.”

“그러면 저쪽에서도 막기는 쉽지 않겠네요. 어서 새 구장을 보고싶네요. 그 구장 제 친구가 디자인했거든요.”

“정말입니까?”

“네. 제가 친구를 엄청 쪼아서 만들어낸 조감도죠. 이런거 넣어줘! 저건 빼줘! 이러면서 말이죠. 하하!”

“어쩐지 구단에서 원하는 요소들이 세세하게 들어있더라고요.”

구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경기는 3회 초까지 흘러갔다.

따아아악!

- 쳤습니다! 네이선 드레이크! 드레이크의 타구가! 멀리! 멀리! 그리고오오오오오오! 넘어갑니다!

홈런을 쳤음에도 그다지 시끄러워지지 않는 관중석.

- 올 시즌 레이스의 첫 홈런을 알리는 네이선 드레이크! 1루를 돌며 관중석에 키스를 날립니다!

와아아아아!

드레이크가 키스를 날리자 그제서야 반응하는 관중석.

그를 보며 클릭이 박수를 쳤다.

“역시 네이트는 끝내주네요.”

“그러고보니 네이트를 뽑을 때도 있으셨겠네요.”

클릭이 자부심 가득한 웃음을 지었다.

“타격이면 타격! 파워면 파워! 스피드! 수비! 어깨까지! 완벽한 5-툴 플레이어로 제가 뽑은 최고의 작품이죠.”

“덕분에 저희가 이득을 보고있네요. 이거 미안하게 됐네요.”

클릭은 순간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후후. 저희한테 넘겨주실 의향이 있으면 옳다구나 하고 데려갈 수 있는데······”

“알렉스 헤네시에 이안 프린스까지 넘겨주시면 딜 하죠.”

알렉스 헤네시는 애스트로스의 주전 3루수로 MVP까지 얻어낸 전적이 있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3루수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안 프린스는 현재 애스트로스 팜 1위이자 BA 유망주 랭킹 전체 6위에 올라있는 좌완 투수.

“저런~ 너무 비싸네요.”

살 생각도 없으면서 한 번 찔러본 주제에 상처받았다는 듯한 표정이 꽤나 가관이다.

그러면서도 슬그머니 다운의 눈치를 보는 듯한 그의 눈.

‘뭔가 원하는게 있는 것 같은데······’

농담을 하는 척 하지만 다운의 반응을 살피는 눈은 뭔가 노리는 것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적당한 미끼를 한 번 던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네이트는 저희 핵심 선수니까 비쌀 수 밖에 없죠. 적당한 선수에 대한 제안이라면 모를까, 네이트는 누굴 데려와도 안바꿀껍니다. 하하!”

다운은 적당한 선수는 가능하다는 말에 클릭의 눈이 반짝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시범경기에서 애스트로스 스카우터들을 좀 본 것 같은데······”

“스카우터들이 경기 자료를 수집하는건 항상 있는 일이죠.”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돌아가더라고요. 그게 누가 내려간 시점이었던 것 같은데······”

그러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마주친 두 쌍의 눈이 호선을 그렸다.

“그만할까요?”

“역시 다운은 다운이네요. 다 아시는 것 같은데 그러도록 하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클릭이 속을 내비쳤다.

“램키 안쓰시죠?”

데이비드 램키.

다운이 캠프에서도 오랫동안 지켜봤던 차기 2루수 자원이었다.

‘램키를 데려가려고 하는건가?’

램키에게 차기 주전 2루수로 그를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하긴 했다. 지난 시즌까지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우드먼이 레이스로 오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세드릭이 2루수 전환을 하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우드먼은 드레이크에 미치지 못함을 인정했다.

“드레이크보다 못하다는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백업으로 계속해서 해보겠습니다. 대신 2루수와 3루수 수비도 병행하겠습니다.”

자존심 상 말은 저렇게 했지만 대충 2루수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는지 최근 수비 훈련의 대부분을 2루수로 받아왔다.

드마우스가 갭 플레이어로 남아있는동안 우드먼이 완벽히 2루에 자리를 자리잡는다면, 램키에게 남는 자리는 오직 내야 백업밖에 없었다.

램키가 급성장을 하거나, 우드먼이 망한다면 모를까. 정상적인 상황에서 램키가 2루에 자리잡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램키에 관심이 있으신가봐요?”

“램키도 제가 뽑은 친구니까요.”

뭐 그런것도 있겠지만, 당장 애스트로스의 사정을 생각해본다면 램키에 관심이 있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주전 2루수인 호세 알바레즈의 나이가 32살. 올 시즌을 포함해서 내년이면 계약이 끝난다.

최근 5년간 계속해서 컨텐딩을 해왔던 애스트로스의 상황상 팜이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안 프린스를 제외하고는 팜 내에서 기대주로 내세울 만한 선수가 하나도 없었다.

애스트로스는 올 시즌부터는 컨텐딩이나 리툴링을 대신해서 리빌딩을 선언했지만 스토브리그에서의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정말 괜찮은 선수는 모두 FA로 빠져나갔다. 팀에 남은 선수는 알렉스 헤네시와 같이 지켜야하는 선수라던가, 고만고만한 선수들 뿐이었다.

“램키를 대신해서 주실 선수가 없는걸로 알고있는데요.”

따아아악!

- 록하트의 타구가! 타구가 뚝 떨어집니다! 떨어지는 타구를! 타구를!

드라이브가 걸려 휘어서 떨어지는 타구를 향해 중견수가 짧은 다리를 재빨리 놀린 뒤 몸을 날렸다.

촤아아악!

- 아······ 저걸 잡네요.

클릭은 방금 몸을 날린 그 중견수를 가리켰다.

“저 친구와 1:1 교환 어떠십니까?”

방금 엄청난 수비를 보여준 중견수의 이름은 케일럽 윙클러.

‘이번 시범경기부터 처음 올라온 루키였던가?’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저런 대담한 슈퍼플레이를 보이는 루키를 애스트로스가 보내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수비는 굉장하지만 타격이 안되는 선수.’

윙클러는 외야 뿐만 아니라 내야도 전부 볼 수 있다. 심지어 포수까지도 수비가 가능한 자원이다.

그럼에도 그가 지금까지 쓰이지 못한 이유. 그건 역시 타격 때문이었다.

트리플 A에서 우완 상대 타격이 1할도 못되는 타자. 그렇다고 좌완을 상대로 강한 것도 아니다. 좌완을 상대로는 2할을 조금 넘게 친다.

문제는 여기에다 더해서 작은 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파워조차 없다는 것이다. 파워가 특출나지 않아도 잘 맞으면 나오기 마련인게 홈런이다.

그런데 윙클러의 프로 통산 홈런은 0개다.

수비는 곧잘하지만 타격에서는 기대할 것이 없는 선수. 그게 바로 윙클러였다.

“로스터를 보니 케일럽과 같은 멀티 포지션 플레이어가 엄청나게 필요해 보이던데, 저런 선수는 흔하지 않아요. 심지어 서비스타임도 없죠. 나이가 25살로 조금 많긴 하지만 레이스에게 나쁜 선수는 아닐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운은 그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25세에서 31세까지 수비 원툴로 싸게 써먹을 수 있는 선수. 연봉조정 년차가 되더라도 그의 연봉은 크지 않을 것이다.

분명 레이스가 써먹기에는 좋은 선수가 될 터.

하지만 다운은 필사적으로 한 가지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웃으면 안돼! 견뎌!’

< 30화 - 견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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