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29화 (28/268)

< 29화 - 파티다! >

2022년 3월 31일

레이스의 첫 경기 상대는 지난 시즌 AL 서부지구 1위를 차지했던 휴스턴 애스트로스.

개막전, 그것도 홈 개막 시리즈를 치르는 팀의 프런트는 정신이 없기 마련이었다.

“티케팅 부스 한 명 더 지원해주세요!”

“매점도 지원 필요해요!”

“지금 놀고있는 클러비 보내줘요! 시급? 준다고 그래!”

“검표에 인원 부족합니다! 파트장님! 거기 있지말고 좀 도와주세요!”

개막시리즈만큼은 프런트와 구장에 관련된 모든 직원들이 나와서 도왔다. 겨우내 억눌려있던 수많은 야구팬들이 경기를 보고, 매점에서 뭔가를 먹고 즐기고 마시기에 구장 내 어느곳에서든 인력이 부족하기 마련이었다.

분명 그래야하는데······

“개막 시리즈가 이렇게 한가해도 되는건가······?”

다운이 허망한 얼굴로 드문드문 비어있는 관중석을 바라봤다.

다운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정도로 개막시리즈는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다운의 옆에서 창밖을 내다보던 글라이드는 무슨소리냐는듯이 물었다.

“그래도 꽤 많이 온 거 아닌가?”

지난 시즌 레이스의 평균 관중은 1만 명이 채 안됐다.

정확히는 9293명의 관중들이 평균적으로 트로피카나 필드를 찾아주었다.

“오늘 관중이 몇 명이라고?”

“계속해서 올라가고는 있는데, 지금 시점에서 트로피카나 필드 안에 입장한 관중들은 총 14983명입니다.”

15000명도 되지 않을 줄이야.

“이 정도로 심각할줄이야······”

아무리 관중이 적다고 하지만 개막시리즈, 그것도 홈 개막전에서 고작 25000석 밖에 안되는 관중석도 꽉 못 채울 정도.

아니 많이 양보해서 2만 석도 못 채울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더 고용할 필요가 없다니까요.”

양키스 시절을 생각했던 다운은 추가로 파트타이머들을 더 고용하자고 했지만, 클라인과 러셀의 반대로 그러지 않았었다.

만약 그들의 조언을 받지 않았더라면 생돈만 날릴 뻔 했다.

“그래도 지난 시즌 개막전보다는 많이 왔네요. 흐흐흐! 올해에는 조금 더 수익을 기대해봐도 되겠습니다.”

경기시작 30분 전이다.

대부분의 팬들이 경기 시작 1시간 전부터 미리 와서 매점에서 주전부리를 사들고 좌석으로 향한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15000명 정도가 최대치일 것이다.

고작 15000여명의 관중에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웃는 러셀에게 다운이 물었다.

“지난 시즌 개막전은 몇 명이나 왔는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제 기억에는 11000명이 조금 넘었었습니다. 흐흐!”

“어, 엄청 많이 늘었네요. 하.하.하······”

무려 4000명이나 늘었다.

“이번 시즌에 유망주들이 대거 올라왔잖습니까. 그래서 그런게 아닐까요?”

클라인의 말에 글라이드 역시 만족스럽게 허허 웃었다.

“지난 시즌 말에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친구들이 대거 주전을 맡을 예정이니까 그만큼 기대치가 올라간거지 하하! 시작부터 4천명이나 늘다니! 우리 프런트가 일을 참 잘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구만! 하하하!”

분명 기뻐야 하는데······

분명 기쁜게 맞는데······

매 경기마다 평균 25000명 정도가 들어오던 양키스에 있다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들처럼 저렇게 순수하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당장 기쁘지 않다고 해서 좋은 분위기와 사기를 굳이 망칠 필요는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굳어있었을지도 모르는 표정을 체크한 다운은 곧바로 미소지으며 말했다.

“플러스 4000명. 이게 시작입니다. 최대한 이 숫자를 유지하는게 이번 시즌 저희가 해야할 일입니다. 올 시즌은 평균 1만은 무조건 넘겨보자고요.”

첫 날부터 무려 4000명이 늘어나는 고무적인 성과를 봐서인지 파트장들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잘해봅시다!”

“목표는 1만 이상!”

“우오오오!”

화기애애한 파트장들을 뒤로하고 다운이 자켓을 챙겼다.

“저는 라커룸 좀 다녀오겠습니다.”

경기 전 선수들을 만나보기 위해서는 지금 움직여야했다.

“어스······”

평소와 같이 어스틴이라고 부르려던 다운은 곧 주변에 파트장들이 있다는 것을 보고 말을 바꿨다.

“구단주님. 진짜 안가실겁니까?”

글라이드가 고개를 저었다.

“난 안가. 아까 말했잖아. 내가 가면 선수들이 오히려 불편해할거야.”

글라이드의 생각이 그렇다면 더 이상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그럼 갔다오겠습니다.”

다운은 회의실을 나서 라커룸으로 걸음을 옮겼다.

라커룸 앞에는 혹시나 인터뷰를 딸 수 있을까 몰라 대기하고 있는 기자들 두 명이 벽에 기대 앉아있었다.

다운을 확인한 그들은 앉은자리에서 일어나 호다닥 뛰어왔다.

“단장님! 혹시 인터뷰를······”

“자, 잠깐 한 마디만 해주실 수 있을까요?”

달려드는 그들에게 다운이 피식 웃었다.

“두 분 다 입사 첫해시죠?”

다운의 말에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네.”

“혹시 선배들이 여기서 화장실 가는 선수들한테 한 마디 인터뷰라도 얻어오라고 시키던가요?”

“근데 어떻게······”

어떻게 알아봤냐는 그들의 질문에 다운이 피식 웃었다.

“경기를 끝내고 라커룸에서 샤워도 하고 나오는데 화장실이 없겠어요?”

“아!”

“그렇네?”

선배들이 그들을 놀리기 위해서 그런말을 했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린 그들은 벌개진 얼굴을 부여잡고 달려왔던 속도의 배는 되는 속도로 사라졌다.

“일부러 놔뒀죠 잭.”

다운의 말에 라커룸 정문을 지키는 경비 잭이 픽 웃었다.

“귀엽지 않습니까?”

“그렇긴하죠.”

잭은 카드를 찍어 라커룸 잠금을 해제했다. 그리고 다운이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텄다.

‘얘들은 어떤 모습으로 있으려나······’

양키스에 있을 때 경기 전 라커룸에 가면 개판도 그런 개판이 없었다.

“흠~ 흠흠~”

노이즈캔슬링 헤드셋을 끼고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선수가 있는가하면

“내가 최고다! 나는 오늘도 안타를 칠 거다!”

배트를 휘두르며 자기최면을 거는 놈도 있었다.

“좋아! 이 플레이가 딱이야! 오늘은 너다!”

자기 하이라이트를 보면서 오늘 할 플레이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하는 선수도 있었다.

심지어는

“레이즈!”

“콜!”

“난 다이.”

경기에 들어가기 전에 긴장을 풀어야한다며 포커를 치고 있는 선수들까지 있었다.

양키스의 규율이 엄하다고는 하지만, 경기를 앞둔 선수들 각자의 루틴까지 침해하지는 않았다.

워낙에 개성 강한 선수들이 모여있는데다가, 브래넌이 나간 이후 리더를 자처하는 선수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저런 개판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과연 이 문안에는 어떤 개판이 자신을 맞아줄 것인가?’를 생각하며 문을 열었다.

그리고 다운은 눈앞에 펼쳐진 생소한 광경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이게 뭐지?’

라커룸에 있는 모든 선수들의 눈이 그들 중 유일하게 서 있는 사람인 브래넌을 향해 있었다.

“······했었지.”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어떡하긴. 이번 파티가 끝나면 만날 건덕지가 없을수도 있잖아? 그때 남자가 해야할 행동은 하나잖아. 안그래? 저 쪽에 있는 그녀를 향해서······”

“오오오오오!”

선수들은 배리 브래넌을 향해 있고, 브래넌은 뭔가를 말하다 멈췄다.

이 상황으로 추측해보건데, 브래넌이 그들에게 뭔가를 말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다운은 슬며시 아직까지 열려있는 문틈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익살스러운 표정과 함께 브래넌에게 물었다.

“바빠? 나갈까?”

다운의 익살스런 장난에 굳어있던 선수들의 얼굴이 웃음과 함께 풀렸다. 다운의 장난에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던 브래넌은 안면을 바꾸어 맞장구를 쳤다.

“제가 어떻게 그러겠습니까? 들어오시죠 단장님.”

“내가 있어야 할 분위기가 아닌 것 같던데?”

“에헤이~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브래넌의 손에 이끌려 온 다운이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이야기 중이었어?”

“별거 아니었어. 오늘 관중이 많아서인지 애들이 좀 얼었더라고. 그래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좀 해주고 있었지.”

확실히 리더 역할을 해주는 베테랑이 있으니까 클럽하우스의 분위기가 다르다.

“그럴만도 하지.”

특히나 서브로 메이저리그 데뷔를 하게 된 루카스 페리시치라던가 서브도 아니고 빅리그 데뷔전을 갖게 된 덕 흘로첵 같은 친구들은 더더욱 얼어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 중이었는데?”

“내 와이프랑 만나게 된 이야기.”

브래넌의 와이프는 꽤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다. 어쩐지 선수들이 흥미진진하게 듣더라니······

“근데 그런 이야기 술 들어가야지 하는거 아니었어?”

선수들끼리, 혹은 단장에게 개인사를 말하는 선수는 많았다. 브래넌 역시 마찬가지. 하루 웬종일 붙어있는데 서로에 대해서 모르는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 중에서 브래넌은 이렇게 공개된 자리에서 여럿 앞에 나서서 하지는 않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그런 브래넌이 저렇게 사람들 앞에 나서서 이야기를 한다? 쉽게 보기 힘든 일이었다.

“해보니 재밌더라고.”

아마 레이스에 와서는 이런 스타일을 고수하는 모양이다.

“그거 말고 다른 이야기 해주지 그랬냐? 연예계 뒷이야기 그런거 얘네한테 말해주면 뻑 갈텐데. 특히 그 헨더슨 비하인드 스토리 있잖아.”

“아. 그 이야기 시작하면 얘네 오늘 경기 못해. 중간에 끊어질게 분명한데 궁금해서 경기에 집중이나 되겠어?”

두 사람의 이야기에 선수들이 귀를 더 쫑긋 세웠다.

궁금해하는 그들의 표정을 본 다운이 씨익 웃었다.

“미안하지만 이 이야기는 다음에 배리한테 듣도록 해.”

“우우우우!”

어린 선수들이 많아서 그런지 확실히 리액션의 강도가 양키스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다운은 웃으며 검지를 입에 가져다댔다.

“긴장도 살짝 풀어졌겠다, 이제 힘이 되는 이야기를 좀 해줄까 하는데······”

마치 말 잘듣는 아이들로 가득한 반의 선생님이 된 기분이다.

이래서 브래넌이 애들 앞에서 말을 많이 하는 건가?

“오늘 관중이 꽤 많지 않았어?”

역시나 관중 이야기를 하니 한 놈이 곧바로 반응한다.

“오늘 대강 눈대중으로 짐작해보니 15000명 정도 되는 것 같던데요.”

타고난 관종은 역시 달라도 뭔가 다르다. 그걸 눈대중으로 계산하다니. 그럼 혹시······

“작년 홈 개막 시리즈 관중도 기억해?”

“네. 대강 11000명 조금 넘었던 것 같은데요?”

이 놈은 진짜다.

드레이크의 경악할만한 관중파악능력에 혀를 내두르며 말을 이었다.

“맞아. 작년에 비해 4000명이나 늘었다. 이게 뭘 뜻하는거겠어? 너희 플레이를 보고 즐기기 위해서 이만큼이나 많은 관중들이 와준거야.”

일부러 다운은 ‘기대’라는 단어 대신에 ‘보고 즐긴다’라는 표현을 썼다.

기대한다는 말에는 부담을 느끼기 쉽다. 하지만 즐긴다는 말에서 부담을 느끼기는 쉽지 않았다.

다운의 디테일한 표현이 먹혀들었는지 선수들의 얼굴에서는 부담을 받았다는 느낌은 전혀 묻어나오지 않았다.

“그럼 너희가 해줘야할 건 뭐겠어?”

다운은 현 상황에서 가장 좋은 답을 줄 드레이크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드레이크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은 답을 힘차게 외쳤다.

“가서 화려한 플레이로 즐기면 되는거 아닙니까? 가자 친구들! 파티다!”

< 29화 - 파티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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