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우리 2루수는 너 하나야 >
갑작스럽게 계약해지 소식을 들은 카브레라와 그 에이전시는 당연히 발칵 뒤집어졌다.
“아니 단장님! 지금 갑자기 계약해지라뇨? 시범경기가 코앞인데요?”
“계약된 연봉은 그대로 지급할테니 걱정하지마세요.”
“지금 연봉이 문제입니까? 지금 계약이 끊어지면 저희 헤수스는 어떻게 합니까?”
카브레라 역시 에이전트의 말에 격하게 동의하며 역성을 냈다.
“맞습니다 단장님! 지금 당장 다른 팀 구하기도 힘들다는거 아시잖습니까?”
그의 반응에 다운이 냉소적으로 웃었다.
“하! 다른 단장들이 미쳤습니까?”
“네? 그게 무슨······”
다운은 그에 대한 대답 대신 조목조목 카브레라의 문제를 짚었다.
“지난 시즌에 비해 살이 쪄서 컨택도 안되고 1루 수비도 낙제점이라죠?”
“그건 파워를 증가시키기 위해······”
“그것도 컨택이 되어야 되는 말이죠.”
“적응이 조금 되면 해결될 문제입니다! 그리고 수비는 이제 나이가 있는만큼 지명타자 자리로······”
“그러면 더더욱 우리 팀과는 맞지 않네요. 우리 팀에는 수비가 가능한 1루수가 필요하지 지명타자가 필요한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나이로 따지자면 배리가 지명타자로 더 어울리지 않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커리어 내내 1루수만 보던 당신보다는 포수를 봤던 브래넌의 무릎이 더 좋지 못할 것 같은데요?”
말을 하다보니 열이 더 뻗치는 느낌이다.
“헤수스.”
“······네.”
“다른 팀이 당신을 원하지 않을거라는걸 알고있죠?”
다운의 말에 카브레라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데도 왜 우리 팀은 당신을 원할거라고 생각한거죠? 실력이 안되면 배리나 케빈처럼 유망주들에게 좋은 영향이라도 미치던가. 맨날 술만 먹고 다니는데, 유망주가 많은 저희 팀이 그냥 내버려둘거라고 생각했습니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속으로 은퇴할 생각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는건 여지없는 사실이었으니까.
“단장님. 마지막으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쇼. 이런 식으로 은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선택해서 은퇴를 하는 것도 아니고 메이저리그에서 쓸모가 없어져서 사라져야하는 은퇴는 원하지 않았다.
“단장님 입장에서도 제가 부활해서 트레이드 카드로 쓰이거나, 팀에 도움이 되는게 더 좋지 않겠습니까?”
분명 그게 더 좋긴하다. 어차피 500만 달러를 줄거면 조금이라도 그 부담을 줄이거나, 그만한 가치의 활약을 받는 것이 도움이되니까.
하지만 다운의 마음을 되돌리기에는 늦었다.
그러려면 넬슨 페레즈는 건들지 말았어야지.
“제 입장에서는 당신이 당장 사라져서 유망주들의 앞길에 방해가 되지 않는게 가장 좋습니다. 그러니 선택하시죠.”
다운이 상호계약해지 합의서를 내밀었다.
“방출입니까, 상호계약해지입니까?”
***
똑똑!
“단장님. 데이비드 램키 왔습니다.”
“들여보내세요.”
리타의 인도와 함께 데이비드 램키라는 선수가 쭈뼛거리며 단장실로 들어왔다.
직접 단장과 대면하는 일이 없어서여서인지, 성격이 원래 그런건지. 혹은 지금 여기 불려온 이유를 알고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램키는 말을 더듬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데, 데이비드 램키입니다.”
“그래 데이비드. 전에 한 번 인사했지?”
“네······ 펑고할때······”
“그래. 우선 앉아볼까?”
자리에 램키가 앉을 타이밍에 맞춰 리타가 홍차 두 잔을 들고 들어왔다.
“고마워 리타. 한 잔 마셔 데이비드. 꽤 비싼 홍차야. 거기에 리타의 뛰어난 차 솜씨까지 더해져서 깔끔한 맛을 자랑하지.”
“아 네.”
따뜻한 차는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홍차를 한 모금 마신 램키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내가 널 부른 이유는 알고있을거야.”
다운의 말에 램키의 표정이 다시 굳었다. 다운이 그를 부를만한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강등인가요?”
“그래.”
시범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다운이 하는 가장 큰 업무는 역시나 유망주들을 내려보내는 일이었다.
사실 내려보내는 것 자체는 큰 일이 아니었다.
그냥 코치가 슥 가서
“짐 싸서 마이너 캠프로 내려가라.”
라고 말하면 끝나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다운은 그렇게 처리하지 않았다.
‘미리미리 구단에서 관리하고 케어해준다는 느낌을 줘야돼.’
특히나 이런 스몰마켓 구단에서는 더더욱 이런 느낌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들 중 어떤 선수가 성공할지 알 수 없다. 그러니 나중에 확 떴을때를 대비해서라도 미리미리 좋은 인상을 줘놓는 것이다.
“예상은 했겠지만 내일부터 마이너 시범경기에서 뛰게될거야.”
강등은 이미 예상했다. 램키는 아직까지 트리플 A를 밟아보지 못했다. 유망주들에게 모든 레벨을 밟게 만드는 레이스의 특성상, 메이저리그에 바로 콜업된다는 건 당연히 기대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건 어디로 떨어지느냐다.
“레벨은요······?”
지금 배정되는 레벨에서 시즌 개막을 맞이하게 될 확률이 높았다. 그런만큼 어떤 레벨로 강등되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더블 A.”
짧은 두 단어에 램키의 고개가 팍 꺾였다.
램키는 지난 시즌에도 더블 A 소속이었다. 이미 먼저 내려간 드래프트 동기들은 트리플 A에도 배정되었다. 그래서 램키는 최소 트리플 A에서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올 시즌 역시 더블 A에서 시작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으니 의욕이 꺾일 수 밖에.
다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패드를 들고 램키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잠깐 옆에 앉아도 될까?”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단장이 옆에 앉겠다는데 거절할 유망주는 없었다.
“네.”
램키의 허락에 다운은 그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더블 A로 간다고해서 이번 시즌 너에 대한 기대치가 없다는 건 아냐.”
그리고 패드의 화면을 보여주었다.
“이게 우리 구단이 너에 대해 평가하고 있는 지표야.”
Con : 50
Pow : 55
Spd : 65
Arm : 50
Fld : 55
총평 : 전체적으로 봤을 때, 평균 이상의 내야수가 될 자질이 충분함.
“네 잠재력이 이 정도는 된다고 스카우트와 코칭스태프들이 평가하고 있는거지. 당장 트리플 A로 배정된 네 친구들보다 네가 떨어지는 실력을 가졌다고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아.”
“그러면 제가 더블 A로 배정된 이유가 있을까요?”
“그 이유를 설명해주기 위해서 내가 널 부른거지.”
다운은 곧바로 페이지를 넘겼다.
“우선 우리는 널 유격수로 보고있지 않아.”
“그건 알고 있어요.”
레이스에는 자신보다 한 해 먼저 드래프트 된 네이선 드레이크가 있었다. 스타성에 실력까지 완벽하게 갖춘 드레이크가 있는 한, 메이저리그 승격을 위해서는 유격수 자리를 포기해야만 했다.
“우리는 네가 만능 내야. 혹은 주전 2루수로 성장할 재목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램키도 알고있었다. 구단이 자신에게 2루수로 기대를 가지고 있다는걸. 코치들이 하나같이 2루수로 완전히 노선을 트는게 어떠냐고 물어보는데 모를리가 있나.
그럼에도 유격수 자리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드레이크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네이트는 넘을 수 없어.’
1년 반 정도 만에 다시 같은 팀에서 뛰게 된 드레이크는 더블 A에서 함께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선수가 되어있었다.
더는 따라잡을 엄두도 나지않는 그런 엄청난 선수가 말이다. 그때는 인정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납득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번 스프링 트레이닝에서는 군말없이 2루수로 나서기도 했다.
“2루수로 포지션을 변경하면 트리플 A에 넣어주실 건가요?”
“아니. 2루수 자리에 적응해야지.”
“당장 트리플 A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데요?”
“그럴수도 있겠지. 하지만 더블 A에서는 타격에 크게 신경쓸 필요가 없잖아?”
이미 램키의 타격은 더블 A급을 넘어섰다. 거스가 보장했으니 이 부분은 넘어가도 될 것이다.
“트리플 A에 올라가면 분명 타격과 수비에 모두 신경을 써야할거야. 하지만 더블 A에 머물면 타격성적은 신경쓰지 않아도 돼.”
“1할이어도요?”
“네가 아무리 못해도 그 이상을 칠거라고 예상하고 있어. 그러니 널 더블 A로 보내서 2루수 자리에 적응하는데에 모든 신경을 쓸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거지.”
“그런 배려는······”
필요없고, 원하지도 않는다고 말하려는 램키의 입을 다운이 막았다.
“네 생각보다 고쳐야 할게 많아.”
다음 장을 넘기자 동영상들이 준비되어있었다.
“네가 이번 시즌 2루수로 뛸 때의 문제점들을, 그것도 여러번 보여줬던 상황만 모은 것들이야. 지금 이 상황을 보면······”
2루수가 들어가야 할 백업이 늦었던 장면, 유격수자리에서와 다른 판단을 했으면 더 좋았을 장면, 다른 2루수들과는 다르게 불편한 자세로 송구를 하며 에러를 냈던 장면까지.
“네가 봐도 이상하지 않아?”
“······ 그렇네요.”
플레이할때는 몰랐지만, 당장에 램키 자신이 보더라도 2루수치고는 위화감이 드는 장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이건 우리 영상 전문가들이 말한건데 네가 2루에 있을때는 꼭 스타트가······”
램키가 2루에 있으면서 실수했던 모든 영상을 보며 다운은 세세한 피드백을 주었다.
“트리플 A에서 타격까지 신경쓰면서 이런 부분을까지 다 고칠 수 있겠어?”
“······ 아니요.”
“더블 A에서 이 점들을 고치는데 주력해. 타격은 몰라도 수비에서 이런 부분들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널 절대로 트리플 A로 올리지 않을거야.”
유망주들에게 메이저리그 콜업 전, 모든 단계를 필수적으로 거치게하는 레이스의 시스템 특성을 생각해 본다면 다운의 말은
“방금 말한 것들을 고치기 전까지는 메이저리그 콜업은 생각도 하지 마!”
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게 없었다.
하지만 한 마디만 다르게 말하면 뉘앙스는 달라진다.
“하지만 만약 트리플 A에만 올라온다면······?”
뒤는 말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만 고치면 충분히 메이저리그 콜업까지 생각해 볼 수 있어.”
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다는걸 램키도 알아먹었다.
올라갈 수 있는 길이 보이자 램키의 표정도 같이 밝아졌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래. 앞으로도 기대하고 있을게. 우리 2루수는 너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최선을 다해줘.”
“네!”
“차는 마저 마시고 가. 그거 비싼거야.”
잠시 후 차를 모두 마신 램키는 단장실로 들어올때와는 다르게 한층 당당한 발걸음으로 방을 나설 수 있었다.
찻잔을 치우러 나온 리타가 다운의 잔이 남아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단장님 오늘 우유 안넣으셨네요?”
다운은 보통 우유를 넣어마시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같이 나간 우유가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또 마셔야하니까.”
30분 뒤
다운은 다른 선수와의 면담을 마쳤다.
“우리 2루수는 너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최선을 다해줘. 알겠지?”
“네! 단장님! 조금만 기다려주십쇼!”
< 27화 - 우리 2루수는 너 하나야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