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 시즌준비(2) >
서비스타임을 관리하는 일은 대부분의 단장들, 더 나아가서는 구단들이 엄청나게 신경을 쓰는 부분 중 하나였다.
넉넉잡아 두 달 정도만 늦게 데뷔시키면 FA 획득일을 1년을 늦출 수 있게 된다.
구단 입장에서는 욕 먹을 각오하고. 그리고 선수의 감정이 조금은 상할 것 역시 감수하면서 눈 딱 감고 두 달 정도 데뷔를 미루는 것만으로도 뛰어난 유망주를 7년 가량 쓸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고민중이에요.”
다운 역시 유망주들의 데뷔를 늦춘 적이 있었다. 1년이라도 더 오래 양키스에 잡아두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그 여파는 좋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어떤 이유를 말하더라도 선수의 감정은 상할 수 밖에는 없었다. 게다가 그렇게 써먹은 선수가 구단에 남는 경우도 거의 본 적이 없었다.
“만약 사무엘을 개막로스터에 넣는다면 팀에 도움이 됩니까?”
다운의 질문에 벨리츠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도움이 됩니다. 구단에 있는 다른 포수 자원들과 비교를 해봐도 가장 앞서있는게 사무엘입니다. 빅리그에 적응할 시간만 조금 주신다면······”
찬성의 의견이 있으면 그 반대 의견도 있는 법.
“저는 반대입니다. 두 달만 참으시죠.”
반대표를 던진 사람은 러셀.
“슈퍼2 조항을 생각하셔야죠 단장님.”
슈퍼2 조항은 서비스타임을 조정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서비스 타임 3년까지는 구단이 주는 연봉을 받아야한다. 이 규정 때문에 다른 선수들은 비교도 안될 정도의 엄청난 성적을 거두고도 100만 달러 정도의 연봉만 받는 선수가 생기게 되었다.
저년차에 활약하는 선수들이 많아짐에 따라 점점 이 경우에 해당하는 선수가 늘어나자, 2년 이상 3년 미만을 뛴 메이저리거들 중에서 등록일수 상위 22%에게는 연봉조정 신청자격을 주는 슈퍼2 조항이 생기게 된 것이다.
“비어만이 정말로 그 정도로 뛰어난 선수라면 무조건 슈퍼2 조항에 해당될겁니다.”
러셀의 말에 벨리츠가 곧바로 반박했다.
“너무 돈에만 연연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앤드류 잘 생각해봐. 사무엘은 네이트에 비견될 정도의 슈퍼스타가 될 자질이 있다고. 네이트가 히스패닉 계열 친구들을 끌어모을 스타라면, 사무엘은 백인층을 끌어당길 매력이 있는 선수야.”
“물론 그럴 가능성은 충분한 선수지. 나도 알아. 하지만 우리는 돈이 없어.”
러셀은 다운에게 다시 고개를 돌렸다.
“만약 에디가 말하는 것처럼 정말 비어만이 뛰어난 선수라면, 연봉조정 1년차부터 200~300만 달러는 써야겠죠. 그 다음부터는 500만 달러, 1000만 달러, 어쩌면 2000만 달러까지도 올라갈지도 모릅니다. 저희 구단으로는 4년이나 비어만이라는 거물의 연봉을 지급할 방법이 없습니다 단장님.”
메이저리그에서는 적어도 6년간은 매 년 전 년도 연봉 이상의 계약을 해야한다. 비어만 정도의 재능이라면 4년간의 연봉조정 기간동안 금액이 오르는 폭 역시 기하급수적일 터.
“비어만을 계속해서 쓰고싶다면 마이어와 브래넌의 계약이 종료되는 3~4년 뒤까지는 연봉조정을 미뤄야합니다. 당연히 콜업도 그에 맞게 미뤄져야겠죠.”
정답이 없는 선택이다. 각자의 장단점이 있으니까.
“일단 2주 정도만 써보도록 하죠. 윌슨이랑 적당히 반반정도로 써주세요. 중간중간에 마틴 넣어서 써드 캐쳐에 대한 대비도 해두고요. 어떻게 할지에 대한 결정은 그 때 하도록하죠.”
“알겠습니다.”
“어차피 시간은 남았으니 그러시죠.”
벨리츠는 2주만 지나면 다운이 비어만을 남길 것이라고 굳게 믿고있는 눈치였다.
그와는 반대로 러셀은 다운이 어떻게든 자신의 조언처럼 서비스타임을 조정할 것이라는 것을 믿고 있었다.
어떻게 될지는 2주 뒤에 결정될 것이다.
“다음은 1루인데······”
1루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벨리츠의 얼굴이 팍 찌푸려졌다. 비어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다.
“헤수스 카브레라 그 놈이 문제입니다.”
브래넌이나 마이어와 같이 유망주들이나 팀메이트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베테랑들이 있는가하면, 좋지 못한 영향을 주는 베테랑들도 있기 마련이다.
헤수스 카브레라가 바로 그런 선수 중 하나였다.
브래넌은 자존심이 강하긴 하지만 언제나 더 잘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선수고, 마이어는 한결같이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였다.
하지만 카브레라는 달랐다.
“내가 예전에는 말이야!”
2년 연속으로 3할 30홈런을 때려냈었던, 5년 전 전성기를 우려먹으며 루키들을 휘어잡으려는 몰락한 올스타. 어쩌면 2년 간의 짧은 플루크 시즌을 보냈었을지도 모르는 선수.
그게 바로 카브레라였다.
다운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몸도 제대로 안만들어 오더니······”
카브레라는 신년파티에 엄청나게 불어난 몸으로 다운을 놀라게했다.
“하하하! 오프시즌에는 먹고 마시고 즐겨야죠! 나중에 시즌 들어갈때는 다시 뺄겁니다!”
그 당시만해도 다운은 별말 하지 않았다. 야구라는 스포츠, 그것도 1루수나 지명타자를 맡는 선수들 중에서 뚱뚱한 선수가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때보다도 20kg 정도는 더 불어난 체중으로 스프링 트레이닝에 나타난 카브레라를 보고는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분명 시즌 들어갈때는 몸을 만든다고 하지 않았나요?”
“이번 시즌에는 파워에 조금 더 집중하기 위해서······”
끓어오르는 화를 눌러담으며 다운은 애써 납득했다.
‘그래. 원래 웨이트 전에 살을 찌워야 더 근육이 잘 붙으니까······ 그럴 수 있지. 그래그래.’
2주가 지나고 시범경기에 들어가는 지금은 어떨까?
“아직도 몸은 그 모양입니까?”
다운의 말에 벨리츠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생각도 없어보이더군요.”
“폼은요?”
“최악이죠. 제대로 맞추면 넘어가기는 합니다만, 컨택이 절망적입니다.”
그 상태로 잘 치면 뭐라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도 아닌 모양이었다.
“짐이 왼손으로 라이브 피칭을 해도 10번 중에 한 번을 칠까말까입니다.”
왼손 사이드로 80마일이 겨우 넘는 공이 들어오는데도 타율이 1할이 안된다? 그것도 팀 내 어지간한 우타자들은 그냥 갖다만 대면 내야를 넘긴다는 토머슨의 왼손을 상대로?
“심각한데······”
회의장 내 모든 사람들이 ‘이건 아닌데?’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매일 훈련일정이 끝나면 술을 마시러 다니고 포트마이어스 시내로 놀러나가더군요. 훈련장에 있는 시간보다 술집에 있는 시간이 훨씬 길답니다.”
벨리츠의 말에 러셀이 인상을 썼다.
“야구도 못하는 놈이 돈은 받아쳐먹으면서 놀러만 다닌다고? 500만 달러나 받아먹는 놈이?”
“내 생각에는 올 시즌까지만 하고 은퇴할 예정인 것 같아.”
카브레라는 올 시즌이 3년 계약의 마지막 해였다. 그의 나이는 33살. 은퇴하기 이를수도, 적절할수도 있는 나이다.
“이미 돈은 벌만큼 벌었으니 남은 1년은 대충 즐기다가 가겠다는 마인드인가?”
“그런 생각도 없잖아 있는 것 같아.”
“그건 좀 심각한데?”
“우리가 방출해도 연봉은 지급해야하잖아?”
500만 달러나 받아쳐먹으면서 곧 은퇴를 할 생각이다? 그러면서 마지막 시즌까지 날로 먹겠다?
러셀의 눈이 뒤집어졌다.
“그 개노무자식! 당장 잡아와야합니다! 아니지! 소송걸어!”
“진정해 그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야. 은퇴한다고 공식적으로 선수들에게 말한 적도 아직은 없어.”
벨리츠의 말에 거스가 물었다.
“그럼 어떤걸 보고 알아낸건가?”
“알잖아요 거스. 은퇴를 앞두고 불타오르는 놈들이 있는가하면 반대로 모든걸 놔버리는 놈들도 있다는걸.”
“헤수스가 그런놈이었나보구만.”
“적어도 작년에는 이렇지 않았으니까요.”
작년만해도 카브레라는 꽤나 의욕적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지난 시즌과 다르다고해서 태업한다고 볼 수는 없었다.
“애초에 선수의 태업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야.”
우선 태업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카브레라가 말했던 것처럼 ‘파워에 비중을 두기 위해서 살을 찌우는 변화를 택했다.’라고 말해버리면 끝이다.
실력이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구단이 실행하는 모든 훈련에는 성실히 참가했다.
“이번 시즌에는 폼이 잘 안올라오네.”
혹은
“파워로 비중을 바꿨더니 일시적으로 컨택이 잘 안되는 것 같다.”
라고 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정말로 태업을 하더라도 구단이 할 수 있는건 없었다.
더러워서 안쓰고 말지, 태업하는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계약된 연봉을 지급하지 않으면 결국 그 구단을 찾을 선수들은 없어질테니까.
결국 선수가 태업을 하든 뭘 하든 구단은 계약한 연봉을 지급해야한다는 말.
“게다가 태업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어?”
“헤수스가 넬슨을 데리고 이곳저곳을 다니고 있어요.”
벨리츠의 말에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나왔다.
“오 맙소사!”
“하필이면 넬슨이!”
“빌어먹을 놈! 도움이 안되는구만!”
넬슨 페레즈는 이번 시즌 중히 쓰려고 생각했던 선수다.
약간 허영심이 있긴 했지만, 야구에 만큼은 최선을 다하는 그런 선수였다. 그런 페레즈를 알기에 데려온 것이었고.
“같은 고향출신이다보니 나름 챙겨준다고 데리고 다니는건데······”
“문제는 그게 좋은 영향은 아닐 것 같다는거지.”
훈련장에 데리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술마시는 곳에 데리고 다니는데 좋은 영향을 미칠리가 있나.
“네이트는요?”
카브레라, 페레즈처럼 드레이크 역시 도미니카에서 넘어온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났다. 친분을 쌓을만도 하다.
“네이트는 술, 담배, 약, 이런거 절대 안하는 놈이야. 그 놈 몸 관리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잖아.”
“그건 다행이네요.”
드레이크는 괜찮다고하니 다시 페레즈의 문제로 돌아와보자.
“문제는 넬슨의 성격인데······”
앞서 말했듯이 페레즈는 자신이 계약하기 전까지 어려웠던 집안의 사정 때문인지 부를 과시하고자 하는 그런 허영심이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성격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가 가진 허영심과는 다르게 페레즈는 은근히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남에게 다가가는걸 힘들어하는 페레즈의 성격상, 먼저 다가와준 카브레라와 빠르게 친해질 것이 분명했다.
“둘이 붙어다닌게 얼마나 됐죠?”
“이제 한 3일 정도 됐을겁니다. 그 전까지는 페레즈도 몸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거든요.”
“우리 라인업을 보고는 마이너에 떨어지지 않을거라고 판단하고는 풀어진거구만.”
“뭐 어느정도 휴식을 취하는건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시범경기 전에 조금은 여유를 가지는 것도 필요하니까요. 하지만 확실히 헤수스는 정리가 필요하겠네요.”
페레즈의 미래가 당장의 500만 달러보다 가치가 있을까?
‘그 이상의 가치가 무조건 있을거다.’
판단은 신중하게, 행동은 빠르게.
“헤수스 카브레라 에이전시 연결해줘 리타.”
암 세포는 전이되기 전에 적출해야하는 법.
“자릅시다. 카브레라.”
< 26화 - 시즌준비(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