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크리스마스 선물 >
모든 준비를 마친 뒤 다운은 드레이크와의 자리를 마련했다.
“단장님!”
“네이트.”
지난 번 사인사태 이후로 드레이크와는 꽤나 친해졌다. 역시 사람이 친해지는데에는 같이 고생하는 것이 최고였다.
드레이크와 포옹하고 등을 두어차례 두드려준 다운이 옆으로 시선을 이동했다.
“반갑습니다 Mr.보나파치오.”
다운의 말에 그가 미소지었다.
“절 아시나보네요.”
“모를리가 있나요.”
네이선 드레이크의 에이전트는 전 메이저리거이자 드레이크의 삼촌인 에릭 보나파치오였다.
“그렇게 성공한 메이저리거는 아니라 모르는 사람이 많더군요. 아, 에릭이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메이저리거가 된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에릭은 올스타까지도 나가본 사람이잖아요. 에릭이 성공하지 않았다면 누가 성공했다는 말을 하겠어요?”
유격수로 한 차례, 2루수로 한 차례 올스타로 선정된 적이 있는 보나파치오는 메이저리거로 성공했다고 말하기에 충분한 사람이었다.
“하하,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쪽으로 앉으실까요?”
자리에 앉은 그들은 여타 다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들이 여기 모인 이유야 뻔했으니까.
“연장계약을 논의하고 싶으시다고요?”
“정확히는 연장계약을 맺을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고싶은거죠. 아직 네이트의 생각을 들어본적이 없으니까요.”
“저는 별다른 말 하지 않을겁니다. 네이트가 제 말을 들을 놈도 아니고, 단장님이 후려치는지 아닌지. 계약서에 장난을 치지는 않는지만 살피러 온거라. 결국 저 놈 의견이 가장 중요하죠.”
보나파치오의 눈을 따라 다운의 시선이 드레이크에게로 옮겨갔다.
두 사람의 시선에 드레이크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레이스가 좋아요. 팀메이트들도 좋고, 단장님도 마음에 들고, 감독님도 좋아요. 팬들 역시 충성도가 높은 편이죠. 무엇보다 체계적으로 유망주를 키우고 케어해주는 점이 정말 좋았고요.”
장점들이 쭉쭉 나왔으니, 이제는 단점이 나올 차례다.
“그런데 이 빌어먹을 구장은 도저히 적응이 안되더라고요. 주차장은 넓은데 그것의 반도 못채우는 관중들. 어떤 날에는 홈 팬보다 원정팬이 더 많은 경우도 있었죠.”
드레이크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사람처럼 양팔을 쭉 벌렸다.
“저는 말이죠. 팬들의 관심이 미치도록 좋아요. 제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주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힘이 난다고요. 그런데 이 빌어먹을 구장 때문인지는 몰라도 제 플레이를 보는 관객이 너무 적어요.”
드레이크에게는 구단이 팬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는지, 그리고 어떤 성과를 내는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의 화려하고 멋진 플레이에 환호해줄 팬들이 있어야했으니까.
“단장님은, 그리고 레이스에서는 관중들을 불러오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할 예정인가요?”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드레이크의 말투에 ‘너희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내 연장 여부가 달려있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았다.
“네가 원하는대로 관중들을 구장에 많이 끌여들이기 위해서는 여러 난관이 있어. 일단 교통이 더럽게 좋지 않지.”
“제가 드래프트될때만 해도 3년쯤 뒤면 지하철 뚫린다더니 안뚫리더라고요.”
“정치인들이 다 그렇지 뭐. 아직 계획도 안짜놨을거다. 결국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리를 직접 건설하거나, 새로운 구장을 구하던가, 연고지를 옮기는 방법 밖에 없지.”
“단장님은 그 중에서 어떤 방법을 택할 예정이죠?”
“우선 우리 구단주님께서 탬파 태생에 이곳을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에 연고지 이전은 패스야. 다리를 짓는 일보다는 그래도 새 구장을 짓는게 돈이 덜 들어가지 않을까 싶은데?”
새로운 구장이라는 이야기에 드레이크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새로운 구장으로 가는겁니까?”
“아직까지 구단주님께서 탬파와 세인트피터스버그 양 시의회와 협의중이시긴 해. 아 물론 이 내용은······”
다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두 사람이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했다.
“삼촌 입은 몰라도 제 입은 굳게 닫혀있을거라고 믿으시면 될거에요.”
보나파치오는 말도 안되는 조카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네가 나보다 입이 무겁다고? 무겁다는 단어의 의미가 바뀌었나?”
“그럴지도요?”
조카의 반응에 피식 웃은 보나파치오가 다운에게 고개를 돌렸다.
“만약 양 시의회에서 허락을 하지 않는다면 어쩔 생각이시죠?”
협의가 잘 이루어지면 모르겠지만, 좋지않게 끝날 경우 결국 레이스에게 선택지는 두 가지밖에 남지 않게된다.
이 빌어먹을 트로피카나 필드에 발이 또 한 번 묶이거나, 혹은 연고지를 바꾸거나.
“정말로 그렇게된다면 연고지 이전카드를 꺼내들어야죠.”
“아까는 탬파를 너무 사랑하셔서 이전하지 않으신다면서요.”
“구단주님이랑 저랑 둘 다 올랜도 남서쪽 지역에 살거든요. 바다가 보이는 탬파를 좋아하긴 하지만, 탬파가 저희를 싫다고하면 올랜도로 이사가는 것도 나쁘진 않죠.”
탬파에서 올랜도는 길어봐야 두 시간 거리. 탬파 경기가 있을 때보다 오래 걸리긴 하지만, 다리 위에 갇혀있는 한 시간과 쌩쌩 달리는 두 시간은 심리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어쩌면 올랜도로 이전한 뒤 탬파 팬들이 더 많이 찾아올지도 몰랐다.
“중요한건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저희는 2028년에는 이 빌어먹을 트로피카나 필드를 떠날거라는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구단주님이 발에 불이 나도록 알아보고 있고요.”
트로피카나 필드의 사용계약이 2027년까지니 2028년에는 어떤 수를 써서도 벗어날 생각이었다.
“그러면 최소한 6년간은 여기에서 경기를 해야한다는거네요?”
그의 말에 다운이 검지를 꺼내 흔들었다.
“아니지. 양 시의회와의 협의가 완료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구장 건설을 위해 움직일거야. 보통 신 구장의 건설이 3년 정도 걸린다는 것을 생각해 봤을 때, 무조건 2027년 안에 건설이 완료되겠지. 그렇게 새로운 구장이 생기면······”
다운은 감정을 담아 발을 굴렀다.
쿵!
“이 엿같은 트로피카나 필드를 뜬다. 남은 계약이 얼마나 되건, 사용료를 얼마나 써야하건. 무조건 떠날거야. 새 집이 있는데 낡은 집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잖아? 뭐 가끔가다가 한 두 경기 정도 이벤트로 해주거나 아예 마이너 팀 하나에게 경기장을 대여해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
오랜 기간 레이스 팬으로 지내오던 지난날들이 떠올라 잠시 감정적인 반응이 나왔다. 자신의 행동을 인지한 다운이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여튼 우리는 곧 집을 옮길거야. 그러면 탬파에 있는 수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찾아오겠지. 그 때 이벤트 했던 날의 수백 배 되는 팬들이 매 경기마다 찾아올거야.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 홍보 팀과 커뮤니케이션 팀이 일하고 있거든. 그 중심은 바로 너. 네이선 드레이크야.”
다운의 손가락이 드레이크를 가리켰다.
“네가 없으면 우리의 모든 계획이 망가져. 태생부터 스타플레이어인 네가 중심에 있어줘야만해.”
그리고는 은근한 말로 드레이크를 유혹했다.
“그리고 생각해봐. 남들이 다 지어놓은 집에, 차려놓은 밥상에 가서 먹기만 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 네이선 드레이크가 지은 집, 혹은 네이선 드레이크가 1대 주인인 집에 들어가서 활약해야하지 않겠어?”
1대 집주인이라는 말에 드레이크는 살짝 혹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다운은 멈추지 않고 고삐를 당겼다.
“여기 봐. 이게 새 구장 조감도야.”
“이건 예전에 엎어졌던 구장 조감도 아닙니까?”
“이 설계도가 워낙 잘 뽑혀서요. 저희 구단주님이 설계도까지 구매하려고 알아보고 있습니다.”
“이 천장이 다 유리인건가요?”
“그럼! 심지어 개폐식이라서 열리고 닫히는 최신식이지. 유리천장이 반짝이는 저 화려한 구장의 중심에서 화려한 플레이를 관중들에게 보여주는 네 모습을 상상해봐!”
“오오오!”
그 모습이 그려지는지 드레이크의 눈이 반짝였다.
“저 구장에서 이루어지는 역사적인 개막전에 네가 없다는게 상상이나 돼?”
“안돼죠. 절대 안돼요.”
“그러려면 적어도 우리 10년 정도는 더 봐야하지 않을까 싶은데.”
“좋죠 10년!”
아무 생각없이 답하는 듯 했지만, 8년은 이미 보나파치오와도 이야기 된 기간이었다. 10년짜리 계약이 끝나고 다음 계약을 맺어도 네이선은 30세 시즌을 맞이하게된다.
다른 계약을 한 번 더 맺기에는 충분한 나이라는 계산이 이미 깔려있었다.
“근데 문제가 있는데······”
“뭔데요?”
“우리가 구장을 지을때 아마 전액을 부담하게 될거라는 말이지······ 그래서 연봉을······”
다운의 말에 꿈을꾸듯한 표정을 짓고있던 드레이크가 얼굴을 싹 바꿨다. 그리고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나요 고객님?”
***
12월 24일
미국의 모든 가정이 저녁에 있을 크리스마스 이브를 기대하며 힘차게 하루를 시작하고 있을 무렵.
다운은 드레이크와 함께 손을 맞잡고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단장님! 더 웃으세요!”
“읏그읐는드······”
“누가봐도 억지 웃음이잖아요!”
그야 저 여우같은 드레이크에게 생각했던 것 보다 돈을 더 썼기 때문에 속이 쓰려서 그런 것이었다.
드레이크와의 계약은
20세 시즌부터 29세 시즌까지
2022년(1년차) - 110만 달러
2023년(2년차) - 510만 달러
2024년(3년차) - 1550만 달러
2025년(4년차) - 1750만 달러
2026년(5년차) - 1750만 달러
2027년(6년차) - 1750만 달러
2028년(FA 1년차) - 1750만 달러
2029년(FA 2년차) - 1750만 달러
2030년(FA 3년차) - 1750만 달러
2031년(FA 4년차) - 1750만 달러
총 8년 1억 920만 달러짜리 계약이지만 팀 옵션 2년이 더 붙어서 최대 10년 1억 4420만 달러까지 올라갈 수도 있는 초대형 계약.
추후 8년간 예상되는 페이롤의 여유분을 다시 계산해본 결과 연간 약 1800만에서 2000만 달러가 남았다.
다운은 어떻게든 여유분을 최대한 남기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드레이크는 브레이브스의 도널드 캐스퍼 주니어를 조금이라도 넘어서는 계약을 원했다. 그러다보니 페이롤에서 뭔가를 남길 수가 없었다.
다운을 뽑아먹을대로 뽑아먹은 드레이크는 선심썼다는 듯 계약서에 서명했다.
“제가 그래도 많이 봐드린거 알죠? 저희 사이에 정이 있어서 그래도 이 정도만 한거라고요~”
분명 봐준건 맞다.
레이스 역대 최고계약은 에반 쇼트와 맺었던 6년 1억 달러짜리 계약이다. 이번 계약은 그 계약을 넘어서는 최고액의 계약.
그러면서도 기간은 더 길다.
분명히 좋은 계약은 맞는데······
“하하하! 단장님! 웃으세요! 이 좋은날에!”
왜 다 뜯긴 기분이 드는걸까?
다운의 쓰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홍보팀의 사진전담 직원이 계속해서 재촉해댔다.
“아이 참! 단장님! 좀 더 환하게! 하하하 한 번 하고 갈게요!”
“하하하!”
“이 계약을 보고 기뻐할 팬들을 위해서 다시 한 번 하하하!”
다운은 이를 악 물고 이 뉴스를 보고 기뻐할 팬들을 위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구장 옮긴 뒤에는 돈 쓸어담을테다······ 그리고 어떻게든 네이트를 굴려먹겠어!’
그게 될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 23화 - 크리스마스 선물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