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 우리 팀은 잘될거야 >
점심시간의 식당은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한 차례 손님들의 웨이브를 받아낸 매기는 직원용 의자에 털썩 걸터앉았다.
띠링
알림음으로 유추해 봤을 때 이는 레이스 팬 커뮤니티에 즐겨찾기 해놓은 사람의 새 글이 올라왔다는 것을 의미했다.
ShawnTBRays
“어? 션 사진 올렸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션은 커뮤니티에서 꽤나 인지도가 있는 네임드였다.
제목은 ‘이번 시즌의 유니폼.’. 단순하지만 레이스 팬이라면 즐겨 볼 수 밖에 없는 그런 글이었다.
“어디보자. 올 시즌에는 누굴 샀으려나.”
글을 클릭하자 커다란 사진과 함께 흥분 가득한 션의 글이 올라와 있었다.
이봐 친구들!
내가 지금 누굴 만났는지 알아? 젠장할 바로 배리 브래넌이라고!
배리 브래넌이 내 눈 앞에 있다니 오 세상에! 심지어 배리는 내 유니폼에 사인까지 해줬어!
그래서 브래넌의 유니폼을 산거냐고?
아냐.
이 커뮤니티에 쏟아부은 내 시간을 모두 걸고서라도 나는 원래부터 브래넌의 유니폼을 사러 왔었어.
연장계약 소식은 다들 들었지? 난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내 점심시간을 희생해서 이렇게 유니폼을 사러 온거였어.
올 시즌 배리만큼 감이 오는 선수는 없었거든.
자세한 건 레이스 내에서 진행하는 이벤트라 말해줄 수 없어.
하지만 오늘 네가 레이스 공식 스토어에 유니폼을 사러 온다면 브래넌을 직접 만나서 사인할 기회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 이벤트는 오늘 스토어 문이 닫기 전까지 진행될거야.
이 글을 적고 있는 사이에 마이어도 스토어에 들어왔어.
마이어도 연장계약을 맺은 모양인데? 마이어의 팬들도 그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니까 꼭 오라고!
오프시즌의 공식 스토어의 운영시간은 10시 30분 부터 19시까지라는거 모르는 사람은 없을거라고 생각해.
지금이 1시 14분이니까······
이제 6시간도 안 남았네?
이 행운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얼른 뛰라고 친구들!
Good luck!
콰당탕!
글의 마무리를 보자마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너 어디가!”
“저 오늘 반차씁니다!”
후다닥 뛰어나가는 그 뒷모습을 보며 사장이 고개를 흔들었다.
“네 식당에 반차가 어디있니 이년아······”
***
오늘 재계약 오피셜이 뜬 브래넌이 스토어에 출몰했다는 션의 글을 읽은 레이스 팬들은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이 스토어로 몰려들었다.
“진짜 브래넌이다!”
“세상에! 배리! 손 한 번만 잡아주시면 안돼요?”
“사진도요!”
“케빈! 사랑해요! 올 시즌은 다치지 말고 수비해줘요!”
“외야의 수호신 마이어!”
한 시간도 채 되기 전에 몰려든 팬들 덕분에 구장 가드들까지도 총출동해서 팬들을 줄세우고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건 뭐. 정규 시즌 중에 티켓 사려고 모인 사람들도 아니고······”
“저희는 이렇게 줄서서 티켓 안사는데요.”
옆에서 초치는 톰이라는 경비에게 다운이 째릿 눈을 흘겼다.
“포스트시즌이라고 하자고.”
“포스트시즌에도 줄서는걸 못 봤······”
다운의 눈이 험악해지려고 하자 톰이 자라처럼 목을 쑥 집어넣고는 말을 흐렸다.
조용해진 톰에게 한 번더 눈을 흘겨준 다운이 팬들이 늘어선 줄을 향해 눈을 돌렸다. 그리고 눈코뜰 새 없이 바빠보이는 브래넌의 옆으로 스윽 다가갔다.
“하하하! 고맙다! 정규시즌에도 꼭 구장에 와서 우리 레이스 응원해다오!”
브래넌은 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은 다음에 조용히 속삭였다.
“오늘 아낀 유니폼 값으로 직관 안오면 미워할거다. 이건 남자 대 남자로 약속한거야.”
브래넌의 말에 아이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할게요. 저는 남자니까요.”
“그래! 매튜. 남자라면 그래야지!”
사인에, 사진에, 뭔가 특별한 사이가 된 것 같은 약속까지. 저러니까 팬들에게 인기가 안좋을 수가 있나.
어린 팬을 보낸 브래넌이 다운과 눈이 마주쳤다.
“밖에 팬 많냐?”
다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끝나긴 하려나 모르겠던데. 적당히 끊을까?”
다운의 말에 브래넌과 그 옆에 있던 마이어까지도 고개를 홱돌려 즉답했다.
“아냐. 내가 집에 늦게 가더라도 오시는 분들은 다 해드려야지.”
“그러지 마세요 단장님. 저희 팬들입니다. 저를 보러, 그리고 배리를 보러 온 레이스 팬들이라고요.”
“그래도 이렇게 하다가는 정말 밤새야할지도 몰라.”
세상에 특이한 사람은 많았고, 분명 밤을 새서라도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거짓말 같지?”
다운이 아까 찍은 스토어 밖 상황을 두 사람에게 보여줬다.
“이제 곧 주차장까지 줄이 진출할 기세야.”
그제야 심각성을 깨달은 두 사람이 얼굴을 굳혔다.
“그래도 우리 보러 오신 팬들을 보내는건 좀······”
“일단 최대한 빠르게 해드리는게 어떨까?”
“그러자. 다음 분 오세요!”
브래넌의 말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를 한 건장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를 본 브래넌이 피식 웃었다.
“어이 네이선. 넌 대체 여기서 뭐하는거야?”
“네? 뭐가요?”
“모자랑 마스크 쓰고 뭐하냐고 네이선. 지난 시즌 부대껴 다닌 시간이 얼만데, 고작 그거 가렸다고 내가 널 못알아볼 줄 알았냐? 눈만봐도 알겠다.”
브래넌의 말에 그가 마스크를 벗었다. 그러자 히스패닉 계열의 잘생긴 얼굴의 네이선 드레이크가 드러났다.
“아 젠장. 그냥 좀 해주면 덧나요? 레이스 팬으로 온건데.”
“팬은 무슨.”
“그리고 네이트라고 부르라니까 꼭 네이선이라고 하더라.”
다운하고도 눈이 마주친 드레이크가 환히 웃으며 인사했다.
“새로오신 단장님이죠? 네이선 드레이크입니다. 네이트라고 불러주십쇼!”
“정다운입니다. 그냥 다운이라고 하면 됩니다.”
브래넌은 인사를 하는 두 사람을 옆으로 밀었다.
“사인이랑 유니폼은 나중에 얼마든지 줄테니까 넌 좀 빠져있어. 다른 팬들이 더 급해.”
“급하긴 하겠더만요. 사람이 줄지를 않던데. 주차장 뚫었어요.”
“벌써?”
구불구불하게 늘어선 줄이 벌써 주차장을 뚫었다면 적어도 500명 정도의 팬들이 스토어 앞에 들어서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브래넌이나 마이어가 한 팀의 팬에게 쓰는 시간은 평균적으로 1분. 두 사람이 250명씩 나눠서 처리한다고 해도 4시간이 넘게 걸린다.
“진짜 빨리 처리해야겠는데?”
“조금 더 빨리해야하나?”
팬들에게 할애하는 시간을 줄여야하나 고민하고 있는 그들을 보며 드레이크가 양팔을 쭉 벌렸다.
“그래서 짜잔! 바로 이 네이트가 온거 아니겠습니까?”
“뭔 소리야. 네가 도와주려고?”
브래넌의 말에 드레이크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팬들이 몰려왔다는데 당연히 선수단인 저희가 도와야죠.”
가벼워보이는 첫 이미지를 봤을 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어어? 단장님? 지금 그 눈빛 뭐에요? 굉장히 의외라는 표정인데?”
눈치도 빠르다. 확실히 차기 스타로 키워볼만한 재목이라는 느낌이 팍팍 들었다.
드레이크는 옆에 있는 브래넌과 마이어를 한 번씩 보고는 매력적인 웃음을 날렸다.
“팬들이 있어야 저희도 있는거라고 귀에 피가 나도록 주입한 어떤 사람들 때문에 안 올 수가 없더라고요. 지금 근처에 사는 친구들도 다 올거에요.”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는지 레이스의 유망주들이 하나 둘 스토어에 들어섰다.
“에디슨 포레스트 아냐?”
“진짜 무섭게 생기긴 했다.”
“그래도 엄청 착하대.”
무시무시한 인상의 선발. 에디슨 포레스트
“멜튼 록하트도 왔는데?”
“귀족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미국에 귀족이 어디있어? 그래도 귀티나긴 하네.”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가져 귀공자 같은 외모의 멜튼 록하트.
“리키 더지다!”
“성격 별로던데. 인터뷰마다 직설적인데다가 시니컬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어?”
“팬한테는 그래도 엄청 착한 편이래.”
차도남. 시크함의 극치를 외모에서부터 보여주고 있는 리키 더지까지.
“이쪽이야 친구들!”
드레이크는 쫄래쫄래 그들을 모아서 다운의 앞으로 왔다.
“저희도 여기에 가세하면 팬들이 빨리 줄어들지 않을까요?”
그리고는 슬그머니 다운을 찔렀다.
“아 그리고 오늘 이벤트에 유니폼을 무료로 준다고 하던데······”
“배리와 마이어가 각자 돈으로 사주는거지 팬들에게.”
드레이크는 당당하게 다운에게 말했다.
“저희는 그럴 돈이 아직 없거든요! 그러니 구단에서 내주십쇼!”
당당한 그의 요구에 다운이 피식 웃었다.
“인생은 기브 앤 테이크라는 말 알죠?”
그냥 뭔가를 해줄 수는 없었다. 그들이 브래넌이나 마이어 같이 구단에 오래 헌신한 선수도 아니고, 장기계약을 맺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그들이 줄 수 있는건 뭘까?
“추후에 있을 협상들에서 저희의 마음을 살짝 더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장기계약 협상, 혹은 연봉 협상이 들어갈때 구단의 사정을 조금 더 봐주겠다는 선언.
실력에 자신이 없었다면 할 수 없는 자신감 넘치는 제안이었다.
다운은 그런 그들의 귀여운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습니다.”
그냥 수락한 것 같아보이지만 다운 역시 속으로 계산을 마친 상태였다.
‘한 벌 당 100달러. 우리 마진을 제외한다면 벌당 30달러 정도 되나?’
물론 전기세, 인건비 이런저런걸 생각한다면 더 들거다. 하지만 최대한으로 잡아도 한 벌에 50달러 정도밖에는 들어가지 않을 터.
저 네 명이 300여 명의 팬들을 처리한다고 하더라도 1만 5천 달러 정도밖에 들어가지 않았다.
홍보비나 이벤트로 들어가는 돈이 저 돈의 몇 배는 된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그리고 오래 기다리는 팬들의 불만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이 정도 돈은 소비해도 전혀 손해가 아니었다.
“가자 친구들!”
드레이크의 지휘아래 그들은 각자 테이블을 끌고 와서는 쭉 늘어선 팬들을 하나 둘 자신의 앞으로 인도했다.
“여깁니다! 레이스 최고 미남! 최고의 유격수 바로 네이선 드레이크의 사인을 받을 수 있는 곳!”
“······ 에디슨 포레스······”
“에디 그러면 사람이 안온다니까? 나중에 사이영을 밥먹듯이 탈 에디슨 포레스트는 이쪽입니다!”
“네이트······ 나는 사이영을······”
약간 성격이 이상한 최고 유망주와 극소심한 선발 유망주
“쯧! 저렇게 소심해서야.”
“저도 걱정입니다 배리. 사람이 저렇게 소심하면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데.”
“그러게나 말이다. 파이팅 넘치게 살아도 힘겨운 세상인데.”
“팬이나 받으시죠.”
“브래넌에게 오십쇼 하하!”
“멜튼 록하트는 이쪽입니다! 하하하!”
이상한 바보 둘
“이름이?”
“메기요! 근데 리키 웃어주시면 안돼요?”
“이게 최대한 웃는거다. 만족해라.”
“네······”
“하······ 사진은 웃으면서 찍어주겠다.”
“감사합니다!”
팬이랑 밀당하는 놈 하나에
“왜 그렇게 보세요 단장님?”
“아니에요 케빈. 하던거 계속하세요.”
그냥 평범한 마이어까지.
다들 팬을 위해서, 그리고 힘들어하고 있을게 뻔히 보이는 동료를 위해서 일하고 있다.
‘우리 팀은 잘될거야.’
잘되게 만들 것이다. 반드시.
< 21화 - 우리 팀은 잘될거야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