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 하여간 여우같기는 >
“조사 결과 조나 파인트는 이 사건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그들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파인트의 컴퓨터에 아동 포르노를 넣어 놓은 사람은 그의 아내의 내연남이었다.
파인트가 감옥에가면 이혼소송을 걸고, 그의 재산을 나눠먹을 생각에 일을 저지른 것이었다.
믿었던 아내의 불륜과 배신에 파인트는 2년간 야구계에서 자취를 감췄다. 정확히는 감출 수 밖에 없었다. 도저히 야구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막장이 있는 줄 알았는데, 내 인생이 막장이더라고요.”
어차피 질 소송이었지만, 파인트의 전 와이프는 혼자만 망할수는 없다는 듯이, 그의 인생을 같이 말아먹기 위해서 어떻게든 건덕지를 만들어 그를 걸고넘어졌다.
그녀의 마지막 발악은 1년을 채 넘기지 않고 끝이 났다.
“변호사도 이제 곧 소송이 끝나가니까 내 인생 찾으라고 하더라고요.”
“그래. 너도 네 인생 찾아야지.”
파아아앙!
“좋네 공.”
말은 그렇게 했지만, 파인트의 구위는 예전같지 않았다.
‘아직 겨울임을 감안한다고 해도 이 정도의 구위는 애매하다.’
예전의 파인트였다면 몸이 덜 풀린 상태로 공을 던지더라도 지금 저 공보다 강한 공을 뿌렸을 것이다.
“립서비스 말고 제대로 말해줘요.”
같이 지낸 세월이 5년이다. 다운이 하고 있는 말이 립서비스인지 아닌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현역 단장이 보기에 내 몸이 어떤지 정확히 알아야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하죠.”
그렇다면 조금 아프더라도 제대로 말해주는게 다운의 역할이다.
“몇 개월 동안 몸 만들었다고 했지?”
“이제 한 달 됐어요.”
“한 달 치고는 괜찮아. 그런데 예전의 너를 아는 나에게는 많이 부족해.”
80마일 후반밖에 나오지 않는 스피드는 둘째치더라도 메이저리거의 투구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이 없었다.
“계약하자고 할 구단이 있을까요?”
간절함이 담긴 파인트의 눈. 다운은 그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 수 밖에 없었다.
“적어도 오늘 네 모습대로라면 한 개의 구단도 너에게 계약제안을 건네지 않을거야.”
확정적인 다운의 말에 파인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물론 너에게 계약서를 건네는 구단이 없지는 않을거야. 하지만 그들은 너의 실력이 아니라 ‘조나 파인트와 계약한 구단’이라는 화제성을 원할 가능성이 높아. 혹은 조나 파인트가 예전의 모습을 찾을거라는 일말의 가능성을 노리고 싼 값에 너와 계약하려고 드는 사람들일테고.”
“결국 지금 제 모습으로는 제대로 된 계약을 따내지 못할거라는거네요.”
“절대.”
다운의 단호한 답에 파인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 네 폼은 정말 좋게 쳐준다고 해도 더블 A 수준이 한계야. 공만 그런게 아니지. 지난 2년간 경기를 전혀 뛰지 못해서 경기력이 바닥이라는 점 역시 네 영입을 망설이게 되는 이유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미 각 구단에 초대장을 보냈기에 정면으로 돌파하는 수 밖에 없었다.
비수와도 같은 말들이었지만 파인트는 이보다 더 가슴에 틀어박히는 일을 당했다. 이 정도로는 흠도 안난다.
“최선을 다해볼겁니다. 잘 할 자신있어요."
“그래. 이래야 내가 아는 조나 파인트지.”
***
파아앙!
“다음은 체인지업을······”
파인트가 최선을 다해 피칭을 했지만 단장들을 비롯한 구단 관계자들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들의 생각은 다운의 생각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조나 파인트라면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왔더니 별거 없네.”
“예전의 조나 파인트였다면 달랐을텐데······”
“슬라이더 각이 예전만 못한 것 같은데.”
“그때는 클라스가 달랐는데.”
손님들이 옛 추억에 젖어들수록 파인트의 얼굴은 굳어갔다.
쇼케이스를 마친 뒤 그들이 하는 말은 한결같았다.
“자네가 우리 팀에 필요한지 검토해본 뒤 다시 연락을 주도록 하지.”
검토
만약 정말 마음에 들었다면 어떤 수를 써서든 데려갔을 사람들이 검토란다.
“마이너 계약까지는 해줄 수 있지만 메이저 계약은 힘들 것 같네.”
결국 그들의 말은 파인트의 실력이 눈에 차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결국 이렇게 됐네요.”
“그래도 계약 제안은 받았잖아.”
마이너 계약이라도 괜찮다면 데려가겠다는 팀은 13개 팀.
마이너 연봉정도만 지불하고 파인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추가적인 수익을 당길 수 있기에 한 제안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 파인트가 살아나기라도 한다면 최고의 수가 될 것이고.
“네가 어떻게든 선수생활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면 마이너 계약이라도 받아들여야해. 만약 그런 계약이 싫다면······”
만약 파인트가 과거의 영광에 붙잡혀 마이너 계약을 하고싶지 않아한다면······
‘그땐 선수생활을 접어야하겠지.’
라는 말을 하려는 찰나 그가 물었다.
“레이스는 절 영입할 생각이 없어요?”
다운은 파인트와 이야기하는 내내 영입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게 아니었다.
“만약 우리보다 더 좋은 제안을 하는 구단이 있을까봐 그랬지.”
혹시나 파인트가 더 좋지 않은 조건임에도 정에 이끌려서 다운을 선택할수도 있었으니까.
파인트가 다른 구단의 제안을 다 들어본 뒤 마지막으로 제안을 건네는 것이 다운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제안은 다른 구단과 비슷한 수준일거야.”
다운이 제안할 것은 스플릿 계약. 우선 마이너로 계약하고 그의 성적에 따라 메이저리그 계약으로 변환할 수 있는 계약이었다.
“메이저리그에 올라오면 200만 달러의 연봉을 줄 수 있어. 성적 옵션까지 포함해서 줄 수 있는 최대치는 500만 달러. 여기까지가 우리가 제안의 최대치야.”
돈 많은 구단은 1000만 달러 정도까지 공수표를 날렸을 것이다. 하지만 다운이 생각하는 적정가는 딱 저정도였다.
만약 좋은 성적을 거둬서 다시 살아난다면 그 다음에는 더 좋은 조건을 따라 팀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와 반대로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둔다고 하더라도 200만 달러 정도는 큰 손해는 아니었다. 레이스의 어린 투수들에게 파인트만이 알려줄 수 있는 그런 팁들을 전수한다는 조건을 건다면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750만 달러짜리 팀 옵션 1년 정도를 걸고 싶네.”
“그 외에는?”
자신의 부활을 위한 계약이다. 비록 2년의 시간을 쉬었지만, 그게 안좋은 영향만을 끼친 것은 아니었다.
‘다운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주치의가 말해주길
“2년간 야구를 쉬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팔이 쌩쌩하네요. 지금 보시면 이 부위 보이시죠? 예전에는 여기가 항상 부어있었단 말이죠. 오프시즌때도 염증 때문에 붓기가 빠지질 않았는데, 지금은 그런 점이 전혀 관찰되지 않아요. 팔 움직이는데 아무런 통증없으시죠? 이론상으로는 몸만 제대로 만들면 예전만큼 던지는게 가능할겁니다. 좋네요.”
항상 조금씩의 통증이 있었던 팔은 쌩쌩해졌고, 2년의 시간동안 멘탈은 더더욱 강해졌다.
현재 실력은 떨어지지만 파인트는 다시 예전 폼을 되찾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만큼
“몸을 만들 수 있도록 장소도 제공해줄 예정이고, 우리 레이스가 투수분석하고 키우는데 강점이 있는거 알지? 최고의 전문가들이 너에게 붙을거야.”
“개인 트레이너는요?”
“네가 원한다면 고용해줄 수 있어.”
하나하나 따져본 끝에 파인트와 다운이 손을 맞잡았다.
“너도, 그리고 나도. 우리 같이 부활을 위해 뛰어보자.”
“잘 부탁해요 다운.”
***
윈터미팅이 끝나고 직원들은 휴가를 얻었지만 다운은 그럴 새가 없었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리타를 대신해서 비서 일까지 맡은 클러비가 삐죽거리며 들어왔다.
“배리 브래넌하고 에이전트 도착했습니다.”
“들여보내.”
잠시 후 건장한 체격의 브래넌과 왜소한 에이전트가 다운의 방에 들어왔다.
“하하! 다운!”
“오랜만이야 배리!”
“너무 마른거 아냐?”
“네가 너무 찐거지. 이제 포수 안해도 된다고 너무 살 찌운거 아냐?”
“오프시즌이니까. 즐길 수 있을 때 즐겨둬야지.”
뜨거운 포옹을 나눈 두 남자가 자리에 앉았다.
“자! 그럼 조건을 들어볼까?”
브래넌이 원했던 것은 연 1000만 달러 이상. 그리고 4년 이상의 계약이었다.
“우리가 제안하는 옵션은 두 가지야.”
계약 이야기가 나오자 브래넌과 그의 에이전트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첫 번째로 팀 옵션을 제외한 4년 4400만 달러의 제안이 있어. 이를 수락한다면 이번 시즌부터 4년간 넌 우리 팀 선수로 뛸 수 있는거지.”
4년, 그리고 1000만 달러 이상의 연봉. 브래넌이 원하는 두 가지가 모두 들어있는 제안이다.
“다른 조건은?”
“팀 옵션 850만 달러를 발동하고 그 이후 4년간 3400만 달러.”
4년 3400만 달러면 연봉이 850만 달러라는 소리다. 결국 5년간 연봉이 850만 달러로 계속된다는 말.
“1000만 달러는 내 마지막 자존심인데?”
“달성 가능한 옵션들로 최대 300만 달러를 채워줄 예정이야.”
지금 다운이 제안한 두 조건은 사실 크게 차이가 없어보였다. 하지만 브래넌에게는 아주 큰 차이가 있었다.
브래넌의 현역 욕심은 굉장히 강했다. 마치 예전에 포수 자리에 대해 욕심을 드러냈던것 처럼 말이다.
그런 그에게 지금 다운이 물어본 것이다.
‘1100만 달러 받고 37살까지 야구할래? 아니면 850만, 옵션 포함해서 최대 1150만 달러 받고 38살까지 야구할래?’
브래넌에게는 1년, 1년이 중요했다. 저 나이가 되면 더 야구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만큼 자신을 원하는 구단이 줄어들테니까.
그래서 내심 브래넌은 4년 이상의 제안을 원했다고 말한 것을 후회했다.
‘1000만 달러가 아니더라도 5년 이상 계약을 부를걸!’
돈이야 사실 이미 벌만큼 벌었다. 그저 부활한 자신이라면 1000만 달러 선은 받아야 자존심이 산다는 그런 마음 때문에 제안한 것 뿐.
1년이라도 계약기간을 더 보장받을수만 있다면 1000만 달러 이하의 연봉이라도 상관없었다.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이 1년을 더 늘인 제안을 들고온 다운을 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흐흐흐! 하여간 여우같기는.”
그런 브래넌의 반응에 다운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계약서를 두 장 들이밀었다.
“이쪽이 4년짜리 계약. 그리고 이 쪽이 5년짜리 계약이야.”
브래넌의 손은 당연하리만큼 5년짜리 계약서를 낚아챘다.
“1년차에도 옵션 넣어준건가?”
“원한다면 넣어줄 수 있지. 네가 옵션 달성할 정도의 실력만 보여준다면 300만 달러가 대수겠어?”
브래넌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다운은 곧바로 그 부분을 추가해서 계약서를 다시 뽑아왔다.
“자. 검토해보시죠.”
“톰. 세세히 검토해보고 있어. 우리는 따로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그리고는 다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다운.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월권일수도 있지만, 궁금해서 물어봐야겠어.”
대충 무슨 이야기를 물어볼지 예상이 된다.
“월권 아니니까 편하게 물어봐도 돼. 우리 팀 최고 연봉자들 중 하나인 네가 못 물어보면 누가 물어볼 수 있겠어?”
다운의 말에 브래넌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다음 시즌 감독은 어떻게 할거야?”
< 19화 - 하여간 여우같기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