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 조나 파인트 >
룰 5 드래프트
해당 포지션이 꽉 차있건, 부상으로 몇 년을 날렸건 어떤 이유로든간에 40인 로스터에 벗어나 있는 재능있는 선수들이 마이너리그에서 너무 오래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드래프트.
[마이애미 말린스에서는 다저스의 선발투수 자비어 에르난데스를 지명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구단들이 이 제도를 활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시애틀 매리너스는 지명을 포기했습니다.]
지명한 선수는 1년간 무조건 메이저리그의 26인 로스터에 넣어야한다는 조항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18세 이하의 나이에 계약한 선수는 계약 시점부터 5년, 19세 이상은 4년 뒤가 지난 후부터 룰 5 드래프트의 지명대상자가 된다.
대부분의 지명 대상자들이 25세 전후의 나이를 가지고 있다. 유망주라고 하기에는 나이가 들었고, 또 나이가 들었다고 하기에는 어린 애매한 나이. 하지만 어릴때보다 잘할 확률이 적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그런 선수들을 데려와서 로스터의 한 자리를 소모하는 것보다 유망주를 올려서 기회를 주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요즘 유망주들은 확실히 실력이 일찍 올라오는 편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구단 내부에서 키울 선수가 확실한 구단에서는 지명 포기를 선언하기도 했다.
물론 이를 잘 써먹는 팀도 존재했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는 레인저스의 내야수······]
단 돈 10만 달러로 괜찮은 유망주를 데려올 수 있다는 점은, 재정으로 인해 외부선수 수급이 어려운 스몰마켓 구단에게는 빛과 같은 제도였으니까.
애슬레틱스처럼 주어진 제도를 잘 활용하는 구단이 있는가하면 다른 방식으로 제도를 써먹는 구단들도 다수 존재했다.
[워싱턴 내셔널스는 자이언츠의 외야수······]
바로 저놈들처럼 말이다.
“내츠 외야진 다 차지 않았나?”
“다 찼죠. 외야 세 명이 모두 서비스타임 3년 이상 남았고, 벤치에도 꽤 유망한 선수 하나랑 베테랑 하나를 채워놨잖아요.”
26인 로스터에 외야수가 꽉 차있음에도 새로운 외야수를 뽑는 이유.
“트레이드하겠네.”
그건 바로 트레이드 카드로 쓰기 위해서였다.
무조건 26인 로스터에 올려야하는 것과는 다르게, 다른 구단에서 지명한 뒤 트레이드로 영입하게 된다면 26인 로스터에 무조건 올려야한다는 제한이 사라지게된다.
그렇게되면 팀 입장에서는 10만 달러가 아니라 선수를 대가로 지불해야할 수도 있지만, 로스터 운용의 유연성이 조금 더 생긴다는 장점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처럼.”
물론 레이스가 한 것 처럼 미리 딜을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말린스에게 올라루스를 받는 딜에서 팬들의 반응을 우려한 킴 응을 위해서 다운은 그들에게 원하는 선수를 대신 지명을 맡기는 동시에 적당한 선수를 집어와서 트레이드에 끼워넣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킴 응도 적당한 선수+레이스에게는 필요없는 유망주를 얻을 수 있게 되고, 레이스 역시 올라루스와 함께 필요한 유망주 하나를 더 얻을 수 있게 되니까.
이를테면 윈+노말이라고 할 수 있는 딜. 양키스 팜을 뜯어낸 것까지 생각한다면 윈+윈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다른 선수는 더 데려오지 않아도 되겠어요?”
다른 팀들이 줄줄이 지명을 포기했다. 드래프트에 남은 구단이라고 해봤자 5개가 전부. 네 명만 더 거치면 원하는 선수 하나를 더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아쉬운 듯 했다.
하지만 다운은 고개를 저었다.
“10만 달러나 로스터 한 자리를 줄만한 가치가 있는 선수는 없어.”
아직 두 명 정도가 남아있다. 하지만 레이스의 지명순서는 남아있는 팀 들 중에서 뒤에서 두 번째. 분명 앞순위 구단에서 모두 뽑아갈 것이었다.
잠시 후.
“레이스 지명 포기하겠습니다.”
레이스에 이어 브레이브스까지 지명을 포기하며 룰 5 드래프트가 끝났다.
그리고 그 일정을 마지막으로 윈터미팅이 마무리되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다들.”
그래도 다운은 어제 조금 잤지만, 다른 직원들은 룰 5 드래프트에서 뽑을 선수들을 검토하느라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푹 쉬고 다음주부터 출근하도록 하세요.”
오늘이 수요일에 지금 시간은 1시다. 빡세게 정리 두어시간만 하고 비행기에 몸을 던지면, 목금토일 4일의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예에에에쓰!”
“단장님 최고!”
“감사합니다!”
환호성을 지르는 직원들을 뒤로하고 다운은 헤드쿼터를 나왔다.
“단장님 지금 바로 가십니까?”
“아니. 마지막으로 들를데가 있어서. 몇 시 비행기지?”
“3시 반입니다.”
파인트가 알려준 시각은 2시. 3시 반이면 빠듯하다.
“다섯시 반 이후로 미뤄줘. 그리고 내 방 정리 다 해놨으니까 체크아웃도 부탁할게.”
“짐은 따로 있으신가요?”
“캐리어 하나에 다 넣어놨어.”
“알겠습니다.”
리타에게 키를 건네준 뒤 파인트가 알려준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쇼케이스가 있을 예정인 실내연습장에서는 파인트가 몸을 풀고 있었다.
“헤이 조나!”
다운의 외침에 파인트가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다운!”
누군가가 와줬다는 사실이 기쁜지 파인트는 순식간에 다운에게 달려왔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약속시간보다 이르긴 하지만 다운이 이렇게 일찍 온 이유가 있었다.
“공 좀 받아주려고. 에이전시도 없다며.”
에이전시가 없으면 지원도 없다. 연습장을 빌리는 것부터 저기에서 대기를 타고 있는 아마추어 캐쳐까지 모두 파인트의 사비가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공 받아줄 사람 구해놨는데요? 페이도 지급하기로 했고요.”
일당을 날릴 위기에 처한 캐쳐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괜찮아. 캐쳐! 이름이 어떻게 되요?”
“앤드륩니다.”
“얼마 받기로 했어요?”
“뒷 정리 도와주는 것까지해서 세 시간에 300달러 받기로 했습니다.”
“좋아요. 앤드류. 그럼 이렇게 하자고요. 저한테 미트와 장구를 빌려줘요. 그러면 제가 저 친구가 주기로 했던 300달러에 200달러를 얹어드리기로 하죠. 대신 지금 당장 커피와 음료수를 사와야하고 뒷정리도 도와줘야합니다. 아차! 쇼케이스 때도 당신이 받아야하는건 똑같아요. 다른 단장들 앞에서 단장인 내가 공을 받아줄 수는 없거든요. 어때요?”
앤드류라는 친구는 대답 대신 잽싸게 장구를 벗어서 다운에게 넘겼다. 다운은 그에게 몇 달러를 꺼내주며 말했다.
“바닐라 라떼 아이스로. 그리고 조나 껀 비타민 워터 보라색으로 네 병 정도 사와요. 당신것도 하나 사오고. 아, 그리고 이건 500달러에 포함되는 금액 아니니 걱정말고요.”
다운의 말에 파인트가 웃었다.
“그걸 아직 기억해요?”
“평생 못 잊을걸. 별 맛대가리도 없는 비타민 워터를, 그것도 보라색으로 먹는 놈은 일평생 너 밖에 본 적이 없어.”
“이상하게 그게 좋은걸 어떡해요.”
다운은 주섬주섬 보호장구를 착용했다.
“진짜 받게요?”
“나 아직 안죽었어 인마. 양키스 가서도 애들 공 받아주고 했다니까? 조프리 알지?”
“알죠.”
“내가 걔 공도 안정적으로 받았다니까? 얼마나 잘 받았으면 조프리가 나보고 자기 전담포수로 현역으로 뛰어달라고 했어.”
“아하하! 알겠어요.”
“아니 진짜라니까 그러네?”
농담같은 진담과 함께 두 사람이 슬슬 어깨를 풀었다.
다운이 이렇게 직접 포수를 자처한 것은 순수하게 파인트를 도와주기 위한 마음 하나로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공을 받아봐야 제대로 된 판단이 될 것 같아.’
옆에서 보는 것도 그 나름대로의 판단이 가능하지만, 직접 받아보는것만 못했다. 특히나 파인트처럼 야구를 쉬었던 사람에게는 더더욱 말이다.
“앉아봐요.”
“오케이!”
여기서 잠깐 파인트의 커리어를 짚고 넘어가자.
2011년 드래프트에서 로열스에 1라운더로 지명된 파인트는 데뷔시즌인 2014년 신인왕, MVP, 사이영 상 3관왕을 따내는데 성공했다.
“조나 파인트? 잘 쳐봤자 싱커와 체인지업 투 피치 투수야. 좌완인데다가 그나마 슬라이더가 어느정도 먹혔기 때문에 다행이었지, 그 정도의 완성도로는 살아남지 못할걸?”
당시만해도 파인트의 활약은 조금 많이 잘한 플루크 시즌 정도로 평가받았다. 매 번 던질때마다 들쭉날쭉하던 슬라이더의 각이 위험요소로 꼽혔기에 2년차 시즌에는 그의 성적이 떨어질 것이라고 봤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은 보란듯이 빗나갔다. 파인트와 그의 에이전트였던 다운에게
‘슬라이더가 애매하니 다음 시즌에는 살아남지 못할것이다.’
라는 말은 곧
‘슬라이더만 완성하면 첫 시즌과 같은 활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말과 동일한 말이었다.
겨우내 슬라이더를 완성시킨 파인트는 2년차에도, 3년차에도 리그를 폭격하며 사이영을 독식했다.
4년차와 5년차 시즌에는 리빌딩을 선언한 로열스의 사정으로 인해 겨우겨우 10승을 달성하는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항상 사이영 투표 3순위 안쪽에는 조나 파인트의 이름이 올라갔었다.
문제가 생긴 것은 6년차 시즌이었다.
“이번 시즌 자네는 아마 트레이드될거야.”
“중간에 가는 일이 있더라도 최선을 다해 던질겁니다. 그래야 좋은 계약을 따낼 수 있을테니까요.”
로열스는 파인트라는 이름값에 어울리는 금액을 줄 수가 없었고, 파인트 역시 우승을 위해서 로열스를 떠날 생각이었다.
둘 모두를 위해서라도 시즌 중에 트레이드 되는것이 최선의 상황. 그렇기에 파인트는 6년차 시즌을 앞두고 누구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노력은 5년차인 2018시즌이 끝난 직후 일어난 하나의 폭로로 인해 완벽하게 어그러졌다.
- 충격고발! 조나 파인트 아동 포르노 소지혐의로 기소.
- 조나 파인트 “난 아이들을 좋아하지만 그들을 성적인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 사실로 밝혀질 경우 파인트 최소 5년 형 선고 예정.
파인트의 집 컴퓨터를 해킹한 해커가 파인트의 컴퓨터에 10테라에 달하는 아동 포르노가 있었다는 사실을 폭로한 것이었다.
그 해 겨울 파인트는 헬스장 대신에 법원을 뻔질나게 드나들어야했다.
- 로열스 파인트와의 계약 포기.
로열스는 미국에서 굉장한 중죄로 처벌받는 아동 포르노 소지 혐의가 발표되자마자 파인트와의 6년차 연봉협상을 포기했다.
발표된 바에 의하면
“용서받지 못할 행동을 한 파인트와의 재계약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와 계약하는 대신 Royals라는 이름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라고 했지만, 로열스의 계산은 더 치밀했다.
파인트의 5년차 연봉은 2300만 달러.
제대로 몸도 만들지 못할 것이고 조사가 얼마나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파인트에게 최소한 2300만 달러를 써야한다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다행이었던 점은 파인트가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하나여서 사람들의 이목이 꽤나 집중되었다는 것이었다.
세상 어디에서나 그렇듯 대중의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에는 검찰의 조사가 빠르게 이루어지곤 한다.
파인트의 사건 역시 마찬가지.
“저희 검찰은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모든 점을 면밀히 검토했습니다. 그리고 누가 이런 빌어먹을 영상을 소지했는지 알아내는데 성공했습니다.”
< 18화 - 조나 파인트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