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 사기꾼들의 파티(2) >
윈터미팅에서 이익을, 아니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가지고 있는 패를 잘 활용해야한다.
우선 화이트보드에 이리저리 적혀있는 혼재된 정보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에이전시는 일단 넘기자고.”
“동부부터 정리할까요?”
“그래.”
다운은 화이트보드를 끌어와서 지난 시즌 AL 동부 1위를 기록했던 양키스의 이름을 적어넣었다.
NYY
“당장에는 아무런 놈들에게도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했죠?”
대런은 행사 내내 바삐 돌아다니기는 했다. 하지만 대화에 참가하지는 않았다. 그저 인사를 하며 지나쳤을 뿐.
“당장에 필요한 불펜을 저희에게서 영입해가서 그런거일지도 모르죠.”
“혹시 FA에 관심이 있는게 아닐까요?”
“아냐. 만약 대런이 FA에 관심이 있었다면 분명 어떻게든 티를 냈을거야. 대런은 역정보를 흘리는 성격이 아니거든. 가지고 싶은 것은 무조건 티를 내야하는 성격이었지.”
다른 팀들은 어떻게 생각하든 원하는 것은 가져야하는 지배자. 그게 바로 양키스다.
“물론 단장을 하는 몇 년 간 바뀌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만약 대런이 노리는게 있다면 그게 뭘까?”
다운의 말에 거스가 슬며시 입을 열었다.
“혹시 선발을 노리는게 아닐까요?”
일리있는 말이었다.
양키스의 현 선발진은 최고 수준. 하지만 지난 월드시리즈에서 보여졌듯이 빅게임 피쳐가 없다는 것은 이번 시즌에도 그들의 약점이 될 수 있었다.
“현재 시장에 나온 빅게임 피쳐가 얼마나 있지?”
“FA 시장에 나온 선수 중에는 댄 로레인이 있습니다. 트레이드 시장에서는 어떤 변수가 있을지 알수가 없어서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말린스의 막시 로페즈나 파이어리츠의 모건 켈러 정도가 아닐가요?”
“로키스의 세드릭 스톤콜드도 괜찮다고 봐요. 성적은 조금 부족하지만, 산 아래에서는 상당히 잘했으니까요.”
“로열스의 스티븐 포터도 2년 남지 않았나?”
양키스가 가진 선택지는 저 정도가 전부였다.
웃긴건 빅게임 피쳐라고 평가받는 저들 중 누구하나도 2021년 포스트시즌에 참가하지 못했다.
그들이 이런 평가를 듣게 된 것은 2020년. 코로나로 인해서 포스트시즌 참가팀이 늘어나지 않았다면 다들 빅게임 피쳐인지도 몰랐을 그런 선수들이었다.
“켈러는 안팔거야.”
파이어리츠는 올 시즌 대권을 노리고 있다. 컵스의 리빌딩, 레즈의 끝없는 부진, 브루어스의 하락세를 생각한다면 카디널스만 견제하면 어떻게든 우승을 노려볼 수 있는 각이 나온다.
그런 상황에서 포스트시즌에서 큰 활약을 보여줄 수 있는 에이스를 팔 리가 없었다.
남은건 로레인, 로페즈, 스톤콜드, 포터. 총 넷.
“레드삭스랑 블루제이스에 아는 사람있죠?”
다운의 질문에 피트 클라인이 입꼬리를 올렸다.
“양키스에서 선발을, 그것도 빅게임 피쳐를 노린다고 흘리겠습니다.”
척하면 척이다.
“레드삭스는 외야수 노리고 있고, 블루제이스는 선발이랑 내야를 노리고 있는데 여기서 우리가 취할 이득은 없을 것 같고······ 오리올스는 어때요?”
거스가 턱을 긁으며 패드 화면을 넘겼다.
“비어만을 정말 준답니까?”
“급만 맞추면 넘길 의향이 있다더군요.”
“우리 팀에 오면 정말 좋긴 할텐데······”
레이스 팜은 고르게 유망주들이 분포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강점은 있었다.
바로 선발.
최근 10년간 사이영 상을 수상한 선수들 중 레이스 팜 시스템에서 큰 선발투수들이 세 명이나 있었다.
강점이 있으면 약점도 있는 법.
레이스 팜에서 유독 잘 나지 않는 것이 바로 대형 포수 유망주였다.
팜에서 포수를 키우기는 힘들고, 그렇다고 공수겸장의 뛰어난 포수를 데려오기에는 돈이 없었다.
결국 레이스는 언제나 아쉬운대로 투수들을 위해서라도 수비력이 뛰어난 포수들을 싼값에 데려와서 써먹었다.
“비어만이 온다면 저희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겁니다.”
“성공 가능성은 얼마나 된다고 봐요?”
“배리한테는 미안하지만, 못해도 포수시절 배리정도까진 클겁니다. 블로킹이 되는 배리가요.”
“잘 크면요?”
“수비력은 괜찮은 데다가 지금 배리의 타격까지 갖춘 선수가 되겠죠.”
그러면 어떻게든 데려와야한다.
“오리올스에서 원한게 더지와 바즈인가요?”
미키의 말에 다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한데 아마 더지는 그들의 의지를 보여주는 말이었을 확률이 높아.”
“미친게 아니고서야 더지를 정말 내줄거라 생각하지는 않았겠죠.”
“아니야. 비어만을 내주겠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정상적인 판단을 거부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지.”
“하지만 오리올스 입장에서는 그것도 나쁘지 않을걸요? 시소코도 있으니까요.”
찰리 시소코는 비어만에 비해 떨어지지만, 그와 비슷한 평가를 받고 있는 포수 유망주.
지난 시즌 빅리그 데뷔를 해서 ROY 투표에서 3위를 기록했다. 그가 있기 때문에 오리올스에서 비어만을 포기할 수 있는 것이었다.
“더지는 아마 떠보기 용 카드일 확률이 높아. 저쪽에서 정말 원하는 유망주는 바즈겠지.”
더지에 가려있긴 하지만 체이스 바즈 역시 뛰어난 유망주다. 무조건 유망주에게 모든 단계를 거치게 만드는 레이스만 아니었다면, 불펜으로나마 이미 데뷔를 했을지도 모른다.
“바즈 하나만으로는 바꾸려 들지 않을 것 같은데요?”
“2:2 트레이드를 노려봐야지. 오리올스에 노려볼만한 선수가 또 있나?”
“외야 벤치멤버 하나 데려오는건 어떻습니까?”
클라인의 말에 미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이번 시즌 페레즈를 주전으로 쓰신다고 하셨는데, 페레즈를 받쳐줄 친구가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적당한 타격에 적당한 수비가 있는 선수면 좋겠는데······”
“벤치에 정확히 그런 선수가 있습니다. 마이크 풀머를 데려오시죠. 그 정도면 2:2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요?”
좌타자인 페레즈를 보완할 수 있는 우타자인데다가 공수주에서 적당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 다운이 원하는 바를 완벽하게 만족시켜주는 그런 선수가 벤치에 있었다.
“우선 비어만부터 데리고 오자고요.”
다른 곳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또 대가가 말도 안되게 바뀔 수도 있으니, 빠르게 움직여야했다.
“바즈를 포함해서 보내도 될만한 선발 유망주 세 명 정도 뽑아주세요. 리타. 오리올스 헤드쿼터 연결해주시고요.”
다운의 말에 레이스 헤드쿼터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5분만 기다려달랍니다.”
누구랑 또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양이다.
“오케이. 명단은?”
“여기있습니다.”
케빈 매닝스 - 더블 A, 20세, SP 8위
타미 에이버리 - 싱글 A, 18세, SP 11위
유리 제프리스 - 더블 A, 22세, SP 13위
오리올스가 군침을 흘릴수 밖에 없는 선수들이다.
바즈에 이어 하나를 더 포기해야한다는게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거스의 말마따나 포수가 없는 팀에 비어만이라는 대형 포수 유망주가 들어오게 되는 딜이다.
오리올스의 사정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이 정도로는 해결할 수 없었을 터. 어느정도 아쉬움은 감수해야했다.
“연결됐습니다.”
리타의 말과 함께 회의실의 모든 사람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다운이 스위치를 눌러 마이크를 켰다. 마이크가 켜져있는 동안 발언권을 가진 사람은 오직 다운밖에는 없었다.
[다운!]
“존!”
누가보면 몇 년은 보지 못했던 절친을 만나는 듯한 두 사람의 목소리. 그들의 목소리에는 반가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저 모습을 그대로 믿을 정도로 순진한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아까 했던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어서 연락드렸는데. 혹시 마음이 바뀐건 아니죠?”
[다행히도 아직까지 바뀌지 않았네요. 더지와 비어만을 바꾸는 딜이었었죠? 그렇다면 우리가 누굴 더 줘야······]
“더지가 아니라 바즈였겠죠 존.”
정말 눈 깜빡하면 코 베어갈 놈들 투성이다.
[아하하! 바즈였죠!]
그리고 잠깐 그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주변의 참모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다.
10초 정도가 흐른 뒤 그가 돌아왔다.
[바즈 하나만 생각하신건 아니겠죠?]
“그럴리가요. 그러면 무게추가 너무 기울잖아요? 저는 항상 공정한 거래를 지향한답니다.”
말해놓고도 이 무슨 개소린가 싶긴했다. 하지만 그걸 지적할 사람은 없었다.
[누굴 더 제시하실겁니까?]
분명 원하는 선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정도 선까지 다운이 허용할지를 모르니, 그걸 먼저 알아보겠다는 의도로 보였다.
“타미 에이버리 어떠십니까?”
마이크가 다시 사라졌다. 에이버리에 대해 알아보는 듯 했다.
[2:1 교환입니까?]
“아뇨. 아무리 비어만은 좋은 선수라고는 해도 더블 A까지밖에 못올라간 선수 아닙니까?”
[레이스를 빼고는 다들 요새 더블 A에서 곧장 메이저리그를 올리는 추세라는걸 모르지는 않겠죠?]
“그만큼 완성도가 떨어질수도 있다는 것과 동일한 말이죠.”
[비어만이 그 정도 급이 안된다고 생각하시는건가요?]
“가능성은 비어만이 높지만 바즈도 그다지 떨어지는 선수는 아니죠. 게다가 현재 완성도는 바즈가 더 높다는 건 알고 계시겠죠?”
[포수가 부실한 레이스가 너무 이득인 것 같은데요?]
“선발이 부족하신 오리올스에서 할 말은 아닌 것 같네요.”
어느 한쪽도 밀리지 않는 팽팽한 신경전.
[누굴 더 원합니까?]
“외야 백업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
이번에도 의논을 위해 사라져야 할 타이밍. 하지만 앙헬로스의 답은 곧장 들려왔다.
[마이클 풀머를 원하셨던 것 같은데, 아쉽지만 풀머는 이제 우리 소식이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10분 전에 파이어리츠로 떠났거든요.]
안타까운척하는 앙헬로스의 목소리가 사라지기 전에 다운이 스위치를 누르고 있던 손을 뗐다.
마이크가 켜진 것을 알리고 있던 빨간 불빛이 사라지자 둑이 터지듯 목소리들이 터져나왔다.
“늦었네요. 이렇게되면 내외야를 전부 볼 수 있는 조던 레일리를 데려오는게 어때요?”
“레일리는 안돼. 내외야를 전부 볼 수는 있지만, 외야 수비가 내야에 비해 떨어진다는거 알잖아. 우리는 외야를 볼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한거지, 그냥 백업이 가능한 선수가 필요한게 아니야.”
“헨리크 라르센은 어때?”
“그 친구는 어깨가 너무 안좋아요. 그걸 감안할 정도로 타격이 좋은 것도 아니고요.”
“심지어 실책도 많아.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는데 경기에 집중을 제대로 못하는 것 같더라고.”
결국 방법은 두 개였다.
눈을 낮춰서 하자있는 선수를 데려오거나, 적당한 유망주로 눈을 돌리거나.
“또 유망주를 데려오기는 애매하지 않을까?”
“즉전감이 빠지는거라면 문제가 있겠지만, 유망주끼리의 딜이라면 사실상 크게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왕이면 유망주라도 즉전으로 쓸 수 있는 선수라면 좋을 것 같은데······”
다운의 말에 조니 로벨이 뭔가를 떠올린 듯 검지를 들어올렸다.
“잠깐.”
그의 행동에 회의실의 시간이 멈췄다.
“혹시 루카스 페리시치 남아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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