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13화 (12/268)

< 13화 - 사기꾼들의 파티 >

“트레이드를 해서 팬들의 관심을 모으셔야하지 않겠어요?”

오리올스는 지금 리빌딩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라인업이 유망주들이 올라오기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버텨줄 수 있는 1~3년 정도의 계약기간을 가진 갭플레이어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몇몇 유망주들은 메이저리그에 이미 선을 보인 뒤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코어로 여겨지는 대부분의 유망주들은 아직까지도 더블 A 정도에 머물고 있었다.

오리올스가 올라올 타이밍은 최소 3년 정도는 뒤에 있을 예정.

“저희가 데려올만한 선수가 있다면야 딜을 하겠지만, 그냥 딜을 위해서 하는 딜은 별로 내키지는 않네요.”

딜을 하고 싶으면 그럴만한 선수를 내놔라.

“저희 팀에 좋은 갭 플레이어들이 많습니다만······”

“좋은 갭 플레이어들이라면 FA시장에도 충분히 있죠. 굳이 유망주들을 써먹으면서까지 데려와야할 갭 플레이어는 없었던 것 같네요.”

“이번에 얻으신 페레즈는 안넘기시겠죠?”

“너무 당연한 말을 하시는군요.”

“바즈는 어떠십니까?”

바즈는 95마일짜리 패스트볼을 뿌리는 레이스 팜 내 4위 선발투수였다.

“비어만을 내주시면 생각해보죠.”

짜증날 정도로 간을 보던 앙헬로스가 불쑥 본심을 드러냈다.

“좋습니다.”

“네?”

아무래도 간만에 복귀했더니 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모양이다.

“뭐라고 하셨죠?”

“비어만. 드린다고요.”

비어만은 아직 메이저리그에 올라오지 않은 포수다. 지난 시즌 BA 유망주 랭킹 8위에 올랐던 그런 대형 포수 유망주.

그걸 준다고?

“원하는게 바즈가 아니라 다른 선수였군요.”

“바즈는 겸사겸사죠.”

“진짜 노리는 선수가 누굽니까?”

“리키 더지.”

리키 더지는 지난 시즌 데뷔해 레이스의 3선발을 맡아서 10승 8패에 183.2이닝 ERA 3.44를 기록한 선발투수.

로열스에 미친 놈이 하나가 나와서 ROY는 2위에 그쳤지만 앞으로 성장한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그런 투수였다.

“리키 더지에 바즈를 묶어주면 비어만에 원하는 유망주 하나를 더 드리죠.”

“그건 힘들 것 같은데요.”

비어만이 아무리 최상위 유망주라고는 하지만 더지는 이미 빅리그에서 성적을 낸 선수고 비어만은 빅리그 경험이 없는 선수일 뿐이다. 단가가 안맞았다.

앙헬로스는 다운이 거절할 줄 알았다는 듯 더는 제안하지 않고 순순히 물러났다.

“한 번 저희 팜을 훑어보시고 오시죠. 그럼 마음이 바뀌실지도 모르니까요.”

“생각해보도록하죠.”

다운은 놀고있는 왼손을 바삐 움직여 오리올스 팜에서 빼올만한 선수가 있는지 알아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나저나 오리올스에서 이제는 투수를 모으기로 한건가요?”

오리올스의 거포 사랑은 모든 메이저리그 팬들이 알 정도로 유명했다. 홈런이 최고라고 하는 앙헬로스 구단주의 성향 덕에 생긴 팀컬러라고 해도 무방했다.

“이제 저희도 바뀌어야죠. 방패 없는 창은 아무 쓸모가 없으니까요.”

몇 년간 거포만 사모았던 구단주 덕에 오리올스의 투수 뎁스는 얕다 못해 말라 비틀어져있었다. 그걸 인지한건지는 알 수 없지만 오리올스는 지난 시즌부터 상위 드래프트 지명권들로 투수들을 뽑기 시작했다.

하지만 남아있는 계약 때문에 더 이상의 투수를 사모을 수도 없고, 지난 시즌부터 뽑기 시작한 선수들이 올라오기까지는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그럴 바에는 투수를 사모으는 쪽을 선택한건가.’

애초에 앙헬로스는 더지까지도 원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이 더지를 정말로 원했다면 어떻게서든지 다운이 마음에 들만한 딜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취한 것은 ‘얻을 수 있으면 좋고, 아니면 어쩔수 없고.’ 정도의 스탠스. 대신 다운에게 정보를 흘렸다.

‘괜찮은 투수를 얻을수만 있다면 우리는 비어만과 같은 상위권 유망주까지도 쓸 의향이 있어.’

앞서 말했다시피 오리올스 팜에는 뛰어난 거포 야수 유망주들이 넘친다. 그들 중 중복된 포지션을 청산하면서 투수 유망주를 모으는 것이 오리올스의 목표인 듯 했다.

생각을 정리한 다운의 손이 바삐 움직였다.

- 오리올스 팜에서 포지션이 겹치는 상위권 유망주들 정보를 최우선으로 보내줘.

다운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과도 같았던 맨프레드의 발언이 끝났다.

“오늘 파티를 모두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맨프레드가 사라짐과 함께 테이블에 묶여 있었던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

테이블은 시작에 불과했다. 같은 지구끼리는 경쟁을 해야하는데, 해봤자 얼마나 공정하고 좋은 딜이 이루어지겠나.

이 행사의 메인디쉬는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만날 수 있는 뒷쪽에 있는 스탠딩 바였다.

“그럼 다들 나중에 봅시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스탠딩 바에는 이미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다.

‘조금 있다가 가야겠네.’

어차피 자신과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찾아올 터. 길고 긴 밤을 지새기 위해서는 배를 든든히 채우는 것이 먼저였다.

혼자서 고기를 썰고있는 다운의 테이블에 누군가가 찾아왔다.

“다운.”

고개를 돌리자 머리가 반쯤 벗겨진 행사의 주최자가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입니다 롭.”

맨프레드는 손에 든 샴페인을 홀짝였다.

“오랜만에 이야기 좀 나누려니까 왜 이렇게 시간을 안내?”

“새 팀을 맡았는데 하루가 48시간이라도 부족할 시기라는거 아시는 분이 왜 이러실까? 그리고 때 되면 지금처럼 만나서 이야기 나눌텐데 뭐하러 따로 시간을 냅니까? 안 그래요?”

다운이 맞는 말만 해대자 맨프레드가 입을 삐죽였다.

“하여간 인정머리가 없어. 쯧쯧!”

다운은 혀를 차는 맨프레드를 보며 슬며시 웃었다.

“빨리 본론이나 말하세요. 지금 롭 때문에 주변에 저랑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못오잖아요.”

이쪽을 보며 눈치만 보고 있는 몇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일부러 네가 밥먹을 시간을 벌어주고 있었을 뿐이네만?”

하여간 이 바닥 사람들 말로는 절대 안지려는건 알아줘야한다.

“본론이 뭐에요.”

맨프레드는 자세와 목소리를 함께 낮췄다.

“새 구장 지을거라며?”

“벌써 거기까지 소문이 퍼졌답니까?”

“탬파와 세인트피터스버그 시에 물 밑 작업들어갔다는 소문이 파다해. 재정적으로는 문제 없지?”

보통 구단을 인수한 다음으로는 대형 FA들을 노리며 팬들의 관심을 한데 끌어모으곤 한다. 하지만 레이스의 행보는 달랐다.

“우리는 지속가능한 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다운의 취임사에서 알 수 있듯이 레이스는 원래 하던 방식으로 싸워나가기로 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글라이드와 다운의 의도.

하지만 외부에서 보기에는 재정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이는 듯 했다.

“그건 구단주님한테 물어봐야하는거 아닙니까?”

“그 양반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전혀 하질 않으니······”

“그러면 저도 많이는 말씀드릴 수 없겠네요.”

“그것만 말해줘. 구장은 시 자원을 쓸 예정인가, 아니면 자체적으로 해결할 생각인가?”

“대출을 받거나 시의 재정지원을 받아야했으면, 지금처럼 빠르게 움직이지는 않았을 것 같네요.”

다운의 말에 맨프레드가 안심한 듯 웃었다.

“고맙네 다운.”

“뭐에 써먹으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 구단에 해는 안되겠죠?”

“도움이 되면 됐지, 해는 안될거야.”

목적을 이룬 맨프레드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리를 떠나려다가 뭔가가 생각난 듯 몸을 돌렸다.

“다시 돌아온걸 축하하네 다운.”

맨프레드가 떠나자 눈치를 보던 사람들이 하나 둘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서는

“맷.”

“다운. 서로 아는 마당에 길게 말할 필요 없겠지?”

“물론.”

“내야수가 필요해. 1군에서 통할만한 친구로.”

“대가로 줄 수 있는건?”

“네 필요와 가치에 따라 다르겠지만 외야나 불펜은 즉전으로 줄 수 있고, 다른 포지션은 유망주들을 줄 수 있어.”

“고려해볼게.”

브루어스의 맷 아놀드처럼 직설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Mr. 정! 이렇게 또 뵙게 되는군요! 헤네시 에이전시의 웨인 헤네시입니다.”

“아 웨인! 3년 전에는 PSI 스포츠 매니지먼트에 있지 않았나요?”

“그걸 기억하십니까? 세상에!”

“하하! 당연하죠! 에이전시 따로 차리셨나봐요?”

“이제 2년 됐습니다. 하하! 하지만 제가 그렇게 잘못하지는 않았는지 선수들이 조금 있는 편입니다.”

“혹시 이번에 FA가 된 선수들도 있나요?”

“물론이죠! 그러니까 제가 이 자리에 오지 않았겠습니까? 최고의 선수부터 적당한 선수들까지 데려왔답니다.”

“우리는 그 중에서 적당한 선수만을 노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최고의 선수에게도 오퍼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레이스가 가진 진심을 알게되면 그 아래의 선수들도 좋은 생각을 가질테니까요.”

“파이어리츠 단장인 벤 셰링턴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다운 정입니다. 해적선의 선장을 이렇게 뵙게 되는군요.”

“레이스는 이번에도 리툴링을 노린다죠? 저희도 비슷한데. 서로 좋은 비지니스 파트너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하하!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얼마든지 말씀하시죠. 카드만 맞으면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는게 이 바닥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하하! 다운이 이렇게 돌아왔구만! 나 잊은거 아니지?”

“제리 디포토를 잊었을리가. 매리너스는 요즘 좀 어때?”

“에인절스, 애스트로스, 레인저스에 치여서 항상 죽을맛이지. 젠장할. 거기에다가 늙은이들은 왜 이렇게 돈을 많이 받아먹는지. 쓸데없이 장기계약을 제시한 옛날의 내가 밉다니까?”

“좋은 선수들을 더 모아서 우승을 노려보면 되지.”

“그렇지 않아도 그러려고. 늙은이들이 더 골골대기 전에 빠르게 우승을 노려봐야겠어. 이러다간 쓴 돈 회수도 못하게 생겼다니까?”

대부분은 가면속에 숨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어렴풋이 들어낼 뿐 명확한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어차피 아직 3일이나 남았어.’

‘내가 노리는걸 최대한 모르게 만들어서 거저 가져와야지.’

다운은 서로다른 생각을 품고있는 사람들과 하나하나 인사를 하며 정보를 넣었다.

‘헤네시 에이전시에서는 이번 시즌 FA 자격을 얻은 선수를 넷이나 가지고 있어. 그 중에서 우리가 노릴만한 선수는 둘. 몸 값 높이기용 소문을 좀 흘려주면 그 두 사람하고 괜찮은 수준에서 딜해주겠다는건가?’

‘파이어리츠는 슬슬 리툴링을 노리는 것 같은데? 우리 팀에 와서 좋은 활약을 하고 있는 갭 플레이어를 노리고 있네. 서로 필요한 갭 플레이어를 교환하면 될 것 같은데?’

‘디포토는 선수들을 끌어모으는 척 말하긴 했지만, 속으로는 샐러리 덤핑을 하고싶어하는게 분명해. 우리 팀에 남은 페이롤이 얼마나 되더라? 우리가 부담하는 금액에 따라 빼올 수 있는 유망주들 선을 알아봐야겠어.’

다운은 사람들과의 대화로 뽑아낸 정보들을 하나하나 정리해서 헤드쿼터로 보냈다.

모든 상황지식이 다운의 머리에 있고,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 역시 다운이 되겠지만, 유능한 직원들의 머리를 썩히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분명 이렇게 정보를 보내놓으면 여러가지를 생각해놓을 것이다.

세 시간에 걸친 파티 끝에 다운이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헤드쿼터로 돌아왔다.

말할때마다 샴페인과 와인 향이 내뿜어지는 듯 했지만, 다운의 눈빛은 취객이 낼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눈빛이 아니었다.

회의실 상석에 자리잡은 다운의 눈이 직원들을 훑었다.

“누굴 노려야 호구잡을 수 있을 것 같아?”

< 13화 - 사기꾼들의 파티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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