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준비완료 >
“토머슨에게는 트레이너 붙었나요?”
“에이전시에서 알아서 붙여줬다고 하더군요.”
“훈련 영상 받아서 스카우트 팀에서 확인해주세요.”
다운의 말에 미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슈어홀츠는 어떻게 할까요?”
“에릭에게는 제가 직접 전화해놨습니다. 정리되는대로 구장에 곧장 출근하라고 해놨습니다. 트레이너는요?”
“준비해놨습니다.”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는 과정에서 밸런스를 잃을수도 있으니 꼭 신경써달라고 하세요.”
“하하! 저만 믿으시죠.”
케이지가 가슴을 퉁퉁 두드리며 말했다.
“그리고 거스.”
“네.”
“넬슨 페레즈 에이전시에서 연락와서 윈터리그에 참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는데 연결 가능하죠?”
“흠······ 이왕이면 거절하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페레즈 정도면 내년 메이저 스프링 트레이닝에 참가해야하는데 굳이 윈터리그에 참가해서 힘을 빼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거기다 곧바로 풀시즌 돌리실 생각 아닌가요?”
“적응하는걸 봐서 조정하기는 하겠지만, 적응을 잘한다면 시즌 내내 남겨놓을 생각이죠. 지금 우리 팀에 마땅한 우익수가 있는건 아니잖아요?”
레이스의 우익수를 맡고 있던 칼 헨더슨은 FA자격을 얻었다. 그 빈 자리를 메울 인물로는 페레즈가 딱이다.
“그러면 더더욱 윈터리그는 말리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후반기에 체력이 떨어질 경우도 대비해야합니다. 양키스때와는 다르게 벤치가 풍부한 편은 아니니까요.”
거스의 말이 맞다.
“에이전시에는 그럼 그렇게 전달해놓을게요.”
레이스의 운영파트의 중심들은 유능했다. 그들을 보면 이 스몰마켓 팀이 어떻게 지옥으로 불리는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매번 우승경쟁을 할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단장님 마케팅 파트장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영입해야죠.”
시즌이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마케팅이냐 싶을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프런트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오프시즌이다. 시즌에 있을 일들에 대한 대략적인 계획을 모두 수립해야하는 시기가 바로 오프시즌이었으니까.
그리고 오프시즌에도 팬들이 계속해서 구단에 흥미를 가지도록 만드는 것 역시 마케팅 파트에서 해야할 일이었다. 특히나 윈터미팅을 전후로 팬들이 기대할만한 소식들이 터져나오는데, 레이스에는 그런 일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괜찮은 인재 있어요?”
다운은 괜찮은 인재가 있다면 내부승진 역시 고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들 고개를 저었다.
“당장 직원으로는 괜찮지만 파트장으로는 부족하게 생각하실 애들 뿐일겁니다. 업무를 맡은지 5년도 안되는 놈들 뿐이라······”
“우선은 외부에서 찾아보시는걸 추천드립니다.”
양키스 단장 시절 알던 인재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멀쩡히 프런트에서 잘 재직하고 있었다.
- 제미니. 혹시 이직 생각있어?
- 잭. 레이스에서 나랑 함께해볼래?
혹여나 싶어서 메시지를 보내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다.
- 레이스는 좀 그래요. 팬들도 별로 없어서 마케팅하는 재미도 덜하구요.
- 미안. 내 와이프가 뉴욕에서 탬파로 가고싶지는 않대.
돌아오는 답은 거절뿐이었다.
일주일 동안 여기저기를 알아봤지만 괜찮은 사람은 이미 잡아놓은 자리에서 나오길 원하지 않았고, 이직할 생각이 있는 사람은 파트장을 맡을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괜찮은 사람 어디 없나······?”
고민을 한다고해서 없는 사람이 튀어나올 리는 없었다.
“월마트나 가야겠다.”
취임 이후 매일매일을 구단에서 살다보니 집에 먹고 마실것이 없었다.
정장을 벗어던지고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뒤 마트로 향했다.
“주스는 있어야하고······ 맥주도 필요하고······ 아! 바나나우유는 필수지!”
필요한 것을 하나하나 담고있는 다운의 뒤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헤이 다운.”
익숙하지만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
“브래드!”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지금까지 얼마나 바보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와! 왜 브래드를 까먹고 있었지?’
브래드 심슨은 다운이 예금을 관리해줬던 고객 중 하나로 NBA 팀인 올랜도 매직의 마케팅 파트장이었다.
‘바보같이 양키스 시절 인맥만 생각하고 있었어!’
그러다보니 고객이었던 심슨을 떠올리지 못했던 것이었다. 종목은 다르지만 같은 마케팅 파트에서 일하고 있는 만큼 그가 가지고 있는 그 쪽 인맥은 다운과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이었다.
“요새 수익은 좀 나요?”
“뭐 현상유지나 하는 정도지. 네가 관리해줄때가 좋았는데.”
GME로 수익을 볼 때 심슨의 계좌 역시 뻥튀기가 되었다. 고객계좌라서 간보다가 들어가는게 생각보다 늦었는데도 3배의 수익을 냈을 정도니 심슨이 아쉬워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레이스 단장이라더니 일은 괜찮아?”
“원래 하던일이라 재밌죠. 요즘 제인은 뭐해요? 아직 대학 강사하고 계신거에요?”
“그렇지 뭐.”
서로 간단한 안부인사를 나눈 뒤 다운은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그나저나 브래드. 혹시 마케팅 할 줄 아는 직원 중에서 괜찮은 사람 있어요?”
“왜? 직원이 필요해?”
“저희 파트장이 그만둬서요. 새로 파트장을 맡아줄 사람이 필요해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이 바닥이 좁잖아요?”
“알지. 능력있는 사람은 이미 자리를 잡고 있고, 그곳에서 움직이고 싶어하질 않을테지. 반대로 파트장을 원하는 사람은 능력이 아직 차질 않았을거고.”
“맞아요. 그래서 혹시나 NBA 쪽에는 괜찮은 사람 있나 싶어서요. 종목만 다르지 하는 일은 비슷할테니까요.”
“흠······”
고민하는 듯 하던 심슨은 곧장 고개를 저었다.
“NBA는 없어. 이제 시즌 시작인데 누가 이직을 하겠어?”
그러고보니 NBA는 겨울스포츠다. 야구가 끝나갈때 시즌을 시작해서 야구가 시작할 때쯤 시즌이 끝난다.
시즌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일을 관둘 사람은 없을 터.
“쩝······ 결국 어쩔수가 없네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다운을 심슨이 의미심장하게 바라봤다.
“근데 다운.”
“네?”
“왜 나한테는 안 물어보는거야?”
“그야 브래드는 매직의 마케팅 파트장······”
이었다면 이런 말을 안했겠을거다.
“······을 그만둔거에요?”
심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아니 언제요?”
“한 달 정도 됐나? 이유는 뭐 별거 없지. 새로운 단장이랑 의견충돌이 너무 심했거든. 한 시즌 정도는 버텨볼까했는데 단장이 나하고는 더 일 못하겠다고 올 시즌 연봉은 보전해줄테니 팀을 나가달라고 하더군. 그래서 뭐 나왔지.”
다운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브래드가 와주기만한다면 대박인데!’
자신이 관리했던 고객이었기에 알고 있었다. 심슨의 화려한 경력 말이다.
30대 후반의 어린 나이로 마케팅 파트장로 승진해 지난 15년간 LA 레이커스와 시카고 불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거쳐온 사람이었다.
남들은 꿈도 꾸지 못할 성공가도를 달려온 끝에 이제는 고향 팀에서 쉬고싶다는 생각에 올랜도 매직의 제안을 수락한 것이지, 여전히 팬들이 많은 팀의 마케팅 파트장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다른 팀에서 제안은 없었어요?”
“있었지. 레이커스도, 불스도, 워리어스도 1년 뒤에 와달라고 하더군. 마이애미 히트에서도 제안이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여기서 떠나고 싶지 않아서 히트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긴 했지.”
하지만 히트는 큰 문제가 있었다.
“마이애미는 멀잖아요.”
“맞아. 그래서 고민중이었어. 또 다시 이사를 가야하니까.”
그의 말에 다운이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에헤이! 브래드! 지금 집에 만족한다면서요.”
“만족하지.”
“그런데 무슨 이사에요. 그냥 저희 레이스로 출근합시다. 네? 저희가 잘해줄게요.”
“뭐 히트보다야 가까워서 좋긴 한데, 다른 종목이기도 하고······”
“같은 스포츠인데 다 동지 아니겠어요? 그리고 야구도 좋아하시잖아요. 레이스 생기고 나서는 레이스만 계속해서 응원하셨다지 않았어요?”
“그랬지.”
“농구만 벌써 몇 년 하신거에요. 이렇게 된 김에 야구도 한 번 해보시는거죠.”
심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제안이나 한 번 들어보자고.”
***
며칠 뒤 심슨은 레이스와의 계약서에 서명했다.
“브래드 심슨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파트장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상당히 심했다.
“이번 시즌 우리 레이스의 얼굴이 브래넌, 드레이크, 페레즈 이 셋인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우선은 이 친구들을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팬들의 관심을 살짝 유지해주려면 말이죠.”
그는 화면에 예전 기사를 띄웠다.
“아탈란타의 마르텐 데 룬이라는 선수 아십니까?”
“아뇨.”
축구를, 그것도 프리미어리그나 라리가가 아닌 세리에 A의 선수까지는 알지 못했다.
“이 선수가 예전에 아탈란타 공식 스토어에서 자신의 유니폼을 사는 선착순 세 명의 팬에게 사인을 해주고 유니폼 값을 대신 계산해주겠다는 이벤트를 한 적이 있었죠.”
“고작 세 명요?”
“네. 공지도 하지 않고 했던 이벤트라서 세 명도 많다고 생각했을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더 룬이 팬들이 환장하는 그런 선수는 아니었거든요. 세 명이면 그 날 자신의 유니폼을 사는 모든 팬에게 이벤트를 하겠다고 말한 것이나 다름없죠.”
고작 세 명이라기에는 저 선수에게는 나름대로 굉장한 이벤트였을수도 있었다.
“적어도 세 명의 팬은 행복해 했겠네요.”
다운의 말에 그가 슬며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 날 행복해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왜요?”
팬을 위한 이벤트를 연 선수. 동기도 좋고, 듣기에도 훈훈하다. 하지만 이 뒤에는 굉장히 슬픈 사연이 숨겨져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다렸는데도 아무도 안왔다고 하더군요. 오기야 했지만, 자신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은 누구도 구매하질 않았고요.”
“저런······”
“아이고······”
더 룬이라는 선수가 얼마나 상심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비록 저들은 실패했지만, 저희는 성공할 수 있는 이벤트입니다.”
“어떻게 성공시킬 생각이신가요?”
“듣기로는 레이스에서 최고의 인기를 가지고 있는 브래넌과 마이어와 재계약을 하신다고 했던 것 같은데요.”
두 사람은 잔류의지가 꽤 강했다. 그래서인지 에이전트와 날을 세우지 않고도 서로 원하는 것을 맞춰가는 수준에서 계약이 논의되고 있었다.
“재계약 소식이 나오면 유니폼을 사는 사람이 나올겁니다. 레이스 최고의 선수 두 명이 재계약한다는 오피셜이 뜨면 새 시즌 유니폼에 그들의 이름을 새기려는 사람들이 나올겁니다.”
“재계약 발표 이후에 하루를 정해서 팬들에게 이벤트를 하자는거군요.”
“정확히는 발표한 당일이나 다음 날 이벤트를 하는거죠. 이왕이면 계약서에 서명한 날이 낫겠죠. 그때는 선수도 구단에서 계약서를 들고 사진을 찍어야 할테니까요.”
심슨의 말에 미팅에 참가한 사람들이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기쁜 마음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 유니폼을 사러왔는데, 그 선수가 직접 나와서 사인도 하고 계산도 해주면 확실히 기쁘겠네요.”
“이왕이면 이벤트를 하는 날에 직원으로 분장하고 있는건 어떨까요?”
“오! 그것도 재밌긴 하겠네요.”
“혹시 그거 우리 커뮤니케이션 팀에서 써먹어도 될까요? 공식 유튜브에 올릴 영상으로 기획하면 꽤 재밌을 것 같은데.”
다들 심슨의 계획에 살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가 오기 전에는 마케팅 팀에서는 ‘굿즈를 할인해서 팔자.’ 혹은 ‘유니폼을 사면 모자를 끼워주는 이벤트를 하자.’와 같은 1차원적인 의견만을 제안했었다.
하지만 심슨은 달랐다. 확실히 경험이 많다보니 어떻게하면 팬들이 더 기뻐할지, 그리고 그걸 어떻게 살을 붙여야 할지를 알고 있는 듯 했다.
‘이제 준비는 끝났어.’
달리기 전에 할 수 있는 준비는 모두 끝났다. 이제는 직접 달려보면서 하나씩 보완해나가는 일만 남았다.
< 10화 - 준비완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