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 내가 도와줄게 >
- 레이스 다운 정을 새로운 단장으로 선임
다운의 취임 뉴스는 트레이드 소식에 곧바로 파묻혔다.
- 다운 정 취임하자마자 불펜 에이스 트레이드
- 크리스 다임러 <> 넬슨 페레즈 + 2명
- 레이스에 새로 합류할 넬슨 페레즈 에릭 슈어홀츠, 짐 토머슨은 누구?
대부분의 기사들에서 보여지듯이 페레즈에 대한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슈어홀츠와 토머슨에 대한 관심도는 낮았다. 레이스의 스카우트 팀 역시 마찬가지였다.
“페레즈는 괜찮지만······”
넬슨 페레즈야 지난 2021시즌 BA 랭킹에서 32위를 기록할 정도로 전미에서 알아주는 유망주다. 하지만 슈어홀츠와 토머슨은 달랐다.
“미키도 두 사람에 대해서는 반대인가요?”
다운의 질문에 미키 로벨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토머슨은 두 번의 토미존 수술과 함께 지난 시즌에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어요. 그의 구속은 시즌이 갈수록 뚝뚝 떨어지고 있고요. 지금은 불펜에서 고작해봤자 85마일이 한계죠. 좌완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투수를 굳이 데려와야 할 이유가 없었다고 생각해요.”
“슈어홀츠는 괜찮고?”
“네.”
예상밖의 대답에 다운의 얼굴에 흥미롭다는듯한 미소가 올라왔다.
“이유는요?”
“제가 단장님이 항상 저보다 먼저 누군가를 데려갔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죠?”
처음 미팅할 때 그런 말을 했었다. 다운이 꼭 한 발 앞서 뽑아가는 바람에 손가락만 빨았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 중 하나가 슈어홀츠였어요. 2라운드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샌드위치 픽으로 홀라당 뽑아가실줄은 생각도 못했거든요.”
미키는 태블릿을 보며 설명을 보탰다.
“슈어홀츠는 지난 2년 반 동안 생각보다 저조한 성장도를 보였죠. 그의 가장 큰 문제는 투구 할 때 머리가 크게 흔들리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죠.”
‘알려져 있죠’
이 단어에 다운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 다음에 올 미키의 말이 예상이 됐기 때문이었다.
“양키스에서는 이를 교정하려고 했죠. 그러다보니 성장도가 저조해졌고요. 하지만 이는 큰 실책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슈어홀츠의 가장 큰 장점은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투구에 실어보낼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2미터에 달하는 신장과 길고 두꺼운 팔은 그 모든 힘을 버텨줄 수 있고요. 머리의 흔들림은 그로 인해 오는 부작용 같은거라고 생각해요. 대포가 포탄을 발사한 뒤에는 뒤로 밀리는 것과 같은 그런 부작용이죠.”
“그럼 미키는 어떻게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머리 흔들리는건 정말 사소한 문제에요. 제가 2년간 슈어홀츠의 투구를 지켜봤었는데 슈어홀츠는 머리가 흔들리는 와중에도 전혀 목표지점을 놓치지 않았어요. 그러면서도 제구는 좋았죠. 제 생각에 슈어홀츠가 제대로 크려면 그런 사소한 제약을 다 풀어야해요. 그래야 그가 가진 모든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어요. 뭐 투구 후에 수비가 조금 약해질수는 있겠지만, 그게 필수는 아니니까요.”
미키 로벨의 말에 다운이 입꼬리가 양 쪽 광대 끝과 맞닿았다.
‘미키는 믿어도 되겠어.’
확실히 선수를 보는 눈이 자신과 비슷하다. 생각하는 바 역시 비슷했다. 스카우트 팀장과 보는 눈이 같다는 것은 그들을 납득시키기 위해서 쓸데없이 힘을 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실 납득시켜야 할 의무는 없지만, 최소한 운영팀 만큼은 확실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했다. 그래야 앞으로의 행보가 편할테니까.
“그러면 토머슨에 대한 이야기만 하면 되겠네요. 사실 토머슨은······”
***
토머슨과의 이야기는 3년 전으로 흘러간다.
파아아앙!
“나이스 볼 조프리! 넌 날이 갈수록 공이 좋아지냐? 이러다가 미트도 뚫겠어 아주?”
“진짜 그러지 말라니까요 다운. 그만 던져야하는데 더 던지고 싶어지잖아요.”
“하하! 그러면 안되지. 넌 어서 들어가서 쉬어.”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다운은 대학교 2학년 때 교통사고로 어깨 부상으로 은퇴를 하기 전까지 꽤나 유망한 포수로 선수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다운은 수시로 배팅 훈련에 참가해서 타자들과 소소한 배팅 내기를 한다던지, 불펜포수를 자청해서 투수들의 공을 받아주곤 했다.
“짐 들어와!”
팡팡!
미트를 두드리며 자리잡는 다운을 보며 토머슨이 웃었다.
“오늘은 널 당황하게 만들겠어.”
“일부러 이상한 공 던지면 안되는거 알지?”
“양아치도 아니고 그렇게 하겠어?”
토머슨의 왼손을 타고 평범한 공들이 날아왔다.
파아아앙!
“오? 오늘 좀 구위가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네가 포구하는 스킬이 좋은거지.”
불펜포수의 가장 큰 자격요건 중 하나가 포구소리를 뻥튀기하는 능력이다. 포구음이 커야지 투수가 자신의 공에 대해 더 자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멘탈이나 마인드가 중요한 투수의 기를 살려주는 불펜포수에게는 그것만큼 중요한 능력이 없었다.
“무슨 단장이 불펜포수만큼이나 포구 스킬이 좋은거야?”
“하하! 단장 잘리면 불펜포수나 하려고. 자자 어서 더 던져봐. 나 당황시켜준다며. 굉장한 공 던질 거 아냐?”
90마일 후반을 던지는 조프리의 공도 척척 잡아내는 다운이다. 빨라봐야 90마일(당시에는 이 정도까지는 던졌다)이 한계인데다 변화구도 메이저리그 평균 정도인 토머슨의 공은 다운에게는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파아아앙!
“크! 역시 제구는 짐 토머슨이지! 미트를 대는대로 공이 팡팡 틀어박히는구만!”
만약 이 제구마저 없었다면 토머슨이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제구가 사라진다면 그는 곧장 방출될 것이다.
“안되겠다. 다운 앉아봐.”
“더 던지게? 안돼.”
투수의 어깨는 소모품이다. 던지면 강해진다는 의견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어깨는 소모된다는 것을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불펜투구는 제한이 걸려있다. 적당히 컨디션이나 감이 유지될 정도로, 그리고 적당히 기분이 좋을 정도로만 던지고 그만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괜찮아 왼손으로는 안던질거니까.”
“어?”
“어여 앉아봐.”
어리둥절해하는 다운을 앉혀둔 토머슨이 오른손에 있던 글러브를 왼손으로 옮겼다.
‘토머슨이 오른손으로 던진 적도 있었나?’
좌투우타라는 특이한 프로필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가 오른손으로 던지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제구 잘 안될수도 있으니까 조심해.”
물 흐르는 듯 하던 좌투 피칭모션과는 다르게 토머슨의 우투 피칭 모션은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 딱딱한 모션에서 나오는 파워는 왼손과는 달랐다.
슈우우웅!
조프리의 공과 비견될정도로 날아오는 공에 놀란 다운은 제대로 포구를 못할 뻔 했다.
파아아아앙!
신경써서 포구하지 않아도 미트가 찢어질 듯 울었다.
입을 떡 벌리고 있는 다운에게 토머슨이 씨익 웃었다.
“어때? 좀 놀랐나?”
이건 좀 놀라웠다.
“지금 몇 마일이었지?”
벽에 있는 스피드건에 표기된 구속은 92마일.
“92마일밖에 안됐다고?”
체감상 조프리가 던지는 98마일짜리 공과 비슷하게 보였는데, 92마일이라니!
놀라는 다운의 표정이 마음에 들었는지 토머슨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남 앞에서 던져보는건 처음인데 네가 그렇게 놀라니 보람이 있네. 토미존을 하면서 오른팔 인대를 남겨둔 이유가 다 있다고.”
보통 토미존은 쓰지 않는 팔 인대를 먼저 떼는데, 토머슨은 다리에 있는 힘줄로 인대재건수술을 했다.
“나중에 우완으로 전환하려고?”
“왼팔로는 도저히 던질수 없을 때가 되면 그래야겠지. 하지만 지금 당장은 힘들 것 같아. 제구가 영······”
토머슨의 말에 다운이 무슨소리냐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제구? 필요없어. 지금 이 공이면 완벽한 제구는 무슨, 그냥 힘으로 눌러버릴 수 있을걸?”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 앞에서 우완투구를 한 것이 처음이라 그런지 토머슨은 다운의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였다.
“힘은 무슨. 제구가 어느정도 갖춰져야지.”
“아냐. 진짜라니까? 조프리 공 오는 줄 알았어.”
다운이 이런걸로 헛소리 지껄일 사람은 아니라는 건 알기에 토머슨의 표정이 조금 더 진중하게 변했다.
“진짜?”
“진짜라니까? 우완으로 릴리즈포인트만 조금 더 안정시키고 변화구 하나만 익히면 우완으로 출전해도 될 정도야. 물론 존 안에 공을 던질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겠지만.”
“그 정도란 말이지?”
“지금부터 조금씩 연습해놓자. 나중에 왼팔이 더 이상 투구를 할 수 없을 때 바로 오른팔로 전환할수 있게.”
“그래도 되려나······ 장난치는 걸로 보일까봐 괜히 눈치보이는데······”
“그럼 나랑 비밀훈련하자. 내가 도와줄게.”
그리고 두 달 뒤 토머슨은 두 번째 토미존을 했다.
***
다운의 이야기를 들은 거스 로벨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양키스에서는 모르는겁니까?”
“알았다면 내주지 않았을걸요. 대런도 선수보는 눈이 있거든요.”
만약 대런이 그 사실을 알았다면 토머슨을 써먹거나, 더 큰 대가를 받고 팔았을 것이다.
“그러면 우완으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죠?”
“물론 그렇게 엄청나게 훈련을 하지는 못했어요. 나도 바쁘고 매번 토머슨만 봐줄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알다시피 두 번째 토미존을 하면서 한 시즌 반을 날렸잖아요. 하지만 본격적으로 우완 전향을 시도하면 좌완일때와는 완벽히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다운의 말에 피트 클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가 우리 팀에 오게 된다면 불펜을 이끌어줄 선수로 충분하겠네요.”
“여러 부상도 당해보고, 극복해본 적도 있으니 어린 투수들에게 여러 조언도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좌완과 우완을 모두 알고 있다는 점도 메리트가 될 수 있어. 물론 우완투수로의 가능성이 어느정도인지를 먼저 확인해야겠지만.”
“그것보다 본인의 의지가 중요한 거 아니에요?”
다운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말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곧 있을 윈터미팅에서 제가 알아야 할 선수들에 대한 분석만 제대로 해주세요.”
***
짐 토머슨은 운동을 위해 출근했다가 대런에게 불려가 자신이 트레이드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트레이드라고요?”
“그래. 레이스로 갈거야.”
대런의 말에 토머슨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방출은 아니네.’
사실 방출당할줄 알았다.
4년 600만 달러라는 헐값에 계약해서 계약한지 반 시즌 만에 토미존으로 두 시즌을 날렸다. 건강히 복귀하나 싶었는데 다시 뼛조각 제거로 인해 시즌을 반도 뛰지 못했다.
대런이 부르길래 마지막 시즌을 앞두고 방출을 당하나 싶었는데 트레이드라니. 그래도 아직까지 자신을 원하는 팀이 있다는 것에 다행이라는 생각 반, 여기서도 못하면 은퇴해야하는 걱정이 반이었다.
“지금까지 자네의 헌신에 감사해. 새로운 팀에서도 활약을 이어나갈 수 있길 기도하지.”
대런의 의례적인 말과 감사를 들은 토머슨은 곧장 라커룸으로 가서 짐을 챙겼다.
이제는 더 이상 양키스의 선수가 아니기에 챙길 것이라고는 스파이크와 글러브.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있는 사진 한 장 뿐이었다.
“잘 있어 친구들.”
남아있는 선수들과 작별인사를 나눈 뒤 집으로 향하는 길.
“레이스라······”
양키스의 스프링 트레이닝 구장이 탬파 시내에 있다보니 낯선 도시는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우우우웅!
한동안 보지 못했던 이름이 화면에 떴다. 버튼을 조작해 핸즈프리로 전화를 받았다.
“다운?”
[헤이 짐! 잘 있었어?]
“나야 잘 있지. 근데 무슨 일이야?”
[우리 팀으로 오게 된 우완 불펜투수 멘탈은 좀 어떤지 궁금해서 전화했지.]
“우리 팀?”
다운이 다시 복귀를 한 건가? 레이스로?
스쳐가는 생각들 중에서 한 가지가 튀어올랐다.
“근데 우완이라고?”
토머슨의 물음에 다운이 웃었다.
[약속했잖아. 왼팔이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으면 우완으로 전향하기로. 내가 도와줄게.]
< 9화 - 내가 도와줄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