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선수단 정리 >
드럭만의 퇴사는 곧바로 이루어졌다. 그도 마음에 맞지 않는 상관과 일할 생각이 없었는지 곧바로 퇴사에 합의를 한 것이다.
“부디 제 우려를 깨부숴줬으면 좋겠군요.”
레이스의 오랜 팬이라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는지 드럭만은 나가면서도 레이스의 건승을 빌어주었다.
“빈 마케팅 파트장은 어떻게 할겐가?”
“채우긴 해야죠. 근데 당장에 급한 건 아니니까 일단은 내버려두도록 하죠.”
팬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마케팅이 중요한 부분이긴 하다. 하지만 당장에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당장에 놓인 문제는 선수단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필요한 선수들은 연봉협상이나 재계약을 하고, 필요없는 선수들은 내보내거나 트레이드 카드로 써야한다. 팀에 필요한 선수들이 누구인지를 판단하는게 최우선이었다.
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 클라인을 비롯한 운영파트의 핵심들이 회의실에 모였다.
통통한 클라인 옆으로 해골처럼 빼빼마른 노인, 레이스 모자를 눌러 쓴 여자, 그리고 더락이 검은색으로 칠한 것과 같은 엄청난 덩치를 가진 분이 위치했다.
먼저 소개를 시작한 사람은 빼빼마른 노인. 생김새만 봐서는 비디오 분석가에 딱 어울리는 인상이었다. 하지만 나이로 짐작해봤을 때 그는 팜 디렉터일 확률이 높았다.
“팜 디렉터시죠?”
웃으며 말하는 다운에게 그가 마주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팜 디렉터. 거스 플래너건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레이스 팜을 비옥하게 만들거나 거덜낼 사람이라고 평가했다는 사람인 거스 플래너건이 바로 저 사람이었다.
“저를 보고 하셨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팜을 거덜내거나 비옥하게 만들거라고 하셨다면서요?”
“개인적으로는 비옥하게 만드실거라 믿고있습니다.”
“혹시 이유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다운의 물음에 그가 장인의 고집이 묻어나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양키스에서는 유망주들을 주면서까지 샐러리 덤핑을 하셔서 별로 좋지 못한 평가를 받으셨죠. 특히나 세스 패닉을 내줬던 딜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았었죠.”
세스 패닉은 당시 양키스 팜 2위에 BA 전체 8위로 평가받던 유망주였다. 그런 유망주를 샐러리 덤핑에 써버렸으니 양키스 팬들이 미쳤다고 난리쳤던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에 행보는 달랐죠. 단장님이 양키스 단장으로 있을 당시 뽑았던 선수들이 하나같이 지금 양키스의 주축으로 평가를 받고 있죠.”
“스카우트 팀이 유능했거든요.”
다운의 말에 거스가 웃었다.
“제가 이 바닥에서 일한지 거의 40년입니다. 양키스에도 아는 친구들이 많죠. 그 친구들이 말하기로는 당시에 스카우트 팀에서 엄청나게 반대했다고 하더군요.”
현재 양키스의 코어로 평가받는 선수는 셋. 그리고 셋 다 1라운더가 아니었다. 스카우트 팀에서 반대가 있긴 했지만, 다운이 뚝심있게 밀어붙여서 계약한 세 명이 모두 코어 선수로 큰 것이었다.
“그들을 강력하게 추천한 친구가 있었거든요. 저는 그 친구를 믿었을 뿐이에요.”
“아랫사람을 믿고 결정을 내리는건 온전히 단장의 몫이자, 능력이죠. 레이스에서도 그런 결정을 내려주셨으면 좋겠군요.”
“스카우트 팀장이랑 대립하는 일이 있더라도요?”
그에 대한 답은 옆에서 들려왔다.
“그게 결론적으로 레이스를 위한 일이라면 저는 반대하지 않을겁니다.”
모자를 눌러쓴 여자에게서 말이다. 그녀는 이내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다는것을 깨닫고는 황급히 덧붙였다.
“스카우트 팀장 미키 플래너건입니다.”
놀랍게도 미키 플래너건은 여자였다!
‘기대되네.’
기본적으로 스카우트는 ‘프로출신’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자신이 직접 야구를 해본 사람이 판단하는 것과 해보지도 않은 사람이 판단하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일하는 것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분명히 그녀가 하는 말 하나하나에 딴지를 거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프로를 밟아보지 못한 여자의 몸으로 그 모든 편견을 깨부수고 스카우트 팀장의 위치까지 올라왔다는 것은 그녀의 선수보는 눈과 능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녀의 능력에 대해서 기대가 되지 않을수가 없었다.
미키는 씨익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제가 선수보는 눈이 단장님이랑 비슷한 것 같아서 더더욱 반대는 하지 않을 것 같네요. 양키스가 뽑았던 그 선수들 전부 저희도 데려오려고 했었거든요.”
“아하! 근데 1라운드에서 뽑았다면 됐을텐데요.”
“그렇게 높게 평가받는 선수들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래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항상 저희보다 한 라운드 앞서서 뽑으시더라구요.”
“이제는 다른팀보다 한 발 앞서서 뽑을 수 있도록 노력하죠.”
마지막으로 더락 뺨치는 형이 남았다.
“프레드 케이지입니다. 비디오 분석을 맡고 있습니다.”
저 엄청난 근육들과 덩치로 봤을 때는 피트니스 부문 코치나 현역 운동선수를 하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비디오 분석가를 하고 있다니. 그도 그런 시선이 느껴졌는지 유쾌하게 웃었다.
“하하하! 좀 안어울리죠?”
“피트니스 코치를 하셔야 할 것 같기는 하네요.”
“하하! 그것도 겸업하고 있습니다!”
어쩐지. 저렇게 효율적으로 근육을 키우는 사람의 도움을 거부할 메이저리거들이 과연 있을까 싶다.
“자 그럼 인사도 했으니 레이스 선수단을 한 번 같이 살펴보도록 하죠.”
2016년 - AL 5위
2017년 - AL 3위
2018년 - AL 3위
2019년 - AL 2위 - 와일드카드 진출, 디비전 시리즈 패배
2020년 - AL 1위 - 월드시리즈 패배
2021년 - AL 1위 - 챔피언십 시리즈 패배
레이스의 선수단은 나쁘지 않았다.
“선발진도 어리고 괜찮은 선수들이 많고, 뒷문도 확실한 마무리가 있죠. 게다가 내년까지 포수 자리는 든든하고, 내야진의 코어로 쓸만한 전체 1위 유망주도 있고요. 외야는 세대교체가 필요하긴 하지만 당장은 굉장히 탄탄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선수단에서 조금만 더 보강을 한다면 충분히 우승을 노려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 물론 그럴 돈이 없긴 하다만.
“하지만 한 번 갈아엎긴 해야합니다.”
그렇게 말한 다운은 곧바로 말을 정정했다.
“정확히는 이제 슬슬 선수단을 정리할 타이밍이죠.”
다운의 말에 다른 사람들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지금 선수단의 문제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확실히 한 번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긴 합니다.
레이스는 2016년부터 지금까지 서서히 순위를 끌어올려왔다. 모아온 유망주가 터지기 시작하고, 데려온 선수들이 제 역할을 하기 시작하면서 일어난 상승세.
하지만 어느 팀이나 그렇듯이 상승세가 계속될수만은 없었다.
“다음 시즌 25인 로스터 안에 들어갈 예정인 선수들 중 FA를 두 시즌 앞둔 선수가 열두 명. 그리고 한 시즌 앞둔 선수가 일곱 명이나 있더군요.”
무려 선수단의 절반 이상이 두 시즌 내에 사라진다. 이는 레이스의 특이한 상황 덕에 일어난 일이었다.
2016년 앞뒤로 데뷔하기 시작한 선수들이 선수단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FA획득까지 두 시즌을 앞둔 선수들이 저렇게 많은 것이다.
게다가 그들 중 대부분은 최근 좋은 활약으로 말미암아 연봉이 높아질대로 높아진 상황. 레이스의 재정상황을 생각한다면 그동안 좋은 활약을 보여준 선수들을 하나 둘 내보내고 페이롤을 맞추기 시작해야한다.
게다가 아예 육성만으로 선수단을 꾸릴수는 없는 법. 저평가받는 선수를 싸게 데려와서 써먹는건 스몰마켓팀의 주요 운영 수단이었다. 레이스 역시 마찬가지. 로스터의 부족한 부분은 2~3년 정도의 단기계약으로 메워놨다.
그러다보니 저렇게 19명의 선수들이 곧 나가야하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었다.
“다행인 점은 일단 구심점 하나가 존재한다는겁니다.”
지난 시즌 9월 데뷔한 네이선 드레이크가 바로 그 주인공.
드레이크는 2019년부터 지난 시즌 데뷔전까지 3년간 BA 전미 유망주평가에서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그리고 9월 한 달간 메이저리그를 폭격하며 그 평가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며 레이스 팬들의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선수단을 갈아엎더라도 드레이크만 지킨다면, 그리고 그를 중심으로 선수단을 개편할 생각이라고 하면 불만을 최소화 할 수 있을겁니다.”
클라인의 말에 다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들이 생각하기에 드레이크를 포함해서 우리 구단에 꼭 남겨야하는 선수가 또 있나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세 명은 동시에 한 사람을 지목했다.
“케빈 마이어.”
“중견수에 대한 생각이 없다면 마이어는 꼭 남겨야죠.”
“마이어보다 수비를 잘하는 중견수는 흔치 않지.”
케빈 마이어는 2010년 레이스에 지명되어서 커리어 내내 레이스에서 뛰고있는 프랜차이즈 스타다.
그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메이저리그 최정상으로 평가받는 수비력. 메이저리그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메이저리그 최고의 외야 수비는 누구라고 생각하냐?”고 질문하면, 세 번 안에 마이어의 이름이 나올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그의 계약기간은 2022년까지. 정확히 한 시즌 뒤에는 그와의 계약이 끝난다.
“세 시즌 안쪽으로 우리 팜에 마이어를 대체할 수 있을 만한 자원이 있나요?”
다운의 말에 팜 디렉터인 거스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당장에 수비만 보면 괜찮은 친구들이 있긴하지만······”
“빅리그에 통할만한 공격력은 없는 모양이네요.”
“더블 A가 한계인 친구들 뿐이죠. 하지만 이번 시즌 뽑은 친구가 저희 기대대로 커주기만 한다면 3년에서 4년 정도면 빅리그에서 자리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재계약을 해야겠네요.”
마이어는 32세 시즌을 맞는다.
프랜차이즈에 대한 대우도 해줄 겸 4년 정도의 계약을 제안해서 그를 잡아서 새로운 얼굴이 외야에 나타나기까지 기다리는 것이 당장은 좋아보였다.
“연장계약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야겠네요. 그리고 또 다른 선수들은요? 25인 로스터 안에서 잡아야 할 선수들 있나요?”
“에디슨 포레스트도 잡아야해요. 우리 선발진의 기둥이될 선숩니다. 지금 당장은 4~5선발로 평가받지만 못해도 2선발까지는 커줄 수 있는 놈이죠.”
“멜튼 록하트 역시 남겨야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에는 대타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의 성장세를 생각했을 때 3루는 록하트가 맡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운은 현재 선수단을 자신보다 더 잘 파악하고 있는 그들의 조언을 하나하나 적었다.
“그리고 더 있나요?”
“25인 로스터 안쪽이라면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만?”
“저도 더 추천할 선수는 없어요.”
손을 내젓는 미키와 케이지와는 다르게 거스는 여전히 뭔가 할 말이 남아있는듯 했다. 뭔가 걸리는 듯한 그의 표정.
“거스?”
다운의 말에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단장님.”
앞서 편하게 선수를 추천하던 목소리와는 사뭇 다른 진지한 그의 목소리.
“혹시 브래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5화 - 선수단 정리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