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지금까지 수고하셨습니다. >
Down Jung
팀의 순위를 하락시킨다는 불명예스럽기 그지없는 이 별명은 양키스 단장 시절 만들어졌다.
시작은 좋았다.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뛰어난 선수단. 그리고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자금력까지.
8년간 에이전트로 일하며 길러온 선수보는 눈과 전력 판단을 가감없이 보여줄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전력에서 이번에 FA로 풀리게 된 맥긴티하고 플래허티만 영입하면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가능합니다!”
맥긴티로 상대적으로 빈약한 3루의 공격력을 보강한다. 그리고 미트에 기름을 발라놓은 것으로 의심되는 브래넌을 대신해서 골드글러브 3회 수상에 빛나는 플래허티로 포수 자리를 메우면 우승을 위한 양키스의 전력은 완벽하게 갖추어 질 것이다.
하지만 다운에게는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다운의 브리핑과 요구를 들은 스타인브레너는 코웃음을 쳤다.
“우승? 자네한테 원하는건 우승이 아니야.”
“그러면······?”
“내가 자네에게 원하는건 하나. 우리 양키스의 페이롤을 줄이는거지.”
“프리드먼이 했던것처럼 말입니까?”
다저스로 간 프리드먼이 했던 바로 그 사치세 커트라인 맞추기를 원하는가 싶었다. 하지만 스타인브레너가 원하는 것은 그것보다 훨씬 더한 것이었다.
“No. 완벽한 페이롤 초기화.”
“완벽하다면······ 혹시 고액 연봉자를 다 쳐내라는······”
“Correct!”
“미ㅊ······”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나오는 욕설을 꾹꾹 눌러담은 다운이 물었다.
“혹시 고액의 기준이 얼마인지······”
“아직 FA자격을 한 번도 얻은 적 없는 선수를 제외하고는 1500만 달러 이상의 선수들은 모두 쳐내주게.”
양키스에서 1500만 달러 이상을 받는 서비스타임 6년차 이상의 선수는 총 10명이다. 그 중에서 2000만 달러 이상의 선수가 3명이고 3000만 달러 이상을 받는 선수는 2명이다.
이건 미친 짓이다.
“분명 계약서에 사인할때만해도 밀어주신다고······”
“그랬지. 내가 원하는 것을 확실하게 해낸다면 말이야.”
스타인브레너가 원하는 것. 너무나 당연하게 월드시리즈 우승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바로 악의 제국 양키스가 살아가는 방법이었으니까.
“계약기간 내에 이대로만 해내준다면, 재계약과 함께 무조건적인 지원을 약속하지.”
구단주가 강력하게 페이롤 리셋을 원하는 상황에서 다운이 할 수있는 말은 결국 하나밖에 없었다.
“해보겠습니다.”
***
“다들 네 이야기만 하는 것 같던데?”
글라이드의 말에 다운이 슬쩍 미소지었다.
“제가 이정도로 유명합니다.”
뭐 좋은 의미로 유명한건 아니다만.
“많이 자를건가?”
다운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최대한 살려야죠. 아예 새 판을 짜는건 힘들다는거 아시잖아요.”
썩어가는 나무를 한 번에 파내는 것은 나무를 죽이는 일이다. 나무를 살린채로 다시 싱싱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큰 줄기는 남겨둔 채로 썩은 부위만을 도려내야한다.
“힘들더라도 난 인내할 수 있다만?”
“어스틴이 인내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제가 알고있는 인맥의 대부분이 양키스 시절 다진 인맥이잖아요.”
그들 중 대부분은 프런트계의 양키스 프랜차이즈들이었다.
“그 친구들이 양키스에서는 잘했을지 모르지만, 레이스같은 스몰마켓에서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어요. 물론 그 친구들에게 시간을 주면 곧잘해낼테지만······”
“그들이 적응하는걸 기다리는 것 보다는 기존에 잘하고 있던 사람들을 그대로 쓰는게 낫다는 거구만.”
“네.”
그 와중에도 데려올 친구들이 있기는 했지만 당장에 주요 요직에 박을만한 놈들은 아니다. 최대한 현재 있는 인원들을 살리는게 운영하기 수월할 것이다.
똑똑!
노크와 함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구단주님 다 모였습니다.”
“들어오게.”
덩치만큼이나 배도 볼록하게 튀어나온 남자를 시작으로 다섯 사람이 구단주실로 들어왔다.
글라이드는 그들을 보고는 구단주실 가운데 있는 커다란 회의용 탁자를 가리켰다.
“앉게나.”
탬파베이 레이스의 프런트를 큰 틀로 나누어보자면
- 야구단 운영
- 재정
- 마케팅
- 커뮤니케이션
- 엔터테인먼트
이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는 이 다섯 파트의 장이 모두 모여있었다.
“앞으로 5년간 우리 구단을 이끌어줄 단장일세.”
이후에는 알아서 하라는 듯이 글라이드는 더 이상의 부연설명은 붙이지 않았다. 이에 맞춰 다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이스 단장이 된 다운 정입니다.”
다운의 소개에 각 파트장들 역시 자신을 소개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다운의 왼쪽에 앉은 깐깐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마케팅 파트. 닉 드럭만.”
뭐가 그리 불만인지 드럭만은 뚱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채 간단한 단어만 내뱉었다.
“앞으로 잘해보죠.”
고개 숙이면 정수리가 닿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드럭만이 내밀어진 다운의 손을 잡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분위기가 싸해지려는 그때 옆에 있던 사람이 웃으며 일어났다.
“5년째 레이스의 재정을 담당하고 있는 앤드류 러셀입니다.”
딱 봐도 다운이 단장이 된 것에 유감이 많아보이는 드럭만과는 다르게 러셀은 목소리에서부터 호감이 뚝뚝 떨어졌다.
“미쳐날뛰던 양키스의 페이롤을 메이저리그 21위까지 낮춘 바로 그 전설적인 단장! 제가 그 단장과 일하게 될 줄이야!”
왜 호감이 있었나 했더니 저런 이유였다.
“심지어 그 시즌 저희 레이스가 13위였는데 양키스가 저희보다 페이롤이 낮아질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때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저희 구단에서도 페이롤 관리를 잘해주실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약간의 투머치토커 기질도 있는 것 같다는 점은 마이너스이긴 했다. 하지만 레이스라는 재정이 빠듯한 구단에서 5년이나 성공적으로 재정을 책임졌다는 것은, 그의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분명 일에 있어서는 빡빡할테지.’
마음속으로 합격점을 준 다운이 다음 사람에게 눈길을 옮겼다.
“엔터테인먼트 파트장이자 창단 이래로 계속해서 레이스의 목소리를 담당하고 있는 모건 브래넌입니다.”
5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브래넌은 깔끔하고 힘있는 그의 목소리처럼 단정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별다른 문제만 없다면 브래넌과의 인연 역시 계속해서 이어나갈 것 같았다. 레이스처럼 역사가 짧은 구단에서 브래넌은 다저스의 빈 스컬리와 같은 레전드가 되어줘야만 하니까.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고 있는 카를로스 크로포드입니다. 카를이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크로포드는 서글서글하게 생긴 히스패닉 청년이었다.
카리브해와 맞닿아있는 지리적인 특성으로 인해 탬파베이가 속해있는 플로리다 주는 백인 다음으로 히스패닉과 흑인비율이 높은 편이다. 팬들이나 탬파베이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을 해야하는 커뮤니케이션 파트의 특성이 묻어나오는 듯 했다. 서글서글한 그의 인상과 친근하게 다가오는 친화력까지. 크로포드 역시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먼저 들어왔던 배불뚝이 아저씨만이 남았다.
“운영팀 시니어 디렉터 피트 클라인입니다.”
운영팀으로의 업무를 첫인상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으니 그에 대한 판단은 보류했다.
클라인을 마지막으로 모든 소개가 끝났다.
“이제 자네들이 이렇게 한 팀이 될 예정인데 혹시 마음에 안들거나 가슴에 담아둔 말이 있나? 시작하기 전에 이왕이면 속에 담아둔 말을 다 풀어내면 좋을 것 같은데.”
글라이드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대놓고 반감을 표했던 드럭만에게로 돌아갔다.
그들의 시선에 드럭만에 팔짱을 풀었다.
“또 나지 젠장! 너희 다 불만 있잖아 안 그래?”
드럭만의 말에 러셀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인상을 썼다.
“난 완전 찬성인데? 전.혀. 손톱만큼의 반대하는 마음도 없는데? 불만은 닉 네가 가지고 있겠지.”
“돈귀신 네놈이야 그렇게 생각하겠지. 하지만 다른 놈들은 안그럴껄? 모건?”
브래넌은 어깨를 으쓱했다.
“저는 불만 없습니다. 어떤 분이 오시던 저와 엔터테인먼트팀이 활약하는 트로피카나 필드에 더 많은 팬들만 데려와주실 수 있는 분이라면 말이죠.”
“그러니까 Down Jung은 팬을 감소시킬 사람이라니까? 마케팅 파트가 어떤 식으로 홍보를 하든 저기 있는 사람이 우리 단장이 된다는 발표를 하면 우리 팬들은 실망하고 떠날거라니까?”
“아직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죠. 그때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습니다.”
브래넌의 정중한 거절에 그는 확 고개를 돌렸다.
“카를 너는?”
“저도 모건이랑 같은 의견이에요. 팬들이 싫어하는 반응을 아직 보인건 아니잖아요? 게다가 구단주님이 데려온 이상, 그 시선을 돌려야하는게 저랑 닉의 일이고요.”
크로포드마저 반대 의견을 표하자 드럭만은 자신의 의견에 동의해줄 마지막 사람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피트?”
여섯 쌍의 시선이 모이자 클라인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개인적으로는 닉 자네 의견에 동의해.”
“그렇죠? 역시 피트는 그럴 줄 알······”
드럭만은 자신과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의 등장에 흥분했다. 하지만 이른 흥분은 좋지 못한 법.
“쉿.”
드럭만의 입을 다물게 한 클라인은 다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단장님.”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눈이나 표정 행동 말투에서는 다운에 대한 불만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네.”
“저는 솔직히 걱정이됩니다. 다른게 문제가 아니라 레이스의 팬으로서, 그리고 레이스를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으로 말이죠. 빅마켓에서 단장을, 그것도 실패했다고 평가받는 단장생활을 해오신 단장님이 이제 새 출발을 해야하는 우리 구단에 맞는 인물인지 확신할수가 없습니다.”
팬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다운과 같은 이미지를 가진 단장이 자신의 구단으로 온다는데 좋아할 팬이 어디있겠는가.
“하지만 운영파트의 의견을 종합해야하는 파트장으로는 아무런 불만도 없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다.
“운영파트에서 누군가는 저를 환영했다는건가요?”
다운의 질문에 클라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팜 디렉터와 스카우트 팀장이 단장님이 오셨다는 말을 듣고는 한 마디씩 하더군요.”
“뭐라고 하던가요?”
“팜 디렉터는 단장님이 우리 팜을 비옥하게 만들거나 거덜낼 사람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양키스 단장 시절 샐러리 덤핑을 하면서 유망주들을 워낙에 퍼다준 전적이 있기에 거덜낸다는 평가가 나온듯 했다.
“거덜내는건 이해가 되는데 비옥하게 만들거라고 생각한 이유는 뭐죠?”
“그것까지 물어보진 않았습니다.”
“스카우팅 팀장은요?”
“아버지 눈을 물려받아서 그런지 같은 생각을 하더군요.”
클라인의 말에 러셀이 첨언했다.
“팜 디렉터가 스카우팅 팀장 아버집니다.”
나중에 무슨 이유로 그랬는지 물어봐야할 것 같다.
“뭐 여튼 이제 정리는 됐네요.”
누가 순순히 이 팀에 남아 도움을 줄 것인지, 누가 사사건건 방해를 할 것인지가 확실히 보였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기회는 주는게 인간의 도리.
“그래서 닉. 당신은 제가 단장으로 있으면 제대로 일을 못할 것 같나요?”
드럭만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바이럴마케팅도 정도가 있죠. 그렇지 않아도 저희 레이스 에서 마케팅하기가 얼마나 힘든데, 거기에 불만까지 잠재우면서 마케팅을 성공시키라는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시작도 하기 전에 힘들 것 같다고 징징대는 사람은 새로 시작할 레이스에는 필요가 없다.
“Mr. 드럭만. 저를 마음에 들어하시질 않는 것 보니 아무래도 저랑은 함께 일하기 힘들 것 같네요. 지금까지 수고하셨습니다.”
< 4화 - 지금까지 수고하셨습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