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MLB 단장-3화 (3/268)

< 3화 - 지옥의 첫 출근 >

회사를 그만 둔 다운은 곧바로 글라이드씨를 찾아가는 대신 자신이 아는 야구계 인맥을 모두 동원해서 레이스의 현재 상태에 대해 알아냈다.

[레이스? 레이스는 왜?]

“거기서 일하게 될 것 같아서.”

[이야! 드디어 돌아오는거야? 그래! 내가 아는 다운 정은 내려가기만 할 놈이 아니거든! 하하!]

“그런 소리는 나중에 하고, 레이스에 대한 정보 있으면 싸그리 나한테 보내줘. 대가는······”

[밥이나 사. 짜식아! 이제 연락도 좀 자주 하고.]

“고맙다.”

에이전트를 할 때, 그리고 단장으로 일할 때 헛짓거리를 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별다른 대가 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으니까.

그리고 3일 뒤

다운은 수트를 차려입은 뒤 글라이드씨

아니. 글라이드 구단주님 자택의 문 앞에 섰다.

“후우······”

숨을 깊게 내쉰 뒤 문을······

벌컥!

“으앗!”

글라이드 구단주님은 다운이 놀라건 말건 신경쓰지않았다.

“뭐해?”

“그, 노크 하려고······”

“평소라면 그냥 문 열고 들어오던 놈이 무슨 노크를. 얼씨구? 수트도 빼입었네?”

“아니 이건 유니폼 같은······”

“아직 계약서도 안쓰고 출근도 안한 놈이 무슨 유니폼 타령이야?”

핀잔을 준 글라이드가 목소리를 바꿔 물었다.

“마음은? 확실히 정하고 왔나?”

이에 다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일도 그만뒀어요.”

“그래. 들어와.”

글라이드는 서재로 다운을 이끌었다.

“계약서다. 차 한잔 끓여올테니까 잘 읽어봐라.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고.”

계약서는 길고도 길었다.

계약 기간과 연봉부터 시작해서 구단에서 제공하는 것들, 품위유지에 대한 내용까지 하나하나 세세한 내용들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뭐 그런 사소한 것들은 무시하고 모두가 궁금해할만한 내용들로 정리해보자면

계약기간 : 2021년 11월 ~ 26년 11월(5년)

연봉 : 5년 총 50만 달러(약 5억 8900만 원)

양키스 단장 시절 받았던 연봉이 연 20만 달러에다가 계약해지 위약금까지 포함해서 총 120만 달러 정도를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 확연히 줄어든 연봉이다.

차를 우려온 글라이드가 다운의 눈이 향한 곳을 보고는 물었다.

“연봉이 좀 적지?”

다운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돈은 중요하지 않아요.”

올 초 GME 탑승으로 인해서 다운의 계좌는 빵빵했다. 연봉은 물론이고 총액조차도 우습게보일 정도로 말이다.

지금 다운에게 중요한것은 돈 같은 그런 것이 아니라 바로 기회였다. 낮아질대로 낮아진 자신의 명성을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그리고 자신을 버린 양키스 놈들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는 그런 기회말이다.

다운의 손에 들린 만년필이 유려하게 움직여 서명을 만들어냈다.

스스슥!

그리고 한 장을 글라이드에게 건넸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다운.”

“제가 할 말이에요 어스틴.”

확실한 소속이 정해졌다. 이제는 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해볼 차례였다.

“요 며칠간 모든 정보를 동원해서 레이스의 상황에 대해서 알아봤어요.”

다시 단장이 되면 무슨 일을 할 것인가?

만약 자신이 맡을 구단이 바로 옆에 있는 레이스라면?

양키스에서 잘린 뒤 늘 상상해오던 일이다.

“제가 가진 여유자금은요?”

가장 중요한 건 돈이다.

“음······ 5억 달러 정도. 그 이상은 나도 더 투입할 수가 없어. 묶여있기도 하고, 이게 망해도 먹고는 살아야하지 않겠나.”

5억 달러면 빡세다.

제대로 된 FA 한 명조차 여유롭게 영입할 수 없는 그런 돈이었으니까.

하지만 다운이 생각하고 있던 일을 하기에는 충분한 금액이다.

“레이스의 올 시즌 페이롤이 대략 7000만 달러 정도 될거에요. 나가는 선수가 있다고는 하지만, 연봉이 오르는 선수들에 구단 직원들에게 나갈 연봉들까지 생각하면 내년에 연봉으로 쓸 금액은 넉넉하게 1억 달러 정도는 남겨놔야할거에요.”

“더 벌어들이면 되잖아.”

“레이스는 큰 돈이 들어올 건덕지가 별로 없어요. 중계권료 계약도 이미 해놓은 상태고······ 혹시 연 수익이 얼마 정도 나는지는 알아봤어요?”

“당연히 알아봤지. 지난 5년간 평균적으로 5000만 달러까지는 벌어들이더라.”

글라이드의 말에 다운의 얼굴이 굳었다.

“확실히 수익이 적긴 하네요.”

“양키스는 대략 얼마였는데?”

“평균적으로 1억 달러 근처였어요. 게다가 제가 알기로 순수익이 아니라 총액만으로 따지면 양키스가 벌어들이는 돈이 레이스의 세 배 정도는 될걸요? 물론 그 중에서 반은 스타인브레너가의 빚을 갚는데 나가긴 했지만, 중요한건 양키스는 돈을 그렇게 써대면서도 그 정도의 수익을 유지한다는거고······”

“우리는 당장에 그렇게는 안되겠지.”

“맞아요. 그래서 혹시나 있을 비상사태를 대비해서 무조건 2년 정도 여유분은 남겨놓는게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혹시 세인트피터스버그나 탬파 고위 공직자 중에서 끈 좀 있어요?”

“있기야 한데······ 그건 왜?”

“남는 3억 달러는 신구장에 때려부어야죠.”

레이스가 비인기팀인, 관중이 오지 않는 이유. 그건 바로 구장 때문이었다.

“굳이 구장을 지을 필요가 있을까?”

“100퍼센트 구장 탓이라고는 할 수 없죠. 하지만 팬들이 오기 쉽지 않은 위치에 있다는건 동의하시잖아요.”

“그건 그렇지.”

트로피카나 필드에 가려고 하다가 길이 막혀서 열이 터진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게다가 그 길을 뚫고 갔는데 주차장 역시 혼잡하니······

예전의 기억을 떠올린 글라이드씨가 인상을 찌푸렸다.

“솔직히 레이스가 성적이 좋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그렇게 적게 벌어들이는건 순전히 구장의 위치 탓이에요. 시청률도 잘나오는 편이거든요.”

“시청률이 좋아?”

“그것도 몰랐어요?”

“말했잖아. 난 그저 레이스를 사야했을 뿐이야. 적자가 나지 않고 빚이 없다는 걸 확인했을 뿐, 다른건 생각하지도 않았어.”

어지간히도 충동적인 구매였나보다.

“제가 단장에 있을때만해도 대략 20위 정도였을걸요? 작년에 월드시리즈에 오르기도 했고, 올 시즌도 성적도 꽤 괜찮았으니 그보다는 더 올랐을거에요.”

20위라고는 하지만 스몰마켓이라는 걸 생각하면 상당히 높은 시청률이었다.

“구장에 오는 것이 귀찮아서 TV로만 시청하는 팬들을 끌어들여야 레이스가 더 커질 수 있어요.”

팬이 와야 티켓을 팔고, 구단 매장이 유니폼을 팔고, 굿즈를 팔고, 먹을걸 팔수있다. 이 모든건 트로피카나 필드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2028 시즌에 들어가기 전에 트로피카나 필드 계약이 끝난다더라고요. 탬파 시와 함께 신구장 건설계획을 빠르게 논의하는게 좋을 것 같네요. 너무 늦으면 울며 겨자먹기로 트로피카나 필드와의 계약을 연장해야할지도 모르니까요.”

“오케이. 그러면 난 곧바로 탬파 쪽 인사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지.”

“그놈들 조심하세요. 맨날 공약으로 신구장이니 뭐니 하다가 당선되면 모르쇠하는 놈들이니까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행태. 정치인들은 왜 다 저 모양인지 모르겠다.

“알겠네. 그쪽은 나에게 맡기고······ 출근은 곧바로 할건가?”

“그래야죠. 가서 확인해볼 것도 많고······ 필요한 곳이 있다면 사람도 데려와야죠. 인사권 정도는 있죠?”

“의도적으로 레이스를 망치려고 하거나, 비리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앞으로 5년간 네가 어떤 일을 저질러도 잘리는 일은 없을거야. 너와 잘 맞지 않는 직원 있으면 잘라도 돼.”

“알겠어요.”

글라이드는 서랍을 열고 그곳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리고 다운에게 내밀었다.

“자.”

레이스 로고와 자신의 이름과 얼굴이 박힌 출입 카드키.

“나중에는 직원들이 네 얼굴을 알아보기야 하겠지만 처음에는 필요할게다.”

“제가 만약 수락안했으면 어쩌려고 이렇게 미리 제 얼굴까지 박아놨어요? 심지어 이거 2년 전 사진 아니에요?”

“나한테 있는 사진이 그것뿐인걸 어떡해? 그리고 네가 수락을 안해? 하! 호랑이가 고기 안 먹는거 봤어?”

그리고 그 아래에는

Tampabay Rays

General Manager

Da-Un Jung

깔끔하게 이름이 박힌 명함꾸러미가 있었다. 글라이드의 손이 명함꾸러미 위로 넘어왔다.

“앞으로 잘 부탁하네.”

다운은 넘어온 손을 힘차게 마주잡았다.

“저도요 구단주님.”

***

빠아아아앙!

“빨리 빠져 이 자식아!”

“끼어들지 말라고!”

첫 출근길은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였다.

다운은 옆자리에 있는 글라이드에게 고개를 돌렸다.

“늦겠는데요?”

글라이드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빨리 새 구장을 추진해야겠어.”

출근 시간은 9시.

세인트피터스버그까지 가는데에는 보통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그런 경험에 의지해서 넉넉잡아서 올랜도에 있는 집에서 7시에 출발했다.

탬파까지 들어가는데에는 40분 가량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뒤부터가 문제였다.

탬파에서 세인트피터스버그로 가는 두 다리 중 하나인 하워드-프랭클린 다리 초입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다리 위부터는 분당 1미터씩 이동하는 주차장이 이어졌다. 이 정도면 걸어가는게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출퇴근길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도 새 구장은 꼭 필요할 것 같았다.

“이러니 팬들이 구장에 안오려고 하지.”

“2018년에 이버시티로 이전하자는 계획 나왔었다고 알고있거든요? 그거 재추진해보죠.”

이버시티면 딱 주차장이 시작되기 전, 탬파 시내에 위치한 곳이다. 만약 그곳으로 구장이 옮겨진다면 팬들이 찾아오기 훨씬 편해질 것이었다.

“내 꼭 성사시키도록하지.”

다행히 다리를 건너고 나서부터는 어느정도 길이 풀리기 시작해서 9시에 거의 맞춰서 도착할 수 있었다.

“주차장이 아닌 곳은 주차장인것 마냥 차가 많더니······”

시즌이 끝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트로피카나 필드의 주차장은 한산하기 그지없었다.

그나마 있는 차들은 프런트 사무실이 있는 곳 근처에 밀집되어있었다.

“저기다 대.”

프런트와 가까운곳임에도 유이하게 비워진 주차공간. 다른 주차공간들보다도 눈에 띄게 넓은 공간임에도 다른 차들은 얼씬도 하질 않고 있었다.

“왼쪽에 대면 돼.”

“왼쪽은 단장 전용, 오른쪽은 구단주 전용이거나 뭐 그런거에요?”

다운의 농담에 글라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그게 진짜였다니!

“양키스에는 이런거 없었나?”

“양키스에서는 발렛파킹해주는 직원이 있었어서 제 차가 어디 주차되는지 본 적이 없는걸요.”

“빌어먹을 양키스.”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었는데.”

단장 전용 주차장이라 그런지 내리자마자 프런트 출입구가 바로 코앞이었다.

“저기요! 거기 대시면······”

프런트 정문을 지키던 경비가 달려오며 소리치더니 글라이드를 보고는 멈칫했다. 그리고 빠릿한 동작으로 경례했다.

“구단주님 안녕하십니까!”

“아 그래 톰.”

두 사람은 지난 방문에서 서로 인사를 나눈 모양이다. 글라이드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준 것이 감격스러웠는지 톰의 표정이 흐물흐물해졌다.

하지만 해야할 일은 해야하는 법.

“구단주님 지금이야 단장님이 없어서 상관없지만, 다음에는 옆에 주차를 해주셔야합니다.”

톰의 말에 글라이드가 씨익 미소지었다.

“오늘은 이해하겠지만, 다음에는 이 친구 얼굴을 까먹지 말도록하게.”

“네?”

다운은 주머니에서 출입증을 꺼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묻는 톰에게 내밀었다.

“오늘부터 레이스 단장이 된 다운입니다. 앞으로 잘부탁해요 톰.”

새로운 단장이라는 말에 톰이 화들짝 놀랐다. 카드를 확인하는 둥 마는 둥 훑은 그는 곧바로 다운에게 카드를 건넸다.

“저,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프런트 오피스 정문으로 들어가자 톰이 두 사람을 대신해서 동료들에게 설명했다.

“구단주님과 새로운 단장님이시래! 다들 얼굴 익혀둬!”

톰의 말에 정문에 있던 경비와 컨시어지 직원이 다운의 얼굴을 뇌에 각인이라도 시키듯이 빤히 쳐다봤다.

“안내해드릴까요?”

직원이 다가왔지만 글라이드가 손을 내저었다.

“우리끼리 들어가도록 하지. 할 이야기가 있어서.”

직원을 물린 글라이드가 앞장서서 다운을 이끌었다.

“내가 준 카드 하루만에 쓸모없어지는거 아냐?”

“설마요.”

정문에서는 다운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구단주와 단장 사무실, 그리고 회의실이 위치한 심층부에 다가가면 갈수록 다운을 알아보는 사람이 생겼다.

“혹시 Down 정 아니야?”

“새 단장님이라더니 우리 단장으로 Down 정이······?”

나름대로 속삭인다고 한 듯 한데, 그들이 하는 말은 두 사람의 귀에 쏙쏙 들이박혔다.

“자네 유명하구만?”

“안좋은 쪽으로 유명하긴 하죠. 아시잖아요.”

아무래도 첫 출근.

쉽지 않을 것 같다.

< 3화 - 지옥의 첫 출근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