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 It’s time to go on >
5년 전
메이저리그 전체에 브레이킹 뉴스가 퍼져나갔다.
- 뉴욕 양키스. 에이전트 출신의 다운 정을 단장으로 결정.
누구나 원하는 그 자리.
다운은 뉴욕 양키스 최초의 동양인 단장으로 취임했다.
“양키스의 단장이 되신 기분은 어떻습니까?”
“환상적이죠! 야구를 아는 사람이라면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에 대한 동경이 없을 수가 없을겁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죠. 이런 엄청난 구단의 단장으로 부임했다는 것이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네요.”
“대학 2학년까지 포수로 뛰다가 어깨 부상으로 은퇴. 그리고 8년간 에이전트로 일해오셨다고 들었습니다. 프런트로 일한 경력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불안감을 표시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월가에만 있다가 곧바로 단장이 되신 분들도 많습니다. 그런 분들에 비해서 저는 오히려 야구계에서 일해왔다는 장점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앞으로의 목표는 어떻게 됩니까?”
“그야 당연한거 아니겠습니까?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이죠.”
양키스는 언제나 최고의 지원을 받는 컨텐딩 팀이다. 야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만해도 다운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했었다.
***
“이런 우울한 이야기 해봤자 뭐합니까? 맥주나 한 병 더 하자고요.”
다운은 빈 맥주캔을 구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냉장고에 맥주 더 있죠?”
“있지. 근데 그 전에 잠깐 앉아봐.”
글라이드씨가 다운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젊고 건장한 다운이 뿌리치지 못할 정도의 힘은 아니었지만, 다운은 그의 힘에 저항하는 대신 순응하는 것을 택했다.
“자. 앉았어요. 그리고 다음은요?”
글라이드씨는 지금까지의 말투와는 전혀 다른 진지한 목소리로 운을 띄웠다.
“내가 최근에 며칠간 없었던건 알지?”
“신문 받아달라고 부탁했던거 벌써 까먹었어요?”
노망들었냐는 듯한 다운의 말투에도 글라이드씨는 여전히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어디 갔다왔을 것 같아?”
“저야 모르죠.”
평소처럼 가볍게 답하던 다운이 진지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글라이드씨와 눈을 마주쳤다.
빨리 어디갔다왔는지 물어보라는 눈빛. 한참을 눈을 맞추던 다운은 한숨을 쉬며 물었다.
“하아······ 좋아요. 어디 갔다왔는데요?”
“탬파.”
“탬파요? 고작 탬파가는데 며칠이나 비웠다고요?”
탬파는 올랜도 남서쪽에 위치한 곳에 사는 두 사람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도시다. 차로 이동한다고 생각했을 때, 아무리 오래 걸려도 두 시간이면 도착하는 거리.
굳이 며칠씩이나 그곳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 있었지.”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길래요?”
“20억 달러를 써야할 일.”
글라이드씨의 말에 다운이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뭔가 잘못들은 것 같은데요? 20억 달러요?”
20억 달러면 한화로 약 2조 370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정확히 들었네. 역시 젊은 놈의 귀는 달라.”
“대체 뭘 했는데 20억 달러를······ 아니지 그 전에 20억 달러라는 돈이 있었어요?”
부자라는건 알았지만, 저 정도로 부자인줄은 몰랐다.
“있으니까 썼지?”
“20억 달러나 있는 사람이 이 동네에 산다고요?”
올랜도 시내도 아니고 남서쪽 교외지역이다. 물론 이 동네가 좋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20억 달러면 동네 전체를 사서 궁궐을 지을 수도 있는 금액이었다.
“제니가 좋아하던 동네고, 집이니까. 다른 곳에서 사는건 의미가 없어.”
언제나 느끼는거지만 참 로맨틱한 아저씨다.
“그리고 20억 달러는 얻은지도 얼마 안됐지. 최근에 와서야 그렇게 늘어난거니까.”
“최근에요?”
“너도 알잖아. 게임스탑.”
“아!”
올 초에 있었던 엄청난 파동. 다운도 글라이드씨의 조언에 따라 흐름을 타서 엄청난 대박을 내고 내려올 수 있었다.
‘얼마 넣었는지 알려주지도 않더니······’
다운은 20~30달러 선에 들어가서 500달러 언저리를 찍을 때 빠져나왔다. 그 전부터 ‘돈 냄새가 나······ 조짐이 보여!’ 이러고 있던 글라이드 씨는 그것보다 더 싸게 들어가서 500달러 쯤 나왔다.
다운이 25배 정도 벌고 나왔는데, 글라이드씨는 얼마나 더 벌었을까.
“저였으면 바로 이 동네 떴을텐데요.”
“뭔 개소리야. 부모님이 떠날때도, 뉴욕 갈때도 이 집은 안 팔고 놔뒀던 놈이 퍽이나?”
“그야······ 마이애미에 본 집이 있으면 세금 덜내잖아요. 별장으로도 쓸 수 있고. 덕분에 친구가 하는 투자회사에 들어갔잖아요. 그게 아니었으면 올랜도에 또 집 구해야 할 뻔 했는데.”
핑계야 그렇지만, 그냥 어릴적부터 살던 집이라 곳곳에 추억이 묻어있어서. 너무 익숙한 곳이어서 떠날 수 없었을 뿐이다.
“그래서 20억 달러로 뭐 샀는데요?”
20억 달러라는 돈이면 솔직히 평생을 놀고 먹어도 된다. 그런데 그걸로 또 뭔가를 샀단다. 뇌가 있고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글라이드씨가 무엇을 샀는지 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
“제니가 예전부터 좋아했던게 하나 있지.”
글라이드씨의 아내인 제니퍼는 성격이 참 좋았다. 이른바 동네의 인싸였다고나할까? 그녀의 유한 성격에 사람들이 저절로 꼬여들곤 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돌변할 때가 있었다.
“레이스요?”
“맞아.”
“제니퍼 아주머니가 레이스 경기때마다······”
미친놈처럼 응원하곤 했죠.
그 말을 하려는 순간
“그거 사고 왔다.”
뭔가 잘못 들은 것 같다.
“네?”
되묻는 다운의 귀로 다시 한 번 때리박히는 글라이드씨의 목소리.
“그거 샀다고.”
“레이스를요?”
“그래.”
“메이저리그 구단인 그 탬파베이 레이스를요?”
“그 탬파베이 레이스.”
“트로피카나 필드를 홈 구장으로 쓰는?”
“그래. 그 세인트 피터스버그에 있는 그 트로피카나 필드가 홈구장인 탬파베이 레이스. 그거 사고왔다.”
아니 무슨 그런 이야기를 슈퍼에서 뭔가 사온것처럼 하십니까?
***
얼마전부터 메이저리그 전체에 이야기가 돌긴 했었다.
스튜어트 스턴버그가 레이스를 매각하려고 한다!
글라이드씨와 비슷하게 헤지펀드를 운용하던 스턴버그는 2005년에 나이몰리 구단주로부터 레이스를 인수했다.
스턴버그를 필두로 월가에서 잔뼈가 굵은 3인방은 레이스의 암흑기를 끝내고 부흥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그게 그들의 한계였다.
준우승은 두 차례 경험했지만, 제한적인 스몰마켓의 재정과 이런저런 상황으로 인해서 우승은 해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점점 떨어지는 야구의 인기는 그렇지 않아도 적은 레이스의 관중을 더더욱 뺏어갔다. 그래서 스턴버그가 레이스의 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구단을 매각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리고 페넌트레이스가 끝난 직후 뉴스가 나왔다.
- MLB 구단주 그룹. 레이스 매각 동의
- 익명의 구매자. 구매 완료되면 정체 밝힐 예정.
“그 익명의 구매자가 어스틴이었다고요?”
“그래. 나다.”
“스턴버그만 노났네요.”
스턴버그가 레이스를 인수할 때의 금액은 2억 달러. 하지만 지금은 그 10배가 뛴 20억 달러가 되었다. 약 15년 간의 관리와 투자로 인해서 남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금액을 벌어들이게 된 것이다.
“근데 하필 왜 레이스에요? 다른 선택지도 있으셨을텐데.”
스턴버그가 레이스를 매각하려고 했던것처럼 애슬레틱스와 오리올스 역시 구단 매각을 알아보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야구계 소식을 따로 알아보지 않았던 자신도 알고있는 소식을 글라이드씨가 몰랐을리는 없었다.
“제니가 좋아했던 팀이니까.”
이게 노년의 플렉스인가?
“너무 감정적인거 아니에요?”
글라이드씨가 픽 웃었다.
“우리가 애가 있었냐 뭐가 있었냐? 무덤까지 들고갈 것도 아니고 돈 벌어서 이럴때 쓰는거지.”
“그러고보니 제니 아주머니가 레이스가 우승하는걸 보는게 꿈이라고 했었죠?”
“우승을 이루고 나중에 천국에가서 ‘내가 당신 꿈을 이뤘다고!’ 라고 소리치는게 내 꿈이네.”
정말 이 아저씨······ 로맨틱하다.
“근데 단장이 문제야.”
글라이드씨의 말에 다운이 고개를 갸웃했다.
“네안더도 잘하고 있지 않아요?”
“그 인간은 마침 계약기간이 끝났더군. 다른데로 간다더라.”
“그냥 어스틴이 단장까지 하시면 되잖아요.”
“내가? 평생을 월가에서만 살아온 내가 단장을 하라고?”
“그런 단장이 없는것도 아닌데 아저씨라고 못할건 없죠.”
하지만 글라이드씨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니야. 단장을 하면 이것저것 신경쓸 것도 많고 말이야. 나는 그냥 지금처럼 소소하게 돈놀이 하면서 팀이 상승하는 걸 지켜만 보고 싶거든.”
“그럼 음······ 누굴 추천해드리지······”
다운이 자신의 머리에 떠오르는 단장감들을 하나하나 넘기고 있을 때 글라이드씨가 다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브라운은 너무 우유부단하고, 헤일리가 조금 나으려······”
턱!
글라이드씨의 손이 다운의 말을 멈췄다.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다운이 글라이드씨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의 입이 열렸다.
“난 네가 내 구단의 단장이 되어줬으면 한다.”
순간 다운은 벙쪘다.
“에? 저를요?”
벙 찐 다운과는 달리 글라이드씨는 아주 냉정하고 냉철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주변에서 너보다 나에 대해서, 그리고 야구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이 있나?”
“그야 없겠죠.”
애초에 야구계에 종사한 사람이 다운밖에는 없으니까 있을리가 없었다.
“양키스 선수단을 분석할 정도로 야구계에 정통하고.”
“그건 제가 양키스 단장이었으니까 구단에 대해 잘 알아서 그랬던거죠.”
“그럼 레이스도 잘 알아가면 그 정도 분석을 할 수 있게 된다는거지.”
맞는 말이다.
시간만 주어진다면, 그리고 노력이 더해진다면 저 정도의 분석은 얼마든지 해낼 수 있었다.
“그리고 팀의 사정도 문제야. 우리 팀이 그렇게 단장으로 오기에 매력적인 팀은 아니잖나.”
그 어떤 단장도 페이롤에 연연하며 우승을 노려야하는 상황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해낸다면 그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것이다.
그걸 해냈던 프리드먼은 다저스로 향한 뒤 승승장구하고 있고, 네안더 역시 행선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좋은 조건으로 다른 구단에 스카우트 되었을 것이다.
“인수하고 이틀간 비공개 단장 면접까지 내친김에 보고왔네만······”
어쩐지 오래 머무른다 싶었더니 면접까지 진행하고 와서 그런 모양이었다.
“마음에 드는 놈이 없더군. 다들 ‘투자를 조금 해주신다면 우승을 할 수 있습니다!’이런 말만 하지. 우리 구단의 재정따위는 생각지도 않으면서 말이야.”
그들이 다시 생각났는지 글라이드씨는 눈살을 팍 찌푸렸다.
“돈이 투자되면 당연히 우승을 해야지. 그런 말을 누가 못해? 하지만 내가 원하는건 그런게 아니란 말이야. 그럴 돈도 없고. 난 내 돈을 부으려고 레이스를 산게 아니야. 자립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성공할 수 있는 레이스를 만들어서 우승까지 시키는게 내 꿈인데 그걸 이해하는 놈이 단 한 놈도 없더란 말이지. 그런 의미에서 너.”
다운의 어깨에 올린 손에 힘이 들어갔다.
“너만큼 내 구단에 어울리는 단장은 없어. 나처럼 레이스를 좋아하고, 재정도 생각을 하면서, 팀을 오래 이끌 수 있는 분석과 식견을 가진 사람. 내가 알기로는 너 하나 밖에는 없다.”
확신에 찬 글라이드씨의 목소리와는 대조되는 약한 목소리가 다운의 성대에서 새어나왔다.
“하지만 전······ 한 번 실패한······”
“그건 의도된 실패였지. 실패로 포장된 성공이었고.”
“그리고 저는 지금 제 삶에도 충분히 만족을 하고 있······”
다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글라이드씨가 코웃음을 쳤다.
“남의 지시를 받는건 죽도록 싫어하고, 흥미가 없는 일에는 절대로 최선을 다하지 않는 그 다운 정이 평범한 펀드매니저로 만족한다는 개소리를 믿으라는거냐?”
그러면서 글라이드씨가 두 손으로 다운의 양 어깨를 세게 쥐었다.
“Hey son. It’s time to go on.”
***
“헤이 럭키 정! 오늘은 괜찮은 종목 좀 보여?”
옆 자리에서 근무하는 직원의 질문에 다운은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했다.
몸짓에서조차 권태로운 감정이 묻어나오는 듯 했다.
‘지루하다······’
글라이드씨의 말이 맞다.
금융업은 빌어먹을 정도로 재미가 없다.
여기도 돈.
저기도 돈.
그러면서도 돈을 벌어서 뭔가를 하겠다는 그런 목표가 없다. 오로지 더 큰 돈을 벌기 위한 그런 바닥.
“GME 같은 거 나오면 바로 알려주기로 한 거 잊지않았지?”
그나마 친하다고 생각했던 옆에 놈도 똑같다.
‘내가 글라이드씨의 조언에 따라서 대박을 터트리지 않았다면 그때도 저 놈이 친하게 다가왔을까?’
정답은 No.
기억을 되새겨보니 동료들 중에서 가장 친한 저놈조차도 자신이 대박을 터트린 이후에나 살갑게 굴었다.
순간적으로 환멸감이 올라왔다.
돈을 버는 것만이 전부인 업계.
‘과연 내가 여기서 계속 일할 수 있을까?’
아무런 목표도, 성취감도 없이 그렇게 기계의 부품처럼 평생을 일할 수 있을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벌떡!
자리에서 갑작스레 일어서는 다운을 보고 움츠러들었다.
“미, 미안! 내가 너무 들이댔지? 그래도 영업 비밀일텐······”
그런건 아무래도 좋다. 해야할 일이 정해졌으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다운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디 가?”
“Rays!”
< 2화 - It’s time to go on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