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 양키스에서 잘린 단장 >
야구팬에게 있어서 10월은 빌어먹을 계절이다.
매일같이 퇴근 후의 저녁을 채워주던 TV속 친구가 3개월간 사라진다는데 좋아할 사람이 어디있을까?
끼이이익!
덜컥! 덜컥!
다운의 차에 있는 발신기를 인지한 차고가 기름을 먹여달라는 소리를 잔뜩내며 천천히 열렸다. 노쇠한 차고 문이 힘겹게 자신을 들어올리는 사이에 누군가가 조수석 창문에 노크를 했다.
옆집에 사는 글라이드씨다.
창문을 내리자 그가 몸을 쑥 집어넣었다.
“어이 다운! 그 정도면 이제 교체할때도 되지 않았나?”
“교체할 돈이 있어야죠.”
“돈도 잘 버는 놈이 무슨 소리야.”
“제가 잘 벌어봐야 어스틴보다 잘 벌겠어요?”
글라이드씨는 이 동네에서만 20년 가까이 살아온 사람이다. 다운이 이 동네에 처음 들어왔을 때와 비슷한 시기에 이사를 와서는 지금까지도 이웃으로 지내는 사이.
그리고 또 다른 특징이 있다면 사람들이 다들 아는 알부자라는 점이다. 아주 큰 투자회사의 사장이라던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전 재산이 몇 십억 달러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뭐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그가 부자라는 사실은 확실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글라이드씨는 다운에게 있어서는 어릴적부터 봐왔던 옆집 아저씨일 뿐이었다.
“그나저나 어디 갔다왔어요?”
매일 이야기를 하지는 않아도, 매일 얼굴을 보던 사람이 바로 글라이드씨였다. 그런데 최근 며칠간은 그가 얼굴을 보이질 않았다.
만약 그가 어딘가를 가기 전에 다운에게 ‘며칠만 신문 좀 받아놔 줘.’라는 부탁을 하지만 않았다면 고독사를 당한건 아닐까 걱정했을지도 모른다.
“그게 궁금해?”
“당연히 궁금하죠.”
“궁금하면······”
다운의 말에 글라이드씨는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손목에 스냅을 주며 까딱거렸다.
“······ 오늘 저녁에 야구보면서 한 잔 어때?”
그의 말에 다운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저 양키스 싫어하는거 아시는 분이 왜 그래요?”
이번 월드시리즈는 양키스와 다저스의 매치업. 아주 클래시컬하면서도 뻔한 매치업이다.
“늙은이 말동무 좀 해줘라.”
서글픈듯한 그의 말에 다운이 한숨을 쉬었다.
글라이드씨는 지난해 봄이 오기 전 아내를 떠나보냈다. 사인은 유방암 말기. 슬하에 자녀가 없는 글라이드씨는 그렇게 혼자가 되었다.
그 모든 내역을 아는 다운이 그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하아······ 좋아요. 가자고요. 간다고요.”
“예쓰!”
다운의 허락에 글라이드씨는 주먹을 불끈쥐며 기뻐했다.
“저녁은 아직이지?”
“이제 퇴근했는데 먹었겠어요?”
“좋아. 그러면 씻고 곧바로 넘어오라고. 저녁으로 먹을만한 음식들이랑 맥주 준비해놓을테니까.”
손가락을 한 번 탁 튕기더니 순식간에 사라지는 글라이드씨.
“하여간 어스틴은 항상 이런식이라니까.”
그러면서도 모른척을 할 수 없는 것은 오랫동안 이웃으로 지내왔다는 것. 그리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가족과 함께하지 않고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글라이드씨의 집으로 건너가자마자 풍기는 맛있는 냄새.
“흐음······”
코를 킁킁거리며 집으로 들어오는 다운을 보며 글라이드씨가 씨익 웃었다.
“냄새 좋지?”
“엄청요. 이번에는 뭐에요?”
“요리교실에서 엄청난 비법소스를 배웠거든.”
“그리고 그 첫 실험체가 저란거죠?”
“알았으면 순순히 식탁에 앉아서 실험체가 될 준비나 해라.”
농담으로 실험이라는 말을 하긴 했지만 글라이드씨는 요리실력이 꽤 준수했다. 아주머니가 살아계실때도 ‘저 양반은 요리도 잘하면서 꼭 날 시켜먹는다니까?’라는 말을 달고 사셨을 정도니까.
“맛있냐?”
다운은 자신이 먹는 것을 보며 아빠미소를 짓고 있는 글라이드씨를 향해 엄지를 치켜올렸다.
“최고에요 최고!”
“많이 먹어라.”
폭풍같은 식사시간이 지나가고 고요한 티타임이 찾아왔다.
“곧 야구보면서 맥주마실거라면서요?”
“제니가 항상 밥 먹은 뒤에는 티타임을 가져야 교양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지.”
그리고는 시계를 흘끗 가리켰다.
“그리고 아직 경기 시작까지는 30분 정도 남았잖아. 차분하게 차 한 잔 마시면서 밀린 이야기를 나누는거지.”
그러고보니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오게 된 시발점은 ‘요 며칠 글라이드씨가 사라졌던 이유.’를 듣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목적을 생각해낸 다운이 다시 엉덩이를 의자에 붙였다.
“레몬? 우유?”
“항상 우유 넣는거 아시는 분이.”
“오늘은 레몬을 넣을 기분일지도 모르지?”
“그래서 뭐 때문에 자리를 비운거에요?”
글라이드씨는 우려낸 홍차에다가 우유를 따라넣었다.
“그건 알코올이 들어가야지 말할 수 있는 내용이라서, 조금만 미루자고.”
윙크를 한 글라이드씨가 다운에게 물었다.
“직장은 다닐만해?”
“직장이 뭐 다르겠어요? 직장은 그냥 직장이죠.”
“돈은 좀 만졌어? 내가 조언해줄까?”
“조언은 그때 게임스탑으로도 충분해요.”
“그래도 투자회사는 처음이잖아. 부모님이 걱정 많이하시더라.”
다운의 부모님은 다운이 첫 직장에 취직하는것을 보자마자 미국을 떠나셨다.
“사는게 힘들어서 떠나긴 했지만, 살다보니 한국만큼 좋은곳이 없더라. 우리는 돌아갈테니 넌 이제 알아서 해라. 집은 남겨주마.”
그렇게 다운은 새 직장과 함께 집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혼자가 되었다.
“부모님한테 연락 좀 자주 드려라.”
“어스틴이 전해주면 되죠. 그냥 건강하게 잘 다닌다고 해줘요.”
“네가 하면 좋아하시겠지.”
“퍽이나요. 자식이 되어가지고 욕만 먹이고······”
다운은 더는 같은 주제로 이야기 하고싶지 않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야구나 보자고요. 이제 시작할 시간 다 됐잖아요.”
홍차를 한입에 털어넣은 다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글라이드씨도 다운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 그러자.”
맥주와 함께 먹을 나쵸칩과 치즈를 세팅한 다운이 경기 시작에 맞춰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왔다.
치이이익 탁!
맥주캔이 시원한 소리를 내며 거품을 뿜어냈다. 다운은 넘쳐흐르는 거품에 입을 가져다댔다.
“후루룹! 오늘 6차전이었죠?”
다운과 똑같은 행동을 한 글라이드씨가 픽 웃었다.
“양키스 야구에는 관심없다던 놈이 몇 차전인지는 어떻게 알고있는거야?”
나초 하나를 들어 치즈를 듬뿍찍어 입에 집어넣은 다운이 불만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구 팬이 볼 수 있는 야구 경기가 그것밖에 없는데 안볼수는 없잖아요. 빌어먹을.”
글라이드씨는 다운의 말에 눈을 빛냈다.
“네가 생각하기에 오늘 승자는 누가 될 것 같아?”
“흐음······ 제 생각이라······”
다운은 엄지로 턱에 거뭇거뭇 올라온 수염을 긁으며 두 팀의 전력을 비교했다.
“다저스의 우세라고 봐요.”
“호오? 오늘 다저스가 우승한다?”
“네.”
“네 개인적인 바람이 들어간건 아니고?”
“안타깝게도 아니죠.”
다운은 양키스가 질 수 밖에 없는 이유을 나열했다.
“우선 양키스의 오늘 선발인 조프리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요. 2차전때처럼 조프리가 컨디션이 좋을 때는 유니폼이 반 시계방향으로 돌아가요. 유니폼이 조프리의 몸통회전에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돌아가는거죠. 그래서 조프리가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항상 공 두어개를 던진 다음에 유니폼을 벨트 속으로 욱여넣곤하죠. 하지만 오늘은 그런 동작이 전혀 없었어요.”
“이제 고작 연습투구를 했을 뿐인데?”
“연습투구를 마치고나서 옷정리를 안하잖아요. 연습구를 10개나 던지는데 옷정리를 한 번도 할 필요가 없다는건 컨디션이 빌어먹을 정도로 안좋다는걸 뜻하죠. 오늘 아마 더럽게 털릴겁니다.”
첫 번째 이유를 든 다운은 맥주를 들어 혀를 윤활했다.
“크으~ 그리고 두 번째. 오늘 양키스가 쓸 수 있는 불펜자원이 없어요. 믿을만한 불펜이라고 해봤자 존 벡이나 T.J. 정도인데, 둘 다 어제 1.2이닝과 2.1이닝을 던졌어요. 양키스가 어제 경기를 잡아낸 것은 칭찬할만하지만, 조프리가 무너지게되면 그 다음을 받쳐줄 선수가 없어요. 아마 조프리가 무너지게되면 대런은 이번 트레이드 시장에서 불펜을 보강하지 않았다는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되겠죠.”
경기는 정확히 다운이 말한대로 흘러갔다.
- 아아 또 안타입니다! 양키스 또 다시 1점을 헌납합니다! 이걸로 점수는 8대 2!
- 이거 힘들겠는데요?
경기를 보며 맥주를 홀짝이던 글라이드씨가 입을 뗐다.
“아까 네가 트레이드한걸 후회할거라고 했잖아.”
“그랬죠.”
“그때는 불펜이 좋았잖아? 대런 입장에서는 굳이 불펜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 물론 거기서 저스터스가 시즌아웃을 당할줄은 몰랐겠지만.”
글라이드씨의 말에 다운이 검지를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노노! 그게 아니죠. 그런 생각을 했다는게 대런이 아직까지 단장으로의 자각이 없다는거에요. 단장은 항상 모든 상황에 대해서 준비를 해야해요. 단장이 준비를 해놓으면, 감독이 그걸가지고 행동을 하는거죠. 그게 야구단이 시즌동안 굴러가는 방식이거든요.”
“트레이드는 미리 준비된게 아니잖아?”
“준비물을 챙겨가지 않았으면 수업 도중에라도 구해와야죠.”
다운은 화면에 나오는 양키스 선수들을 가리켰다.
“양키스라는 팀이 월드시리즈 우승을 노리겠다는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면, 모든 상황을 상정하고 준비를 해놨어야 했어요.”
“너였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
글라이드씨의 질문에 이번에는 엄지로 턱을 긁지 않았다. 다운의 입에서는 마치 머리에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했다는 듯이 곧바로 답이 흘러나왔다.
“저였으면 매리너스에서 숀을. 오리올스에서 혼스비를 데려왔을거에요.”
“너무 비싸지 않았을까?”
“전혀요. 숀은 해봤자 반년 200만 달러짜리 불펜이고, 리그 최상급 성적을 찍고 있는 수준은 아니죠. 매리너스라서 메이저리그에 있을 수는 있지만, 그보다 더 좋은 불펜이 4명이나 있는 양키스라면 쓸 이유가 없는 불펜이죠. 하지만 달리 말하자면 양키스에 오게 된다면 4명을 제외한 나머지 불펜들보다는 잘 던지는 투수라는 의미가 되죠. 트리플 A에서 오래 썩고있는 노망주 하나 정도나, 팀 내에서 낮은 평가를 받고있는 유망주 두어명 정도였으면 데려올 수 있었을거에요.”
“혼스비는?”
“혼스비야 말로 정말 괜찮은 투수죠. 계약기간도 3년이나 남아있고, 좌완 불펜 중에서 혼스비만한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투수도 거의 없을걸요?”
“하지만 트레이드 마감에 맞춰서 데려올거였으면 너무 비싸지 않았을까?”
“저였으면 트레이드 마감 전에 데려왔을겁니다. 사실은 그것보다 더 전에 데려왔겠지만······”
기어들어가는 듯 말하는 다운의 말에 글라이드씨가 되물었다.
“그 전이라면 언제?”
“제가 양키스에서 잘리기 전에요 한 시즌 더 전에 데려왔겠죠. 오프시즌이 시작하면 가장 먼저 데려오려던 투수가 혼스비였거든요.”
다운의 말에 글라이드씨가 흥미로운듯이 물었다.
“호오? 그 당시에 혼스비는 별로였지 않나?”
“별로였죠. 선발에서 불펜으로 전환한 첫 시즌임에도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잖아요. 보통은 불펜전환하면 좋은 성적을 낸다고하는데, 혼스비는 그게 안됐으니까요. 그래서 당시만해도 싸게 보내버린다는 말이 많았죠.”
“그런데 데려온다는 생각은 왜 한거야?”
“혼스비는 슬라이더를 던질때와 포심을 던질때의 릴리즈가 많이 달라요. 특히나 불펜으로 보직을 옮긴 뒤에는 전력투구를 해야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 간극이 더 커졌고요. 그 부분만 바로잡아준다면 충분히 좋은 투수가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었죠. 물론 저렇게 리그 최상급의 투수가 될 줄은 몰랐지만.”
맥주를 쭉 들이킨 다운이 자조섞인 말투로 말했다.
“뭐 그때까지만해도 제가 잘릴줄도 몰랐지만······”
< 1화 - 양키스에서 잘린 단장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