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그리고 끝나지 않은 전쟁 (3)
물밑에서는 항복 협상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도쿄만에 상륙한 태평양 함대 사령부의 30만 명에 가까운 해병대는 그런 사실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고 도쿄를 향해서 계속 전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해병대의 행동이 진가를 발휘한 것은 일본 군부가 항복에 반대하고 소장파들의 반란으로 히로히토 일왕이 사망하고 그 이후에 이루어진 일본군 반란 진압 작전에 바로 투입이 되면서부터였다.
히로히토 일왕의 항복 선언이 있고 이틀이 지나서 모든 것이 정리된 후, 많은 사람이 전쟁의 끝을 알리는 소식에 크게 기뻐하고 환호했다.
그리고, 니미츠는 태평양 함대 사령부 예하 부대에 종전에 관한 메시지를 보냈다.
‘작전은 중지하되, 경계는 늦추지 말라. 그리고, 앞으로 일본인들을 상대할 때 모든 장병은 신사적으로 행동하라.’
니미츠 제독이 보낸 종전 메시지를 받은 헬시 제독은 다시 자신의 예하 부대에 이런 식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주변을 기웃거리는 모든 것은 일단 잘 살펴보고 사격하라. 보복적인 방식이 아닌 우호적인 방식으로.’
히로히토 일왕의 항복과 도쿄 점령으로 일본과의 실질적인 전쟁은 끝이 났지만, 통신이 끊긴 곳에서 전투 중이었던 곳들은 아직도 여전히 피 튀기는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드디어 끝이 난 것인가?”
“축하드립니다. 제독님. 제독님께서는 이 지긋지긋한 전쟁을 마무리 지으신 분으로 역사에 남으실 겁니다.”
히로히토 일왕의 갑작스러운 사망과 그 이후 이어졌던 일본군 소장파 장교들의 반란을 신속하게 진압한 니미츠 제독은 오늘도 옆에서 자신을 추켜 세워주는 제이슨 대위를 보면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니미츠 제독의 미소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똑똑!
“누군가?”
“저…. 제독님. 해군부에서 전문이 도착했습니다.”
“전문? 어서 가지고 오도록.”
해군부 장관 명의로 전달된 전문을 읽어 내려가던 니미츠 제독의 얼굴은 순식간 구겨져 버렸다.
“결국은 이렇게 되는가?”
포레스털 해군부 장관의 명의로 날아온 전문은 맥아더를 연합군 최고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맥아더가 항복 문서 조인식을 준비하라는 명령이었다.
잔뜩 짜증이 난 목소리로 혼자서 중얼거리는 니미츠 제독을 보면서 제이슨 대위는 전문의 내용이 궁금했다.
“제독님….”
“아! 제이슨. 내가 좀 화가 나서 말이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너도 한번 이걸 봐봐라.”
니미츠 제독은 포레스털 해군 장관이 보낸 전문을 제이슨 대위에게 넘겨줬다.
“제독님, 이 전문대로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럼, 어떡하나? 해군 장관의 명령이지 않으냐?”
“태평양 전쟁의 모든 것을 제독님께서 마무리 지은 신 것이나 다름없는데 막판에 이런 비상식적인 명령은…. 솔직히 저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흐음….”
제이슨 대위의 말에 용기를 냈는지 니미츠 제독은 바로 어니스트 킹 해군 참모총장에게 명령 철회를 요청했다.
“제독님, 전쟁은 우리 해군과 해병대가 다 했는데 명예는 육군으로 넘어갔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육군 쪽에서 계속 대통령을 압박한 모양이야.”
“아니, 아무리 대통령께서 압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정도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모든 명예를 전부 독차지 하겠다는 심보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항복 문서 조인식까지도 맥아더 장군이 진행한다면서요? 이게 말이 됩니까?”
“이봐, 니미츠 제독. 아직 독일과의 전쟁이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육군 쪽에 힘을 실어 주는 모양이야.”
“제독님! 그럴수록 해군을 챙겨줘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 해군이 독일 전선에서 무슨 활약을 했습니까? 태평양 전선마저 맥아더가 주인공이 된다면 우리는 이번 전쟁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됩니다.”
어니스트 킹 제독과 체스터 니미츠 제독의 말다툼을 지켜보면서 제이슨 대위는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니미츠 제독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버지께 도움을 청하면 니미츠 제독의 자존심을 세울 수가 있을까?’
* * *
워싱턴 백악관 2층 대통령 집무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일본의 빠른 항복으로 이번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을 이제는 확실히 깨닫고 한숨을 돌리면서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자리는 미국의 승리를 위해서 노력한 용감한 미국인을 만나는 자리였다.
“어서 오게. 그동안 잘 지냈나? 조지?”
“예, 대통령 각하. 이렇게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도 독일이 버티고 있는 유럽 전선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 영국과 소련, 그리고 다른 유럽 국가들과 여러 가지를 조율을 하느라 바쁜 와중에도 일본과의 전쟁을 종결지어준 나를 외면하지는 않았다.
“그래, 조지, 갑자기 나를 만나자고 한 이유가 뭔가?”
현재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충이라도 짐작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전혀 감도 못 잡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향후 루스벨트 대통령의 사후에 벌어질 일들을 말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할지 잠시 고민을 하다 결국에는 입을 열었다.
“대통령 각하! 지금부터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대한민국 광복군 정보대가 지금까지 모아온 자료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했다는 것을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으응…? 조지,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처음부터 이렇게 거창하게 나가는 거야?”
“별건 아닙니다. 대통령 각하! 각하, 이대로 전쟁이 끝나고 나면 미국은 다시 대공황 시절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 건가? 그것은 이미 보고를 받았네. 전쟁이 이대로 끝이 난다면 천만 명 이상의 참전 군인들은 대부분이 실업자가 된다는 보고가 있었네.”
“그랬었군요. 음…. 지금, 대통령 각하께서는 참전 군인들을 걱정하시지만, 진짜로 걱정해야 할 것은 현재 완전 가동 중인 공장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입니다. 전쟁이 끝나면 미국의 공장들은 최소한 10% 이상 많으면 40%까지는 가동을 중단해야만 합니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미국의 모든 경제 지표는 바닥을 향하게 될 겁니다.”
해리 홉킨스는 옆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을 보좌하다가 내 말을 듣고 표정이 어두워졌다.
지금 미국 경제를 담당하는 관료들도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조지 씨, 우리도 그것을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별다른 대책이 없어서….”
‘해리 홉킨스, 곧 대책이 나올 거야. 이제 미국은 소련이라는 가상의 악마를 만들어 내고 세계를 양분하는 냉전을 시작하게 될 거야.’
내가 전생에 웨스트포인트에서 태평양 전쟁을 공부하고 바로 이어지는 냉전까지 공부하면서 내린 결론은 냉전은 당시 세계 최강국 미국이 의도적으로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 미국은 미국 경제를 위해서 소련과의 대결을 선택할 겁니다. 그것은 스탈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발생할 겁니다. 문제는 바로 중화민국입니다.”
나는 미국이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지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예상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미국이 앞으로 취할 정책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정책 중에 중화민국에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 미국의 예상보다 훨씬 더 중화민국의 장제스 총통에 대한 인민들의 지지가 허약합니다.”
“조지! 그게 무슨 말이지?”
미국 정부는 장제스를 철저하게 믿고 있었는데 중화민국의 옆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광복군 정보대가 다른 판단을 했다면 그것은 한 번쯤은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장제스 총통은 중화민국 인민들의 지지를 전혀 받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동양 속담에 ‘민심은 천심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현재 중국 공산당은 인민들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서 온갖 공작을 하고 있지만, 국민당의 장제스 총통은 이미 중국을 차지한 것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거야 현실상 이미 중국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장제스 총통이니까 그런 것 아닌가?”
“결코 현 상황이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미국은 장제스만을 믿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럼, 마오쩌둥하고도 선을 가지라는 말인가?”
“예, 전쟁이 끝나고 난 후 어차피 소련을 포위하는 전략으로 가실 거라면 만약에 대비해서 마오쩌둥을 스탈린과 분리하는 전략도 같이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으음….”
“아…! 만약에 대비하라는 말이군요?”
“맞습니다. 미국의 전후 전략이 소련과의 대결이라면 중국을 소련과 분리하는 전략도 준비해야 한다는 겁니다.”
루스벨트 대통령과의 만남은 20분 정도밖에 허락되지 않았지만, 분위기가 그 시간 안에 마무리가 되기는 힘들 것 같았다.
“이거…. 우리가 놓쳤던 부분이 있었군.”
“각하! 중화민국이 공산화될 수도 있다는 가정하에서 공산화된 중화민국과 소련을 가장 앞에서 싸울 수 있는 나라는 바로 대한민국과 베트남입니다. 지금부터 미국은 대한민국과 베트남만큼은 미국이 최선을 자해서 지원하고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 보루로 만들어야 합니다.”
“아…! 지금, 베트남도 일본군 무장해제 때문에 중화민국군과 영국군이 반으로 나눠서 진입했군요?”
“예, 나중에 그것이 크게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부터 중화민국이 공산화됐을 경우까지 계산해서 베트남을 다루셔야 할 겁니다.”
지금까지는 미국 행정부가 놓치고 있었던 몇 가지 문제를 짚어준 시간이었고 지금부터는 대한민국을 위한 작업을 시작해야 할 시간이었다.
“대한민국 광복군이 간도로 진주한 이유는 원래부터 간도는 대한제국의 영토였고 나중에 소련과 중화민국이 공산화됐을 때 간도가 최고의 전략 요충지가 될 겁니다. 그러니까 미국은 대한민국의 간도 진주를 지지해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장제스 총통이 말이 많던데…. 간도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만들어야 한다고?”
“예, 각하! 간도를 대한민국이 차지하는 순간 소련의 태평양 함대는 거의 무력화되고 중화민국 정부가 베이징을 수도로 정한다면 언제든지 타격이 가능한 위치가 됩니다. 그렇게 된다면 미국의 태평양 전략에 엄청난 이익이 됩니다.”
“간도의 위치가 그렇게 중요했던가?”
“예, 각하, 간도를 미국의 동맹국인 대한민국이 가지는 경우와 가지지 못하는 경우는 분명히 달라집니다.”
해리 홉킨스가 동아시아 지도를 가지고 와서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간도의 위치를 확인시켜주자 루스벨트 대통령도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도를 보니까 조지, 자네의 말을 이해할 수 있겠군,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 미국 마음대로 모든 것이 가능하지는 않은 일이잖나?”
“각하! 방법이 있습니다. 간도 지역의 주민 투표를 진행해서 간도 주민들이 직접 국적을 선택할 수 있게 하시면 됩니다. 미국의 방침이 민족 자결주의가 아닙니까? 간도 지역 주민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직접 결정할 수 있게만 해주십시오.”
“주민 투표로 국적을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예, 간도 지역 주민은 대부분이 우리 한민족입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루스벨트 대통령과 해리 홉킨스 보좌관은 그 정도면 장제스를 설득할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간도 주민 투표에 동의해주었다.
“그리고, 각하! 향후 미국 정치 지형을 봤을 때…. 소련과의 대결 구도가 형성된다면 분명히 반공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커질 겁니다.”
대한민국과 연관된 이야기를 모두 마무리 짓고 남은 시간 동안 니미츠 제독을 위한 지원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