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그리고 끝나지 않은 전쟁 (2)
1945년 일본의 항복과 함께 시작된 국공내전은 중국에서 황제를 꿈꾸는 두 사람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
역사가 많이 바뀌어서 1944년에 전쟁이 종결됐지만, 국공내전이 벌어진 것은 그대로였다.
“장제스 쪽의 국민당에서 우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도움을 요청할 일은 당분간은 없을 테지만 마오쩌둥은 아무래도 열세이다 보니까 우리 광복군에 들어와 있는 조선인 의용군에 손을 벌릴 텐데 그건 어떻게 대처할 생각입니까?”
“철저히 단속할 생각입니다. 괜히, 남의 전쟁에 끼어들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저희끼리 피가 터지게 싸우라고 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유자명 선생은 국공 내전과 관련된 문제는 냉정하게 선을 그어 버렸다.
그것은 나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사람들 대부분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장제스는 지나 방면군 사령부와 협력하고 있고 마오쩌둥은 관동군 사령부와 협조를 하고 있다고 했죠?”
“예, 장제스 총통이 직접 오카무라 야스지 지나 방면군 사령관과 만나서 무기 지원과 군사 훈련 지도를 부탁했고, 오카무라 야스지 사령관은 주중 일본군과 주중 일본인 350만 명의 무사 귀환을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오쩌둥은 관동군 사령부의 야마다 오토조 사령관을 만나서 장제스처럼 무기 지원과 군사 훈련을 부탁했습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까 일본군의 도움을 받아서 내전을 벌일 생각인 것 같은데...전투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면 아마 일본군의 참여를 바랄 수도 있습니다. 그걸 유심히 살펴주십시오.”
“예, 정보대에서 그런 의견이 올라왔었습니다. 사실, 독일과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나 소련이 국민당이나 공산당을 직접적으로 지원할 리가 없으니까요.”
예전이었다면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바로 냉전이 시작됐기 때문에 미국과 소련이 국민당과 공산당에 엄청난 지원을 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아직도 독일은 항복하지 않고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었고 미국과 소련은 독일이 항복하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이 끝까지 협력할 수밖에 없었다.
“좋습니다. 그럼, 우리는 따로 중화민국의 국민당과도 공산당과도 접촉하지 않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이제, 곧 시작될 국공내전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가 문제구나. 그리고, 결과도 어떻게 될지 궁금하고…. 그래도, 결국 마지막 승자는 공산당이겠지?’
“그러나저러나 조지 대장님, 소련 극동군의 요청은 어떡하실 생각이십니까?”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접촉해오지 않는 것은 그냥 모두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는 것으로 하죠.”
“어떤 사안 때문인지 확인도 하지 않으시고요?”
“소련군이 우리 광복군에 원하는 것은 뻔하죠. 간도 문제일 겁니다.”
“그럼, 더 만나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요. 그냥 끝까지 모르는 척하고 힘으로 실효 지배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으음…. 알겠습니다. 그럼, 소련 극동군 참모본부에 원하는 만남은 거절하겠습니다.”
“예, 그렇게 해주십시오.”
지금 상황에서 일본의 항복을 정확하게 예측한 세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유일했다.
유리한 위치에 서 있는 대한민국이 굳이 나서서 다른 나라들과 협력하고 도와줄 이유는 없었다.
“저, 대장님. 일본이 공식적으로 항복하는 자리에 우리나라에서도 대표단이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가야지. 우리가 지금까지 왜 싸웠는데? 일본이 항복하는 자리에는 우리도 사람을 보내서 일본 놈들한테 항복을 받아야지.”
“그럼, 그 문제를 미국에 공식적으로 요청하겠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공식적인 연합국은 아니더라도 특수한 위치의 연합국으로 인정을 한다면 항복식 자리에 초대해달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하고, 미국의 김규식 선생한테도 연락해서 우리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일본이 공식적으로 항복하는 자리에 참여하겠다고 요청하라고 해.”
“예! 알겠습니다!”
백정기는 일본이 공식적으로 항복하는 항복식 자리에 우리 대한민국도 항복을 받는 위치로 참여하겠다는 말에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일본이 연합국에 공식적으로 항복하는 자리에 우리도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그래서, 역사적인 증거로 영원히 남겨야 한다.
그래야만 나중에 딴소리를 못 한다.
“아! 유자명 선생, 친일 반민족 행위자 조사처는 어떻게 됐어요?”
“우리 광복군 정보대에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서 친일 반민족 행위자를 끝까지 추적해서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습니다.”
“그것은 진짜 중요한 일입니다. 두 사람은 끝까지 친일 부역자들을 찾아내십시오. 죽어서 땅에 묻혔다면 땅을 파서 해골이라도 반드시 민족의 법정에 세워주십시오.”
“예, 최선을 다해서 민족의 죄인들을 끝까지 색출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친일 부역자들은 끝까지 찾아낼 생각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노골적으로 일본을 찬양하고 일본에 충성하고 일본으로부터 작은 혜택이라도 받은 사람들은 인민재판을 통해서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
그리고, 죗값을 치르기 싫은 사람들은 남들의 눈을 피해서 어떡하든지 일본으로 도망을 치고 있었다.
광복군 정보대에 들린 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광복군도 모르는 비밀 시설을 방문하기 위해서 함경도 흥남으로 향했다.
* * *
“드미트리!”
“예, 사장님.”
“도쿄와 교토 이화학 연구소의 ‘F’ 작전에 참여했던 놈들과 관련된 연구 자료는 모두 지웠지?”
제2차 대전 당시, 미국과 영국, 그리고 캐나다만이 원자폭탄을 개발한 줄 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소련은 물론이고 독일과 일본도 연합군에 대항할 무기로 원자폭탄을 개발하고 있었다. 비록, 독일 같은 경우에는 처음부터 유대인 과학자들의 방해로 목표를 잘 못 잡았고 개발 자금이 부족해서 실패했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자금과 기술 그리고 원료가 부족해서 처음부터 실험실 수준의 소규모 연구였기 때문에 나중에는 오히려 미국보다 빠르게 핵폭발 실험까지 성공했다.
“예, 사장님. 그동안 파악해 놓았던 이화학 연구소의 ‘F’ 작전 관련 직원들과 기록들은 일단 깨끗이 처리했지만, 대본영 군령부에서 ‘F’ 작전에 관여한 놈들은 처리할 방법이 없어서, 결국 나중에 언젠가는 미국에 그 사실이 알려질 겁니다.”
“으음…. 비밀이 최대한 늦게 알려졌으면 좋겠는데…. 지금은 우리나라 경제 재건을 위해서 미국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인데….”
‘일본으로부터 배상금도 받아내야 하고 대한민국의 건국과 간도 문제를 미국이 알아서 처리해줘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원자폭탄을 비밀리에 개발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미국이 어떻게 나올까?’
“사장님, 그럼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제거를 할까요?”
“글쎄…. 어떡해야 할지 고민이다. 일단은 주요 직책에 있었던 놈들은 제거하는 방향으로 가자.”
“알겠습니다. ‘F’ 작전에 관여한 주요 인물은 몇 명이 안 되니까 제거를 하겠습니다.”
“그래. 수고 좀 해주라.”
“예, 사장님.”
닛지쓰(일본 질소 비료)의 노구치 시타가우는 1925년에 조선 총독부로부터 개마고원의 부전강 수력발전소 건설을 제안받고 조선으로 사업 기반을 옮기기 시작했다.
부전강에 20만kW급의 수력발전소를 세운 노구치는 1927년에는 흥남에 조선 질소 비료 회사를 설립하고, 장진강·허천강에 차례대로 발전소를 지어서 총 12개의 발전소에서 97만kW의 전기를 생산하는 거대한 화학 콘체른(콤비나트)을 건설했다.
노구치 시타가우는 일본 해군 군령부와 협력을 통해서 성장한 재벌답게 일본 해군이 의뢰한 여러 가지 극비 연구를 함께 진행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원자폭탄에 관련된 연구였다
그리고, 그 연구 시설이 있던 곳은 함경도 흥남이었다.
흥남의 비밀 연구소에 도착하자 비밀 연구소의 책임자인 멜리타 실러가 그녀의 남편과 함께 마중 나와 있었다.
“멜리타 박사님, 이렇게 마중 나오지 않아도 되는데….”
“아닙니다. 조지 씨는 우리 가족의 생명의 은인이시잖아요?”
“아니고…. 하하, 아무튼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연구 시설은 사용할만하시던가요?”
“예, 다행히 근처에서 큰 전투가 벌어졌다고 하더니 의외로 여기 공장시설이나 연구 시설들은 무사한 것 같아요.”
“그래요? 불행 중 천만다행이군요.”
“조지 씨는 시설 점검을 하러 오신 건가요?”
“아닙니다. 중요한 연구가 잘 진행이 되고 있는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일본군이 결전 병기로 사용하기 위해서 극비리에 연구하고 있던 여러 가지 연구 중에 인간의 존엄성을 헤치는 이시이 시로의 731 부대와 방역 급수대와 관련된 연구는 내가 처음부터 철저하게 말살을 했었기 때문에 연구가 지지부진했다.
하지만, 원자폭탄과 로켓에 관련한 연구는 미국 정보부도 모르게 은밀히 지원해서 연구 성과를 볼 수 있게 했었다.
해방이 되고 그동안 감추고 지원했던 연구 시설을 미국이 모르게 비밀리에 접수할 수 있었다.
“니시나와 아라가츠, 사가네, 기꾸치 등은 잘 협조하고 있습니까?”
“아, 그 사람들이요? 처음 한동안은 연구를 거절하더니 지금은 굉장히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그래요? 갑자기 왜 그런 거죠?”
“일본 출신 핵물리학자들이 그동안 연구하다가 막혔던 부분이 있었나 본데, 그게 여기 와서 풀리니까 굉장히 즐겁게 연구하더라고요.”
‘에드거 후버 FBI 국장의 눈을 피해서 몰래 빼돌린 맨해튼 프로젝트의 자료들이 연구에 도움이 됐나 보군.’
눈을 돌리자 삼중 철조망에 둘러싸인 흥남 질소 비료 제2공장 수백 평의 건물이 보였다.
일본 해군은 마지막 모든 힘을 이곳에 집중했다.
이곳 흥남은 원자폭탄 연구 시설과 원자폭탄을 투사할 미사일 개발 시설, 그리고 청진에는 원래 오사카에 있었던 원심 분리관 여덟 대 중 두 대를 옮겨서 원자탄 제조에 필요한 우라늄을 분리하고 농축하는 시설까지 갖추고 있었다.
‘이곳을 미래 대한민국 국방 기술의 메카였던 ADD처럼 만들어서 제트 전투기와 각종 미사일, 그리고 마지막에는 원자폭탄까지 모두 우리 힘으로 연구 개발해서 우리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게 할 것이다.’
원자폭탄을 개발할 때까지 일본인 노예들은 죽을 때까지 이곳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 * *
“대장님, 워싱턴의 김규식 외교부장의 전문이 도착했습니다.”
“김규식 외교부장?”
“예.”
전문을 건네받고 몇 줄 읽지도 않았는데 그동안 바빠서 잠시 잊고 있었던 놈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까 이놈을 깜빡하고 잊고 있었네. 그런데, 이 새끼는 뭐 줒어 먹을 것이 있다고 귀국을 하겠다는 거야? 혹시, 미국의 반공주의자들이 부추긴 것은 아닐까? 그냥 그때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