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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쿠데타 발생 (2) (218/225)

일본, 쿠데타 발생 (2)

도조 히데키 전 총리대신은 아나미 고레치카 육군 대신과 스기야마 하지메 참모총장의 방문을 받고 새로운 내각이 구성된 다음 처음으로 열린 내각 회의에서 논의된 주제가 바로 연합국에 대한 항복에 관한 이야기였다는 말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정말로 소련이 우리 제국을 위해서 종전을 중재해주겠다고 나섰던 것이 아니었고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말이요?”

“예, 도고 시게노리의 말대로라면 그런 것 같습니다.”

“칙쑈! 이 승냥이 같은 새끼들!”

도조 히데키는 아나미 고레치카 육군 대신의 말에 바로 반응을 했다.

지금까지 일본의 육군 라인은 소련과 동맹이 되든지 아니면 미국과의 전쟁을 끝내기 위한 중재라도 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신인 외상 도고 시게노리의 말대로라면 소련은 일본 육군을 철저하게 속이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아니지. 도고 시게노리의 말은 믿을 만한 거요?”

“예, 워낙 큰 사안이라서 바로 모스크바 대사관에 확인을 해봤더니 현재 소련의 움직임이 애매모호하다고 합니다.”

“혹시,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진짜…. 그 정보는 확실한 거야?”

“예, 대본영 참모본부 소속의 소련 과장인 시라키 시에나리 대좌의 보고니까 확실합니다.”

“칙쑈! 이거 큰일인데…. 이러다가 만약 일이 잘못되면 우리는 모두 전범으로 교수형을 당할 수도 있겠는데….”

그동안 히로히토 천황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있던 도조 히데키는 천황이 자기 혼자만 살겠다고 항복을 추진하는 모습에 왠지 모를 배신감을 느끼면서 자기도 모르게 몸이 떨었다.

“아니지. 아니지. 우리 여기서 솔직히 현재 전황부터 냉정히 다시 한번 분석해 보자고. 정말로 우리 일본 제국은 전쟁에서 패배한 것이오?”

불과 며칠 전까지도 육군 대신이었던 도조 히데키가 이런 말을 하자 육군 대신 아나미 고레치카와 스기야마 하지메 참모총장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그거야…. 총리대신께서도 잘 아시잖습니까?”

“그래. 이 전쟁은 앞으로 시간을 더 끌 수는 있겠지만 결국 언젠가는 패배하리라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지만, 혹시 둘의 생각은 다를지 몰라서 확인하는 거야.”

“우리라고 다를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동안 가장 강력하게 전쟁의 승리를 주장하던 지나 전선의 지휘관들마저도 이제 전쟁은 끝났다고 말하더군요.”

“지나 방면군 사령부까지도?”

“예, 지금 지나 방면군 사령부도 한창 밀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군대도 아닌 장제스의 국민당군하고 싸우면서 몇 번 이겼다고 어깨에 힘이 가득하던 놈들이…. 이제 와서…. 그놈들만 아니었으면 이 전쟁은 시작도 하지 않았을 텐데.”

“총리대신 각하!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지난 일입니다.”

도조 히데키 전임 총리대신도 아나미 고레치카 육군 대신도 스기야마 하지메 참모총장도 사실상 전쟁은 이미 패배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항복하고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일억 일본인이 전부 죽더라도 끝까지 싸우자고 밀어붙인 것이다.

‘히로히토 천황이 항복을 추진하는 것은 자기 혼자만 살겠다는 소리다. 그리고, 그동안 충성을 다했던 나는 분명히 희생양이 될 것이다. 이제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그동안은 히로히토 일왕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했던 도조 히데키는 이제 더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히로히토 일왕에게 그동안 충성을 다했던 이유는 자리 욕심 때문이었다

출세하고 싶다는 욕심, 남들 위에 서고 싶다는 욕심, 그리고 명예로운 자리에 앉고 싶다는 욕심, 그런데 이제는 잘못하면 모든 잘못을 혼자 뒤집어쓰고 죽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둘은 앞으로 어떡했으면 좋겠소?”

“총리대신 각하께서는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셋 모두 이 상황을 타개할만한 마땅한 대책이 없다 보니까 서로에게 의견을 구하고 있었다.

“이대로 모르는 척 가만히 앉아 있다가 그냥 죽어야 할까요?”

“그럴 수는 없지.”

“나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아나미 고레치카 육군 대신의 질문에 도조 히데키도 스기야마 하지메도 그럴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럼, 어떡해야 할까요?”

“이대로 죽을 수만은 없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없다는 것이 문제요. 이 상황에서 항복을 추진하는 천황폐하를 끌어 내릴 수도 없지 않소?”

“그럼, 어떡합니까? 그냥 이대로 죽어야 합니까?”

“그러니까 말이요.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없으니….”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던 도조 히데키 전 총리대신이 고개를 들고 아나미 고레치카 육군 대신과 스기야마 하지메 참모총장에게 한 가지를 부탁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소련의 행동이요. 소련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만 할 것 같아. 그러니까 그걸 먼저 확인합시다.”

“소련의 의도를 알아내면 그다음에 대책은 있으십니까?”

“내가 대책을 마련해 볼 테니까 먼저 소련부터 확인해주시오.”

“알겠습니다.”

* * *

일본 육군 대신과 대본영 참모본부 총장이 도조 히데키 전 총리대신과 함께 불투명한 미래를 타개하기 위해서 작전을 짜고 있을 때, 일본 해군 역시도 그동안 아무도 모르게 미국과 접촉해왔던 모든 라인을 소집했다.

“오이카와 고시로 총장! 지금까지 미국과 접촉을 해왔던 놈들 빨리 모이라고 해.”

“대신 각하,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뭔가 급박한 것 같은 요나이 미쓰마사 해군 대신의 말에 오이카와 고시로 군령부 총장은 조금은 당황한 표정으로 그 이유를 물었다.

“천황폐하께서 우리 예상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인다고. 그러니까 어서 빨리 애들을 소집하라고!”

“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천황폐하께서는 지금 항복을 준비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빨리 미국을 상대로 작업했던 애들 모으라고.”

“예, 알겠습니다.”

“다카키 소키치 소장.”

“예, 대신 각하!”

“어디까지 작전이 진행됐나?”

“지금, 조선과 타이완까지는 우리 제국의 영토로 보전을 해달라고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귀관의 생각에는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나?”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미국 전략사무국의 앨런 덜레스가 우리와의 협상 내용을 미국에 어떻게 보고할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미국과 영국은 처음 대서양 선언을 할 때부터, 그리고 카이로선언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독일과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다.

“그런데, 대신 각하, 갑자기 그것은 왜 확인하십니까?”

“지금 상황이 많이 급해졌다. 천황폐하께서 더는 버티기 힘들다는 도고 시게노리의 의견에 기우신 것 같다.”

“예? 아니, 그런 조센징 따위의 말을 듣고…. 그것은 절대 안 됩니다. 영국과 미국이 원하는 대로 무조건 항복을 하게 되면 우리 제국은 두 번 다시 일어설 수 없습니다.”

그동안 일본 해군의 브레인으로 활동했던 다카키 소키치는 1939년에는 일본의 세계 전략은 삼국 동맹과 소련을 묶어서 영국과 미국의 앵글로색슨 동맹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1943년 이후부터 전쟁에 승산이 없다고 판단되자 전쟁 조기 종결을 주장하면서 친영, 친미주의자로 행세하면서 뒤로는 패전 이후 예상되는 미국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 소련과 손잡는 전략을 비밀리에 추진하고 있었다.

“대신 각하! 시간을 조금만 더 주십시오. 조금만 더 시간이 있다면 어떻게 하든지 미국을 구워삶아 보겠습니다.”

다카키 소키치의 요청에도 요나이 미쓰마사 해군 대신의 표정은 냉담했다.

“시간은 더 준다고 해서 뭔가 결과가 나올 것 같나?”

“예, 시간이 조금만 더 있다면 우리 일본 제국이 나중에 재기할 수 있는 발판 정도는 그래도 남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아…. 늦었다. 이미 조선은 사실상 우리 손에서 벗어나지 않았나? 그리고, 미국 해군이 본토로 상륙할지 오키나와로 상륙할지 아니면 타이완으로 상륙할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만약 오키나와나 타이완에 상륙하게 된다면 그것들마저도 우리 손을 떠나게 되겠지.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우리 말을 들어 줄 것 같나?”

“하지만, 대신 각하! 끝까지 노력은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카키 소키치, 너는 미국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잘 모르는 것 같구나. 그놈들은 처음부터 무조건 항복을 말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나는 미국이 우리를 갈기갈기 찢어발기지만 않는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한참 말을 하던 요나이 미쓰마사 해군 대신은 오이카와 고시로 군령부 총장과 다카키 소키치 소장을 보면서

“이제 미국은 세상을 지배할 생각이다. 그래서 그 어떤 적도 살려둘 생각이 없는 거다. 다카키 소키치 네가 해온 활동은 아쉽지만 이제 멈춰야 할 시간이다. 만약 나중에 미국에서 네가 소련과 접촉하면서 미국과 소련의 대립을 부추기려고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너뿐만 아니라 우리 해군 전체가 피해를 볼 수 있다.”

요나이 미쓰마사 해군 대신의 말은 일본이라는 나라가 아닌 일본 해군을 살리기 위해서 공작을 멈추라는 소리였다.

“아닙니다. 대신 각하! 이왕 이렇게 된 것, 소련을 끌어들여서 소련이 만주와 조선을 점령하게 만들면 미국은 소련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 일본 제국을 살려줄 겁니다.”

“그러니까 네 말은 항복을 최대한 늦추고 소련이 참전할 때까지 기다리자는 말이냐?”

“예, 대신 각하! 어차피 우리 영토로 보전받을 수 없다면 미국과 소련이 싸우게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그런데, 우리 해군은 천황폐하의 항복을 늦출만한 그 어떤 수단도 없다. 네 생각에는 어떠냐? 우리 해군이 무엇을 가지고 항복을 늦출 수 있을까?”

“‘카이텐’과 ‘산요’를 총동원해서 미국 해군의 진입을 막아낸다면 시간은 벌 수 있습니다. 소련이 참전을 결정할 때까지만 버티면 됩니다.”

“천황폐하께 승전하고 있다고 허위 전과를 보고하면서 시간을 끌자는 말이냐?”

“예.”

한참을 고민하던 요나이 미쓰마사 해군 대신은 오이카와 고시로 군령부 총장과 다카키 소키치 소장을 보면서

“아무래도 이 문제는 우리 해군의 힘만으로 부족할 것 같은데…. 육군 측에 협조를 요청하는 것은 어떻겠나?”

“대신 각하! 안 됩니다. 우리가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우리 해군은 육군의 개가 도는 겁니다.”

“절대 안 됩니다. 그냥 우리 해군만의 비밀로 일을 추진해야 합니다.”

요나이 미쓰마사 해군 대신은 오이카와 고시로 군령부 총장과 다카키 소키치 소장의 강력한 반발에 막히자 자신의 생각을 바꿨다.

“으음….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끝까지 한번 가보자.”

일본 해군은 미국과의 전쟁에 질 때는 지더라도, 아시아에서 일본이 누렸던 기득권을 송두리째 미국에 넘겨줘서 미국이 지배적인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항복 선언을 최대한 늦추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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