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진을 위한 공세 시작
용산에서 후퇴하는 일본군 49사단 병력을 뒤쫓으면서 임진강까지는 손쉽게 넘었지만, 구월산에서부터 저항에 막혀서 잠시 주춤했던 광복군은 일본군 30사단 병력이 본격적으로 투입되자 병력 부족으로 더는 전진을 하지 못하고 평양을 앞에 둔 채 대치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광복군은 평양 외곽지대에서 막한 채 서남으로 가로지른 언진산맥, 마식령산맥의 남단과 멸악산맥 등 산악지대 등을 중심으로 저항하는 일본군을 격파하고, 광복군 김경천의 전차대대와 지청천의 보병대대가 율리 일대에 김원봉의 해병대대와 괌 징집연대가 황주에 각각 진출함으로써 평양 외곽 40km 내외로 포위망을 구축하고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번 전투에 신무기들이 많은 도움이 됐는데 로켓들과 가스탄들의 보충은 이상이 없나?”
소련의 카추샤 로켓을 대한민국 버전으로 카피해서 생산한 다연장 로켓과 가스탄, 화염방사기는 이번에 구월산을 넘어서서 평양까지 진격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예, 미군도 요즘은 다연장 로켓을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생산량도 장난이 아닙니다. 보급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입니다.”
“그래, 일단 보급도 문제없고, 항공대에서 안봉선을 정리해준다고 했으니까 관동군에서 지원을 오기는 힘들 것 같고…. 이제 평양만 점령하면 압록강까지는 별 탈이 없을 것 같은데…. 문제는 역시 병력이군.”
이미, 경성을 수복하면서 한번 겪은 일이지만 일본군이 작정하고 시가전을 준비하면 광복군은 병력이 부족해서 도시 내에서는 일본군을 소탕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만약, 여기가 적지였다면 인정사정도 보지 않고 깨끗이 쓸어버리겠다는 각오로 건물들을 점령해 나가겠지만 평양은 우리나라의 땅이었고 평양 주민은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연대장님, 평양도 문제지만 원산도 일본군의 저항이 크다고 합니다.”
“원산도?”
“예, 원산으로 넘어가는 도로를 차단하고 일본군 19사단이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현재 상황에서 공격할 방향이 최소한 서너 곳은 넘는 평양을 점령하는 것보다 공격할 루트가 하나뿐인 고개를 넘어야만 하는 원산을 점령하는 것이 더 힘들어 보였다.
“원산을 점령하는 것도 큰 문제군. 원산만 점령하면 후방은 무인 지대인가?”
“예, 19사단 주 병력이 모두 원산에 투입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길회선 철도도 항공대에서 정리해준다고 했으니까 일본군에서 더는 투입될 병력은 없을 겁니다.”
“흐음…. 어떻게 보면 지금은 평양보다 원산을 먼저 점령하고 간도를 빨리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데….”
김경천은 한참 동안 전장 상황판을 쳐다봤지만, 병력이 보충되거나 원산 뒤쪽에 병력을 상륙시킬 수 있는 수송함대가 있지 않다면 현재 상황에서는 특별한 돌파구가 없어 보였다.
“연대장님, 조지 대장님께서 오셨습니다.”
정체된 전선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 골몰하고 있던 김경천은 내가 왔다는 소리에 얼굴에 화색을 지으면서 반갑게 맞아줬다.
“조지 대장, 어서 오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전장 상황이 답답해서 골머리가 아팠는데 조지 대장이오니까 뭔가 실마리라도 풀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기는군요.”
“예…? 하하하, 에이….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나한테 무슨 특별한 묘수가 있겠습니까? 아무튼 반겨줘서 고맙습니다”
내가 바쁜 상황에도 불구하고 평양 전방에 자리한 광복군 육군 사령부를 찾아간 이유는 바로 간도 때문이었다.
“김경천 대령님, 전장 상황이 만만치 않다면서요?”
“예, 이쪽이고 저쪽이고 뚫기가 쉽지 않습니다.”
김경천 대령의 대답을 듣고 나는 전장 상황판을 살피면서 내 눈으로 직접 현재 전장 상황을 파악했다.
“이대로 시가전에 돌입하면 평양은 피해도 클 것 같고…. 시간도 오래 걸리겠군요?”
“아마….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다소 피해를 보더라도 평양을 점령하는 데는 문제가 없겠죠?”
“그렇죠. 평양 시내 건물들이 얼마나 부서지고 평양 주민과 우리 병사들이 얼마나 죽느냐의 문제겠죠.”
‘평양은 광복군 항공대를 황해도의 비행장으로 옮겨서 관동군이 후방에서 지원하는 것을 차단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 같고…. 문제는 원산이다. 원산을 최대한 빨리 돌파하고 곧장 두만강을 넘어가야만 한다.’
원산에 진입하려면 하나뿐인 고갯길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일본군 19사단은 광복군의 전진을 막기 위해서 원산으로 들어갈 수 있는 도로 전체를 일종의 바리케이드처럼 만들어 놨다.
‘어쩔 수 없는 건가? 이대로 시간만 보낼 수는 없고….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소모할 사람들이 아닌데….’
답답한 전장 상황을 살피던 나는 힘든 결정을 하나 하고 김경천을 불렀다.
“김경천 대령님.”
“예, 조지 대장.”
내 옆에 서서 전장 상황판을 같이 보고 있던 김경천의 이름을 낮지만,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다시 한번 더 불렀다.
“김경천 대령님! 만약, 원산, 후방에서 조선인들의 무장봉기가 발생한다면 일본군 19사단은 어떤 대응을 할까요? 지금 이 세 도시에는 내가 만든 공장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공장에는 총을 들 수 있는 청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나는 지도 위의 흥남, 청진, 나진을 손가락으로 하나씩 짚으면서 김경천의 얼굴을 쳐다봤다.
“흥남과 청진, 그리고 나진에서 우리 조선 청년들을 시켜서 무장봉기를 하겠다는 말입니까?”
“예, 아마 최소한 수천 명은 될 겁니다.”
“그럼, 조지 대장. 그들을 누가 지휘하고, 무기는 또 어떻게….”
“그건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일주일 안으로 그렇게 만들 수 있습니다. 내가 현재 상황에서 왜 이런 선택을 하는지는 김경천 대령님도 잘 아실 겁니다. 우리는 전쟁이 끝나기 전에 반드시 간도를 확보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답답한 현재 상황을 뒤집고 싶습니다.”
간도와 연해주는 우리 조선인들이 일제에 저항하고 독립운동을 했던 지역으로 김경천 대령 역시도 주 활동 무대가 만주와 연해주였다.
사실, 광복군 병사라면 누구나 마음속으로는 두 지역을 우리나라 땅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하지만, 현재 소련의 영토인 연해주는 우리 마음대로 확보하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원래부터 우리 영토였고 우리 민족의 터전이었던 간도만큼은 반드시 확보하고 싶어 했다.
“그러니까 조지 대장의 생각은 평양은 잠시 놔두고 원산을 먼저 점령하는 것으로 하자는 말이죠?”
“예, 양쪽 모두를 붙잡고 지지부진한 전황을 이어 가느니 그냥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을 먼저 차지하자는 말입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우리가 평양을 점령하지 못한다고 해도 평양은 어차피 우리 대한민국의 영토가 확실합니다. 하지만, 간도는 상황이 좀 다릅니다.”
“그렇죠. 그놈의 간도 밀약 때문에 나중에 분명히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죠.”
“그러니까 우리가 힘으로 실질적인 지배를 하자는 말입니다.”
김경천은 나와 상의를 끝내고도 오랫동안 고심을 했다.
우리 광복군 지휘관들이 마지막에 가서 가끔 김경천처럼 결정을 주저하는 이유는 광복군 병사 한 명 한 명이 우리 대한민국에는 소중한 인재들이기 때문이었다.
이 전쟁이 끝나고 나면 광복군 중에서는 군인으로 계속 남을 사람도 있겠지만 상당수는 공무원과 선생님이 될 병사들이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광복군은 처음부터 일제와 관련된 모든 것을 인정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일본 학력도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
사회가 다소 혼란스러워질 수도 있겠지만 일제의 잔재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을 생각이었다.
“조지 대장,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하나만 확인을 하고 싶습니다. 세 개 도시에 무장봉기를 한 조선인 청년들이 원산으로 이동합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나는 후방에 새로운 전선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은 생각했지만 그 외 다른 것은 미처 생각을 못 했습니다.”
“음, 나도 이렇게 시간만 보내는 것보다는 제2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 해볼 만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왕 제2 전선을 구축할 거라면 실질적으로 일본군 19사단을 압박할 수 있게 전투 병력을 투입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병력을요? 지금은 광복군의 모든 병력이 전부 투입돼 있지 않습니까?”
“아니지요. 윤봉길의 경보병 대대가 남부 지방에 있지 않습니까? 그 병력을 원산 이북에 투입할 수만 있다면 조공 역할 정도는 충분히 해줄 겁니다.”
“아! 윤봉길의 부대가 있었죠.”
경상도 일대의 일본 육군 잔존 병력과 일본 해군 병력이 주를 이루는 부산과 진해 쪽 일본군의 저항을 틀어막고 있는 윤봉길의 경보병 대대를 깜빡하고 있었다.
그 부대라면 원산을 방어하는 일본군 19사단의 후방을 충분히 흔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정도 작전의 줄기를 대강 잡은 김경천과 나는 세부적인 작전계획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부터 광복군의 대대적인 공세가 함경도 일대에서 진행됐다.
“아니, 대장님. 진짜 너무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무슨 기계입니까? 쉬는 시간은 자는 시간하고 먹는 시간뿐입니다.”
“조용히 해라. 그건 다 마찬가지다.”
“아니, 어제는 대마도를 불태우자고 해서 대마도까지 날아가서 시원하게 불장난을 하고 오늘은 병력을 수송하자고 해서 청진까지 날아가고 우리가 무슨 무쇠로 만든 철인이라도 되는 줄 아십니까?”
“너, 입 안 닥치면, 이번 비행이 끝나고 활주로에서 집합한다. 조용히 해라.”
“아, 진짜…. 대장님 저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 애들 앞에서 활주로 집합이 뭡니까?”
“너! 박하성! 넌 이번 비행이 끝나면 활주로에서 집합이다. 이 자식이 죽을라고….”
박하성 소령은 최근 들어서 거의 숨 쉬는 것만 빼고 쉴 틈이 없이 움직이고 있는 광복군 항공대 대원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내 앞에서 억지스러운 연기를 하고 있었다.
솔직한 마음은 정말 미안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한 발이라도 더 뛰어야만 나중에 대한민국이 조금이라도 편안하고 조금이라도 더 넓은 영토를 가질 수 있었다.
“헛소리 그만하고 작전 지역에 벌써 들어 온 것 같으니까 수송기 편대는 화물을 목표지점에 잘 떨궈주고 전투기 편대들은 혹시 모를 지상의 적들을 발견하는 대로 빨리빨리 지워라!”
“예, 대장님.”
“에스, 써!”
“가자!”
“야! 그리고, 웬만하면 내 공장을 공격할 때는 조심해라! 그거 전부 내 재산이다. 다들 무슨 말인 줄 알지?”
“예, 대장님.”
“하하하, 알겠습니다. 조심조심. 하하하.”
이번 작전은 광복군 항공대만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제주도 방어를 한동안 대공포에만 맡긴 채 광복군 해군 구축함대와 잠수함대까지 모두가 총동원된 작전이었다.
‘이 작전 하나에 대한민국의 미래 자원을 모두 가져다 쓰고 있습니다. 혹시, 신이라는 분이 계신다면 제발 이번 작전이 성공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정말 정말 간절히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