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한반도 북부를 향해서… (212/225)

한반도 북부를 향해서…

봄이 지나고 여름이 다가오기 시작하자 점점 더해지는 더위 때문에 고단한 하루의 전투를 마친 조선인 지원병들은 피땀으로 범벅이 된 군복을 벗지도 못한 채 주린 배를 달래면서 하늘의 별을 보고 있었다.

“이러다가 우리 여기서 다 죽는 것 아닐까?”

“그러게나 말이다. 그런데 시발,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이야? 천황폐하께 충성하고 대일본 제국을 위해서 지원하라고 하더니…. 밥이나 좀 제대로 주던지.”

그때, 멀리 떨어진 반대편 진영 쪽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투항을 권유하는 일본어 방송이 들려왔다.

“오늘 하루도 고생이 많았을 일본군 장병 여러분, 다들 식사는 하셨습니까? 식사를 하셨다면 이제는 고향에 두고 온 부모 형제들을 생각해야 할 시간이군요. 평화로웠던 시기에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생각을 하면서….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한 곡 선물하겠습니다.”

그리고, 코가 마사오의 노래 가운데 ‘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의 구성진 가사와 함께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진짜 죽겠네! 오늘도 어김없이 시작이구나.”

“아…! 시발! 진짜 그만 듣고 싶다. 나는 저 방송을 들을 때마다 집에 가고 싶어진다.”

“야! 그런데, 저 방송을 하는 놈들이 우리하고 같은 조선인인 것 같지 않냐?”

“그렇지! 너도 그렇게 느꼈어? 아무래도 우리하고 같은 조선인 같은데…. 우리도 그냥 투항하고 저쪽으로 갈까?”

“쉿!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조심해! 얼마 전에도 탈영하다가 잡혀서 총살당하는 것 봤잖아?”

“야! 그 새끼가 운이 없었던 거지. 이렇게 고생하며 하루하루 살다가 죽느니 그냥 탈영이라도 한번 해보고 성공하면 사는 것이고, 실패하면 뭐…. 어쩔 수…. 없는 거지.”

일본 육군의 작전 지역인 남방 전선과 지나 전선, 그리고 조선 북부 전선에서 매일매일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

광복군은 대일 선전 방송을 통해서 일본군의 전투 의지를 떨어트리고 일본군에 지원한 조선인이나 강제 징집된 조선인 학도병들의 탈영을 유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삼일에 한 번꼴로 조선인 탈영병이 발생했다.

* * *

절대 국방권의 붕괴와 필리핀해 해전과 레이테만 해전에서 잇달아 참패한 일본 해군의 자랑하던 연합함대의 붕괴라는 엄청난 악재 속에서 일본 육군은 드디어 자신들이 진짜로 패전할지도 모른다는 현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인식이었지만, 어쨌든 미군은 이미 일본 본토 턱밑까지 밀고 들어와서 이오지마까지 점령한 상태였고, 앞으로 전쟁을 지속한다면 미군이 본토로 직접 상륙할 것은 명백한 사실이 되었다.

대본영 참모본부로써는 당장 눈앞에 닥친 미군의 상륙 위협에 맞서 상륙군을 격퇴하고 본토를 사수하기 위한 방어전략을 시급히 수립해야 했다.

그리고 운이 좋았는지 미군의 침공 정보를 입수한 대본영은 즉시 ‘결’호 작전을 발령했다.

“대장님, 일본 대본영에서 갑자기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광복군 정보대에서 주로 일본 정보를 담당하는 백정기가 급하게 찾아왔다.

“설마, 한반도로 관동군을 움직이기 시작한 건가?”

“아…! 그건 아닙니다.”

“그럼 뭔데?”

“아무래도 미군에 의한 일본 본토 공격이 임박했다는 정보를 입수한 모양입니다.”

“그래? 일본 대본영이 미군의 공격 정보를 입수했다고 해봐야 현재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텐데?”

현재, 일본 본토는 광복군 해군 잠수함대와 미국 해군 태평양함대 잠수함대에 의해서 사실상 일본 본토에서 밖으로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제주도 알뜨르 비행장에서 출격한 광복군과 미군 정찰기들이 일본 본토 전체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었다.

“그게 문제가 아니고 일왕과 일본 해군 그리고 일본 육군 장성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습니다.”

“그럼, 좋은 것이 아닌가…? 아…! 니미,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네.”

“맞습니다. 대장님. 만약 이 상태에서 전쟁이 끝난다면 이북 지역과 간도 지역을 누가 먼저 차지하느냐에 따라서 크게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 이제야 이해했다. 잠깐만…. 나 생각 좀 하고….”

“예, 대장님.”

현재 광복군은 경기도와 충청도 그리고 전라도, 강원도를 완전히 수복하고 부산과 진해 일대를 제외한 경상도 역시 거의 수복한 상태에서 황해도 구월산과 강원도 철원에서 원산으로 넘어가는 길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병력이 부족해서 더 이상 북쪽으로 전진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거 진짜 큰일인데.’

“백 대장! 아무래도 안 되겠다. 경성의 사령부와 상의를 한번 해보자.”

“예, 대장님.”

서둘러 기밀 통신실로 이동해서 경성의 광복군 사령부와 연결을 시도했다.

“김경천 대령님, 일이 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예?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예, 일본 쪽 사정이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내가 마음만 급해서 전후 사정을 설명하지도 않고 이야기를 시작했더니 김경천 대령이 계속해서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김경천 대령님, 우리 광복군 정보대가 일본에서 특별한 작업을 하나 진행하고 있는 것은 아시죠?”

“예, 자세히는 모르지만 뭔가 진행 중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김 대령님, 그 작업이 일왕의 항복을 유도하는 작업인데, 작업이 너무 잘 돼서 아무래도 우리가 예상하는 시간보다 일본의 항복이 빨라질 것 같습니다.”

“그럼, 좋은 것이 아닌가요?”

김경천 대령도 나처럼 전쟁이 빨리 끝나면 좋은 것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김 대령님, 우리 광복군은 아직까지 우리 영토를 전부 수복한 것이 아닙니다.”

“아…! 이런 제길, 그런 진격을 더 서둘러야 할까요?”

“그래 주면 좋겠지만, 너무 무리하지는 마십시오. 내가 대책을 한번 세워보겠습니다.”

괜히 서두르고 무리하다가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병력을 허무하게 날릴 수는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광복군 병사 한 명 한 명은 모두가 소중한 국가자원이었다.

“최대한 진격을 서둘러 주시되 너무 무리하지는 마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일단 신경을 좀 더 쓰겠습니다.”

김경천 대령과 연결을 끝내고 백정기에게 먼저 한 가지를 확인했다.

“혹시, 평양의 30사단과 나남의 19사단 병력 이외에 다른 병력이 한반도 쪽으로 이동한 징후가 있나?”

“신징 쪽의 병력이 이동하려고 움직임이 있기는 하지만 확실하게 장담은 못 하겠습니다.”

“음….”

그렇다고 조선 청년들을 무조건 징집을 해서 전선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이범석의 2연대는 어디까지 이동했지?”

“저…. 그게 좀 꼬였습니다.”

“아니 왜? 뭣 때문에?”

“김두봉이 김구 주석께 조선인 의용군을 제발 조선으로 같이 데려가 달라고 매달리고 있습니다.”

“아니, 김구 주석은 국내 사정도 급하다니까 거기서 왜 오지 않는 거야?”

“마지막까지 임시정부와 그동안 돌아가신 독립군들의 가족을 챙기시는 것 같습니다.”

“흐음…. 김구 주석께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고 계시니까 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래도 어서 서둘러 오셔야 하는데.”

조선인 의용군 숫자가 상당할 테고 당장 전력에 도움이 되겠지만 해방 전후 우리나라를 이데올로기의 최전선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딱히 땡기지 않았다.

다른 방법을 찾아서 관동군의 한반도 투입을 막아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항공대가 또 나서서 고생해야 하는 건가?’

“우리가 전에 만주 일대의 기차역과 철도를 폭격한 것을 이제는 거의 다 복구했나 보지?”

“예, 중요한 노선은 진즉에 복구했고 그 외 노선들은 지금도 복구를 하고 있지만 물자 부족으로 지지부진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뭐, 어쩔 수 없네. 한 번 더 만주를 불바다로 만드는 수밖에 없겠어. 나가는 길에 박하성 소령 좀 불러줘.”

“예, 알겠습니다.”

* * *

박하성 소령은 요즘 들어서 너무 무리하게 출격했는지 눈 밑이 새까맣게 변한 다크서클까지 보였다.

“박 소령, 많이 힘드냐?”

“아닙니다. 조금 힘들긴 하지만 요즘처럼 보람 있었던 적은 없었습니다.”

솔직한 내 마음은 우리 광복군 항공대의 대원들을 조금이라도 쉴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긴박하게 돌아가는 전장 상황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너도 대충 눈치챘겠지만 또 출동해야 할 것 같다.”

“뭐, 어쩌겠습니까? 이렇게 죽도록 적들을 때려잡다 보면 언젠가는 완전한 해방도 하겠지요.”

처음 제주도에 상륙해서 일본군과 일본 경찰을 때려잡고 제주도를 수복했을 때는 다들 이제는 진짜로 조선 전체가 해방된 줄 알고 기뻐서 날뛰었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부터 일본군의 반격이 시작됐고 그 이후로 광복군 전체 장병들은 하루도 제대로 쉰 적이 없이 쉴 새 없이 조국의 해방을 위해서 앞만 보고 달리기만 했다.

“모두에게 정말 미안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대장님! 그런 쓸데없는 소리나 하려고 부르셨어요? 얼른 공격 목표나 알려주세요. 가서 잠시라도 좀 자고 싶습니다.”

“그래. 미안하다. 목표는 신의주와 안동을 연결하는 안봉선과 길림과 회령을 연결하는 길회선이다. 일본군이 이용할 수 없게 아주 박살을 내야 한다. 알겠지?”

“예, 알겠습니다. 내일 아침 05:30분에 기상해서 준비하겠습니다. 나머지는 대장님이 좀 준비시켜 주십시오. 저 자러 갑니다.”

“그래. 알았다. 가서 푹 쉬어라.”

박하성 소령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경례도 없이 손만 한번 흔들어주고는 사라져 버렸다.

‘이 새끼가 이제 저도 좀 컸다고 피곤하다는 핑계를 대고 경례도 없이 가네. 좀 빠진 것 같은데 집합이라도 한번 시켜서 군기라도 좀 잡을까?’

관동군이 담당하는 만주 관동군 기지와 시설들을 다시 한번 집중적인 폭격을 하고 싶었지만, 항공대 대원들이 다들 너무 힘들어해서 겨우 안봉선과 길회선을 차단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시간을 확인하고 경성에서 청년들의 광복군 자원입대 일을 돕고 있는 여운형이 이 정도면 집으로 돌아왔을 것으로 생각하고 연락을 했다.

“너무 늦은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그런데, 이 시간에는 웬일이십니까?”

“병력이 부족해서 더는 진격하지 못하고 있는데 진격을 서둘러야 할 소식이 들어와서요. 어떻게 요즘은 지원병들이 좀 있습니까?”

“광복군에서 지원병들의 나이 제한을 워낙 깐깐하게 하다 보니까…. 솔직히 일본 놈들이 먼저 쓸어간 상황이라서 별로 없습니다.”

“그건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아무리 급하다고 아랫돌을 빼서 윗돌로 쓸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합니다만 상황이 좀 급하다면서요? 그럼 차라리 고하와 민세를 한 번 더 만나보시지요?”

“아니요. 그 사람들의 도움을 받느니 내가 직접 전투를 하러 가겠습니다.”

‘내가 만든 공장들도 하필이면 상당수가 북부 지방에 자리하고 있어서 전혀 도움이 되질 않네. 더구나 이런 전장 상황이 길어지면 공장시설에도 문제가 생길 텐데…. 걱정스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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