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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지옥의 문이 열렸다 (211/225)

필리핀, 지옥의 문이 열렸다

일본 육군 지나군 사령부가 주도한 ‘이치고’ 작전은 일본 대본영이 원했던 대로 중화민국 전선의 전황을 타개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미군의 작전계획에 커다란 변화를 주었다.

‘이치고’작전의 무리한 추진으로 지나군 사령부는 중화민국 국민당군과 공산당 군과의 전투의 늪에서 더욱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황에 빠졌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이 한반도 남부를 대부분 장악하고 북부지역을 수복하기 위해서 진격을 시작하자 미군은 일본 육군 지나군과 관동군의 간접적인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효과를 얻게 됐다.

하와이 진주만 미국 해군 태평양 함대 사령부.

니미츠 제독은 맥아더 남서 태평양사령부에 소속된 해군 제독들의 필리핀 상륙작전 보고를 훑어보면서 혀를 찼다.

“쯧쯧…. 이러면 많이 힘들 텐데…. 그런데, 일본 해군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본토 방어를 포기하고 필리핀으로 몰려갔을까?”

니미츠 제독의 판단으로는 남서 태평양사령부의 필리핀 상륙 작전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일본 해군의 필리핀 방어 작전은 더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답답한 마음에 담배 케이스의 뚜껑 열고 담배를 찾던 니미츠 제독은 담배가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이슨, 내 담배가 떨어졌다.”

“아…! 죄송합니다. 바로 채워 놓겠습니다. 제독님.”

대답하는 제이슨의 표정을 본 니미츠 제독은 제이슨의 표정이 너무 어두워 보이자 깜짝 놀라서 물었다.

“제이슨, 너 무슨 일이 있는 거냐?”

“아…. 아닙니다.”

“너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이냐?”

“후유….”

“뭔데 그러냐? 혹시, 조지 씨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그건 아닙니다.”

니미츠 제독의 물음에도 바로 대답이 없던 제이슨 대위는 무슨 일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었는지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 남서 태평양사령부 맥아더 사령관님의 휘하에는 제 형제들이 복무하고 있는데 이번에 필리핀 전선의 작전이 많이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해서 좀 걱정이 돼서 그랬습니다.”

“제이슨, 네 형제가 필리핀 전선에서 복무 중이었어?”

“예,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나서 줄곧 필리핀과 오스트레일리아 전선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남서 태평양사령부의 전체적인 작전을 확인해보니까 병력을 밀림 안으로까지 투입해서 일본 육군 14군을 완전히 제압하려고 하던데…. 네 표정이 왜 그런지 이제 이해되는구나.”

제이슨 대위는 자신의 형제들이 제발 큰일이 없이 필리핀 전선에서 무사하기만을 빌고 또 빌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니까 전쟁에 참여해도 괜찮지만 다른 형제들은 아버지께 목숨을 빚졌다는 이유때문에 은혜를 갚겠다고 군인이 될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제발 아무 일이 없기를 빕니다. 하느님 도와주세요.’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은 제이슨 대위를 그대로 놔두고 니미츠 제독은 본인의 담배를 챙겨서 사무실 안으로 돌아왔다.

사무실로 돌아온 니미츠 제독은 합동참모회의에서 내려온 작전 지침에 맞춰서 도쿄 상륙 작전 계획을 시간대별로 하나씩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먼저, 광복군 항공대와 우리 항공대를 총동원해서 도쿄와 도쿄만 인근의 모든 도시를 초토화시키고 난 다음, 지바현 쿠쥬쿠리해안과 가나가와현의 사가미만에 상륙하고 좌우에서 빙 돌면서 도쿄로 진격을 한다면 도쿄와 도쿄 일대를 모두 점령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후속 부대 상륙인가?’

니미츠 제독이 구상한 코로넷 작전은 상륙 예정 지역에 대한 대규모 항공 공격, 함상 포격을 집중하고 기뢰와 같은 수상 장애물을 제거한 이후에 병력을 상륙시키는 작전이었다.

물론, 이후에도 도쿄 주변에 대한 대규모 폭격은 더 치밀하게 실시할 예정이었다.

‘중화민국군이 약속대로 일본 서남부에 상륙해서 기만 작전을 펼쳐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기는 아마 힘들 것 같고…. 이 작전을 진행했을 때 일본군의 저항과 일본 국민의 저항 의지를 어떻게 꺾느냐가 문제인데….’

니미츠 제독이 원하는 작전이 순조롭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제주도로 파견된 잠수함대와 폭격기 부대가 얼마나 제 역할을 해주느냐에 달려있었다.

잠수함대는 일본 열도 전체를 통제하면서 일본인들이 식량을 비롯한 그 어떤 물자도 손에 넣을 수 없는 봉쇄를 시작하고, 폭격기 부대는 광복군 항공대와 함께 일본의 주요 도시를 일주일에 두 번 이상씩 불태워 버리고 있었다.

‘조지 씨와 광복군이 추진 중인 일왕의 항복 유도 작전이 먹힌다면 좋겠는데, 도쿄에 상륙하는 것도 아무리 생각해봐도 많은 무리가 따를 것 같단 말이지.’

여전히 니미츠 제독은 일본 도쿄를 점령한 미군 지휘관이 되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망과 상륙한 병사들과 전투에 휘말려서 이유도 없이 죽어 나갈 일본인을 생각하는 도덕적인 관념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 * *

니미츠 제독이 코로넷 작전의 보완에 매달리고 있을 때, 필리핀 상륙 작전을 눈앞에 둔 맥아더 장군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본 육군 14군 병력이 루손섬으로 집결하고 있다고?”

“예, 사령관님. 현재 지역 게릴라들과 우리 정보 대원들이 획득한 정보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상륙은 쉽겠지만 그 이후가 문제라는 소린데…. 이거 이러다가 우리가 니미츠보다 늦게 일본에 상륙하는 것 아냐?”

“그건 당장은 어려울 겁니다. 일단 모든 주력 병력이 이곳에 투입됐기 때문에 그럴 염려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우리 사령부의 작전에 차질이 생긴다면 워싱턴에서 어떤 결정을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맥아더 사령관과 서덜랜드 참모장은 필리핀 전도를 앞에 두고 상륙 작전 이후의 작전에 협의하는 중이었다.

똑똑!

“무슨 일이냐?”

“저, 참모장님, 정보 참모님께서 급하게 보고할 사항이 생겼다고 하십니다.”

서덜랜드 참모장은 맥아더의 얼굴을 보면서 눈짓으로 의사를 묻자 맥아더는 고개를 까닥거리면서 승낙을 표시했다.

“그래, 윌로비 무슨 일이야?”

“사령관님, 일본군이 레이테만으로 병력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레이테를 상륙지점으로 선택한 것이 노출된 건가?”

“워낙 대규모 상륙 작전이다 보니까 일본군도 어느 정도는 눈치를 챈 모양입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이거 예상 밖의 피해를 볼 수도 있겠는데.”

“사령관님, 이미 작전은 승인이 났고 작전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다. 그리고, 윌로비의 보고대로라면 해군이 피해를 보는 거지 우리 육군은 별다른 피해는 없을 것 같습니다. 계획대로 항공대만 잘 활용한다면 피해도 그리 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서덜랜드 참모장은 고민하는 맥아더를 설득해서 필리핀 상륙 작전 실행을 부추겼다.

“그래…. 전쟁에서 피해는 언제나 발생하는 것이고 내 목표인 필리핀을 하루라도 빨리 해방해야 하겠지. 좋다! 작전은 예정대로 진행한다.”

필리핀 상륙을 위한 예비 작전으로 일본군 항공대를 제거할 목적으로 출동한 미군 항공대가 포르모사에서 일본군 항공대와 전투를 벌이는 것을 시작으로 필리핀 상륙 작전이 시작됐다.

“사령관님, 레이테만 일대의 3개 섬으로 레인저 부대를 출동시켰습니다.”

“상륙지점에 대한 소해 작업은 어떻게 됐지?”

서덜랜드 참모장의 보고에 맥아더는 상륙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소해작전을 챙겼다.

“소해 작업도 깔끔하게 마쳤습니다.”

“좋군. 지금까지는 별 탈이 없이 진행되는 것 같은데…. 해군 쪽은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참모장이 한번 챙겨보라고.”

“예, 사령관님.”

“사령관님 6군 병력이 상륙을 시작했습니다.”

전장에서 시시각각 전해지는 정보를 모아서 맥아더 사령관 옆에서 서덜랜드 참모장이 전해주고 있었고 그 외 다른 참모들은 전장에서 전해진 정보를 지도에 일일이 표시하면 전장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10군단은 타클로반 활주로와 팔로강 사이의 6.4km에 걸쳐서 펼쳐진 해안선을 넘었습니다. 그리고, 남쪽으로 약 24km 떨어진 곳에 있는 24군단은 산호세와 다구이탄강 사이의 4.8km에 걸쳐 펼쳐져 있는 해안에 성공적으로 상륙했습니다.”

“좋아! 지금까지는 잘 진행되고 있군. 아…! 우리 상륙 작전을 방해하려고 접근 중이라던 일본 해군 함대는 어떻게 됐지?”

일본 해군 연합함대는 필리핀 남쪽을 돌아서 니시무라함대와 시마함대가 레이테만으로 진입하고, 주력인 구리다 함대는 산 베르난디노해협을 통과해서 레이테만 동쪽으로 진입하기로 했다. 또한 오자와 지사부로가 이끄는 함대가 북쪽에서 항공모함을 이끌기로 했다.

하지만 일본 해군 연합함대의 작전은 니미츠 제독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무모한 작전이었다.

아무리 조공 유인 부대라고 하지만 니시무라함대와 시마함대는 이미 노출된 상태였고 구라다함대 역시 운이 없게도 미군 잠수함에 위치가 노출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작전을 진행했다.

이 당시 일본 해군 연합함대는 필리핀해역에서 작전 중인 미국 해군 3함대의 적수가 될 수 없는 전력이었다.

그리고, 압도적인 미국 항공대의 항공 능력은 일본 해군 연합함대에는 커다란 위험 요인이었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전투 지역에 진입한 일본 해군 함대 중 한 개 함대는 전멸을 각오하고 전투를 벌였지만 다른 함대들이 이상한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우리의 상륙을 저지하러 온 것 아니었어? 뜬금없이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는 것은 무슨 소리야?”

“예, 그것이…. 전투를 하려고 하는 건지 아니면 도주를 하려고 하는 건지 모를 행동을 하다가 결국 괴멸적인 타격을 입고 후퇴를 했다고 합니다.”

“뭐…? 아니, 어떻게 그렇게….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군. JAP 들이 전쟁 막판이 다가오니까 단체로 약이라도 먹은 건가?”

맥아더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에 서덜랜드 참모장은 동의하면서 다른 것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령관님. 문제는 이로써 일본 해군이 완전히 소멸된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일본 해군이 완전히 되었다면 좋은 것 아닌가? 우리 작전 진행에도 유리하고 말이야.”

“니미츠 제독의 해군이 이제 일본 본토를 직전 공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지 않습니까?”

“아…! 이런, 그렇다면 필리핀 점령 작전을 최대한 빨리 서둘러야 하겠군,”

필리핀 내에만 40만 명 이상의 병력을 주둔시켰던 일본 대본영 유군 참모본부는 제14군 사령관 야마시타 도모유키에게 필리핀을 끝까지 사수할 것을 명령했다.

대본영 참모본부의 명령을 접수한 야마시타 도모유키 사령관은 최후의 결전 장소로 루손섬을 선택하고 40만 명이 넘는 병력을 3개로 나눠서 루손섬 곳곳에 분산 배치했다.

그리고, 이 결정으로 맥아더의 남서 태평양사령부는 일본 일왕의 항복 선언으로 태평양 전쟁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도 필리핀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와 더불어서 미국 대통령을 꿈꿨던 더글러스 맥아더의 개꿈도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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