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 (2)
일본 육군 참모본부는 도쿄주재 소련대사 말리크와 비공식적으로 접촉을 하면서 소련과의 불가침 조약 연장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다.
일본 육군의 똥줄이 탄 모습을 본 말리크 대사는 모스크바에 현재 일본이 처한 상황과 일본이 제시하고 있는 조건을 보고를 했다.
말리크 대사의 보고를 받은 몰로토프 소련 외상은 말리크 대사를 모스크바로 소환해서 의견을 듣고 대일 정책을 논의했다.
“말리크, 일본 육군이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고?”
“예, 도조 히데키 육군 대신과 대본영 육군 참모본부가 일본 내각의 외무대신인 시게미쓰 마모루를 통해서 계속 연락을 하고 있습니다.”
뜨거운 홍차에 위스키를 가득 채운 찻잔을 들면서 말리크 대사가 대답을 했다.
“흠…. 말리크, 일본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뭐라고 생각하나?”
“일본 육군은 미국과 결전을 볼 때까지는 우리 소련이 개입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정말이야? 혹시, 일본 놈들이 미친 것 아냐? 아무리 생각해봐도 전쟁은 이미 끝난 것 같은데 도대체 일본 육군은 뭘 믿고 그러는 거야?”
“일본 육군 지도자들은 일본의 인구 1억 명을 모두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버티면서 미국, 영국과 종전 협상 형식으로 전쟁을 마무리 짓고 싶어 합니다.”
말리크 대사의 대답을 들은 몰로토프 외상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혀까지 차면서 물었다.
“허…. 설마, 현재 전선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그렇게 하겠다는 생각은 아니겠지?”
“예, 현재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는 한 달 이내에 일본 육군은 대전략을 수정해야 할 상황이 올 것 같습니다.”
“아…. 그렇지. 지금 한반도에서도 한참 전투가 진행되고 있다고 했지?”
“예, 지금 일본 육군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버마와 중화민국 전선까지 모든 전선에서 패전하면서 조만간 모든 전선이 한꺼번에 붕괴될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간을 보내면서 몸값이나 올리면 되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 그러다가는 나중에 우리 소련은 빈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너무나 단호한 말리크 대사의 반대에 몰로토프 외상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말리크, 내가 모르는 무슨 이유가 따로 있는 건가?”
“예.”
“뭔데, 그렇게 단호하게 대답하는 거야?”
“어쩌면 일본은 올해 안에 미국에 항복할지도 모릅니다.”
“뭐? 그게 정말이야?”
“예.”
“어떻게 그런 판단이 가능해? 도대체 무엇을 보고 말리크 대사는 그런 분석을 하는 거야?”
말리크는 홍차와 섞인 위스키의 알코올 맛을 느끼면서 대답을 했다.
“제가 지금까지 외상께 말씀드린 것은 일본 전체의 움직임이 아니라 일본 육군의 움직임이었습니다. 현재, 일본 해군과 일본 천황은 일본 육군과는 또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 일본은 육군 따로 해군 따로 내각이나 천황도 따로지?”
“예, 현재 일본 해군은 종전을 위해서 미국과 비밀리에 접촉을 하고 있고 일본 천황은 뭔가를 하고 있기는 한데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이야…! 이것 봐라. 그럼,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대응을 해야 할까?”
말리크의 말을 듣고 몰로토프는 시가를 손가락으로 돌리면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제 생각에는 현재 일본 상황은 우리가 미국에 베팅하기 좋은 소재라는 겁니다.”
“음…. 미국을 상대로 베팅하는 소재로 쓰라는 말이지….”
한동안 고민을 하던 몰로토프 외상은 스탈린 서기장에게 보고하기 위한 보고서 작성을 지시했다.
몰로토프 외상의 지시를 받은 말리크 대사는 무려 27개 항에 달하는 대일, 대미 정세분석 보고서를 작성했고 역사적으로뿐만 아니라 소련의 미래 안보를 위해서라도 소련은 대일 전에 참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가 말리크 주일 대사의 분석인가?”
“예, 서기장님.”
“로좁스키도 그렇고 마이스키도 그렇고 다들 우리 소련의 안보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참전하라고 말하는군.”
담배 파이프를 입에 문 스탈린은 보고서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면서 연기를 내뿜었다.
“서기장님,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우리 소련에는 무조건 이익으로 돌아옵니다.”
“이왕 이익을 보려면 최대의 이익을 봐야지. 남들이 먹다가 남겨준 찌꺼기나 줒어 먹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야. 그리고,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미 말리크가 예상한 조건을 우리한테 양보할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보이더군.”
“그렇다면 선택은 우리가 할 수 있군요?”
“그렇지. 선택은 우리가 할 수 있지.”
스탈린은 몰로토프 외상과 대화를 마친 후, 바로 바실렙스키 원수를 소환해서 극동군의 대일 전선 참전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 * *
백악관 2층 대통령 집무실에서는 백악관 참모들과 합동참모회의 지휘관들이 모여서 니미츠 제독이 제안한 작전을 검토하고 있었다.
“니미츠 제독이 제안한 이 작전이 정말로 가능하겠는지 한 번 이야기들을 해봐.”
루스벨트 대통령은 병색이 완연한 얼굴로 니미츠의 제안에 대한 참모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 했다.
“각하, 일단 현재 태평양 전선은 맥아더 사령관 쪽에 모든 전력을 집중해 놓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도쿄를 공격하자는 니미츠 제독의 제안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태평양 전선에서 미군의 주공 방향을 놓고 몇 번에 걸쳐서 티격태격 다퉜던 육군과 해군 지휘관들은 현재 상태에서 다시 혼선을 빚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그럼, 전혀 검토할 가치도 없는 제안이라는 건가?”
“각하, 그것은 또 아닙니다. 니미츠 제독의 제안은 일본의 항복을 유도할 수 있는 하나의 카드가 될 수는 있습니다.”
그래도 가재는 게 편이라고 어니스트 킹 제독은 니미츠 제독의 편을 들어줬다.
하지만, 루스벨트 대통령의 표정은 펴지지 않고 굳은 채 그대로였다.
니미츠 제독의 제안은 획기적으로 전쟁을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작전이라고 생각했는데 참모들의 의견은 그게 또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에는 좋은 제안 같은데 다들 왜 그런 판단을 하는 거야?”
“각하, 지금 일본은 일억 총옥쇄를 부르짖고 있는 상황인데 일본 본토 상륙 작전은 불 속으로 뛰어드는 꼴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오키나와에 상륙하는 것보다 차라리 도쿄에 상륙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인 것 같은데 아니라는 말이지?”
“예, 오키나와는 고립이 된 섬이기 때문에 우리가 일본 본토의 지원을 막을 수 있지만, 도쿄는 전혀 다릅니다.”
니미츠 제독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태평양 전쟁을 종결지을 수 있는 작전을 제안했지만, 합동참모회의 지휘관들은 전쟁의 승리는 이미 결정된 상황에서 굳이 무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루스벨트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다.
건강에 심각한 이상이 느껴지는 지금, 어느 쪽이 됐든 전쟁을 확실히 정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너무 많이 퍼준다는 소리까지 들어가면서 소련과 중화민국에 유리한 제안까지 했다.
“아니야. 다들 무엇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줄은 알겠지만 내 생각은 달라. 이 전쟁을 언제까지 끌고 갈 생각이지? 내년? 내 후년? 도대체 언제까지 미국의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죽어야만 하냐는 말이야?”
“하지만, 각하! 도쿄에 상륙한 우리 군이 고립이라도 된다면 그때는 더 큰 참사가 벌어집니다.”
“아니지. 우리한테는 신형 전략 폭격기가 있잖아. 그것을 쓸 생각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서 개발한 거야?”
루스벨트 대통령은 마치 무엇에라도 씌운 사람처럼 니미츠 제독의 작전을 강력하게 지지하자 합동참모회의 지휘관들은 어쩔 수 없이 다시 한번 니미츠 제독이 제안한 작전을 들여다봤다.
니미츠 제독이 제안한 작전은 기만을 통해서 일본군 전력을 일본 본토 밖으로 유인해내고, B-29 전략 폭격기를 동원해서 도쿄 일대를 집중 폭격을 하고 도쿄만 일대에 사람이 살 수 없는 무인 지대로 만든 후, 도쿄 상륙 작전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이런 작전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상대가 움직여 주지 않으면 반대로 아군이 크게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작전이었다.
합리적인 인물로 소문난 니미츠 제독이 갑자기 무엇을 근거로 이런 작전을 제안한 건지 합동참모회의 지휘관들은 의문이 들었다.
“각하! 설마…. 맥아더 장군 때문입니까?”
“아니 그것은 아냐.”
“그럼 도대체 무슨 이유때문에 니미츠 제독은 이런 황당한 작전을 구상한 거라고 합니까?”
“결국 비밀을 오픈해야 하겠군. 일왕이 항복하고 싶다는데 항복할 건수가 없다고 해서 마련한 작전이야.”
“예?”
“각하! 그게 정말입니까?”
건강이 나빠지면서 더는 담배를 피울 수가 없게 된 루스벨트 대통령은 담배 대신 사탕을 입에 넣고 오독오독 씹으면서 대답을 했다.
“그래. 우리의 동맹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작전을 하나 진행했는데 그것이 제대로 성공한 것 같아.”
“각하, 우리 미국의 정보부도 아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진행한 작전을 신뢰하시는 겁니까?”
“여기 참석한 군 지휘관들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지금까지 판단하기로는 우리 OSI와 FBI에서 획득한 중요한 정보는 대부분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에서 나왔네.”
“예…? 각하!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그건 내가 확실하게 확인해 줄 수 있네. 말이 다른 곳으로 셌는데 그래서 나는 이 작전을 믿고 실행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네.”
루스벨트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말하면서 니미츠 제독이 제안한 상륙 작전을 신뢰한다면 합동참모회의는 대통령의 제안을 쉽게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일본의 비둘기파들이 일본의 매파들을 본토 밖으로 모두 내보낼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니미츠 제독이 제안한 작전을 살펴보라고.”
“그 대상 지역이 오키나와와 타이완입니까?”
“한반도와 중화민국, 그리고 필리핀까지 포함하라고.”
“설마, 그래서 지금 모든 전선에서 우리 연합군이 승리한 겁니까?”
“아니, 그건 아니고 일본군의 상태가 이제는 더는 전쟁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까지 왔다고 봐야겠지.”
지금까지 다소 느긋하고 편안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있었던 루스벨트 대통령이 자세를 바로 하고 회의 참석자들과 시선을 맞추면서
“일왕이 항복 선언을 할 때까지는 이 비밀이 유지돼야만 하네. 그러니까 믿을 수 있는 참모들을 데리고 이 작전을 완성을 시켜봐.”
“예, 각하.”
“아! 그리고, 일본의 기상은 여름에는 최악이라고 하니까 나는 도쿄에 우리 성조기를 꽂기 좋은 계절은 가을쯤이 좋을 것 같아.”
“예, 각하. 최대한 시간을 맞춰보겠습니다.”
회의를 끝낸 참석자들이 하나둘 집무실을 벗어나자 전쟁부 장관인 스팀슨이 메모지 하나를 들고 와서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각하! 맨해튼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그럼 어디서 시험합니까?’
스팀슨 전쟁부 장관이 전달한 메모지를 쳐다본 루스벨트 대통령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설마, 이 넓은 세상에 그거 하나 시험할 곳이 없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