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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 (1) (209/225)

파국 (1)

각기 다른 세 곳에서 동시에 전해진 세 가지 소식에 일본의 히로히토 일왕과 내각, 그리고 대본영은 진짜로 이제는 결단의 시간이 도래했음을 느꼈다.

“참모총장님, 버마 전선에서 전해진 내부 고발 보고서입니다.”

“버마 전선에서 보고된 고발 보고서라니? 그게 느닷없이 무슨 말이야?”

사나다 조이치로 작전 과장의 보고에 스기야마 하지메 육군 참모총장은 인상을 쓰면서 화를 냈다.

“예, 그게…. 남부 방면군 31사단장인 사토 고토쿠 중장이 직속상관인 15군 사령관 무타구치 렌야 중장을 참모본부에 고발했습니다.”

“뭐? 전투에 패배하고 병력을 송두리째 날린 주제에 뭘 잘했다고 내부 고발이야? 이 새끼 미친 것 아니야?”

“저…. 전과 분석 보고서를 한번 보시면 그런 말씀을 하시기 힘들 것 같습니다.”

“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러는 거야?”

“참모총장님께서 직접 한번 읽어 보십시오.”

인도 코히마를 점령하고 임팔의 후방에서 협공하기로 했던 사토 고토쿠 31사단장은 식량은 물론 탄약까지 떨어진 상태에서 사단의 모든 병력이 전멸하느니 차라리 항명하고 후퇴를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고 코히마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결단을 내리고 독단적으로 퇴각해버렸다.

그리고, 나중에 작전 실패의 전모가 드러날까 봐 두려웠던 남부 방면군 사령부는 사토 고토쿠 사단장을 정신병자로 몰아서 군사 법정에도 서지 못하게 입을 막아버렸다.

“이런…. 미친놈들!”

스기야마 하지메 참모총장은 사토 고토구 사단장이 올렸다는 내부 고발 보고서를 읽다 말고 집어 던져버리고는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데 남부 방면군 사령부는 이런 미친 짓을 한 거야? 그리고, 이 미친 새끼는 저도 똑같은 패장인 주제에 뭘 잘했다고 내부 분란을 일으키고 지랄이야.”

스기야마 하지메 참모총장의 반응에 사나다 조이치로 작전 과장은 기도 차지 않았다.

이런 대규모 작전의 실행은 스기야마 하지메 참모총장의 승인이 없었다면 진행될 수 없는 작전이었다.

그래서, 처음 ‘우’ 작전이 입안됐을 때 작전이 너무 허접해서 사나다 조이치로 작전 과장은 작전을 거부했었다.

하지만, 장성들끼리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스기야마 하지메 대장에게 ‘우’ 작전은 보고됐고 보고를 받은 참모총장의 승인 아래서 진행된 작전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모든 문제는 사토 고토쿠 31사단장이었다는 식으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 새끼를 당장 잘라버리고 정신 병원에 집어 넣어버려!”

“저…. 참모총장님, 그럼 직속상관들인 무타구치 렌야 중장과 남부 방면군 사령 장관은 어떡합니까?”

“사토 고토쿠가 모든 책임을 졌지 않나? 그러니까 이번 일은 사토 고토쿠 선에서 마무리 짓자.”

“저…. 그리고 참모총장님, 남부 방면군도 문제지만, 지나 방면군도 현재 큰 난관에 봉착한 모양입니다. 국민당 장제스의 군대가 생각지도 못한 대대적인 반격에 나서면서 지나 방면군도 엄청난 위험에 직면한 상황입니다.”

사나다 조이치로 작전 과장은 화를 내면서 씩씩거리고 있는 스기야마 하지메 참모총장의 눈치를 보면서 지나 방면군의 소식도 함께 전했다.

“지나 방면군은 또 왜? 거기는 ‘이치고’작전 진행이 잘되고 있었던 곳이 아닌가?”

일명 ‘이치고’ 작전이라고 불리는 대륙 타동작전은 17개 보병사단, 1개 전차사단, 6개 독립여단 등 50만 대군과 800대의 전차, 1만 6천 대의 차량, 10만 마리의 군마, 그리고 항공기 200대를 동원한 일본 육군 지나 방면군의 사활이 걸린 작전이었다.

하지만, 이 작전은 처음 구상 자체부터가 문제가 많은 작전이었다.

대본영의 또 다른 작전 과장인 핫토리 다쿠시로 대좌에 의해서 구상된 작전으로 중화민국 국민당의 궤멸을 노렸었다면 처음부터 직진으로 충칭의 장제스를 노렸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 작전의 주요 전략 목표는 베트남 북부까지 철도를 확보해서 자원 수송로를 확보하면서 중화민국 남부의 국민당군을 몰아내겠다는 작전으로 구상이 됐고 실행이 됐다.

그러다 보니 중화민국군은 일본군의 초반 공세를 피했다가 다시 반격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어제 창사에서 최초의 반격을 받기 시작해서 지금은 상계까지 진격했던 전선의 허리가 완전히 잘린 상태가 됐습니다.”

“뭐라고? 아니 어쩌다가?”

“어젯밤 중화민국군의 대대적인 기습으로 창사를 완전히 상실했다는 보고입니다.”

“미치겠네. 어떻게…. 그럼, 재반격을 통해서 창사를 다시 찾으면 되잖아? 생각해보니까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뭘 그렇게 호들갑이냐?”

중화민국군이 단지 지나 방면군의 허점을 잘 이용해서 창사를 점령한 것일 거라 생각한 스기야마 하지메 참모총장은 처음과 달리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참모총장님, 그렇게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중화민국군이 최소한 60만 명 이상을 동원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미군의 신형 전투기와 폭격기 그리고 미군의 신형 전차까지 동원하고 있다는 정보입니다.”

“어째서 계속 이런 일이 생기는 거냐? 우리 육군이라도 승리를 해야 할 것 아니냐? 당장 반격을 지시해!”

그렇지 않아도 조선에 상륙한 조선인 반란 분자들 때문에 머리가 아픈데 지나에서까지 문제가 생겼다는 소리에 스기야마 하지메 참모총장은 점점 신경질이 나기 시작했다.

“참모총장님, 지금 지나 방면군은 그럴만한 여유도 형편도 되지 않습니다. 지난 한 달 가까운 기간 동안 지나 동부의 주요 항구와 공업 시설이 제주도에서 날아온 조선 놈들한테 모두 불탔습니다. 그래서 물자보급이 생각 밖으로 엉망인 상태입니다.”

“칙쑈! 문제는 바로 제주도의 조선 놈들이야! 그놈들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지나 방면군도 관동군도 앞으로 큰 문제가 생길 것이다.”

“바로 그겁니다. 지금 제주도의 조선 놈들 때문에 지나 방면군도 큰 곤란에 빠졌습니다. 이대로라면 지나 방면군 50만이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흐음….”

스기야마 하지메 참모총장은 목구멍에 걸린 생선 가시 같은 제주도를 해결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오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남방 자원지대의 중요 요충지인 필리핀을 지키자는 결정 때문에 일본 해군 연합함대 전체는 필리핀 근처에 있었다.

“제주도를 어떡해야 할지 방법을 찾아봐라. 아! 일단 지나 방면군을 지원할 방법도 찾아보고.”

“예, 참모총장님.”

그때, 스기야마 하지메 총장실 문이 열리면서 부관 장교가 급하게 전문을 내밀었다.

“참모총장님, 오늘 새벽에 경성이 조선인 반도들에게 떨어졌습니다.”

“뭐라고? 도대체 왜 들이러는 거냐? 이타가키 세이시로는 경성을 사수하라니까 결국 경성을 빼앗긴 거냐?”

“예, 황해도 해주로 아베 노부유키 조선 총독과 함께 퇴각하셨다는 보고입니다.”

제주도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경성마저 빼앗겼다는 사실에 스기야마 하지메 참모총장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만약, 지금 상황에서 소련군까지 등을 돌리면 우리 황군은 끝이다.”

스기야마 하지메 참모총장은 경성의 함락 소식보다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는 것이 더 겁이 낫다.

그래서, 바로 대본영 참모본부 소속의 참모들을 단속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 사실을 천황폐하께 보고할 때까지는 이 사실이 절대로 외부로 알려져서는 안 된다. 다들 부하들 입단속 시키고 너희도 어디 가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마라.”

“예.”

* * *

스기야마 하지메 참모총장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이미 대본영 참모본부에 파이프를 연결해놨던 스즈키 간타로 추밀원 고문에게 버마와 지나, 그리고 조선에서 발생한 상황이 모두 노출됐다.

“내가 해군 놈들한테 하도 속아서 해군 놈들뿐만 아니라 육군 놈들도 감시하고 있었는데 설마 육군 놈들도 천황폐하를 속일 줄은 정말 몰랐네.”

“우리 장성들이 다 그렇죠.”

잔뜩 화가 난 스즈키 간타로의 말에 씁쓸한 목소리로 도고 시게노리가 대답을 했다.

“아무래도 이 모든 사실을 천황폐하께 보고를 드려야 하겠지?”

“당연하지 않습니까? 우리 일본 제국의 기둥이신 천황폐하께 감출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 그래야 하겠지. 그래야 천황폐하께서도 빨리 결심을 하시겠지.”

스즈키 간타로 추밀원 고문의 혼잣말을 들으면서 도고 시게노리는 히로히토 일왕이 우물쭈물하는 이유를 짐작하지만 국왕으로서 너무 결단이 늦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리더는 생각도 깊어야 하지만 결정은 빨라아한다.

지금도 히로히토 일왕의 늦어지는 결단 때문에 수많은 일본의 젊은이들이 이름도 모르는 태평양 한가운데의 섬에서 동남아시아의 빽빽한 밀림 속에서, 그리고 지나의 황량한 황야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그럼, 나하고 같이 천황폐하를 뵈러 가세.”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스즈키 간타로가 도고 시게노리에게 함께 할 것을 권유했다.

“저…. 고문님, 새로운 정보가 또 들어왔습니다.”

“무슨 정보? 아직도 그놈들이 정보를 전해주나? 자네 그러다가 잘못하면 간첩으로 몰릴 수 있어!”

“저는 어떻게 돼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고문님 이번에 전해진 정보가 좀 심각해서 그렇습니다.”

“뭔데 그러나? 도고 시게노리, 자네가 심각하다고 생각할 정도면 문제가 있다는 소린데…?”

“육군 참모본부에서 독자적으로 소련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해군 군령부도 미국에 계속 독자적인 접촉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허…! 이런 개 같은 놈들! 전쟁은 제 놈들이 일으켜놓고 이제 와서 제 놈들만 살겠다는 거냐?”

어쩌면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이방인이나 다름없는 도고 시게노리의 눈에는 전쟁의 종말과 일본 제국의 파국이 점점 다가오는 것 같았다.

* * *

도고 시게노리가 내다보는 파국은 현실의 파국이지만 도고 시게노리가 모르는 중국과 일본 곳곳에서는 중국과 일본의 미래를 파국으로 몰아갈 씨앗들이 심어지고 있었다.

“그래! 시발! 바로 이 맛이지! 아자!”

“쏴! 저 새끼 죽여!”

중화민국 장제스 총통과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의 협력 약속에 따라서 니미츠 제독의 요청을 받은 대한민국 광복군 항공대는 전력의 반 이상을 투입해서 중화민국 전선을 지원하고 있었다.

주 임무는 중화민국 동부 해안의 일본군 항구 시설과 일본군이 운영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공장지대의 폭격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광복군 항공대 지휘관인 박하성 소령에게 따로 내려진 명령은 조금 달랐다.

박하성 소령이 지휘하는 폭격기 편대는 특이하게도 폭탄을 투하하는 것이 아니라 ‘취급 주의! 내용물 탄저균!’이라는 글이 쓰인 드럼통 크기의 얇은 두께의 유리통들을 지상에 투하하고 있었다.

‘중화민국은 여기 상하이가 마지막이지. 이로써 중화민국 동부 해안 근처의 도시들은 앞으로 사람이 살기 어려운 동네가 됐군. 이번 작전으로 중화민국의 미래는 모두 끝장이 났으니까 다음은 일본 주요 도시가 목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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