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성… 7일 차 (208/225)

경성… 7일 차

평양의 30사단과 나남의 19사단의 병력 지원이 광복군 항공대의 무차별적인 폭격으로 막힌 상황에서 조선 총독부와 용산의 조선군 사령부는 경성의 함락에 대비한 작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제국의 황군이 저따위 불령선인들의 군대 하나를 막아내지 못하는 거야?”

총독부에서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었던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는 조선군 사령관인 이타가키 세이시로 대장을 질책하고 있었다.

“총독 각하! 너무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십시오. 지금, 병사들이 능력이 부족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설마, 불령선인 놈들이 미국 양키 놈들의 탱크를 가져왔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 됐고, 그럼 저놈들을 막을 방법이 아예 없는 건가?”

“평양과 나남의 병력 지원이라도 있다면…. 어떻게 반격이라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 이 상태로는 계속 버티기도 힘들 것 같습니다.”

“이봐! 이타가키 세이시로 사령관! 힘들다는 말은 천황폐하께서 지시하신 신성한 임무를 포기해야 한다는 말인가?”

“.....”

대답하기가 난처했던 이타가키 세이시로 대장은 입을 닫아버렸다.

그리고는 머릿속으로 어떻게 병력을 보존한 채 경성 이북 지역으로 후퇴를 할지 고민을 했다.

“이타가키 세이시로 대장! 정말 이대로 경성을 떠나야 하냐는 말이야?”

“방법이 없습니다. 저놈들은 계속해서 병력이 보충되는 것 같은데 우리는…. 그리고, 우리 항공대가 전멸한 상황에서 북쪽의 철도는 폭격으로 계속해서 끊기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대로 경성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옥쇄할 것인지 아니면 훗날을 도모할 것인지 이제는 결정해야만 합니다.”

“에 에 에 엥!”

“에 에 엥!”

이타가키 세이시로 대장의 대답이 끝나갈 때쯤 요란스럽게 공습경보가 울리더니 뒤이어서 시끄러운 항공기 엔진 소리와 함께 언제 들어도 소름이 끼치는 기관총 발사음과 폭발음이 들려왔다.

“두 드 드 드 둑!”

“타 다다 당!”

“꽝!”

“꽈 광!”

아베 노부유키 총독이 고개를 돌려서 창문 밖을 쳐다보자 언제 또 날아왔는지 광복군 항공대의 전투기들이 용산 일대의 일본군 주둔지를 신나게 공격하고 있었다.

“칙쑈!”

“저렇게 30분에서 1시간 간격으로 불령선인 놈들의 전투기들이 공격해오니까 도무지 뭘 해볼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뭔가를 결심한 듯한 표정의 아베 노부유키 총독은 결연한 눈빛으로 이타가키 세이시로 사령관을 보면서 물었다.

“그렇지만, 이대로 경성을 포기하고 물러나게 된다면 나중에 뒷감당을 어떻게 하겠나? 대본영에는 상황이 어떻다고 연락은 해야 하지 않겠나?”

“총독 각하, 그렇지 않아도 대본영에 이미 연락했습니다. 하지만, 총독 각하께서도 아시다시피 대본영의 대답은 언제나처럼 무조건 경성 사수였습니다.”

“칙쑈!”

“지금은 총독 각하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대로 경성에 있다가는 모두 개죽음입니다. 현재 제공권을 완전히 뺏긴 상황에서 저놈들의 탱크를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습니다.”

이타가키 세이시로 사령관의 간곡한 눈빛의 재촉에도 아베 노부유키 총독은 결연한 표정만 지은 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 * *

영등포 일대를 완전히 장악한 광복군은 적은 병력이지만 후방에서 지원 온 병력들과 임무 교대를 하고 계속해서 일본군을 몰아붙였다.

그리고, 광복군이 경성에 진입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 전황에 크게 영향을 줄 만한 상륙 작전이 김포에서 진행됐다.

“좋았어! 이젠 진짜 끝이다. 괌과 사이판에서 온 병력이 김포 북쪽을 차단하면 경성에 갇힌 일본군은 드디어 끝장이다.”

니미츠 제독이 서둘러서 수송함대를 편성해준 덕분에 괌과 사이판의 조선인 강제 징용자들이 자원입대해서 만든 2개 연대급 해병대 병력이 시간에 늦지 않게 김포에 상륙할 수 있었다.

“김 대령님, 1개 연대는 한탄강까지 전진을 시켜서 북쪽의 일본군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하고 나머지 1개 연대는 경성으로 돌리겠습니다.”

“김 중령, 이번에 온 부대는 장교와 하사관들이 많이 부족하다고 하던데 괜찮겠어?”

“뭐, 지금과 같은 전시 상황에서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할 수는 없죠. 장교와 하사관들이 부족한 대로 그냥 병력 편제를 했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전투에 지장이 있으면 안 되니까 물어본 거네.”

“너무 그렇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겁니다. 이미 훈련소에서부터 이런 식의 편제로 훈련을 해왔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알겠네.”

“그런데, 일본군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가 궁금합니다. 용산에 주둔 중인 일본군도 현재 상황을 어느 정도는 파악했을 것 같은데요?”

“글쎄…. 나는 웬만하면 그냥 후퇴를 선택해주기를 속으로 빌고 있네. 그냥, 마음 같아서는 모조리 다 때려잡고 싶지만 계속되는 시가전으로 경성 시내의 건물이 남아나는 것이 하나도 없을 것 같아서 말이야.”

“흠…. 앞으로 새로 정부를 만들면 경성 시내의 부서진 집들부터 보상해야겠군요.”

“아마 그래야 할 거야. 그래서 나는 웬만하면 일본군이 그냥 후퇴하기를 비는 거네.”

“그럼, 이렇게 한번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김원봉 중령은 김경천 대령에게 일본군이 용산을 벗어나서 후퇴할 수 있도록 도주로 한 곳을 터주자는 제안을 했다.

“그렇게 용산의 일본군이 경성을 벗어나면 그때부터 때려잡자는 말인가?”

“예, 전투가 이 상태로 계속해서 지속되면 경성 시내의 건물들은 최소한 반 이상은 날아갑니다. 그러니까 일단 용산에 처박혀 있는 놈들의 퇴로를 터주고 나중에 경성을 벗어나면 그때 전부 소탕하는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음…. 좋아! 김 중령 말처럼 그렇게 한번 해보자고.”

광복군이 새로운 작전대로 토끼몰이를 하듯이 일본군의 퇴로를 열어둔 채 경성의 주요 건물들을 하나씩 점령해 나가고 있을 때, 광복군 사령부가 장악한 경성 전화 교환국으로 한 통의 전화가 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저, 연대장님.”

“응? 왜? 무슨 일이라도 있나?”

“예, 대구에서 항복을 요청하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대구에서 항복을 요청했다고? 누가?”

“혹시, 이응준이라는 일본군 장교를 아십니까? 그쪽에서는 연대장님을 아주 잘 아는 것처럼 말을 했습니다.”

경성 전화국을 장악하고 전국의 전화를 통제하고 있던 통신 장교의 말에 김경천은 인상이 갑자기 찌푸려졌다.

일본 육군사관학교 26기 조선인 출신 장교.

김경천, 지청천과 동기이면서 자신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은 친구였다.

“이응준이 뭐라고 하던가?”

“항복을 요청했습니다. 현재 대구에 주둔 중인 일본군 부대를 이끌고 투항하겠답니다.”

“음…. 알았다. 이 문제는 나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니까 지금 바로 제주도를 연결해라. 제주도와 연락을 해보고 나서 결정하겠다.”

“예, 연대장님.”

“조지 대장님, 경성입니다.”

“경성? 왜? 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김경천 대령님이 평문 전신으로 연락하셨습니다.”

병력이 부족한 광복군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식겁했던 마음을 진정시키고 통신대로 향해갔다.

“김경천 대령님, 무슨 일입니까?”

“조지 대장님, 상의를 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무슨 일인데요?”

“대구에 주둔 중인 일본군이 항복을 요청했습니다.”

“그럼, 그냥 항복을 받으면 되지 않습니까?”

“그게…. 문제는 그 부대 지휘관이 조선인입니다.”

“그래요? 누군데요?”

“이응준이라고 한때는 학교를 같이 다녔던 동기였던 친굽니다.”

이응준은 애국지사 이갑의 지원으로 학교에 다녔고, 그 인연으로 이갑의 사위가 되었지만, 1919년 김경천, 지청천 등과 함께 독립군이 되기로 모의는 했으나 탈출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응준은 평소에 ‘군인인 나는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해야만 했다면서 당시에는 일제에 충성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라고 친일 매국노들이 줄구장창 주장하는 논리를 말하고 다녔다.

그뿐만 아니라 태평양 전쟁 말기에는 일제의 조선인 징병제 시행에 대하여 일본 천황에게 무한한 감사와 적극적인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방하면서 조선인 강제 동원에 앞장섰다.

그런데, 웃기지도 않게 이런 개새끼가 대한민국 육군의 아버지가 돼서 국립묘지에 묻혀 있었다.

그의 묘비에는 황당하게도‘군의 아버시여….’ 라는 글귀가 적혀있었다.

“김경천 대령님은 어떻게 하고 싶습니까?”

“조지 대장님이 나한테 일을 처리할 권한을 준다면 나는 그냥 대구를 깨끗이 밀어 버리고 싶습니다.”

“음…. 그냥 병력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일단 항복을 받고 나중에 재판정에 세우는 것은 어떻습니까?”

“아닙니다. 친일 매국노들은 항복을 받아주면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어서 뒤로 또 누군가와 접촉하면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내 생각에는 그냥 대구를 모두 날려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항복을 받아주지 않고 싶습니다.”

‘이응준은 동기들끼리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싸우자고 기껏 약속해놓고 배신을 한 놈이지. 김경천 대령과 지청천 대령이 이응준을 생각하면 얼마나 열받을지 알만하군. 그냥 이번 기회에 친일 매국노들의 처리 규정을 확실히 정해두자.’

“좋습니다. 김경천 대령님. 앞으로 친일 매국노들의 항복이나 귀순 요청을 받지 않는 것으로 합시다. 그리고 만약, 우리 광복군에 체포된다면 바로 군사재판을 열어서 직결 처리하는 것으로 합시다.”

“조지 대장님, 고맙습니다. 내가 원했던 것이 바로 그겁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이름 한자 남기지 못한 채 죽어간 동지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그럼, 김 대령님, 이응준이 머무는 정확한 위치나 좀 알아보십시오. 지금 바로 폭격기들을 출동시키겠습니다. 이응준의 시체조차 찾을 수 없게 아예 깨끗이 불태워 죽여버리겠습니다.”

‘당시에는 천황폐하께 충성하고 일제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당연했다.’라면서 자기 합리화를 하고 줄구장창 개소리를 떠들어 대던 친일 매국노들, 그리고 그런 친일 매국노에게 수많은 혜택을 받은 그 후손들, 대한민국을 좀 먹던 벌레 새끼들은 이제 아무도 이 땅에서 살아남을 수 없게 됐다.

그리고, 아베 노부유키 총독과 이타가키 세이시로 대장이 용산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온몸으로 돕던 종로 경찰서장 윤종화가 체포됐다.

일제에 충성을 받쳤던 종로 경찰서장 윤종화는 경성 시민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 재판을 받았고 사형은 선고받고 바로 그 자리에서 총살됐다.

경성이 해방되는 날, 운 좋게 그동안 살아남았던 친일 부역자들의 집은 모두 불타올랐고 친일 매국노들은 여운형이 조직해 놓았던 건국준비위원회 소속의 청년들과 임시정부 연통부의 조직원들에 의해 체포돼서 서대문 형무소에 모두 갇혔다.

0